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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정치적 권리 선언 / 앨러스데어 코크런 / 창비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정치적 권리'란 동물이 정치 공동체 내에서 어떤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시민과 정부 당국 등이 동물을 위해 무엇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지 등을 의미한다. 동물은 그들의 이익이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고려될 만큼 자격을 부여받았는가?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는 특정 관행을 참지 않을 권리가 있는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고 공평하게 대우받을 기본권을 지녔는가? 성원권(membership)과 민주적 대표성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가? 이 모든 사안이 책의 핵심 논의점이다.

 

 결국 동물복지법이 없는 정치 공동체에서 동물은 간접적으로만 보호할 수 있다. 인간의 이익에 기여할 경우에 한할 뿐이다. 이는 비인간동물에게는 도구적 가치만 있다는, 서구 사상에서 비롯된 오랜 견해를 반영한다. 동물과 동물의 이익은 그 자체로 중요하지 않으며 더 정확히는 동물이 인간에게 이익이 될 때에만 중요하다. 인간만이 우리가 말하는 내재적 가치를 지녔고, 인간과 인간의 이익은 다른 사람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러한 견해는 타당한가? 아니면 정치 공동체가 일부 비인간동물이 내재적 가치를 지녔다고 인정해야 하는가? 그래야 한다면 동물복지법은 비인간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보호하는 올바른 수단을 제공하는가?

 

 실제로 사상가들은 인간이 동물을 잔인하게 대하면 안 된다는 견해를 옹호했으나 이는 여전히 철저한 인간 중심적 배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아우구스티누스, 이마누엘 칸트 등이 지지한 전통적인 동물학대 반대 주장의 근거는 동물학대가 인간의 악랄한 성격적 특성을 발달시키고, 이는 다시 인간을 향한 잔인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Augustine 1998: Kant 1963). 이런 생각에 비추어 볼 때 동물이 전통적으로 서양의 정치 시스템에서 중요하게 간주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오랜 믿음이 잘못된 것일까? 철학자 제러미 벤담은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다. 18세기에 그는 인간 예외주의를 거부한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모든 지각 있는 생명체의 내재적 가치를 인정하는 쪽으로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폭압이 아니면 빼앗을 수 없었을 동물의 권리를 동물들이 다시 되찾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인간이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변덕스러운 괴롭힘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다리의 수, 털이 많은 피부, 폐경 등의 이유 역시 지각 있는 존재를 버리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러한 불가항력적인 구분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이성 능력인가, 아니면 담론 능력인가? 그런데 다 자란 말 혹은 개가 하루, 한주, 한달 된 아기보다 훨씬 더 합리적일 뿐 아니라 대화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떤 접근이 가능할 것인가? (…) 문제는 그들이 "추론을 할 수 있는가?" 혹은 "말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고통을 받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Bentham 1823[1780]).

 

