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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했다 / 조디 캔터, 메건 투히 / 책읽는수요일

 

 토메이는 자신의 이론을 이야기해주었다. 여성 배우들과 대중은 상호 오해라는 순환 구조에 갇혀 있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아주 어릴 때부터 스크린의 환상 속 여성들을 선망하고 이들을 닮아가도록 교육받는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배우를 꿈꾸게 된다. 운 좋게 배우가 되면, 성추행이나 가혹한 신체 기준에 관해 발설하지 못한다. 자승자박이 될 테니까. 그렇게 순환 구조는 지속되고 다음 세대의 여성들 역시 영화 업계가 자신들을 학대하리라는 것을 모른 채로 할리우드를 꿈꾸며 자라난다.
 토메이는 폭로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여태까지 그녀는 자신의 이론을 심지어 동료 여성 배우들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외모만을 중시하는 영화 업계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하면 약점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클레어 데인즈가 메릴 스트립 그리고 조디 포스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를 이야기한 2013년 《보그》 매거진 기사를 간직하며 연대감을 느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주지 않기 때문에 돈을 요구해야 해요.” 데인즈가 했던 말이다.

 

 캐스팅 카우치가 성추행의 법적 요건을 충족하기는 하는 걸까? 피해를 주장한 여성들은 사실상 와인스타인에게 고용된 이들이 아니었고, 어떤 이들의 경우에는 특정 배역 캐스팅 때문에 있었던 것조차도 아니었다. 이 취재로 실제로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조디는 만약 피해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와인스타인은 지위를 이용해 여성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가진 남성 그 자체였다. 여성들이 와인스타인의 미팅 제안에 응한 것은 그들이 일을 하고 싶었고, 그들에게 야심, 창조성, 꿈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대가로, 그는 여성들을 성적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밀어 넣었다. 법적 요건을 충족하건 아니건 그것은 성추행이다.
 아마 가장 유명한 성추행 사건 중 하나는 애니타 힐이 직장 내에서 자신에게 데이트 신청과 외설적 발언을 한 클래런스 토머스를 고발한 사건이리라. 미래의 대법관과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의 지위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와인스타인에게 제기된 혐의에도 가학성이 엿보였다. 혐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유명한 여성이라는 점 역시도 중요했다. 성추행은 보편적인 문제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추적하는 와인스타인과 호텔 방 이야기가 차츰 쌓여가는 내내 코벳의 주요 관심사는 한 가지였다. “이 여성들이 기사화에 동의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코벳은 며칠에 한 번 꼴로 기자들에게 그렇게 물어왔다. 조디와 메건에게도 나름의 대답이 있었다. 충분한 수의 피해자들을 찾아내면 다수라는 점에서 안전이 보장될 테니까 모두 함께 나서라고 설득해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코벳은 두 기자의 접근법이 위태롭다고 여겼다. 여성들이 극도로 망설이는 데에는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런 종류의 보도에는 본질적으로 불공평한 면이 있다. 어째서 불편한 이야기를 대중 앞에 털어놓는다는 부담을 짊어지는 쪽이 아무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는가? 코벳은 조디와 메건의 취재가 끝내 엄청난 양의 호텔 방 이야기만 남기고 기사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한두 명의 여성을 설득해내더라도 “그는 이렇게 말했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닳고 닳은 문제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었다.

 

 성폭력은 각 업계마다 독특한 생태를 가진다. 식당 노동자들의 경우, 그들의 일터에는 언제나 판단력을 갉아먹고 억제력을 느슨하게 하는 술이 있으며, 관리자들은 돌발 행동을 하는 손님에게 맞서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실리콘밸리에는 하룻밤 사이에 벼락부자가 된 무책임한 젊은 남성들이 넘쳐났다. 조선소와 건설 현장처럼 남성의 일터라는 통념이 있는 곳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을 몰아내고자 그들을 물리적 위험에 처하게 하기도 했다. 치라의 취재에 따르면 통신 장비 없이 탄광 깊은 곳에 내버려진 여성이 있었고, 풍력 발전기 꼭대기에 고립된 여성도 있었다.

