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 / 에릭 홀트-히메네스 / 한울아카데미
그러나 우리의 먹을거리 체계와 환경에 압력을 가하는 것은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아니다. 압력을 가하는 것은 지구 북부와 지구 남부의 중간계급 소비자에게서 증가하는 시장 수요이다. 곡물이나 콩을 먹은 고기와 제철이 아닌 농산물에 대한 이들 소비자의 욕구가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의 경제적 기둥이다. 인구과잉과 먹을거리 부족이라는 이중의 유령이 여전히 반기아 및 환경 담론을 지배하고 있지만, 과잉소비의 해악이 과잉생산과 나란히 우리 시대의 과제로 소리 없이 등장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100억 명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있다. 그 생산량은 현재 지구에서 살고 있는 76억 명의 남성과 여성, 아이들 모두를 먹여 살리는 데 실제로 필요한 양보다 1.5배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 기준에 따라서는 100만 명에서 30억 명 사이의 사람이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2050년까지 먹을거리 생산을 두 배로 늘려야만 한다는 말을 항상 듣는 이유이다. (p.12)
만약 우리가 “우리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고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심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글자 그대로 막다른 길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비판적인 대답은 둘 다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의 대답은 “현재 우리가 세계를 먹여 살리는 방식으로는 ‘아니다’”이고, “만약 우리가 먹을거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면 ‘그렇다’”이다.
현재의 먹을거리 체계 하에서 단순히 생산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기아를 종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을거리를 생산하고 부를 분배하는 방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을 경우) 실제로 우리의 지구를 생태적 한계 너머로까지 내몰음으로써 수십억 명의 삶과 생계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현재 먹을거리 체계가 직면한 사회적·환경적 파산은 수세기 동안 형성되고 있는 불공평하고 추출주의(extractivism)적인 먹을거리 레짐(food regime)의 결과이다. 지구를 파괴하지 않고도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기술, 전문지식, 자원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다. 진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무엇이 우리가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가?” (p.15-16)
FAO는 1년 이상 동안의 칼로리 섭취량이 주로 앉아서 일하는 생활양식에서 최소한도로 요구되는 양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에만 굶주리는 사람으로 계산한다. 그러나 굶주리는 사람들 대부분은 힘든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소농 농부들이며, 이들은 FAO가 제시하는 ‘앉아서 일하는’ 데 필요한 최소 칼로리 기준치보다 훨씬 더 많은, 하루 3000~4000칼로리까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들 농부 대부분은 여성으로, 이들은 자주 아이들을 양육하기 때문에 하루에 적어도 500칼로리가 더 필요하다.
통상적인 활동에 요구되는 정확한 (그리고 여전히 보수적인) 칼로리 수준으로 기아를 측정할 경우, 우리는 (FAO가 내놓은 2012년 보고서 부록에 따르면) 15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유엔이 우리에게 믿게 하고자 하는 수치보다 두 배 많다. 우리가 격렬한 활동에 요구되는 칼로리 수준을 기준으로 기아를 측정할 경우, 굶주리는 사람의 수는 25억 명에 달한다.
FAO는 심각한 비타민 부족과 영양결핍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21억 명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들을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FAO가 기아로 간주하는 것은 실제 영양분이 아니라 칼로리 섭취량이다. 그리고 1년 이상 지속되는 기아만을 기아로 정의하기 때문에, 1년 중 11개월 동안 굶주리는 사람은 기아에 포함되지 않는다. (p.25-26)
세계의 굶주리는 사람의 무려 70%가 농부들―대부분은 여성―이다. 실제로는 그들이 지구 농지의 25%도 채 안 되는 땅에서 세계 먹을거리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들은 굶주리고 있는가? 그리고 왜 그들은 여성인가? 경제적인 답은 빈곤이다. 더 체계적인 답은 가부장제, 착취, 침탈이다.