 지각 있는 존재는 바위나 책상, 풀잎과는 분명히 다르다. 지각 있는 존재는 타인의 행동으로 인한 영향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이 자기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지각 있는 존재는 지각 없는 존재와 달리 자신의 삶에 목적과 관심을 갖는다. 그렇기에 지각 있는 존재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지각 능력이 없는 사물에 대한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우리에게 바위, 책상, 풀잎을 파괴하지 않을 타당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누군가에게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도 있고, 악의적으로 파괴하는 행위가 형편없는 인성을 드러낼 수도 있다. 그러나 개, 돼지, 각양각색의 인간 등, 지각 있는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의무는 개체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지각 있는 존재는 타자가 침범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비인간동물들이 지각이 있고 내재적 가치를 지녔다고 믿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비인간동물이 그 존재만으로도 전적인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음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이득이 될 경우에만 동물을 보호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동물을 보호하는 이유가 동물을 재산으로서 소유하거나 동물이 공공장소에서 난동을 피우지 않도록 하는 등 인간에게 이익을 제공한다는 것뿐이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치 공동체들은 동물이 그 존재만으로도 중요하기 때문에 동물의 이해관계를 존중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 주장의 함의는 지각 있는 동물들은 그들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받을 권리를 지닌다는 데 있다(Regan 2004[1983] 참조). 다시 말해, 동물이 단지 도구적 관점에서 평가될 경우 부당하게 대우받는다. 더욱이 나는 이 자격이 동물의 기본 권리임을 주장하고 싶다. 한 지역 공동체가 동물의 이익을 동물의 존재를 중요시하는 만큼 존중하지 않는다면, 동물이 받아야 할 것들을 제공할 수 없다.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인식하는 것은 동물과의 관계에 있어 필수 전제 조건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축산업에 동원되는 수십억 동물의 삶을 생각해보자. 이들 동물 중 상당수가 실제로 동물복지법의 보호 아래 있다. 이 법률은 '잔혹'하고 '불필요한' 행위가 수반되는 특정 행위를 금지한다. 또한 대개 동물복지법은 동물이 도축되기 전에 무의식 상태에서 '인도적으로' 죽이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보호 조치의 역할은 굉장히 미미하다. 동물복지법하에 있는 대부분의 관할 구역에 존재하는 '농업 면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면책으로 동물을 보호하는 일반법에서 농장 동물은 제외되기 때문에 보호 조치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관련 면책 조항의 이면에는 간단하게 알아차릴 만한 근거가 있다. 바로 인간의 상업적 이익에 맞추기 위해 동물 처우를 규정하는 법률의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 사례를 보면 동물복지법이 지각 있는 동물 본래의 이해관계를 존중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죽음은 미래의 가치 있는 경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전부 차단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해를 끼친다(DeGrazia 2002: 59~64면). 혹자는 지각 있는 동물이 죽음이란 개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해를 입을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혹은 지각 있는 동물이 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인 삶에 관심을 갖지 못한다고 반박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런 추론은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모든 비인간동물에게 이런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분명한 사실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래류와 영장류에게는 아주 뛰어난 인지 능력이 있다. 한편 모든 인간이 무조건 이 능력을 소유했는지 여부도 의심스럽다. 이런 반대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개념과 미래의 잠재적 모습을 투영할 능력이 부족한 인간 유아에게 해당 논리를 적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모든 지각 있는 존재는 미래의 긍정적 경험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살아가는 데 관심을 둔다는 주장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관점은 즐거운 경험이 좋고, 그런 경험이 더 많을수록 삶이 좋아진다는 단순한 이유로 좋은 것이다. 죽음은 이 모든 즐거움의 기회를 빼앗아간다.

 

 예를 들어, 동물의 헌법적 보호는 독일의 산업화된 축산의 종말을 예고하지 못했다. 심지어 너무나 터무니없는 특정 관행을 불법화하지 않았다. 현대화된 달걀 생산 시스템 하에서 수탉은 분쇄되거나 가스로 죽었다. 독일의 동물보호법은 분명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동물에게 고통 및 죽음을 야기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수의 수평아리들이 필수 과정이라기보다는 순전히 경제적 편의에 의해 죽는다. 실제로 비생산적인 동물을 없애는 것이 자원을 아끼는 동시에 수익을 증대시킨다는 논리다. 그러나 노스라인-웨스트팔리아주 당국이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기 시작하자 뮌스터 고등행정법원은 건전한 경제적 이유가 있을 경우에 한해 동물복지법으로 도축을 허가한다고 판결했다(DW.com 2016). 심지어 2019년 연방행정법원은 달걀로 효과적인 성별 검사가 도입되기 전까지 도축은 합법이라고 판결했다(BBC News 2019). 헌법에 규정된 동물복지법이 적법할지라도 동물의 이익이 여전히 손쉽게 인간의 경제적 이익에 종속된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동물보호 관련 헌법 조항이 마련된 모든 나라에서 자명하게 되풀이된다. 헌법 조항의 대부분이 동물의 이해관계를 동물복지법하에서만 제공되었던 지위보다 더 높은 위계로 인정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동물 그 자체의 가치로서 그들의 이해관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할 권리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다. 한 국가의 헌법에 동물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지향점이며, 혹은 모든 국민은 지각 있는 동물에 대해 온정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을지라도, 결국 어떤 국가도 동물의 기본권, 즉 인간과 동일 선상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을 권리를 부여하지 않았다. 인간에게 값싼 달걀을 제공하기 위해 수평아리들을 분쇄해서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 시도조차 그 어떤 나라에서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헌법 조항은 동물을 그 존재만의 가치로 일관되게 대우하려는 가능성 또는 의지를 보장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지각 있는 동물의 내재적 가치를 존중하는 대목에서 실패해왔던 것이다.

