마이너리티 디자인 / 사와다 도모히로 / 다다서재
시각장애인 축구처럼 항상 감추고 있는 ‘못하는 일’을 당당하게 내가 지닌 카드로 내밀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종종 “연구도 진행되고 있으니까,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같은 말을 듣습니다.
격려하려는 말이라는 건 압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불편하긴 해도 절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닙니다. ‘못하는 것을 극복하지 않고, 외려 활용할 수 있다.’ 저는 이런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카피라이터라는 제 직업으로 그 활용을 도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요.
광고회사에서 하는 일에는 ‘강한 것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만약 ‘약점’에 더 주목한다면,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눈이 보이지 않는 아들은 이른바 소수자입니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곳에 숨어 있는 불완전한 면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위험해요!’ ‘이렇게 바꾸는 게 좋아요!’라고요. 그렇게 소수자가 구멍을 메우면 세계는 다수자들에게도 더욱 살기 좋게 바뀔지 모릅니다.
바로 그래서 ‘약점’이라는 역풍 그 자체를 순풍으로 바꾸고 싶습니다. 그 결과 언젠가는 ‘약점을 살리는 사회’를 아들에게 남겨주고 싶습니다.
‘마이너리티 디자인(Minority Design)’.
소수자를 기점으로 삼아 세계를 더욱 좋은 곳으로 바꾸자. 조금은 허풍스러운 이 말이 제 인생의 콘셉트가 되었습니다. (p.33-34)
‘획일하다’의 반대는 ‘다양하다’입니다.
유루스포츠를 포함해 지금 제가 진행하는 모든 일은 제 아들과 장애가 있는 친구들, 그리고 저 자신의 ‘못하는 일’이나 ‘고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에 쓴 유명한 말입니다.
가령 어느 영화감독에게 “행복한 가족을 찍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웬만큼 비슷한 그림이 나올 것입니다.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있는 가족, 그 곁에 있는 큰 개, 실내를 따뜻하게 데워주는 난로 등. 그에 비해 “불행한 가족을 찍어주세요.”라는 요청의 결과물은 천차만별이겠죠. 표현할 방법이 무수히 있을 것입니다.
즉, ‘약함’에야말로 다양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강점만이 아니라 각자 자기다운 ‘약점’을 서로 교환하거나, 갈고닦거나, 보완할 수 있다면 이 사회가 더욱 풍요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아들의 ‘약점’과 카피를 쓸 줄 안다는 저의 ‘강점’을 조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못한다는 내 ‘약점’을 여러 사람들의 ‘강점’과 엮어보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강점’은 물론 ‘약점’까지, 저와 제 소중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최대한 활용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무리해서 약점을 극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의 약점에는 누군가의 강점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으니까.
약점을 받아들이고, 사회로 들어가, 누군가의 강점과 손잡는다. 이것이 마이너리티 디자인의 사고방식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비로소 싹트는 미래가 있습니다. (p.43-44)
어느 날, 한밤중에 자료를 뒤지다 마침내 일하는 데 있어 ‘금단의 질문’을 머릿속에 떠올렸습니다.
‘이 일은 누굴 위해서 하는 거더라?’
나는 정말로 회사와 사회에 보탬이 되고 있을까? 차례차례 의문이 샘솟았습니다.
광고를 만들 때는 기획서에 다음과 같이 잠재 고객을 설정합니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무직 20대 여성. 부모와 함께 살지만 독립하기 위해서 저금을 하고 있다.’ ‘회사에서 중간관리직을 맡고 있는 40대 남성. 점심값은 600엔 이내.’ 등등.
다수파라고 여겨지는 타깃을 ‘상정’하여 ‘그들’의 마음을 찌를 ‘듯한’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고객 설정이 유효한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그건 ‘누구’일까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p.67-68)
저는 점점 미지의 세계로 빠져들었습니다. 의외로 만나는 사람마다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거든요.
예컨대 어느 시각장애인의 이야기.
