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우리는 증오를 팝니다 / 맷 타이비 / 필로소픽
- 보수적인 라디오 토크 프로그램과 폭스식 뉴스 상품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들 방송사들은 상업적 전략으로 "객관성"보다는 견해를 이용하면서, 소비자마다 각자의 정치적 신념에 맞는 매체를 갖게 되는 뉴스 환경의 원자화를 예시한다. 이것은 《여론 조작》 당시 지배적이던 세 방송망의 유사 독점 하에서, 전 국민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을 논의하던 상황과 크게 거리가 있다.
- 24시간 케이블 뉴스 방송사 도입은 뉴스 산업이 역점을 두는 부분을 이동시켰다. 기자들은 별안간 중요성보다는 속보와 신속함, 시각적 가능성을 가치 있게 여기도록 훈련받았다. 방송망의 "붕괴"―러시아 쿠르스크함 침몰 사건이나 아기를 우물에 던져 빠뜨린 사건 같은 자극적인 단독 기사를 밤낮없이 내보내는 현란한 보도들로, 내가 아는 TV 프로듀서가 "사탄을 위한 석탄 삽질"이라는 별명을 붙인 저널리즘 형태―는 과도한 뉴스 시청을 유도하기 위한 초창기 실례가 되었다. 24시간 사이클로 쉴 새 없이 전달되는 지금 막 들어온 소식들은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불안감과, 하루 한두 번이 아니라 시시각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만 할 것 같은 중독적인 의존성을 만들어냈다. 이런 구성 방식은 특히 2016년 선거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1988년에 막 시작된 인터넷이 크게 발전했다. 인터넷이 언론의 지형을 상당히 민주적으로 바꿀 거라고 기대했으나, 인쇄 및 방송 미디어는 당장은 소수의 디지털 플랫폼에 의해서만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유통 시스템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에 대대적으로 집중되었고, 이로 인해 《여론 조작》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언론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 메커니즘의 가능성이 열렸다. 더욱이 소셜 미디어의 발전은 1988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순응과 집단적 사고를 가속화하면서 "강력한 비난"의 요인을 1,000배는 더 강화시켰을 것이다. (p.27-28)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는 폭스 같은 방송사가 전개한 새로운 상업적 전략들과 결합하여 언론에 새로운 역학 관계를 만들어냈다. 과거에 미디어 기업은 가능한 한 가장 폭넓은 청취자층을 발굴했다. 전통적인 주요 일간지에서 사용한 따분한 삼인칭 목소리는 도덕적이거나 윤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한때 그것이 최대한 많은 독자와 시청자를 붙잡는다는 상업적인 목적 달성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언론은 무엇보다 산업이며, 따분한 삼인칭 표현은 한때 고급 마케팅 기법이었다.
그러나 《여론 조작》 출간 후 몇 년이 지나자 폭스 같은 새로운 거대 기업들은 구식 사업 모델에서 고개를 돌렸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타블로이드 신문 장사꾼, 루퍼트 머독이 상업적 전략으로 정치 성향을 이용한 행위는 오늘날까지 미국 대중이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파급을 가져왔다.
뉴스 산업은 수십 년 동안 "객관적인" 발표를 강조했는데, 이것은 실제로는 정치적 사안보다는 말투에 대한 것이었다. 취지는 전 계층의 잠재적인 뉴스 고객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도록, 뉴스를 읽을 때 수사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말투를 부드럽게 조절해서 위협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전통적인 앵커는 당신 딸의 안전한 데이트 상대처럼 보이고 들리도록 단조로운 목소리를 내는 마네킹이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댄 래더입니다. 저는 지금 전두엽이 제거된 상태입니다. 오늘 리비아에서는…
머독은 이 틀을 부쉈다. 그는 새로운 소비자들에게 신랄하고 독선적이며 불쾌한 방송을 내보냈다. 그는 교외에 거주하는 백인들의 분노 쓰레기통을 자처하며 벌건 얼굴로 쉴 새 없이 지껄이는 빌 오라일리(또 한 명의 보스턴 출신 TV 전문가)를 사회자로 내세운 정치 토크쇼 〈오라일리 팩터(The O’Reilly Factor)〉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p.29-30)
과거의 뉴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최전선에서 하나마나한 사소한 소식과 생생한 긴급 보도가 뒤섞여 있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기분 상하는 일 없이 뉴스를 시청할 수 있었다(인터넷 이전 시대에 방송계의 중요한 원칙은 뉴스를 포함하여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은 광고만큼 강렬하거나 창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필요에 의한 방침이었다). 과거의 뉴스는 온 가족이, 사랑스러운 엄마가, 정신 나간 우파 삼촌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고 방금 집에 온 성실한 대학생 조카가 소비하도록 기획되었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특정 집단별 사일로로 조직되기 시작하자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을 유혹할 다른 방법을 발견했으니, 그들은 같은 무리 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판매했다.