 

 여성들은 정당한 이유로 이 합의서에 서명하는 것이라고 변호사들은 강조했다. 그들은 돈이 필요하고, 사생활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고, 더 나은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이 일을 잊고 나아가고 싶어 한다고 말이다. 그들은 폭로자, 거짓말쟁이라는 딱지가 붙고, 꼬리를 치는 사람이나 상습적으로 소송을 거는 사람 취급을 받길 원치 않는다. 돈을 받아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합의를 한다. 합의하지 않고 법정으로 간다면 혹독한 대가가 뒤따른다. 연방법상 성추행 관련 법규는 허술하며 프리랜서, 15명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 등 수많은 직업군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또, 연방법에 따르면 성추행 신고 가능 기간은 사건 발생 180일 이내로 짧았으며 손해 배상금은 최대 30만 달러로 제한되어 있었다. 손실된 소득을 메꾸기에도, 실력 없는 변호사를 고용하기에도 부족한 액수였다. 그러니 합의를 더 솔깃한 제안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제 두 기자와 세 편집자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털런 뒤에 줄지어 서서 모니터 속 기사에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신문 기사를 발행하려면 기사를 거대한 종이 두루마리와 몇 통이나 되는 잉크가 들어가는 인쇄기로 보낸 뒤, 완성된 신문을 트럭으로 실어 날라 신문 가판대와 잔디밭에 배달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끝이었다.
 바케이는 잔뜩 들떠서는 이제 기사를 발행해도 되겠다고 했다. 퍼디는 여섯 기자들이 마지막으로 다 함께 한 번 읽어보자고 했다.
 그들은 맨 위 헤드라인부터 읽기 시작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이 수십 년간
성폭력 고발자들에게 합의금을 지불했다

 

 와인스타인 기사가 비밀을 녹이는 용해제라도 된 것처럼 전 세계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이름은 이제 수십 년간 그 누구도 손쓰지 않고 있었던 위법행위를 해결해야 한다는 논쟁이자, 덜 심각한 잘못이 훨씬 더 심각한 잘못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예시이기도 했다. 성폭력과 학대에 대해 입을 여는 것이 수치스럽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일이 아니라 존경받을 만한 행동이라는 것도. 와인스타인의 사례는 이런 종류의 행위가 고용인들에게 커다란 위험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담은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와인스타인 기사로 와인스타인과 비슷한 행위는 명백히 잘못된 것이고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일치된 의견이 생겨나기도 했다.

 

 당시 와인스타인의 변호사이던 벤저민 브래프먼마저도 그 비판을 써먹었다. 와인스타인이 법정에 선 뒤 한 달이 지난 6월, 브래프먼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 출연해 점점 고조되어 가는 비통함의 감정을 분명히 표출했다. 그는 와인스타인에게 제기된 혐의들이 #MeToo 운동이 마녀사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도덕적 공황이라고 주장했다. 여성들이 과장된 주장을 하고 있기에, 이런 주장들이 “도가 지나친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며 “일부 신뢰성을” 잃었기에 극단으로 치닫아 이제는 직장에서 “매력적인 동료에게 멋진 옷을 입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겁을 내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다. 브래프먼은 의심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와인스타인에 대한 고발 전반이 갖는 힘에 대해 말하는 대신 억지스러운 #MeToo 고발들만 골라 이용하는 듯했다.
 반발이 점점 거세지자 변화가 아직 충분하려면 멀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사회적 태도가 달라지고 있고 매일같이 극적인 고발이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근본적인 것들은 그대로나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성추행을 규제하는 법규들은 시대에 맞지 않고 고르게 집행되지도 않았으며, 몇몇 주에서 약간의 수정을 가한 것 외에는 당분간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아직도 비밀 합의가 이루어져―몇몇 변호사들의 말로는 합의금의 액수가 사실상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했다―포식자들을 감춰주고 있었다. 때로는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인종과 계층이 크나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조디는 저임금 근로자들을 취재했는데, 이들의 경험은 구조적인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월마트에서 지하철공사에 이르기까지, 조디가 접촉한 고용주 대부분은 오랫동안 변함없이 이어져온 기존 정책에 별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조디와 이야기를 나눈 근로자 다수는 고무되어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배우들이 입을 여는 모습을 보면서, 멀게만 느껴졌던 유명인들의 경험이 자신들과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와인스타인, 그리고 그 밖의 다른 포식자들에게 피해를 입었다는 여성들은 기사에 담기에는 너무 많았다. 〈타임스〉에는 이미 학대에 대한 기사가 너무 많다고, 모든 일을 기사로 쓸 수는 없다고, 국내에서 가장 힘이 센 언론사조차도 그 심판의 무게를 전부 감당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느라 곤혹을 치렀다. 시스템이 무너졌을 때 기자들이 개입한 것은 맞지만, 그것이 영구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MeToo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이미 너무 멀리 갔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하는 말 중에는 같은 이야기도 있었다. 절차 또는 명확한 규칙이 부재한다는 점이었다. 기업이나 학교가 문제 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는 것은 둘째치고, 성추행이나 성폭력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대중들의 의견 일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탓이었다. 기업 이사회에서부터 술집에 모인 친구들까지, 모두가 각자의 가이드라인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이는 매력적인 대화 소재였으나 총체적 혼돈이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 실효성 있는 새로운 기준에 어떻게 동의할지, 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고발들을 어떻게 해소할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다.
 그 대신, 양쪽 모두에게 부당하다는 감정만 누적되고 있었다.