자본주의 농업은 강력한 과잉생산 경향을 지니고 있다. 농업은 토지와 기계류에서 고정자본 비용이 매우 많이 소요되며, 농부들은 땅에 씨앗을 심는 데만도 많은 노동과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그런 다음 수확과 판매 때까지 몇 달을 기다린다. 그 기간동안 그들의 자본은 이동할 수 없다. 수확기에 가격이 낮더라도 농부들은 가격을 올리기 위해 생산을 늦출 수 없으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을 줄일 수도 없다. 그들은 가격 결정자가 아니라 가격 수용자이다. 돈을 잃으면 다음 해에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손실을 메꾸고 빚을 갚아야 한다. 그러나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은 시장 포화로 이어지고, 그것은 가격을 훨씬 더 낮출 뿐이다. 대부분의 상업적 농민들은 파산을 피하기 위해 과도하게 차입하고 있고, 소수의 작물만을 재배한다. 물론 농부들은 곡물을 저장하고 선물거래를 하고 연계매매를 하고 얼마간의 토지를 임차하고 비용을 줄이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벌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농부들은 가격이 높을 때에도 역시 더 많이 생산한다. 아이오와의 농장 지도자 조지 네일러에 따르면,울타리에서 울타리까지 심으라는 현재의 자유방임 정책하에서는 농부는 항상 더 많은 양―탐욕 때문이든 아니면 파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든―을 생산하여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만일 화학물질을 투입해서 비용 대비 소득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 그들은 화학물질을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농부가 뒤따라 그렇게 할 경우 과잉생산으로 인해 가격이 낮아지고 우리의 땅과 물의 질은 저하된다.
이것은 상업적 농부들이 직면한 재정 불안정을―그리고 왜 과잉생산과 팽창 경향이 자본주의 농업에서 특히 격심한지를―설명해 준다. 보조금, 작물보험, 상품 선물거래, 수출 인센티브는 농부들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농업의 상품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러한 수단들―그리고 바이오 연료 붐과 같은 이따금의 횡재―이 농부들로 하여금 만성적인 과잉생산과 낮은 가격의 폭풍을 간신히 버텨나가게 한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확 직후에 생산물 대부분을 파는 가난한 농부의 경우에는 상황이 훨씬 더 어렵다. 수확 직후는 가격이 낮기 때문에 팔기에 가장 나쁜 시기이다. 몇 달 후, 그들의 빈약한 먹을거리 비축물이 다 떨어지면, 그들은 가격이 높을 때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사야 한다. 가난한 농부들이 다른 모든 사람을 먹여 살린 후에 굶주리게 되는 것도 바로 이때이다. (p.33-35)
녹색혁명은 1990년대에 그것 자체로 인해 과잉생산의 위기를 겪었다. 그 당시 곡물 가격이 폭락했고, 그리하여 농민들은 더 이상 자신들에게 제공되던 모든 종자와 화학물질의 값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굶주리는 사람들의 수가 8억 명으로 폭발했다. 그들 가운데에는 녹색혁명 덕분에 팽창한 더 크고 더 자본효율적인 농장에 의해 축출된 수백만 명의 소농 농부들이 있었다.
녹색혁명의 사회적·환경적 약점은 그간 널리 증명되어 왔다. 그러한 약점들로는 농촌 소득의 불평등 증가, 토지와 자원의 집중, 해충 문제의 증가, 농업 생물다양성의 상실, 농장 노동자의 대량 중독, 토양염류화, 대수층의 고갈과 오염, 연약한 열대 토양의 침식 등을 들 수 있다. 독창적인 연구들에 따르면, 멕시코와 인도 모두에서 HYV 종자와 비료라는 녹색혁명의 고가의 ‘패키지’는 경제적으로 특권 있는 소수의 농부는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하고 대다수의 소규모 자작농은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했고, 토지와 자원의 집중을 초래하여 농촌 불평등을 증가시켰다. (p.38)
생물영양강화에서 말하는 이른바 ‘좋은 유전자’는 종자 산업으로 하여금 지난 60년간의 녹색혁명 기술에도 불구하고 왜 농부들이 영양부족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할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녹색혁명으로 인한 단일 작물 단일경작의 확산이 체계적으로 농장의 영양 다양성을 파괴했고 그 결과 농촌 식생활이 심히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생물영양강화의 옹호자들은 우리에게 영양부족이 가난한 사람들의 자연적 상태라고 믿게 한다. 그들이 제시하는 치료법은 주요 작물의 종자에 영양분을 주입한 다음 그 종자를 농부들에게 판매하는 것이다.