로저 에일스 같은 유형들은 가령 범죄를 저지른 이민자나 소수민족에 관한 기사로 방송 채널을 채워놓고 정신 나간 우파 삼촌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제 우파 삼촌은 자신의 구미에 맞는 뉴스들을 줄곧 내보내는 채널을 선택하게 될 터였다. 다른 방송사들도 마침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영업에 나섰다. 각자의 방에서 서로 다른 채널을 시청하게 된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를 증오하는 데 중독된 두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는 정치적인 요소가 있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애초에 이것은 상업이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 갇힌 기자들은 이내 자신들이 하는 일의 본질이 바뀌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과거 뉴스 업무는 최대한 정직하게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었다면(물론 허용 가능한 생각의 "안전 항로" 한가운데에서지만) 새로운 과제는 주로 오늘의 시청자가 내일도 돌아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분노를 팔았고, 주로 시청자가 듣고 싶어 하는 걸 줌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리고 대개는 그렇게 하려면 우리의 시청자들이 미치도록 증오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 관한 기사를 쏟아내야 했다. (p.33-34)
대부분의 유권자들이 사실상 빚더미에 앉아 있고,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고 있으며,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신용은 땅에 떨어진 데다, 알코올과 아편 중독 외에도 온갖 문제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어떤 후보가 오리 사냥을 위해 라이플총을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 가장 폼 나 보이는가 하는 것이 유권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라고 선거철마다 떠드는 것은 특권층 특유의 끔찍한 모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4년마다 이런 모욕을 주는 데 전념했다.
이것이 트럼프의 매력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이는 선거의 사후 분석에서 제외되었다. 대신, 우리가 선거 기간 동안 욕먹을 짓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언론 재벌들은 미국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은 누가 적절한 정치적 선택이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접근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조지 H. W. 부시에 대한 《뉴스위크》 표지 기사, "겁쟁이와의 싸움(Fighting the Wimp Factor)" 같은 덜떨어진 메시지로 우리를 키운 이 전문가 계층은 트럼프 시대의 기자들이 어떻게 교훈을 배웠는가 하는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냈고, 멍청한 포퓰리즘의 진지한 반대자라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갈 터였다.
예를 들어, 우리는 더 이상 "허위 진술" 같은 단어로 노닥거리지 않을 터였다. 새로 태어난 기자단은 헤드라인에 "거짓말"이라는 단어를 넣을 터였다. 우리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가서 확인해 보라. 우리는 이제 거칠어졌다.
(…)
결국 대부분의 주요 신문사와 방송사들이 금지된 단어를 허용하기로 결정하자 대대적인 격려와 칭찬이 쏟아졌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2년 가까이 잘못된 해석과 거만한 일축으로 일관해 전체 저널리즘 업계가 일제히 얼굴에 똥칠을 당해도 모자랄 판에, 대통령 선거 당일 전국 각지의 신문사와 뉴스 방송사들은 별안간 권력과 맞서 싸우는 새로운 #저항 태세를 취하며 자기들끼리 뿌듯해하고 있었다(그나저나 트럼프 시대 전에 우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그땐 권력에 도전하지 않았었나?). 빌어먹을, 《워싱턴포스트》는 실제로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죽어간다"는 새로운 슬로건이 정착된 과정을 음악의 뒷이야기식 특집 기사로 내보냈다. (p.52-53)
이후 트럼프는 클린턴이 "에너지가 훨씬 적을" 뿐 사실상 클린턴과 젭 부시가 기본적으로 똑같은 정치인임을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대선에서 그는 자신이 노동자의 친구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가차 없이 두드려댔다(자동차 산업 노동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는다면서 자동차 공장은 노조에 적대적인 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협박한 사람이 말이다). 그는 또 부시가 기업 후원자들과 끈끈한 협력 관계에 있다고 비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클린턴 역시 사실 골드만삭스 같은 은행들과 인연이 깊다고 맹공격했다.
