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 최혜진 / 한겨레출판
서른두 살 어느날, 그림책과 만났다. 조용하고 위태롭게 곪아가던 무렵이었다. 누군가 면전에서 힘내라고 말하면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하고 뒤돌아 냉소하며 벽을 쌓아 올렸다. 그런데 우연히 만난 그림책 앞에선 신기하게도 성난 마음이 잠잠해지고 귀가 열렸다. 그림책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이다.
있잖아, 크고 화려한 궁궐에 사는 왕비님이 있었는데 늘 혼자인 것 같고 마음 둘 곳이 없었대. 있잖아, 종일 억울하고 짜증 나는 일만 겪은 아이가 있었는데 비를 쫄딱 맞고 집에 갔더니 부모님이 부부싸움까지 하더래. 있잖아, 스스로 쓸모없다고 자책하던 강아지똥이 민들레 싹을 만났대…. 서른 쪽 남짓 이어지는 짧은 이야기에 푹 빠졌다 현실로 돌아오면 어둠 속에서 전구 하나가 반짝 켜졌다. 이상하게 기운이 났다. (p.7)
제가 그림 배우느라 화실에 다닐 때 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동갑내기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림 잘 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물으니 “하루에 열 장만 그리세요”라더군요. 대부분 하루에 열 장을 못 그려서 실력이 안 느는 거라고요. 열흘이면 100장, 백일이면 1000장이잖아요. 그림은 숙련의 과정이기 때문에 손을 움직인 만큼 잘 그리게 돼요. 그러니까 문제는 오늘 열 장을 못 그리는 데에 있어요.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콤플렉스에 지지 않을 수 있더라고요. 그냥 내가 오늘 열 장 그리면 되니까요. (p.25)
자라는 내내 사회의 평균치에 맞게 살라는 강요를 많이 당했어요. 딸이니까, 여자니까, 학생이니까 같은 말들로요. ‘여자, 몸집이 작다, 어리다’처럼 저를 설명하는 단어들이 핸디캡으로 돌변해서 통제의 이유가 되니 불합리하게 느껴지고 화가 났어요. 어릴 때 제가 그림을 곧잘 그리니 부모님이 미술학원을 겸하는 피아노 교습소에 보내주셨어요.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에서 본 동물들을 자주 그렸는데, 선생님이 “어린애가 어른처럼 그리면 안 된다”고 혼을 냈어요. 인형처럼 귀엽게 눈, 코, 입을 그려야 어린이다운 그림이라는 거예요. 말도 안 되는 발상이지요?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요즘도 많은 어린이책이 세계를 도식적으로 그려내요. 그림책에 등장하는 동물도 개, 고양이, 곰, 토끼 등 몇 종에 쏠려 있고, 모두 호감 가는 외양으로 도식화되어 있지요. 도식을 취한다는 건 그것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 에너지를 들여가며 대상을 바라보고 새로이 인식하지 않겠다는 거지요. 캐릭터화한 표현, 대상화된 표현에 너무 많이 노출되면 현실 인식도 왜곡될 수 있어요. 제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그림은 도식을 배반하는 그림이에요. 작가가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본 결과를 그려내는 그림, 고유한 시선이 전해지는 그림을 아이들이 더 많이 보았으면 해요. (p.64)
그런데 성공은 100% 운이에요. 고 신해철 씨가 마지막 강연에서 “인생의 깊숙한 비밀을 알려줄게. 성공은 운이야”라고 했던 말을 저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그러니 타인의 성공을 부러워하고 연구하지 마세요. 연구한다고 그 사람 삶이 내 것이 되지 않아요. 그냥 열심히 자기 자신으로 사세요. 또 한 가지 조언이 있어요.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사람과 이유 없이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그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반대하거나 지지할 거예요. 내가 내놓은 결과물을 누군가 탐탁지 않아 하면 이렇게 생각하세요. ‘아,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받아줄 사람도 있으니 저는 괜찮습니다’라고요. (p.79)
경험이 많아지면 무덤덤해질 법도 한데 작가님은 중견 작가가 된 지금도 재밌는 게 너무 많다는 점이 신기해요.
재미있는 일이 통 없다면 ‘이 정도가 재미지’라는 기준이 높기 때문 아닐까요? 대충 재미있거나 조금만 재미있어도 재미있는 건데요. 저는 다른 작가의 그림책을 보다가 이건 참 좋네 싶은 점이 하나 있으면 그 책을 구입해요. 그림체가 별로이거나 서사에 구멍이 있어도 하나 좋으면 그냥 좋은 거예요. 어디에서든 좋은 점, 멋있는 점, 배울 점을 찾으려는 태도를 가지면 매 순간 새로운 감동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오늘은 또 어떤 놀라움과 만날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 문을 살짝 열어두는 거지요. (p.99)
‘순간에 온 마음으로 머문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에요.