“파리지앵처럼 테라스에서 페리에(탄산수)라도 마셔볼까 하고 폼 잡으면서 병을 입에 댔어요. 그런데 맛이 영 이상한 거예요. 아내가 저한테 ‘왜 간장을 마시고 있어?’라고 하더라고요.”
병 모양이 비슷했던 거군요.
또 의족을 달고 있는 어느 분의 이야기.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자동차랑 부딪칠 뻔해서 피하다 넘어졌어요.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는데, 의족이 똑 떨어진 거예요. 그걸 보고 운전하던 사람이 ‘꺄! 다리가 떨어졌어!’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바로 ‘아, 괜찮아요.’라면서 다리를 꾹 끼우니까 다시 ‘꺄!’ 하더라고요.”
아무튼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왔습니다.
그들의 일화는 그저 ‘재미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생활이나 삶의 방식 자체에 새로운 발견이 가득했지요. 어려움을 넘어서는 법, 자신을 받아들이는 방식, 인생에 대한 생각, 행복과 풍요에 대한 정의. 그런 사고방식들을 접하며 저는 큰 공부를 했습니다.
왜 지금까지 그들과 관계를 맺지 않았을까? 진심으로 분할 만큼 눈앞에 ‘신대륙’이 무한히 펼쳐졌습니다. 마치 어릴 적에 세계를 전전하다가 말이란 재미있구나 처음 깨달았을 때처럼.
조금씩 아들의 인생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렇게 공부할 수 있고, 저렇게 일할 수 있겠구나.
처음에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시작했지만, 어느새 저 스스로가 그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장애 당사자를 만나러 가게 되었습니다.
한 차례 텅 비어버렸던 저는 꿀꺽꿀꺽 물을 들이켜듯이 새로운 발견과 놀라움으로 스스로를 다시 채웠습니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언런(unlearn)’, 기존에 배웠던 것을 잊고 새롭게 배우는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84-85)
그 뒤로 장애 당사자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점점 시간이 부족해졌습니다. 전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 “실은 이런 일 때문에 애를 먹고 있어요.” 하고 저에게 상담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건 흥미로운데요!” “이렇게 더 해보면 어떨까요?” … 저는 데자뷔를 느꼈습니다. ‘어? 이거 광고 일이랑 완전히 똑같잖아.’ 의뢰인과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좁히고, 제안하고, 구현하기 위해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렸습니다. 그야말로 광고와 같았지요.
그렇지만 제가 지닌 기술을, 아이디어를, 재능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사용했다는 ‘보람’이 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과감히 말하면, 그때까지 했던 것은 ‘애초에 강했던 것을 더 강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비유하면 ‘세계 최고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도와주는 것’ 같았죠. 그렇지만 광고 창작자란 사실 그보다 훨씬, 훨씬, 훨씬, 훨씬, 훨씬, 훨씬 넓은 영역에서 일하며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때까지 카피라이터로서 광고 기획자로서 수많은 기업을 도왔습니다. 대부분은 이른바 대기업이었죠. 돈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곳은 아무래도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
그렇지만 소수자의 세계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산더미처럼 있습니다.
1이나 5 정도 되는 것이 어떤 포장도 없이 굴러다니는데, 누군가 눈길을 주길 숨죽인 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은 창작자가 빛을 비추면 1이나 5에서 50이나 70 정도로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아직 눈에 띄지 않은 소수자는 사회복지의 세계 밖에도 수없이 숨어 있을 게 틀림없습니다. (p.91-93)
저 자신의 시간, 인생, 경험을 돌아보며 내 재능을 사용하는 방식에 문제는 없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할애해서 제가 일하며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세 가지로 좁혔습니다.
① 광고업계(본업)에서 기른 능력을 광고업계(본업) 밖에서 활용하기
② 대중(누군가)이 아니라 한 사람(당신)을 위하기
③ 쓰고 버리는 패스트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로
지금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이 세 가지 방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방향에서 벗어나는 일은 거절하고 있습니다.