 

 훗날 시드먼의 전력을 알게 된 공화당 측은 그녀가 정치적 의제를 염두에 두고 캐버노를 끌어내리기 위해 포드를 무기로 이용했다고 비방했다. 그러나 사실 그해 8월, 시드먼은 포드가 입을 다무는 게 낫다고 본능적으로 생각했었다.
 단순한 계산에서 나온 생각이었다. 공화당이 상원을 꽉 잡고 있는 이상, 포드가 입을 연다 해도 캐버노는 인준될 가능성이 컸다. 시드먼의 첫 반응은 포드가 앞으로 나서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는데, 결과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애니타 힐의 증언이 있고부터 수십 년 동안, 시드먼은 그녀에게 앞으로 나서라고 했던 자신의 조언을 돌이켜보았다. 성추행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켰다는 면에서 힐은 성공했다. 그러나 시드먼은 사회의 진보를 일으키는 대가로 힐이라는 개인이 너무 큰 짐을 져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화당이 포드를 무너뜨리려 공격해댈 게 분명했고, 과거가 되풀이될 걸 생각하니 두려움이 일었다.

 

 카츠와 뱅크스는 중립을 지키려 애쓰며 포드의 각 선택이 미칠 결과를 그려보았으나, 그 결정을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포드의 몫이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두 변호사가 걱정하는 것이 오로지 의뢰인인 포드 개인의 안녕만은 아니었다. 그때 카츠는 포드의 이야기를 전 국민이 무시하게 되면 #MeToo 운동 자체에 해가 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평론가들은 #MeToo 운동이 이제는 오래전에 일어났으며 입증할 수 없는, 직장 내 성추행이나 강간처럼 명백한 가해가 아닌 위반 행위까지도 불러내는 식으로 너무 멀리 갔다고 하게 될 터였다. 남성들 중 자신 역시 난데없이 가해자로 지목될까 두려운 마음에 본능적으로 캐버노 편을 드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변화의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가 느려지거나 변호사들이 극히 두려워하는 대로, 거꾸로 돌아갈지도 몰랐다.

 