소설가 다니엘 페나크의 《학교의 슬픔》이라는 책이 있어요. 학창 시절 열등생이었던 자신의 경험담과 영향을 준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인데요. 좋은 선생님들은 무엇이 달랐는지 이런 문장으로 설명해요. ‘그들은 수업할 때 거기에 있었다.’ 몸만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까지 전부 한곳에 있기가 생각보다 어려워요. 이 일을 하면서 저 생각하거나, 아이의 질문에 입으로는 대답하지만 정신으로는 다른 곳에 가 있는 식이죠. 저도 작가, 강연자, 사장, 엄마, 딸로 하루에도 몇 번씩 역할 변경을 하지만, 어느 때든 지금 마주한 순간에 백 퍼센트로 머문다는 원칙을 잊지 않으려 노력해요. (p.106-107)
거북이가 경주에서 이기자 온 도시에 슈퍼 거북 바람이 불어요. 너도나도 꾸물이 흉내를 내기 바쁜 풍경을 재밌고 즐겁게 그리셨어요. 한국은 유행 쏠림이 심한 편이라고 하지요. 작가님은 유행이나 트렌드에 초연하신 편인가요? 출판계에도 ‘누군가의 성공을 따라 하는 흐름’이 분명 존재하지 않나요?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동료의 성공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시는 편인가요?
만약 신이 저에게 “네가 갖고 싶은 그림체를 줄게. 누구 그림체가 갖고 싶니?” 묻는다면 아베 히로시, 초 신타, 아라이 료지, 다시마 세이조를 꼽을 거예요. 어린이가 거침없이 그린 듯한 강렬한 색감과 그래픽을 동경해요. 하지만 제 그림체는 그렇지 않아요. 망치는 걸 두려워하는 습성 때문인지 과감한 표현보다 자잘한 정보 전달에 능한 설명적인 그림체를 갖게 되었어요. 이런 저의 눈에 반짝이는 작가들이 보여요. 배가 아프죠. 샘도 나요. 그런데 그게 전부예요. 며칠 질투하다 제자리로 돌아와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도 있어. 저것은 내 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요. 만약 ‘이것만큼은 내 거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가지지 않았다면 저도 흔들렸을 거예요. (p.133)
질병이라는 시련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고 계신지요?
질병 덕분에 정신 승리를 잘하는 사람이 되었지요.(웃음)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는지 자꾸 생각해요. 예전에 의료 민영화 시도가 있었을 때, 제일 먼저 광화문에 달려간 사람이 저예요. 공공 의료의 절대적 필요성을 이해하니까요. 장애인 학우들과 공부 모임을 계획한 이유도 몸 덕분이에요. 저는 앞으로 몸이 더 불편해질 거예요.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내길 바라요. 예전에는 독선적이고 불같은 성격이었어요. 아프지 않았다면 내 안에 갇혀서 재미없는 삶을 살았겠다 싶어요. 시야를 들어 바깥을 보게 해주고, 타인과 공감할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건 저의 아픈 몸이에요. (p.164)
자아실현과 생계 사이에서 고민하는 직업인은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균형점을 찾으셨나요?
《뼘책》은 자가 출판물이라 오히려 돈을 써야 했는데도 독자가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쾌감이 대단했습니다. 의뢰받아 하는 일까지 즐거워지더라고요. ‘다음 창작 그림책은 이걸 만들어야지’ 하는 지향점이 생기니 일러스트레이션 일이 작가로서 경제적 기반을 만들어주는 감사한 작업으로 다가왔어요. 일러스트레이션 일이 힘들어도 ‘다음에 내가 할 작품이 있어’라는 생각 때문에 크게 괴롭지 않았고요.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 경험이 다음 내 작품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궁리했어요. 추구하는 바가 생기면 동일한 생업 활동을 하더라도 자세가 달라진다는 점을 배웠어요. 지향점이 잡히면 모든 것의 의미가 달라져요. (p.213)
저는 이제 손으로 실행해보면서 오류를 맞닥뜨릴 때의 희열이 좋아요. 계속 실패를 맛봐야 해요. 오류와 실패는 내가 넘어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그때에만 찾아오는 성장과 깨달음이 분명 있거든요. 예민하고 소심한 편이라 항상 덜덜 떨면서도 계속 넘어지려고 해요. 궁금하거든요. 저를 떨게 하는 존재의 실체를 보고 싶어요. 그러면 두려움도 해소될 테니까요. 자주 좌절하고 쉽게 작아지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쉽게 커질 수 있어요.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자기 믿음이 있어요. (p.252-253)