 

 대중이 이러한 변화를 지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동물이 그저 '장비'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거부했기 때문이다. 동물에 대한 복지 없이 동물을 그저 사용만 하는 단순 도구로 대해서는 안 된다. 동물은 폭행과 유기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지각을 가진 존재이며 동물 고유의 내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지지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동물이 경찰과 군인의 역할을 넘어 우리 지역사회의 동료 구성원이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지역사회의 공동 구성원으로서 동물이 단순히 상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받는 것에서 나아가 건강관리나 은퇴와 같은 사회적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동물해방론자의 주장에 대해 논하자면, 인간이 동물의 삶과 얽히면서 매우 심각한 문제가 초래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부분의 기존 인간-동물의 관계가 정확하게 상호이익이 된다고 말할 수 없다. 착취적이고 해악이 되는 관행들은 반드시 금지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인간과 동물의 모든 관계가 언제나 해롭다고 볼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을 위한 우리의 최선이 야생동물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주장은 굉장히 의문스럽다. 일단 야생동물을 홀로 내버려두는 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인간이 환경에 미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야생동물의 삶으로부터 간단히 철수하면 된다는 생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나아가 일부 야생동물을 위한 인간의 활동 중에 도움이 되는 행위가 분명히 존재한다. 광견병이나 결핵과 같은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야생동물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기상 이변으로 인해 굶주리는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것 역시 대상 동물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길들여진 동물이 인간의 필요에 맞게 사육된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위해 가축을 더는 길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상하게 들린다. 가축이 그들의 행복을 위해 인간에게 어느 정도 의존하고 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으나,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잘 살기 어렵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는 없다.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길들여진 동물이든, 모든 동물은 잘 살기 위해 타자에게 의존한다(Arneil 2009). 당신이 살면서 의존해왔고, 또한 계속해서 의존하는 대상들을 생각해보라. 의존성을 존엄이 없는 일종의 노예 상태와 동일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모든 지각 있는 동물이 잘 사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나아가 특정 동물의 경우 정치 공동체의 성원권을 부여하는 것이 그러한 관심을 보장하는 수단이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지각 있는 동물들은 그들의 내재적인 가치를 정치 공동체에 의해 존중받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소유한다. 더 나아가 동물은 위해를 가하는 특정 관행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동물이 누려야 할 권리는 인류의 기본권 및 자유와 더불어 동등한 지위를 향유해야 하는 권리이다. 또한 동물은 우리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동물의 이해관계가 공공선의 형성에 효과적으로 통합되도록 민주적 대표성을 포함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
 이러한 권리를 확립하는 것은 굉장히 야심차고 힘든 작업임에 틀림없으며, 이를 지지하는 정치 공동체는 기존의 공동체는 물론 과거에 존재했던 공동체와도 사뭇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또한 많은 문화적·경제적·심리적 장애물이 이러한 권리의 실현을 가로막는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책의 소임은 일련의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에 대한 전략을 짜는 것이 아니라, 이 사안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음식물 쓰레기 전쟁 / 앤드루 스미스 / 와이즈맵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선별하는 슈퍼마켓 정책도 쓰레기 증가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20세기의 나머지 반세기 동안 슈퍼마켓 체인은 농산물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발전시켰다. 과일과 채소는 무엇보다 제대로 된 모양과 일정한 크기를 갖추어야 했고 사람의 마음을 끌 정도로 선명한 색상을 띠어야 했다. 농산물 중개인은 슈퍼마켓과 계약을 맺을 때,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상품을 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과일과 채소는 반품됐다. 팔 수 없는 농산물을 수확하는 것은 농부에게 이익이 되지 않았다. 결국 농부들은 팔 수 없는 농산물은 갈아엎거나, 가축에게 사료로 먹이거나, 철이 끝날 무렵 폐기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p.23-24)

 

 재활용 프로그램에서 얼룩진 피자박스나 기름이 묻은 종이 제품들처럼 재활용하려는 종이에 묻은 음식 찌꺼기, 지방, 기름의 존재는 재활용품 전체를 오염시켜 사용할 수 없게 만들거나 가치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었다. 게다가 음식 찌꺼기는 재활용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할 수도 있다. 추정치마다 차이는 있지만, 미국의 경우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의 약 25%가 주로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오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립지에 보내진 음식물 쓰레기는 또 다른 심각한 환경문제를 발생시켰다. 매립지에 버려진 식품을 비롯한 유기물질은 땅 속에서 단단히 압축되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한다. 그 결과 방대한 양의 메탄가스가 생성되는데 이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의 이산화탄소보다 25배 더 해롭다.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은 매년 6,300만 톤의 식품이 매립지로 보내지며 이곳에서 미국 전체 메탄가스 방출량의 34%가 발생한다고 추정했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음식물 쓰레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세 번째 주된 요인이다. 세계 곳곳의 환경운동 단체들이 지구 온난화 저지의 일환으로 음식물 쓰레기 반대 대열에 뛰어들었다. (p.26-27)