거의 200년 전에 영국 자본에 착취당한 아일랜드 농민들은 결국에는 감자―가난한 사람들의 단일경작 작물―만을 먹게 되었다. 아무리 생물영양강화를 하더라도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감자 잎마름병과 ‘대기근’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빈곤과 착취의 상태 하에 숨어 있던 기아는 곧 대량 기근으로 이어졌다. 생물영양강화의 위험은 그것이 뻔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는 영양실조의 원인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p.43)
기아가 미량영양분 결핍의 문제로 축소되면, 미량영양분을 제공하는 사람이 이익을 얻는다. 그리고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가 전통적인 영양분 공급원과 궁핍한 사람들의 식생활을 파괴해 온 방식은 논의에서 제외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다양하고 완전하고 신선한 먹을거리로 구성된 건강한 식생활을 하기보다는 특별하고 영양분이 풍부한 가공식품을 식품산업으로부터 구매한다. 이것은 또한 정부와 산업계로 하여금 세계 기아와 영양부족의 원인을 토지개혁, 농업생태적 경작방식의 장려, 시장개혁, 생활임금 같은 구조적 조치보다는 기술적 해결책에 의해 해결해야 할 기술적 문제로 재조명하게 함으로써 기아와 영양 부족 문제를 탈정치화할 수 있게 해준다.
생물영양강화의 개척자와 최신 기술에 정통한 식품회사들은 기아 종식은 그저 과학을 적절히 이용하는 것과 관련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기아는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발생하는 것이라고―그러나 과학과 산업이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시사한다.
사람들이 굶주리는 까닭은 그들에게 먹을거리를 살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 과학이 그들을 먹여 살릴 그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농부들에게 영양이 부족한 까닭은 그들이 더 이상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p.45-46)
농업에서 발생하는 생산 손실은 신선한 농산물에서 가장 크다. 농산물은 외관상의 결함과 크기 때문에 수확되지 않을 수도 있고, 날씨, 해충, 질병으로 인한 피해 때문에 수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때로는 시장 가격이 낮아 작물을 수확하는 것이 비경제적일 때도 있다. 시장 수요에 맞는 정확한 양을 재배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농부들은 너무 많은 먹을거리를 재배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작물을 심은 들판의 약 7%가 매년 수확되지 않는데, 이로 인해 약 1억 4000만 달러의 작물 손실이 발생한다. 산업적 어업에서는 60%에 달하는 어획량이 항구에 도착하기 전에 폐기된다. (p.47-48)
먹을거리의 표준화는 단일 작물의 단일재배에 의존한다. 이 재배방식은 생태적으로 보다 건전한 복합 경작방식인 (이를테면 곡물, 사료, 콩과류 같은 곡물의) 윤작을 파괴하고, 일 년 중 몇 달 동안 토양을 맨땅으로 방치한다. 농부들은 점점 더 큰 지역을 경작하기 위해서 더 새롭고 더 큰 농기계를 구입해야 한다. 농장 관리를 단순화하고 노동비용을 낮추는 무언가―일부 GMO 곡물처럼―가 농부들에 의해 채택될 것이다. 왜냐하면 농부들은 농업경제학자 존 이커드가 ‘기술 쳇바퀴(technology treadmill)’라고 부르는 것에 올라타기 때문이다.그러한 기술은 항상 더 많은 자본을 요구하지만, 노동과 관리를 줄여서 각 농부가 총생산량을 늘리면서도 단위당 생산비용을 줄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농부가 그러한 새로운 기술들을 채택함에 따라 생산이 증가하고, 그리하여 가격이 떨어진다. 가격 하락은 다시 초기 채택자의 수익을 없애버리고, 채택을 거부하거나 너무 늦게 채택한 사람들을 퇴출시킨다. 이 ‘기술 쳇바퀴’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과잉생산을 야기해 왔고, 수십 년 동안 농부들로 하여금 토지를 떠나게 해왔다.