노력파인 자신을 볼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너무 싫죠.(웃음) 강한 통찰력과 시원한 필치로 한 번에 쫙 밀고가는 작가들 보면 참 멋지잖아요. 저도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해나갈수록 저의 그릇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루하루를 오래 쌓아야만 겨우 한 권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p.288)
어느 날, 정해왕 선생님이 번역한 책 앞에 사인을 해서 주셨는데 이렇게 써 있었어요. ‘앞으로 훌륭한 그림책 작가가 될 게 뻔한 박연철에게’ 그날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35세에 그림책 작가라는 꿈에 모든 것을 걸었는데, 재능도 없고, 비전도 안 보이고, 많이 위축되었거든요. 선생님은 큰 뜻 없이 써주신 말일 수도 있는데, 믿음과 위로가 너무나 고팠던 저는 그 문장 하나를 붙잡고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p.318)
물의 인문학 / 베로니카 스트랭 / 반니
현대 물리학은 고립계가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체계의 지속 가능성은 각 체계가 질서를 유지하는 능력, 그리고 중요하게는 체계 간 연결의 흐름을 유지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자족 체계에 대한 몇 가지 실험이 있었다. 예를 들어 NASA 우주선의 물 재활용은 우주선 안의 모든 동물―인간과 쥐 모두―에게서 나온 거의 모든 물 입자를 이용하게 된다. 오줌, 심지어는 호흡과 땀으로 나오는 수분까지도 각 우주정거장의 환경 관리 및 생명유지시스템에서 재활용한다. 쥐의 오줌을 마시는 일(그 문제라면 쥐의 입김도 마찬가지지만)이 유쾌하지는 않다. 그러나 NASA의 정수 처리 전문가 레인 카터(Layne Carter)는 이렇게 말한다. “역겹게 들릴지는 몰라도, 우주정거장의 정수기에서 나가는 물은 대다수 우리가 지구에서 마시는 물보다 훨씬 깨끗할 거예요.” (p.51)
인간은 물과 직접적으로 상호작용 하면서 종종 매력적인 감각적 체험을 한다. 우리는 휘몰아치는 비가 따갑게 피부를 파고드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이슬비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기도 한다. 느긋한 기분으로 따뜻한 물에 목욕과 샤워를 하기도 하고, 온몸을 잔뜩 긴장한 채 차가운 호수와 바다에 뛰어들기도 한다. 물이 있으면 우리 마음은 두둥실 떠다니고 상상의 날개가 펴진다. 흐르는 물의 특성이 꿈같은 자유를 가져다준다. (p.66-68)
물은 말 그대로 지구 곳곳에 물질을 운반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자원의 흐름을 나타내는 중요한 비유로도 쓰인다. 경제 체계에 관한 생각은 흐름의 이미지에 많은 것을 의존하고 있다. 경제 체계는 순환하고 파도를 그리면서 움직인다. 또한 자금 투입과 수혈을 필요로 한다. 부는 순환하고, 낙수 효과로 ‘조금씩 흘러내릴’ 수도 있다.(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은 넘치거나 늪에 빠지거나 말라버릴 수 있다. 시장 지수는 물 위에 두둥실 뜨듯 활황일 때도 있고 혹은 그보다 더 자주 있는 일이지만(요즘이 그러하다) 바닥을 뚫고 더 아래로 곤두박질칠 수도 있다. 경제와 ‘현금 흐름’은 비유적 의미에서 ‘유동적’이며, 따라서 세계 금융 위기는 ‘유동성’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여겨졌다. (p.73-74)
로마가 수도교를 만들면서 그리고 과거의 수력 사회들이 수로를 만들면서 깨달았듯이 도시 상하수 체계를 만드는 데에도 복잡한 관리 체제가 필요했다. 이 체제는 누가 어떤 물 공급원을 소유하는지, 누가 언제 이용권을 갖는지, 물 운반비용은 누가 지불하고 누가 받는지 등을 규정했다.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런던에서도 물 공급 및 기반시설 관리와 관련된 과제와 책임을 둘러싸고 지방자치단체, 자선가,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책임 소재 문제로 우왕좌왕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전에는 많은 재산을 가진 강력한 교회가 수도원 부근의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했다. 이 때문에 도덕적 지도 관념과 물 공급 사이에 중요한 연관성이 만들어졌다. 생명의 물질, 영혼의 실체, 죄를 씻어주는 상징적 물질을 나누어주는 일만큼 도덕적 권위가 높아지는 일이 있을까? 불결한 위생으로 상징되는 혼돈의 자연 속에서 뒹구는 것만큼 부도덕함을 잘 보여주는 것―또한 질병의 벌을 받을 만한 것―이 있을까? 따라서 도시 상수도의 소유권과 관리권을 둘러싼 다툼은 정치적 권력 및 경제적 이익과 관계될 뿐만 아니라 교회와 국가 사이에 패권을 놓고 벌이던 경쟁 및 도덕적 지도력과도 연관이 있었다.