이 모든 전략은 효과를 거두었다. 다른 요인이 더 있었나? 인종차별과 성차별은 트럼프가 다른 무엇보다 애용한 거대 주제였을까? 물론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벌이는 선거운동인 비행기 내 밀실 거래와도 노골적으로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수 세대 동안 주류 공화당과 주류 민주당의 양극단끼리 신중하게 대통령직을 유지시켜 온 보이지 않는 감시 활동에도 반대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것은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그리고 젠체하던 기자단의 공포는 트럼프 유권자들에게 주된 판매 요소였다.
내 동료들의 반응은 트럼프에 관해 어느 것도 인정하지 않겠으며, 기사를 쓸 때마다 트럼프의 입에서 나오는 몇 안 되는 사실에서 흠을 찾아내겠다는 것이었다. 진보적인 지역 방송사들은 갑자기 북미자유무역협정은 그렇게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정치인도 사람이고 돈을 벌어야 하기에 은행에서 연설을 하고 돈을 받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말도 했다. 더욱이 4년 전 카빌 같은 사람들에게 들었던 "안일함"에 대한 경고와 동일한 경고들이 부재했다. 2016년 9월에는 카빌이 직접 나와, 공화당 의원들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을 상대로 "잘못된 내기를 계속한다."라고 말하면서 선거는 거의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 정치 고문은 대학 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을 겨냥해 빌 클린턴을 백악관에 입성시킨 전적이 있다. (p.60-61)
우리 모두의 공통된 문제는 이 업계의 상업적인 구조다. 우리는 수익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뉴스를 소비하도록 독자를 길들여야 했다. 독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욱하고 화를 내게 만들며, 갈등에 중독되게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독자들이 신문을 펼치거나 핸드폰이나 TV, 자동차 라디오를 켤 때마다 우리는 독자들에게 이런저런 억측들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것들이 없다면, 우리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비논리적이고 공격적으로 보일 것이다.
비결은 끊임없이 독자들의 식견을 좁히고 그들의 무력한 분노에 계속해서 부채질을 해대는 것이다. 이것은 《여론 조작》에서 설명한, 인위적으로 논쟁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의 왜곡된 방식이다.
1980년대 중반 허먼과 촘스키의 논지는, 언론이 사람들을 공화당에서 민주당(대개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시의 공화당에 더 가까운 민주당을 포함해)에 이르는 좁은 범위의 정치사상에만 노출시킴으로써 대중의 통합을 "조작했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좁은 중앙 분리대에 머무는 한은, 논평란에 제시된 말끔하게 살균된 토론 형식에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범위의 기본 원칙을 받아들였다.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다른가. 우리는 이 중앙 분리대에서 익을 대로 익은 분열을 조장한다. 우리는 증오를 판매할 수 있다는 걸, 표현이 신랄할수록 더 잘 팔린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이것은 더 큰 정치적 목적에 기여한다.
대중이 서로를 증오하느라 너무 바쁜 나머지 카메라 밖에서 일어나는 더 복잡한 재정적·정치적 과정에 분노하지 못하는 한, 대중 폭동 같은 위험한 사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 언론이 일을 하는 이유도, 우리가 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운영하도록 허용되는 이유다. 사람들이 폭스든 MSNBC든 CNN이든 주요 방송사 TV를 시청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사실상 정치적 지지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니, 놀라서 펄쩍 뛸 노릇이다. 권력을 쥔 사람이 정말 위험한 견해를 TV에 내보내도록 허락할 거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요즘 뉴스는 시청자가 배역의 일부를 담당하는 리얼리티 쇼다. 채널마다 온통 아메리카 대 아메리카가 방송되는 것이다.
비결은 시청자들이 실제론 그저 우연히 다른 사일로에 있게 된 자기와 똑같은 다른 미디어 소비자들을 향해 옆으로 주먹을 날리면서, 위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증오의 메커니즘은 시청자들을 한치 앞도 보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이 이 업계에 아주 오래 몸담게 되면 그 뉘앙스에 깊이 빠지게 될 것이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단순하고 강력한 생각들을 연속적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영원히 당신 편이 될 것이다. (p.64-65)
《여론 조작》이 출간된 지 몇 년 후 거대 복합기업들이 주요 미디어 매체 대부분을 사들였다. 보도 경험이 없는 방송사 책임자와 신문 발행인이 갑자기 흔해졌다. 이제 당신이 중요한 기사를 내보내자고 요구하기 위해 상사에게 가면, 자동차 회사 임원이 타이어 폭발에 대비해 초냉각 장치가 옵션으로 설치된 자동차를 생산하겠다고 밀어붙이는 엔지니어를 쳐다보듯 당신을 돌아보는 누군가와 이야기하게 될 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체 우리가 뭐 하러 고소까지 당하려 하겠는가?