 

 곡물 같은 농작물은 저장했다가 가격이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오를 때 파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일과 채소의 경우는 다르다. 농산물은 익으면 따서 짧은 시간 안에 가공 판매해야 한다.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가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채소밭의 30% 가까이에서 수확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수확된 경우라도 1~4%의 작물이 밭에 그대로 남겨졌다. 비슷하게 '피드백(음식물 쓰레기 감축 옹호자인 트리스트람 스튜어트가 영국에 설립한 단체)'이 실시한 조사는 영국 농장에서 재배하는 과일과 채소 가운데 10~16%가 버려진다고 결론 내렸다. 또 다른 보고서는 영국에서 재배되는 과일과 채소 전체의 최대 40%가 시장에 가기도 전에 폐기된다고 추정했다. 미국에서는 재배되는 농산물의 약 50%가 버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일과 채소가 수확되지 않는 주된 이유는 크기, 모양, 색깔, 숙성도, 외관, 흠의 유무와 같은 농산물 바이어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팔 수 없는 과일과 채소는 따지 말라고 교육받으며, 상품성 없는 농산물은 갈아엎거나 퇴비 혹은 가축사료로 가공된다. 생산자와 슈퍼마켓 체인이 이러한 요구사항을 고수하는 이유는 고객이 동일한 영양적 가치를 가지고 있어도 외관상 결점이 있는 농산물을 구매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규모 농장이 생산하는 불완전 농산물은 통조림과 냉동제품 제조사에 판매될 수 있다. 그곳들이라면 농산물이 조각조각 잘려서 외관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제조공장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운송비용이 낮아야 한다. 또한 재배된 농산물 품종이 제조사가 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가축을 키우는 농장이라면, 즉 농부에게 가축이 있어서 농산물을 먹일 수 있다면, 남거나 외관상 보기 흉한 농산물은 가축사료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농부는 대부분 가축을 키우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잉여 농산물이나 숙성이 늦는 작물은 일반적으로 갈아엎어지거나 퇴비가 되는 수밖에 없다. (p.54-55)

 

 날짜 표시 라벨은 포장식품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기한을 보여주는 일종의 안내문구와 같다. 하지만 소매상이나 고객 모두 이 날짜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라고 해석해, 신선도 보증기간이 가까웠거나 지난 식품들을 폐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식품 날짜 표시제는 지난 10년 사이에 점점 더 큰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폐기물 자원 행동 프로그램(WRAP)이 2008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소비자의 53%가 '품질유지기한'을 경과한 과일이나 채소를 먹지 않으며, 56%는 빵이나 케이크도 먹지 않았다. 21%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아 기한이 다가오는 식품은 전혀 먹지 않는다"라고 했다. 한편 WRAP의 2010년도 보고서에 따르면, 45만 톤의 식품이 '품질유지기한'을 경과했다는 이유로 버려졌다. 이 기한에 도달했거나 경과한 식품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방식으로 보관되었다면 먹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보고서는 38만 톤의 식품이 '소비기한'이 경과했다는 이유로 버려진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경우도 기한 만료 전에 조리되거나 냉동된 식품이라면 버려질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보관되고 있는 재고 식료품을 온라인상에서 판매하고 있는 스코틀랜드 소매기업 어푸르브드 푸드(Approved Food)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인의 50%가 아무 문제없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품질유지기한'이 다가오거나 넘었다는 이유로 버리고 있으며, 이렇게 버리는 사람들의 62%가 병에 걸릴까 봐 두려워서 폐기한다. (p.84-85)

 