기술 쳇바퀴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화학 쳇바퀴(chemical treadmill)’이다. 농업에서 농부가 처음에 화학 농약을 채택한 것은 화학 농약이 병충해를 줄여주어 수익을 증대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 때문이었다. 그러나 합성농약과 비료의 계속된 사용은 결국에는 비용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해충이 화학물질에 내성을 갖게 되고 비료가 토양에서 자연 비옥도를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2차 해충(전에는 주요한 해충이 아니었지만 광범위한 농약 사용으로 인해 그 해충의 천적이 전멸함에 따라 주요 해충이 된 생물체)의 창궐과 비료 남용으로 인한 토양 황폐화는 작물들을 질병에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화학물질의 계속된 사용에 대응하여 ‘슈퍼 박테리아’와 ‘슈퍼 잡초’가 생겨남에 따라, 농부들은 잡초와 곡물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매년 점점 더 많은 화학물질을 구입하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거의 없게 된다. (p.61-62)
지난 4세기 동안 13만 종의 무척추동물이 사라졌는데, 이는 주로 서식지 상실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보다 최근에는 멸종이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했다. 독일에서 농업 지역에 둘러싸인 자연보호구역에서 실행한 연구들은 1990년 이후 날아다니는 곤충의 75%가 감소했음을 보여준다. 이 분석은 농약이 원인이라고 시사한다. 곤충은 ‘광산의 카나리아’이다. 먹이사슬에서 곤충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막대한 곤충이 죽어 없어지는 것은 새, 물고기, 포유동물에게 부정적인 먹이사슬 연쇄(trophic cascading effect)를 초래할 것이다.
녹색혁명이 시작된 이래 세계 농업 생물다양성의 70% 이상이 이미 사라졌다. 현지 내 다양성(in situ diversity)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수천 년 이상 동안 농부들이 개발하고 저장하고 심어온 종자들이 단지 소수의 품종만 갖는 다섯 개의 상품 작물로 대체되었다), 그러한 품종들을 재배하는 방법, 최대한의 회복력과 생산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러한 품종들을 섞어서 심는 방법과 관련한 지식도 사라졌다.
교배종 품종으로 전환되는 것과 함께, 토종 종자는 국제농업연구센터들과 노르웨이에 있는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에 현지 외(ex situ)로 저장된다. 이러한 임시변통적 보존조치는 종자 다양성 상실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원인을 다루지 않는다. 게다가 현지 외 종자는 현지 내 종자처럼 변화하는 환경조건에 적응하지 못한다. 수세기에 걸쳐 전통적인 농부들은 작물의 본고장들(바빌로프 유전자 다양성의 중심지들)에서 다각화된 농업체계를 통해 종자를 개발했다. 본고장에서 재배된 작물들의 야생 근연종(wild relatives)은 오늘날에도 유전적 회복력의 원천이다. (p.73-74)
기후-스마트 농업과 지속가능한 강화는 농업 생산양식(자본주의), 생산수단(토지, 노동, 자본)의 불균등한 배분, 또는 (충분한 양의 건강한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없게 만드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기업 먹을거리 레짐의 기존 정치 및 구조와 양립할 수 있는 산업적 생산 형태로 기술적 변화를 이룰 것을 요구한다. 기후-스마트 농업과 지속가능한 강화는 새로운 농업 기술이 기아와 환경 황폐화의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거나 궁극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추동할 것이라는 것, 또는 기술 변화가 우리가 현재 자본주의 농업 내에서 성취하기를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식들은 자본주의 자체를 그 범위 밖에 안전하게 놔두고서 자본주의 농업을 긍정하고 정상화할 뿐만 아니라, 자본이 어째서 다른 형태의 생산에 비해 특정 형태의 생산을 선호하는지도 다루지 않고, 특정 형태의 생산이 어떻게 다른 형태의 생산을 착취할 수 있는지도 무시한다. 