 언론계에서는 중요 기사에 있어 경쟁사들이 서로의 취재에 부응하는 것이 관행이다. 만약 〈워싱턴포스트〉가 트럼프와 러시아 간의 거래에 대한 특종을 낸다면 〈타임스〉 역시도 같은 내용에 대한 취재를 시도하고, 그 역도 가능하며, 이로써 〈타임스〉 독자들에게 정보를 주는 동시에 〈워싱턴포스트〉 기사를 추가적으로 확인해준다. 과학자들이 피어리뷰를 수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별개의, 심지어 라이벌 관계에 있는 연구팀이 같은 실험을 수행했을 때 같은 결과가 도출된다면 연구 결과는 한층 신뢰성을 얻는다. 와인스타인 사건에서는 〈타임스〉와 〈뉴요커〉 보도 내용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일치했으며 이는 취재 내용이 탄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포드의 주장을 놓고 벌어진 논쟁을 통해 사람들은 비록 사적인 선에서일지라도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 저지른 행동들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공공의 토론이 불만족스러운 불협화음을 빚어내는 가운데 이런 사적인 차원에서 사유를 통한 개인의 변화가 가장 크게 일어났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바라보는 포드의 감정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 이후 몇 달간 메건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그녀는 많은 순간 슬퍼하거나 혼란스러워했고, 때로는 대담하게 분노를 표출했으며, 거의 대부분 무척 불안해 했다.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알린 것은 잘한 일이었을까? 혼자만 알고 있는 게 나았을까? 어떤 날이면 그녀는 성폭행 문제에서 앞으로 나서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열심히 이야기했지만, 또 다음 날에는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폭력 문제 공론화에 대해 포드가 처음부터 느껴왔던 이 양가적인 감정은 아마 아주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골목의 약탈자들 / 장나래, 김완 / 스마트북스

 

 경기 남부권과 인천에서 10여 개의 필라테스와 헬스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본사 대표의 입에서 장밋빛 수익 전망이 자동응답기처럼 흘러나왔다.
 2개월 전 문을 연 업소는 깔끔했다. 직영점으로 운영하다 가맹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했다. 본사 대표는 이미 충분한 회원 수를 확보했다고 하면서 개장 전부터 70~80퍼센트 세일행사를 해서 150여 명의 회원을 모았다고 강조했다. 이상했다. 필라테스는 수강료가 상대적으로 고액이며, 장기로 등록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이미 팔아버린 3~12개월 회원권 수익을 본사가 가져가면, 나는 수강료 수익 없이 강사료와 임대료를 주며 운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본사 대표는 “재등록 비율이 높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자신들이 프로모션을 통해 등록 회원 수를 늘려놓았으니 당연히 재등록자가 나올 거라는 ‘기적의 논리’였다.
 김 팀장이 거들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헬스, 요가, 필라테스 같은 경우는 모아놓은 회원이 그대로 자산이 돼요. 유효 회원을 본사가 다 모아놨으니 그 부분이 권리금이 되는 것이고, 이후에도 본사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까 매장에 나오셔도 하실 일이 없으세요. 그냥 이익만 보고 투자하신다고 생각하세요.”

 

 한국은 사실상 세계 1위 자영업 국가다. 대략 한해 100만여 명이 새로 창업하고, 80만여 명이 폐업한다. 고용규모로만 따지면 대기업 몇 곳이 매년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셈이다. 이 거대한 창업시장의 회로를 돌리는 ‘신흥 엔진’이 바로 ‘창업컨설팅’이다. 이들은 ‘권리금’을 매개로 아예 또 다른 산업을 일궈냈다. ‘권리금’이라는 연료를 태워 돌아가는 창업컨설팅은 매해 자영업자들의 소박한 꿈과 정직한 땀을 함께 갈아 넣어 삼켜버린다.

 