 1980년대부터 식품 소매상들은 '유통기한이 짧은' 포장 상품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접 분배하는 푸드뱅크, 수프 키친, 지역 푸드 팬트리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기부한 식품을 섭취한 사람이 병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법적 소송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1990년대에 많은 도시, 국가, 지방에서 기부자의 면책권을 보장하는 법안들이 통과되었다. 이에 따라 선의로 이루어진 기부라면 불상사가 발생하더라도 기부자에게 법률상의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다. 미국 의회는 법적 책임이라는 부담 없이 식품과 농산품을 비영리단체에 기부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1990년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모델 식품 기부 법(Model Good Samaritan Food Donation Act)'을, 1996년에는 '빌 에머슨 착한 사마리아인 식품 기부 법(Bill Emerson Good Samaritan Food Dona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2003년 7월 유럽 최초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법률 No.155/2003)을 통과시켰다. 2017년 10월 6일에 유럽연합은 식품 기부 가이드라인을 채택해서, 식품 제조업자와 소매상이 잉여 상품을 푸드뱅크와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독려했다. (p.102-103)

 

 음식점 경영자들은 남는 음식을 줄일 수 있는 쓰레기 감량 방법을 고안해왔다. 한 가지 방법은 단순히 더 적은 양의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작은 접시에 음식을 담는다면 양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1회분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점심식사로 샌드위치 반쪽과 수프 한 컵을 제공하는 등, 일반 식사량의 1/2 메뉴를 판매할 수도 있다. 2012년에 브라질 상파울루의 스톱 헝거(Stop Hunger)는 매우 창의적인 방안을 선보였다. 이들은 '사치스페이투(Satisfeito: 배불러요)' 아이콘을 제작해서 음식점 메뉴판의 메뉴 옆에 붙이도록 했다. 고객이 사치스페이투 메뉴를 선택하면 가격은 그대로지만 양은 3분의 1이 줄어든 음식이 제공된다. 음식점은 이렇게 절약한 금액을 기아 아동 후원 단체들에 기부하는데, 고객도 이 사실에 만족하는 것 같다. 2016년에는 참여하는 음식점 수가 6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대부분이 상파울루 소재 음식점들이었지만, 개중에는 브라질의 다른 도시들과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위치한 음식점들도 있었다. (p.131)

 

 사람들이 음식을 버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충분한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로 쇼핑에 나섰기 때문일 수도 있고, "저항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구매 조건 탓에 과잉구매를 할 수도 있으며, 가공식품의 날짜 표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남은 음식을 조리하는 법을 모를 수도 있고, 외식에서 남은 음식을 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부끄러워할 수도 있으며, 식품보관법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또한 남은 음식을 보존하고 재사용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으로 무관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마도 소비자가 식품을 아까움 없이 버리게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에 쫓기는 스트레스 때문일 것이다. 즉, 남은 음식을 보존하는 것이 그리 긴급하고 중요한 사안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아무 문제없이 먹을 수 있는 많은 양의 음식을 가정에서, 음식점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내버린다.
 소비자가 배출하는 쓰레기를 가늠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가정이다. 예를 들어 평균적인 미국 가정은 하루에 580그램의 음식물 쓰레기를 배출한다.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구매하는 우유의 20%, 계란의 23%, 신선한 생선의 40%가 쓰레기로 버려진다. 여기에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를 통해 분쇄한 다음 퇴비더미에 버리거나 반려동물의 먹이로 사용된 부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존스홉킨스 센터 포 어 라이버블 퓨처(Johns Hopkins Center for a Livable Future)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공되는 해산물의 거의 50%에 달하는 약 10억 킬로그램의 해산물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미국 소비자는 연간 약 5억 8,900만 킬로그램의 음식물을 폐기한다. (p.164-165)

 

 소비자 배출 쓰레기를 증가시킨 또 다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식품 안전 광고가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심쩍어 보이고 수상한 냄새나 맛이 나는 식품을 먹는 위험한 모험을 하느니, 차라리 버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식품은 싸고 상점은 더 많은 식품들로 가득하다. 따라서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p.167)

 