이를테면 사료와 연료 작물을 생산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은 먹을거리를 재배하는 소규모 자작농들에게 생계의 손실을 보상하기 위한 일자리도 제공하지 않은 채 그들을 몰아낸다. 계약 경작은 농업 강화가 얼마나 지속가능한지와는 무관하게 농부들을 농노와 같은 형태의 채무 속박에 빠뜨린다. (p.94-95)
그럼 농부들은 새 기계를 사고 새로운 서비스 비용을 지불하는 데 필요한 돈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 땅에서 얻는다. 농지 상품의 붐과 금융 규제 완화 덕분에 농지가 빈번히 거래되고 농지의 금융화가 증가하고 있다. 한편에서 농부들은 자신들이 기술 쳇바퀴에서 앞서갈 수 있게 해줄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새로운 담보대출을 받거나 심지어 땅을 팔고 임차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나도 가난해서 기업의 힘에 저항할 수 없는 농부들로부터 토지가 수탈되고 있다.
토지는 단지 더 큰 덩어리로 통합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농지의 소유권이 농부들에게서 금융 부문으로 넘어가고 있다. 담보물들은 잘게 쪼개져서 다시 포장되어 팔린다.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는 매초당 수백만 조각의 농지가 거래된다. 이것은 농지 가치에 투기적 거품을 만들어서 농지를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권에서는 물론 젊은 농부와 신참 농부들의 사정권에서도 벗어나게 해왔다.
먹을거리 생산, 농지의 가치, 투기적인 글로벌 금융자본이 하나로 결합된 것이 바로 캘리포니아대학교의 매들린 페어베언이 ‘금의 수확(gold with yield)’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2008~2011년 이후 먹을거리 가격이 급등하면서 먹을거리 상품과 땅 둘 다 가치가 상승했고, 이로 인해 토지 러시가 일어났다. 2000년에서 2016년 사이에 농업 관련 기업 투자자들은 전 세계 소규모 자작농과 목축민들로부터 2400만 헥타르 이상의 땅을 ‘수탈’했다. 옥스팜은 농업, 채굴산업, 순 투기를 위해 수탈된 토지가 8100만 에이커―포르투갈 크기의 규모―가 넘는다고 추정한다.
이것은 농부, 먹을거리 체계, 환경에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산업적 농업이 파괴적 결과를 초래하는 것 외에도, 투기자의 시간 지평은 분―또는 심지어 초―이다. 토양, 대수층, 생물다양성에 관심이 있는 생태 농부의 시간 지평은 세대이다. 투기꾼이 아닌 토지 지킴이들이 농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p.97-98)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는 서서히 움직이는 재앙이지,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가 작동하기로 되어 있는 대로 정확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끊임없이 확장하며 소수의 강력한 독점체에 부를 집중시키면서도, 모든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사회에 전가한다. 그러한 비용은 불공평하게도 가장 취약하고 착취당하는 여성, 빈민, 토착민, 유색인종, 노동계급, 농촌 지역사회가 부담한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 자행되는 사람과 자원의 착취는 주기적인 과잉생산의 위기를 낳는다. 이 위기는 새로운 부, 생산 형태, 시장을 건설하기 위해 기존의 부, 생산 형태, 더 약한 경제와 공동체의 시장을 파괴함으로써 해결되고, 그리하여 또 다른 라운드의 축적이 다시 시작된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이를 ‘창조적 파괴’라고 불렀고, 그것을 자본주의 기업가적 발전 동력의 일부라고 칭송했다.