 한국 사회의 가계부채 가운데 약 40퍼센트가 자영업 부채로 그 규모는 409조7천억 원에 이른다. 자영업자 대책은 그 자체로 가계부채 대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자영업 부채의 대부분은 창업 때 발생한다. 자영업자들은 빚을 내 창업하고, 운영하는 기간에는 이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한다. 가게를 팔고 나갈 때 권리금을 받아 갚는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자영업자들이 하는 흔한 자조 가운데 “자영업으로 돈을 버는 방법은 권리금 장사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문제는 권리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양도인과, 반대로 한푼이라도 덜 내려는 양수인 사이에서 창업컨설팅업체가 농간을 부린다는 점이다. 한때 양수인이었던 자영업자가 곧 양도인이 되는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위장 취업 당시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먼저, 자책감에 시달리는 유형. 가게를 열 돈을 모으기 위해 창업컨설턴트를 택했다는 이하나(가명, 33세) 씨는 “사기꾼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회사라 자꾸 작아지는 느낌이다”라며, “부모님이 자영업을 하시는데 이런 식으로 당했다는 생각이 들면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가도, 일단 돈을 한푼이라도 벌고 나가야 하니까 같은 짓을 하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이 씨는 입사 10일 만에 퇴사했다.
 반면 높은 수수료에서 가능성을 찾는 직원도 있었다. 영업 일만 7년 넘게 해왔다는 조인수(가명, 35세) 씨는 “창업컨설팅은 영업 중에서 가장 수수료가 센 직군”이라며, “정수기, 자동차 판매 등 영업 쪽에서는 안 해본 일이 없는데 수수료로만 따지면 비교가 안 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오늘도 억대 연봉을 향한 강한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배 변호사는 “창업컨설팅업체들이 임대차 계약까지 하는 것은 공인중개사법 위반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액 수수료를 받는 것이 사회 통념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은 아직 없다. 창업컨설팅업체들은 고액 수수료 문제가 공개되고 판례가 만들어질까 봐 아예 소송에 응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제라도 컨설팅 수수료를 법으로 규정하고, 수수료 이외의 돈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등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여놓아야 하는 이유이다.
 배 변호사가 창업컨설팅업체를 상대로 승소 판결을 이끌어낸 경우도 적지 않다. 매출 조작이 분명한 경우나 명시적으로 수익을 보장했거나, 재계약 여부를 확정적으로 적시한 경우 등이다. 배 변호사는 “말로라도 ‘순수익 1천만 원’ 같은 식으로 확정적으로 말했는데 사실이 아니었다면 사기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 증거를 미리 녹음해두는 경우가 정말 별로 없다. 분명 귀로 들었는데 그쪽에서 아니라고 우기면 방법이 없다”며, “매출 조작의 경우 증거가 있어 소송에서 이긴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훈 창업통 소장은 창업컨설팅업체를 ‘창업자가 망하기를 바라는 집단’이라고 설명했다. 자영업자가 망해야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오직 ‘점포거래’를 통해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이들이 이미 매매에 성공한 점포를 꾸준히 관리하는 이유도 언젠가 또 자신들이 그 점포를 팔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 김 소장은 “심하게 말하면 창업자가 망하기를 기다리는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창업자에게 장사가 안되는 매장을 팔고, 그래서 장사가 안된다고 항의하면 다시 팔고 좋은 곳을 소개해주겠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입사하자마자 과장 직함을 주는 창업컨설턴트에 대해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초보 직원들에게 이른바 창업컨설턴트 과장 명함을 하나 파주고, 창업시장의 사기꾼 집단으로 키워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소장은 이들 업체가 추천하는 ‘신규 프랜차이즈업체’는 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기간에 가맹점 수만 늘리고 빠지는 기획형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이다. 대만 카스테라와 벌집 아이스크림, 커피번 등 금방 열풍이 불었다 사라진 아이템을 떠올리면 된다. 김 소장은 “한 신규 프랜차이즈에 15개의 창업컨설팅업체가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경우 직영점 하나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한 채 가맹점 확장에만 혈안이 된다”고 말했다.
 창업컨설턴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매장이 빨리 망하면 망할수록 좋다. 다른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다시 소개해주면 그만이어서다. 창업컨설턴트는 “갈빗집을 2년 정도 해서 어느 정도 돈을 버시고 나면, 저희가 다른 프랜차이즈로 갈아탈 거니까 그때 또 매장 열어드릴게요”라며 대놓고 기획형 프랜차이즈업체임을 자인하며 영업을 하기도 한다.

 

 김 팀장이 망설이는 예비창업자들에게 하는 단골 멘트는 “창업 너무 걱정 마세요. 잘 안 되시면 더 좋은 업체를 바로 소개해드릴게요”이다. 오늘도 김 팀장은 예상 매출 등이 적힌 ‘창업물건 보고서’에 “본 보고서의 내용은 컨설팅 참고용 자료로서 사실과 다를 수 있으므로, 민·형사상의 관련 문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라는 안전장치를 달아놓고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