가장 큰 매체들은 소송을 일삼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대형 폭로 기사를 내봐야 이득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대기업들은 소송을 제기할 뿐 아니라 보복으로 광고를 끊을 게 분명하다(몬산토 사건에서 이것은 큰 고려사항이었는데, 폭스는 뉴트라스위트의 광고를 사용할 수 있는 22개 방송국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뭐 하러 문제를 만들겠는가?
당시 뉴스 시청자들 역시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런 식의 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도록 길들여졌다. 대신 다른 것(더 보기 좋은 날씨 예보 그래픽, 유명인사에 관한 뉴스, 더 신속한 전달 등)을 팔기가 아주 쉬워졌다. 해외나 워싱턴에 자체 특파원을 파견했던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차츰 사무실 문을 닫고 전화선에 의지했다.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기업 뉴스 기관에서 일하는 기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큰 상업적 이익을 겨냥한 긴 탐사보도가 딱히 금지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상사가 열심히 장려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 경우가 그런 건지 혹은 이게 상식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꼭 알아둘 사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에이크리는 말한다. "가령 플로리다에서 일하고 싶다면 디즈니에 관한 폭로 기사는 쓰지 마세요."
대신 "소비자를 겨냥한 보도"는 점점 더 쉬운 목표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신 당신이 얻는 것은 작은 베트남 식당에 관한 폭로 기사입니다. 그런 식당들은 절대로 반격하지 않을 테니까요." 에이크리는 말한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소비자 보도 해설자의 목소리를 흉내 낸다. "자, 이제 우리는 여러분을… 식당 문 뒤로 안내하겠습니다…."
에이크리는 상사에게서 몬산토사에 관한 폭로 기사가 본인이 "묻히고" 싶은 "무덤"이 확실하냐는 질문을 받은 뒤로 다시는 TV에서 일할 수 없었다. (p.71-72)
그러나 그가 맡은 일의 핵심적인 역학 관계는 우리들 대부분이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주로 독자를 자극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는 독자들이 돌아오길 바란다. 분노는 웅변적인 징후의 일부지만, 의로움과 우월함 같은 감정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뉴스 주제로 소아종양학 병동에서 일하며 매일을 보내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케이시 앤서니나 O. J. 같은 끔찍한 사람을 훨씬 더 사랑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TV에서 진정으로 영웅적이거나 이타적인 사람을 보여주면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보여주지 않는다.
리얼리티 쇼의 전제도 이와 동일하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천재 혹은 미덕의 귀감이 되는 인물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끔찍한 부모, 저능아, 임신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뚱뚱한 여자, 방귀 뀌는 장면을 기꺼이 찍히고 싶은 사람, 성질 더러운 부자, 그 밖에 우리가 희한하다고 여길 만한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멍청이들이 당나귀 정액을 들이키는 장면을 보여주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데, 뭐 하러 기본적인 지리학이나 세계은행 구조조정 차관의 운용 방식을 알려주기 위해 역사상 가장 발달한 통신 기술을 이용하겠는가? (p.109)
내 경험상 보수주의자들이 기자들을 싫어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를 위선자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계급에 속한다는 생각, 혹은 우리 종족만의 신념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때때로 위선은 그들이 보아온 모습에서 드러난다. 백인만 거주하는 안락한 교외 소도시의 중심지에서 인종차별에 격분하고, 이따금 푸에르토리코 정원사에게 팁을 쥐어주거나 공화당을 지지하는 배관공을 고용하는 상류층 진보주의자의 모습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이 접근 방식과 말투와 관련이 있는데, 마이크 로이코나 잭 뉴필드 같은 과거의 칼럼니스트들이 노동자의 언어로 글을 쓰는 걸 창피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드러내 놓고 전문직 분야의 독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 그들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작가로서 누군가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작가 본인의 잘못이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독자들은 다른 독자들에 비해 다가가기가 더 어렵다며 자신을 위로할 수는 있겠지만, 커뮤니케이션 업계에 종사하면서 의사소통에 실패한다는 건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사람들은 정보를 알아내기엔 너무 게으르기 때문에 미디어를 싫어한다는 말은 그들은 우리의 자유 때문에 우리를 싫어한다는 말의 언론 버전이다. 또한 이 업계 내부의 표준적인 사고방식이며, 사실상 고전적인 멜 브룩스 농담의 재미없는 버전일 뿐이다.