이 모델은 자본주의가 확장되고 새로운 땅과 새로운 값싼 노동 풀을 착취할 수 있는 한 ‘작동’했다. 기술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더욱더 많은 먹을거리를 공급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자원을 발견하는 데에는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기존 자원은 오염되고 있다. 세계 인구가 안정화됨에 따라 시장 확대는 주기적인 과잉축적 위기를 해결하는 방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통해 창출된 가치로부터 부를 금융적으로 짜내어 축적하는 시대의 말기로 접어들고 있다. 먹을거리 자체가 금융 투기 수단의 하나가 되어왔다.
자본주의 먹을거리 체계의 문제는 인구과잉이 아니다. 인구 증가는 정체되었다. 문제는 지역사회가 너무나도 가난해서 생산되는 먹을거리를 살 수 없다는 유령에 있다. 세계 인구에게 문제는 먹을거리 부족이 아니라,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먹을거리 체계 자체이다. 유한한 세계에서 창조적인 파괴는 항상 위험한 주장이었다. 오늘날의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는 인간의 삶을 지원하는 지구의 능력을 “창조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무제한적인 성장, 착취, 주기적인 금융위기에 의존하고 있고 자원을 고갈시키고 있는 먹을거리 체계는 ‘고칠’ 수 없다. 그것은 변혁되어야만 한다. (p.102-103)
기아와 영양실조를 겪는 사람·지역사회·가정은 일반적으로 ‘먹을거리 불안정’ 상태에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먹을거리 안정성(food security)은 “먹을거리 소비를 계속해서 늘리고 생산과 가격의 변동을 상쇄하는 적절한 세계 먹을거리 공급체계 속에서 사람들이 기본 식료품을 항시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정의된다. 건강하고 활동적인 삶에 필요한 충분하고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에 모든 사람이 항상 물리적·경제적으로 접근하여 자신들의 식생활 요구와 먹을거리 선호를 충족시킬 때, 우리는 먹을거리 안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먹을거리 안정성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둥은 이용 가능함, 접근 가능함, 유용함, 안정적임이다.”
먹을거리 안정성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먹을거리의 재배방식, 먹을거리의 영양적 가치, 그 먹을거리의 공급자, 또는 그 먹을거리에 접근하는 방식을 다루지 않는다. 먹을거리 안정성에 대한 이 정의에 의하면, 사람들은 감옥에서 먹을거리 안정성을 확보할 수도 있다. 이것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어디서 온지 모르는 먹을거리도 글로벌 먹을거리 체계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먹을거리 안정성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구 북부가 자신의 과잉 곡물을 지구 남부에 덤핑 처리하여, 표면상으로는 주민들이 먹을거리 안정성을 더욱 확보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면서 실제로는 현지 먹을거리 체계를 파괴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2008년과 2011년처럼 글로벌 먹을거리 가격이 급등하면, 가난한 나라들과 가난한 집들은 굶주린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자신들이 기댈 수 있는 지역 먹을거리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안정성 개념은 먹을거리 종속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p.116-117)
별 다섯 개 부탁드려요! / 유경현, 유수진 / 애플북스
쿠팡이 쿠팡 플렉스를 도입한 건 2018년부터다. 쿠팡맨과 달리 상시 고용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하루 배송 물량에 따라 유연하게 배송 기사 수를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쿠팡은 플렉스 인원을 끌어 모으려고 ‘프로모션’ 명목으로 배송 건당 수수료를 한때 3,000원까지 높였고, ‘월수입 500만 원 가능’이라는 홍보에 이끌려 수많은 사람이 뛰어들었다. 그렇게 플렉스로 등록된 사람은 약 30만 명, 전국적으로 하루 평균 4,000명이 일을 하고 있다(2019년 기준).