 식품 관련 포장재에는 포장하지 않은 식재료들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는 대형 목재 팔레트와 드럼통부터 슈퍼마켓 선반에 줄지어 선 박스, 봉지, 병, 캔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종이, 판지, 플라스틱, 유리, 금속에 이르기까지, 또한 음식 서비스업체에서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회용 접시와 그릇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포함된다. 포장재는 없어서는 안 된다. 포장재는 물리적 손상으로부터 식품을 보호하고 식품의 풍미와 영양가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포장재 덕분에 식품은 농장에서 가공업체를 거쳐 소매상에 이르는 먼 거리를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 또한 포장재가 있어 소비자는 식품을 몇 주, 몇 달, 심지어 몇 년씩 보관할 수 있다.
 그런데 식품 관련 포장재는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포장재 대다수는 결국 쓰레기 매립지로 보내진다. 2007년에 발표된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지자체들이 배출하는 고형폐기물의 약 20%가 식품 포장재이며, 식품 포장재는 부피로 따지면 전체 포장재 쓰레기의 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포장재는 상수도와 바다를 오염시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특히 플라스틱 같은 일부 재료는 완전히 분해되지 않은 채 매립지에 수만 년 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 (p.190)

 

 환경보호론자들이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스티로폼'이다. 스티로폼은 다양한 발포 폴리스티렌 폼(expanded polystyrene foam: EPS)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상표명으로 열가소성 플라스틱 제품의 일종이다. 가볍고 내구성이 있으며 습기에 강하다. 1941년에 다우 케미칼의 연구원들이 처음 개발했다. 1960년대에 식품 서비스업체들이 커피 컵, 햄버거 박스(접시와 뚜껑이 하나로 붙은 조개 모양의 '클램셸(clamshell)' 용기), 청량음료와 계란 상자, 일회용 접시와 쟁반, 탄산음료 유리병 보호 슬리브 등에 사용하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스티로폼을 비롯한 폴리스티렌 관련 제품들(예컨대 EPS)은 심각한 환경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우선 스티로폼 제조과정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57종의 화학 부산물이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처리하는 데 특수한 과정이 필요한 액체 폐기물과 고형 폐기물이 만들어진다. 또한 경제적으로 재활용할 수도 없다. 작은 입자로 부술 수는 있지만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약 500년이 걸린다. 소각하는 경우에는 독성물질이 배출된다. (p.192-193)

 

 많은 패스트푸드점과 테이크아웃 점포에서 매상의 70%는 매장 밖 식사주문이 차지한다. 고객이 자신의 차나 그밖에 다른 곳에서 음식을 먹을 경우, 거리와 도로가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훨씬 더 많아진다. 거리와 공공장소에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는 햄버거 포장지, 칩 상자, 탄산음료 캔, 컵, 스푼, 냅킨, 감자 칩 봉지, 껌 포장지를 청소하는 데 지친 전 세계 곳곳의 시 당국과 지자체들은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로 버려질 가능성이 큰 포장식품들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는 2003년에 '쓰레기 투기 금지법(anti-litter law)'을 통과시켜 씹는 껌, 폴리스티렌 식품포장지, 플라스틱 용기에 세금을 부과했다. 2006년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실시된 연구는 오클랜드 시 전체 쓰레기의 20%가 식품 소매업체에서 나온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자 시의회는 이들 업체에게 총매출액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서 쓰레기 처리비용을 보전하기로 결정했다(지역 쓰레기 정화사업을 후원하는 업체는 세금을 감면받거나 아예 면제받기도 했다). 다음 해인 2007년에 시카고는 '테이크아웃' 패스트푸드 주문에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쓰레기 투기 금지법이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거나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을 줄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시의 쓰레기 청소비용은 크게 줄어들었다. (p.206-207)

 

 

라이프 프로젝트 / 헬렌 피어슨 / 와이즈베리

 

 '코호트(cohort)'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라틴어 'cohors'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로마 시대에는 수백 명의 병사들로 이루어진 보병대를 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더글러스는 1946년 산모 조사를 실시하면서 사실상 출생 코호트, 즉 같은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을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원래는 그들에 대한 정보를 딱 한 번만 수집할 생각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런 유형의 연구를 '횡단 연구(cross-sectional study)'라고 부른다. 어느 한때의 일부 인구에 대한 정보를 포착하기 때문이다. 일단의 사람들을 어느 한순간 정지된 상태의 모습으로 보여주니, 스냅사진과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1973년에 코호트 연구 결과를 요약한 얇은 책 『실패할 운명(Born to Fail?)』이 출간됐다. 기차역 서점에서 30펜스에 판매된 이 책은 영국 전역에서 8만 부 정도 팔렸다. 이 책은 코호트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춘 책이다. 한부모 가정이나 5명 이상의 형제들이 있는 가정에 속하여 욕실과 온수가 없는 비좁은 집에서 살며,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나면 15파운드도 남지 않을 정도로 소득이 낮은 부모의 16살 아이들이었다. 책은 이 아이들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겪는 고생스러운 삶을 대략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들은 조산아로 태어나거나, 보호시설로 보내지거나, 병 때문에 학교를 결석하거나, 예방접종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이 침대를 다른 사람과 함께 썼고, 11살에도 이불에 오줌을 싸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 불우한 아이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차곡차곡 쌓이는 역경들을 계속해서 겪었다." 책은 쉬운 언어로 이러한 사실들을 전하면서, 1970년대의 쓸쓸한 주택 단지에 사는 음울한 표정의 아이들을 찍은 흑백 사진도 함께 실었다. 누구든 이 책을 집어 들고 기차 안에서 훌훌 읽어내리다 보면 절로 기분이 가라앉았을 것이다.