폐하,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사옵니다!
과연 맞는 말일세, 워낙 형편없는 인간들이니! (p.135)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좌파"와 "우파" 미디어인 MSNBC와 폭스 사이에는 중첩되는 영역이 상당히 많다. 겉으로 보기에 상반되는 정치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두 채널 모두 똑같이 광고를 수용하는 시청자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둘 중 어느 채널도 멕시코 노동자들이 당신 아이의 장난감을 만들기 위해 일당 70페소를 받고 일하는 마킬라도라 산업에 관한 기사로 당신을 거북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방송 중간에 광고로 나가는 값싼 햄버거로 만들어질 소에게 먹이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숲을 개간하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 시청자를 불안하게 만들지도 않을 것이다.
뉴스 시청 시간 동안, 훌루에서 영화를 내보내는 동안, PGA 투어 중계가 나가는 동안, 그리고 US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서브를 넣는 로저 페더러의 뒤편에서, 시종일관 웰스 파고 은행과 체이스 은행 광고를 내보내는 사이에 은행 구제 금융을 다루는 내용으로 시청자를 지루하게 만드는 일은 어느 방송사도 좀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유들로 어느 채널에서도 보도하지 않는 다양한 내용의 기사들이 있는데, 그중 대부분이 군대나 국제 금융 기관에 관련된 것이다. 반대로 모든 채널에서 안전하게 보도할 수 있는 한 가지 기사는 우리가 서로를 얼마나 미워하느냐이다. 이런 기사는 어떠한 제도적·상업적 금기도 위반하지 않는다. (p.138)
당신은 그렇게 많은 뉴스를 시청할 필요가 없다.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흔들어대는 모든 끔찍한 문제들에 대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정치적 힘이 전혀 없을 것이다.
인간의 뇌는 전 세계를 들썩일 충격적인 뉴스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우리들 대부분은 내면의 평화를 찾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복을 지키는, 보다 일상적인 문제들로도 충분히 골치가 아프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계속해서 당신을 자극한다. 사실 끔찍한 소식의 엄청난 양과 당신이 현실적으로 그것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무력함 사이의 긴장감은 이 업계 소비자 전략의 일부다.
우리는 당신이 정보를 얻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로 모종의 행동을 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죄책감을 씻어내기 위해―세상이 미쳐가고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에서 오는 자괴감과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당신은 계속해서 뉴스에 채널을 고정할 것이다.
뉴스 기사가 논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 중요도에 따라 선별된다 하더라도, "사실 하루 종일 뉴스를 시청할 필요는 없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뉴스 기사는 그렇게 선별되지도 않는다. (p.206)
2000년대 후반, 영국 국무조정실은 〈포부 육성 정책(Unleashing Aspirations)〉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영국에서 저널리즘은 다음과 같이 사회적으로 가장 특권적인 직종 중 하나라고 평했다.미국에서는 이 변화가 단계적으로 나타났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 상영된 후 저널리즘이 근사한 직업으로 비치자, 상류층 어린이들이 갑자기 이 업계를 선망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부유층 아이들은 기자라면 똥 닦는 휴지만큼도 취급하지 않았다. (p.261-262)
- 1970년 이후에 출생한 저널리스트의 98퍼센트는 대학 졸업자였다.
- 노동자 계급 출신은 10퍼센트 미만이었다.
- 평균적인 저널리스트는 상위 25번째 백분위수에 속하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전문 경영인 지위에 있는 엘리트 계층 지식인들"은 미국의 노동자 계층이 우리의 정치적·경제적 파이의 분배 방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노동자 계층은 "기회가 인구가 밀집된 좁은 대도시 지역에 놀라울 만큼 굉장히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며, 그 사실에 화가 나 있다고 그녀는 말한다.
윌리엄스는 평생 동안 인종차별과 성차별 같은 까다로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왔지만, 이토록 불편하게 문제에 접근한 적은 없었다. "이것은 지금까지 내가 다루어야 했던 가장 힘든 주제였어요." 그녀는 말한다.