진용 씨가 플렉스 일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주·야간으로 열심히만 하면 정말 월 500만 원을 벌 수 있었다. 밤과 낮의 신체 리듬이 바뀌어 몸과 정신은 힘들었지만, 지금의 고생이 언젠가 내 이름으로 된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픈 꿈을 이루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플렉스 수가 급격히 늘자 쿠팡은 프로모션 제도를 중단했고 배송 단가는 곤두박질쳤다. 3,000원에서 2,000원으로, 2,000원에서 다시 1,000원 대까지 떨어졌다. 일하겠다는 인력이 매일 차고 넘치는데 기업 입장에서는 배송 단가를 다시 높일 이유가 없다. 이미 잡은 물고기에는 더 이상 먹이를 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프로모션이 사라지자 플렉스들 중 일부는 일을 그만뒀다. 하지만 주·야간 배송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 그들에게 플렉스는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업’이니까. 프로모션 때와 같은 월수입을 얻으려면 배송 건수를 늘려야 한다. 배송 단가가 반토막이 나면 배송 건수를 2배로 늘려야 이전과 같은 돈을 벌 수 있다. 결국 장시간 노동을 피하지 못하는 구조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p.35-36)
뉴스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들을 소개하며, 직원들의 연봉이 얼마나 인상됐고, 성과급이 얼마인지 연일 보도한다. 극심한 취업난을 뚫고 큰 기업에 취업한 인재들은 말 그대로 ‘좋은 스펙’을 가진 엘리트들이다. 바로 그들이 일류 기업에 들어가 고민하고 설계하고 만들어 낸 것이, 그 기업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위험을 전가하고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하게 만드는 알고리즘과 시스템인 것일까? 기업의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는 하지만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이 인간의 노동 단가를 최소화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p.39-40)
라이더들은 보통 한 번에 2~4개의 음식을 동시에 배달한다. 아니 배달해야 한다. 한 번에 하나씩만 배달하면 음식 픽업 시간 10분, 배송지 배달 시간 20분인 점을 감안해 1시간에 많아야 2개꼴로 배달하게 된다. 음식 배달 수수료가 평균 3,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시간당 최저 임금 8,720원(2021년 기준)도 손에 쥐기 힘들다. 생계가 달린 라이더들에게 ‘묶음 배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셈이다. (p.114-115)
정훈 씨가 배달 대행 앱을 켜서 며칠 전 정산 내역을 보여줬다.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총 12건을 배달한 그날의 수입은 총 4만 원. 하루 평균 80km를 달려도 시간당 평균 1만 원 넘게 벌기는 힘들다고 한다. 시간당 1만 5,000원을 벌려면 시간당 4건 정도를 배달해야 하는데 신호를 무시하고 보행로를 무단 질주하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라이더들은 점심(10시~15시), 저녁(17시~22시) 배달 시간 전후 평균 10시간을 일한다. 건당 배달 수수료를 3,000원이라고 치면 한 달에 1천 건을 배달해야 300만 원의 수익이 생긴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 달 동안 25일을 일한다고 가정하면 평균적으로 평일 30~40건, 주말 60~70건을 배달해야 한다.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강행군이다. (p.122-123)
리카르도는 우버 기사 시스템이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가기 힘든 ‘개미지옥’과 같다고 말한다. 미국의 채용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원자의 경쟁력이다. 그런데 우버 기사는 제대로 된 경력으로 인정받기 힘들다. 우버 기업의 광고처럼 차량과 핸드폰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말해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커리어’와 같다는 말이다. 은행에서도 우버 기사는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연히 신용도는 낮고 대출도 어렵다. 리카르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6년간의 우버 기사 경력을 내세워서 재취업할 수 있는 직장은 어디에도 없다.