 

 더글러스의 아기들이 6살 반이었던 1952년 12월의 어느 금요일, 런던 사람들은 유독한 안개 때문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런던의 대기 오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공장들이 거리낌 없이 뿜어내는 오염 물질들이 정기적으로 불결한 스모그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살을 에는 듯 추운 날이라 모든 집이 석탄불을 때며 굴뚝으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날씨 탓에 그 연기는 흩어지지 않았고, 공장의 독성 폐기물과 마침 유럽 대륙에서 불어오고 있던 공해 구름에 한데 뒤섞였다. 그렇게 생긴 안개가 짙어지면서 응결되었다. 이내 행인들은 자신의 발도 보지 못하게 됐다. 안개는 사람들의 입 안에 신맛을 남기고 코를 검은 먼지로 뒤덮은 뒤 사람들의 폐 속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갔다. 주말이 지나고 나흘 동안 런던 사람들은 마녀들이 끓인 스튜보다 더 유독한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후에 과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당시 스모그엔 매일 800미터톤의 황산과 1000미터톤의 연기 입자가 함유되어 있었다고 한다. 1미터톤은 1952년에 유행했던 자동차인 폴크스바겐 비틀의 무게와 얼추 비슷하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800대의 비틀에 해당하는 황산을 들이마신 것이다.

 

 그들은 1967년에 심장 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당뇨병과 관련된 위험인자를 찾는 코호트 연구에 참여할 중년의 남성 공무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1만 8000명 이상이 참여한 화이트홀 연구(Whitehall Study)가 탄생했다. 공무원들은 등급이 분명하게 나뉘었다. 배달원이나 짐꾼 같은 비전문직은 최하위급, 고위 관리는 최상위급이었다. 최고 위치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유한 관리들이 심장병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화이트홀 연구는 정반대의 진실을 밝혀냈다. 고위층보다 하급 공무원들의 사망률이 더 높았던 것이다.
 워즈워스가 합류했을 때 마멋은 '제2차 화이트홀'이라는 후속 코호트 연구를 개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에는 남성과 여성 공무원을 1만 명 이상 모집하여, 사회계급에 따라 건강의 편차가 생기는 이유를 찾아내는 게 목표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흡연을 비롯한 유해한 습관 같은 예상 가능한 위험인자들은 부분적인 원인일 뿐이었다. 높은 사망률의 가장 큰 원인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 상관으로부터의 지원 부족, 힘든 직장 생활을 견뎌야 하는 고충 등 하급 직원들이 당하는 심리적·사회적 불이익이었다.

 