20대에는 일을 거절하기가 무서웠습니다. 싫어하지 않을까,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럼에도 거절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편집하지 않으면, 역량을 집중하며 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 내어 세 가지 방향을 정했습니다. (p.130-131)
해서는 안 되는 것, 두 번째. ‘맛있는 맥주에 현혹되는 것.’
설령 내 아이디어가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져서 여기저기 짜깁기한 누더기가 된다 해도, 납품까지 다다르면 ‘끝났다!’라며 충실감과 달성감과 피로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날 밤 뒤풀이 자리에서 들이켜는 맥주는 단연 최고죠.
술에 취해서는 선배들과 “어쨌든 다행이야!”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듭니다. 이튿날 눈을 뜨면 ‘좋았어, 다시 힘내자!’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가시밭길로 걷기 시작합니다.
물론 일단락을 지을 때마다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서로 위로하는 것은 인생에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동기를 계속 유지할 수 없으니까요.
납품에 이르기까지 풀코스 마라톤 10회와 비슷할 만큼 노력을 쏟았으니 “여기서 잠깐 건배해요!”라며 수분을 보충하지 않으면 이어서 일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저 자신에게 기획서를 쓰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는데 납품 후 마신 맥주가 맛있어서 보람 있는 일을 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그 때문에 더 이상 맛있는 맥주에 현혹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금욕적인 말 같을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맛있는 맥주’는 정말 보람 있는 일을 한 다음 마셔야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p.234-235)
제가 지금까지 만든 ‘PPPPP’를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운동치인 나를 어떻게 좀 하고 싶다.’라는 개인적이기 그지없는 위기(Pinch)에서 시작해 ‘운동 약자를 이 세상에서 없애겠다.’라는 철학(Philosophy)을 내걸었습니다. ‘유루스포츠’라는 플랫폼(Platform)을 만들어 ‘스포츠를 범용성 있는 도구로 쓰겠다.’라는 그림(Picture)을 그리고, ‘핸드소프볼’이라는 시제품(Prototype)을 만들었지요.
기업이나 개인과 이야기하다 ‘PPPPP’ 중 한 가지를 빠뜨린 탓에 프로젝트가 잘 풀리지 않거나 아예 멈춰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모처럼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고 구상했는데, 전혀 구체화하지 못했습니다(시제품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모처럼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고 시제품을 만들었는데, 단발성 아이디어에 그쳐 플랫폼이 되지 못한 탓에 다음 전개가 이어지기 어려웠죠. 얼핏 최신 기술을 활용한 멋진 아이디어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누구의 위기도 고려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PPPPP’가 생태계를 만들 때뿐 아니라 앞으로 이 사회에 필요한 사업을 구상할 때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p.255)
왜 기획에 장난기가 필요할까? 장난기가 아예 없으면 바쁜 현대인이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카피라이터인 나카하타 다카시 씨가 ‘새우튀김의 꼬리 이론’이라는 걸 제창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새우튀김의 꼬리는 먹지 못하기 때문에 실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꼬리가 있기에 새우튀김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시각적으로 즐길 수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가격이 높아도 새우튀김을 사 먹는다.”
그 말대로 새우튀김에 붉은 꼬리가 없다면 정체 모를 길쭉한 튀김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얼핏 보면 쓸모없고 기능적이지 않은 ‘장난’에서야말로 문화적 가치가 싹트며, 그 점에 사람들이 끌린다는 이야기죠. (p.270-271)
지금까지 광고의 세계에서는 무언가 상을 받아서 ‘스타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누구나 꿈꾸는 목표였습니다. 국내외에 여러 상이 있지요. 칸 국제광고제, 클리오 광고제, ACC 도쿄 크리에이티비티 어워드, TCC상….
저 역시 20대에는 그에 따라 여러 상에 응모했습니다. 선배들은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아무튼 상을 따내. 그때부터 시작이야.”
아마 광고업계 바깥도 사정은 비슷할 겁니다. 의료에는 의료의, 공학에는 공학의, 식품에는 식품의 ‘스타’가 있겠죠.