도시의 물을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계층 분화가 심화되었다. 부자들은 집까지 곧바로 연결된 파이프로 물을 공급받았다. 부자는 아니지만 물을 운반해주는 사람에게 돈을 지불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주민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은 우물이나 옥외 급수탑에서 직접 물을 길러왔으며, 물 공급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는 고작 해야 새로운 공급 파이프에서 몰래 물을 빼내어 ‘물 도둑’이 되는 정도였다. (p.156-157)
강물의 흐름이 급격하게 바뀌면 수생생물 종과 그에 의존해 살아가는 종들에게는 재앙이 닥칠 수 있다. 댐이 생기면 비옥했던 삼각주 지역에 침적토가 새로 쌓이지 않고 영양분이 해양생물에게 도달하지 못한다. ‘한꺼번에 방류하는’ 물이 마른 계곡(그래서 더욱 취약하다)으로 왈칵 흘러내리면서 강바닥과 둑을 깎고, 강과 해양 생태계의 수질을 악화시키는 침식 작용을 일으킨다. 반드시 상류로 올라가 알을 낳아야 하는 많은 어종을 위해 계단식 어도를 만들어주지 않는 한 이 어종들은 댐에 막혀 상류로 올라가지 못한다.
댐 하류의 인간과 다른 종들 역시 다른 방식으로 위험에 처한다. 커다란 저수지를 지으면 그 지역에 지진 활동의 위험이 커질 뿐만 아니라 댐이 지진이나 다른 현상의 영향을 받을 경우 홍수가 일어날 추가적 위험까지 있다. 대형 댐 사고도 몇 차례 있었다. 대부분은 폭우 때문이었지만 건설 공정상의 취약함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제는 지도상에 세 개의 주황색 점으로 댐을 표시해, 그 지역이 국제인도법(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에서 ‘위험 요인을 지닌 시설’로 분류된 곳임을 알린다. (p.210)
비유적으로든, 말 그대로든 당연히 모든 것의 끝은 바다이다. 섬세한 해양 생태계가 존재하는 바다는 오염의 영향을 강하게 느낀다. 하수 배출구에서는 인간이 버린 폐수가 수백만 톤씩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고, 공장에서 나온 중금속이 하류로 이동해 준설작업으로 하구를 빠져나가며, 우울하게 자주 일어나는 기름 유출과 그 밖의 화학적 재앙으로 해양 생태계는 수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자라던 해초와 그 밖의 수생식물이 그동안 많은 종을 부양해왔지만 이제는 사라지고 있으며, 소규모 생물군은 질식당하고 있다. 형형색색의 만화경을 이루는 데 수천 년씩 걸리는 산호초는 오염 때문에 그리고 해수 온도의 상승과 해수면의 변화 때문에 회색으로 죽어가고 있다. 국제자연보호연맹이 21세기 중반이면 거의 모든 산호초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에우리피데스(Euripides)는 ‘바다가 모든 죄를 씻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대한 개수대’가 끝없이 받아들이고 정화하고 재생하는 능력을 지닌다고 많은 사회가 역사적으로 믿어 왔더라도, 오늘날 이러한 믿음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착각이 되었다. (p.214-217)
많은 대항운동은 사회적, 생태학적 정의를 향한 열정 그리고 감각과 영혼까지 아우르며 물과 관계를 맺으려는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는 기쁨을 떠올려보기만 해도 물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또한 예술과 인문학은 실용주의적 효율성 때문에 배제되었던 사고방식과 느낌을 되살릴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음악은 물이 어떤 느낌인지, 어떤 소리가 나는지, 어떤 의미인지를 환기시켜준다. 우리에게는 ‘올드 맨 리버(Old Man River)’가 있어서 시간의 거침없는 흐름이 ‘그저 계속 굴러가는 것’을 일깨워주며, 이루마(Yiruma)의 곡 ‘네 안에 강물이 흐른다’는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관계를 찬양한다. 물을 이용해 끓어오르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상실과 끝과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있다. 시각 예술에는 물의 의미를 찬양하는 이미지들이 풍부하다. 터너가 그린 멋진 바다 풍경은 바다의 신비한 아름다움과 잠재적 혼돈을 환기시키며, 분수와 파도를 중심으로 그린 사랑 장면들도 있다.
모든 문화 집단마다 그들만의 음악과 이미지, 그리고 물과 다시 연결되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다. 물질적 이익을 추구하느라 생각 없이 감정 없이 허우적대는 속에서도 이런 것들을 잊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회는 물이 정말 무엇인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p.25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