 생애 과정 관점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체중아는 중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할 운명이라는 인생 결정론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호트 연구자들은 인생의 첫 몇 년이 전반적인 인생의 행로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우리의 운명이 고정불변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조건을 얼른 덧붙인다. 인생은 유연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운명의 사슬을 끊고 건강한 삶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46년 코호트 연구를 통해 출생체중이 낮을수록 중년에 근력이 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근육세포를 적게 가지고 태어났다면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움으로써 타고난 약점을 만회할 수 있다. 다른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어떤 위험 인자를 축적해 왔든 흡연과 음주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체중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골딩 역시 최근에 옛 샘플들을 새로운 용도로 사용했다. 이제 일흔을 훌쩍 넘긴 그녀는 희끗희끗한 머리를 뒤로 넘겨 묶고,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의 여파로 전동 휠체어에 앉아서 일한다.
 몇 년 전 골딩과 그녀의 공동 연구자들은 냉동고를 열고, 임신 3개월의 여성들에게서 채취했던 1000개 넘는 소변 샘플들을 꺼내 녹였다. 검사 결과 많은 여성들이 경미하게 혹은 꽤 많이 요오드(해산물과 유제품에서 얻는)가 결핍된 상태였고, 이런 여성들의 아이들은 8살에 지능지수가 낮고 9살에는 읽기 능력이 떨어졌다.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영국에서 그다지 큰 문제로 인식되고 있지 않던 요오드 결핍이 영국 아이들의 뇌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는 임신 중 생선 섭취의 이점을 언급한 이전 연구들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생선을 많이 먹으면 요오드 수치가 높아지고 그래서 아이들의 지능지수도 올라갔을 것이다.)
 이 연구는 또한 임신부로부터 가능한 모든 샘플을 수집하려 했던 골딩의 결정이 옳았음을 증명해 준다. 임신 기간부터 시작한 코호트 연구가 없었다면 요오드와 뇌 발달 간의 연결고리는 발견되지 못했을 것이다. 과거로 돌아가 소변 샘플을 얻는 건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보관 센터가 안고 있는 또 다른 큰 과제는 데이터를 사용 가능한 형태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포맷이 구식이 되어 버리면 새로운 포맷으로 데이터를 옮기는 작업을 끝없이 거듭해야 한다. 코호트 데이터는 종이 설문지와 펀치카드에서 약 1.3센티미터 폭의 자기테이프로, 광(光)디스크와 하드디스크로, 마지막에는 이 검은 기계들, 즉 수많은 디스크드라이브로 옮겨져 왔다.

 

 세계 도처에서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사람들의 인생 궤도를 조사한 연구들도 다르지 않은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역학자들은 우리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거쳐 성인기까지 겪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생애 과정 역학을 지향했다. 사회학자들은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치는 사건들과 경험들이 우리의 최종 종착지를 결정한다는 관념에 이미 오래전에 도달했다. 뻔한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
 연구 결과, 첫 번째 코호트의 경우에는 불우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이 많았다. 아마도 대공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유년기를 보내고, 최악의 시절이 지난 후에 집을 떠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달리 두 번째 코호트는 불리한 출발점이 영원한 고통으로 고착되는 인생 경로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세계 대공황이 세계를 강타한 바로 그때 태어났고, 그들 중 다수가 발육기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청소년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많은 부모들이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게 됐고, 그들은 더 많은 문제들을 겪게 되었다.
 엘더는 이 모든 데이터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이해하기 위한 틀을 구축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 경로는 출생 시기와 그 결과 겪게 되는 사건들(세계 대공황 같은)로 정해진다고 주장했다. 또, 그런 사건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일어나느냐에 따라 미치는 영향도 달라진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세계 대공황은 두 코호트의 인생에 서로 다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시기와 사회적 환경에 속박되는 건 맞지만, 선택을 하고 행동을 취함으로써 인생 경로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엘더는 이를 '인간의 주체성(human agency)'이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에서 스스로 결정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엘더의 주장은 성인기의 건강이 신생아기와 유년기의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운동과 생활 방식의 개선을 통해 더 건강해질 수 있다고 여기는 생애 과정 역학의 기본적인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바이너는 인생의 어느 시기든 교육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더 좋은 인생길을 설계하고 싶은 사람에게 필요한 태도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인생에는 너무 이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다"는 경구를 만들었다. 충분한 동기 부여와 지원만 있으면 언제든 위로 올라설 수 있고, 불행한 인생 궤도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설리번은 새로운 데이터를 힘들게 분석하는 와중에도 옛 데이터들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해 내고 있다. 2013년에는 1970년 코호트의 어린 시절 오락적 독서 빈도에 관한 정보를 기록 보관 센터에서 뽑아낸 다음, 그것을 학교 성적에 연결시켜 보았다. 사회적 배경과 지적 수준(5살과 10살 때의 검사 점수에 근거)이 같은 아이들의 성적을 비교해 봤더니,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이 10~16살에 어휘, 철자법, 수학에서 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심지어는 부모의 대학 졸업 여부보다 오락적 독서가 아이들의 성적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다. 이 연구는 웹사이트에서 7만 5000회라는 기록적인 조회수를 자랑했고, 언론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이는 결국 독서와 도서관을 지지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