그런데 과연 스타가 나타나는 게 본질적인 해결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떠나자마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버린다면,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빛나는 별을 목표하기보다는 ‘횃불’을 내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않겠습니까?’ 하는 ‘철학’으로 ‘플랫폼’이라는 횃불을 밝히고 그 횃불로 다른 사람의 마음에도 불을 붙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을 점점 주위와 나누면 이윽고 일대가 전부 환해집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스타가 되어도 그 빛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있는 말’이 필요합니다. (p.278-279)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 / 빌 게이츠 / 비즈니스북스
불은 전 세계로 번지지 않는다. 하지만 질병은 전 세계로 번진다. 팬데믹은 한 건물에서 시작되어 몇 주 만에 전 세계의 모든 나라를 불태우는 화재와 다름없다. 따라서 팬데믹을 막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소방서에 준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팬데믹을 예방하는 일을 하는 정규 전문가 조직이 필요하다. 이 조직은 아웃브레이크의 가능성을 모니터링하고,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하면 경보를 발령하며, 억제에 도움을 주고, 확진자 수를 비롯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이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책 권고를 표준화하고, 새로운 도구를 빠르게 적용시킬 수 있는 전 세계의 역량을 평가하고, 교육을 실시하며, 시스템 내의 약점을 찾기 위한 훈련을 해야 한다. 나아가 전 세계에 걸쳐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런 작업을 하는 전문가와 시스템을 조직화시켜야 한다. (p.63-64)
“과잉 대응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앤서니 파우치의 말이다. 나 역시 이 말에 동의한다. 비약학적 개입은 효과가 좋을수록 그것을 시행한 사람들이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아이러니가 따른다. 어떤 도시나 국가가 비약학적 개입을 일찍 채택했다면 감염자 수가 낮게 유지될 것이고 결국에는 이런 조치까지는 필요치 않았다는 말이 나오게 된다.
예를 들어, 2020년 3월 세인트루이스의 공무원들은 자택 대기 명령 등 바이러스 전파를 막기 위한 몇 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세인트루이스의 초기 아웃브레이크는 미국의 다른 도시만큼 심하지 않았다. 이에 일부 사람들은 그런 조치들이 과잉 대응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한 연구를 통해서 세인트루이스 주정부가 그러한 개입을 단 2주만 늦추었어도 사망자 수가 일곱 배 늘어났으리라는 것이 드러났다. 세인트루이스는 미국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몇몇 지역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을 것이다. (p.118-119)
몇 년 전부터 내가 길에 떨어진 100달러 지폐를 줍지 않고 지나간다는 밈이 시작됐다. 돈을 줍는 데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안타깝게도 이 이론을 실험해볼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틀린 이야기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라면 100달러 지폐를 절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선 돈을 떨어뜨린 사람이 있는지 주위를 둘러봐야 한다. 100달러를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 돈을 주워서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 보낼 것이다. 제6장에서 내가 언급했던 백신 단체인 Gavi에 말이다.
Gavi의 목표 중 하나는 가난한 나라들이 백신을 구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Gavi가 하는 일은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Gavi는 여러 나라의 데이터를 모아 사업의 효과를 측정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공급망을 구축해서 백신, 주사기, 기타 물품을 필요로 하는 병원에 도달할 수 있게 돕는다. 보건 부분 지도자들을 교육해서 자국의 백신 프로그램을 보다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대중의 백신 수요를 높이도록 하는 일도 맡는다. (p.275-276)
공중보건기관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만큼의 대중적 관심이나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역 수준이나 국가 수준에서는 물론 WHO와 같은 세계적인 수준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주로 질병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종종 이야기하듯 걸리지 않은 병을 놓고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질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무관심 때문에 인력을 충원하고 좋은 인재를 유지하는 방법을 비롯해 소프트웨어까지 공중보건 부서는 노후화되어 현대화가 시급하다(202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미국 한 주의 보건 부서와 협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그들의 소프트웨어가 20년이나 된 것을 알았다). 이런 요소들은 아웃브레이크 기간 동안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의 기반이 되므로 반드시 강화와 개선이 필요하다. (p.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