리카르도가 캐딜락 차량의 트렁크를 열었다. 그 안에는 리프트 홍보 대사로 활동할 당시 사용했던 홍보 용품들이 쌓여 있다. 승차 공유 플랫폼 기업의 밝은 비전이 새겨진 팸플릿과 반짝이는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와 모자들이다. 그때 그들이 약속한 장밋빛 미래를 리카르도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p.200-201)
문샷 / 앨버트 불라 / 인플루엔셜
백신의 목표는 종류와 상관없이 면역체계가 감염증을 일으키는 병원체(pathogen)라는 요인을 인식하고 방어하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백신에는 보통 약하거나, 죽었거나, 감염성이 없는 병원체의 일부가 들어 있다. 병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인간의 면역체계는 외부 침입자로 인식해서 항체와 T세포 같은 방어체제를 가동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실제 병원체가 등장했을 때 몸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그들에게 강력한 공격을 퍼부을 수백만 개의 항체와 T세포를 준비해놓는다.
그러나 새로운 mRNA 백신은 이와 달리 실제 병원체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약하거나, 죽었거나, 감염성이 없는 병원체의 일부가 없는 대신 우리 몸이 이러한 병원체를 직접 구성하는 단백질을 생성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리보솜이 몸에 주입된 mRNA를 읽으면서 이 방법을 익히면 병원체 단백질을 생성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면역체계는 그것을 즉시 침입자로 인식하여 진짜 병원체가 나타났을 때 우리를 보호해줄 면역반응이 생기게 해준다. 간단히 말해서, mRNA는 몸이 스스로 백신을 만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백신 접종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일련의 지시사항이다. (p.51-52)
지금 돌이켜보면 “시간이 곧 생명”이라는 마음가짐이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이었다. 아주 거창한 목표, 즉 전례 없이 높은 목표를 설정하면 경이로운 방법으로 인간의 창의성을 발산시킬 수 있다. 보통 10년이 걸리는 일을 8년 안에 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현재 작업 프로세스 내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2억 회 접종분(당시 우리의 연간 생산량을 감안했을 때) 대신 3억 회 접종분의 백신을 만들라고 한다면 그들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도 현재의 작업 방식을 개선하는 해결책을 찾아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더 나은 성과를 거둘 수도 있겠지만, 대개 프로세스는 이미 수년간 최적화된 상태라 증산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8년이 아닌, 불과 8개월 안에 모든 작업을 끝내야 했다. 게다가 3억 회의 접종분이 아닌 무려 30억 회의 접종분을 생산해야 했다. 나는 처음부터 이러한 목표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못박았다. 점진적인 개선으로는 기대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기존의 프로세스를 전면 재고해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고, 모든 단계에서 빠짐없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했다. 그런데 그 힘든 일을 우리가 해냈다! (p.93-94)
우리가 말하는 평등은 모두에게 똑같이 제공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더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이 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백신을 모든 국가에 같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는 없었다. 대신에 3단계로 차등화한 가격책정 방식을 시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세계은행의 소득 수준별 국가 분류 방식을 토대로 적정 가격을 분석했다. 세계은행은 환율 변동 영향을 줄이기 위해 해당 국가의 물가상승률과 국제 물가상승률의 차이를 조정한 뒤 최근 3개년도의 평균 환율을 적용하는 아틀라스(Atlas) 방식을 사용해 달러로 환산한 1인당 국민총소득(Gross National Income, 이하 GNI)을 기준으로 국가의 소득 수준을 평가한다. 이에 따라 전 세계 모든 국가는 고소득 국가, 중상위 소득 국가, 중하위 소득 국가, 그리고 저소득 국가 이렇게 네 개 소득 수준으로 분류된다. 우리는 가장 부유한 고소득 국가에 판매할 백신 가격이 ‘한 끼 밥값’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중상위 소득 국가에는 이 가격의 대략 절반 정도에, 그리고 중하위 소득과 저소득 국가에는 원가에 공급하기로 했다. 단, 이렇게 백신을 공급받는 국가들은 자국민에게 백신을 무료로 접종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팬데믹 상황에서는 누구나 동등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가격은 모든 사람의 접종에 장애물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모든 나라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p.180-181)
“내겐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단 한 번의 인생과 단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중략) 내 신념은 내게 변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으로 할 수 있는 한,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서 할 수 있건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고 요구한다.” 전적으로 이 말에 동의한다.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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