윌리엄스 같은 학자들은 글을 발표할 곳이 거의 없는데, 무엇보다 어떤 종류든 대안적인 관점을 받아들일 지면이 이제 많지 않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2016년 대선 시기는 신문 전체의 빙하기, 또 한 차례의 대량 멸종 시기와 일치했다.
"요즘은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단 두 개의 신문만 남아 있습니다." 프랭크가 말한다. "그리고 이 두 신문은 똑같아요. 이 신문들은 같은 내용을 말합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제한된 생태계예요." (p.277)
2016년의 아이러니는 정치 지도자들이 유권자들의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보여주는 궁극적인 예였다. 그들은 무의미한 전쟁 비용, 잇따라 터진 금융 버블에 의해 초래된 거대한 부의 이동과 같은 극적인 경제 변화로 유권자들을 옥죄며 한 세대 동안 그들을 조종해 왔다. 평범한 사람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가속화된 제조업 경제의 수출 같은 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듣기만 했다. 그러다 마침내 유권자들이 반격을 가하며 괴물과도 같은 뜻밖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미디어는 이 모든 것을 초래한 근시안적인 시각을 조명함으로써 사회의 자정작용을 도와야 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너무도 오랜 세월 정치인들의 비위를 맞추어온 터라, 2016년에는 똑같이 장님이 되어 모두가 한 천막 안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보지 못하는 걸 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p.279)
어느 채널에서도 당신에게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 뉴스의 모든 미학적 특징은 끊임없이 고조되는 긴장감,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스포츠와 달리 뉴스는 경기가 아니다. 이 사실은 정말 중요하다(나는 방송사가 정말 중요한 이슈는 좀처럼 시청자에게 제시하지 않고, 대신 가장 쉽고 가장 선동적인 이슈를 선택한다고 주장하지만 말이다). 기만은 우리가 던지는 많은 골치 아픈 정보에 대해, 평범한 사람들이 뭐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을 낳는다.
세상에는 어느 한 개인이 뭐든 할 수 있기는커녕 이해하기조차 벅찬 굶주림, 비참함, 부정, 부패, 편견, 부당함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루종일 헤드라인을 쏟아내고, 점차 스포츠처럼 양측 사이의 제로섬 게임으로 뉴스를 제시한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비통함을 느끼거나 혹은 자기 신념 체계의 승리를 만끽하면서 하루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 뿐이다. (p.295)
우리는 당신이 뉴스를 보고 듣는 경험에서 벗어나 내면의 대화를 한다는 걸 전혀 이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당신을 내일까지 방송과 헤어지게 하고 싶지 않다. 클릭하고, 시청하고, 읽고, 트윗하고, 논쟁하고, 돌아와서 다시 클릭하는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당신의 신경은 매 시간 조금씩 닳아 없어진다. 뉴스에 붙들릴 때마다 지적인 자율성을 점점 더 양도하면서.
당신은 보고 듣는 내용에 대해 논쟁할 능력을 상실할 정도로 곧 이 순환에 의지하게 될 텐데, 논쟁을 한다는 건 곧 당신이 선호하는 뉴스 제공자들과의 결속을 약화시키는 걸 의미할 터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이제부터는 판단이 아닌 믿음의 영역에 들어서게 된다.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종교적 숭배의 한 형태인데, 이를 고스란히 패러디한 영화가 〈네트워크(Network)〉이다. 영화는 분별력을 잃고 방송 중에 자신의 처지를 실토한 앵커맨이 대중의 반응을 얻어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p.303-304)
뉴스를 끄면 대부분 사람들이 즉시 긍정적인 심리 상태로 바뀐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를 오랫동안 감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해 있을지라도 적어도 서로 예의를 갖추고 기꺼이 협력하며 친절을 베푸는 더 밝은 세상에서 살길 원한다면, 그냥 TV를 끄면 된다.
뉴스를 반드시 소비해야 한다면,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압박들을 인지하라. 기사를 클릭하거나 TV를 켤 때마다 복잡한 경제학이 작동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당신의 시선이 스크린을 향해 이동하는 순간부터 어떤 회사는 당신에게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당신은 이 상품 광고의 대상이 되거나 가입 신청을 함으로써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회사는 여러 다른 구매자들에게 당신을 팔고 있다. 당신의 관점은 하나의 상품이 되고, 당신의 인터넷 서핑 데이터 등은 또 다른 상품이 된다.
그 한가운데 놓인 실질적 정보인 뉴스는 이런 거래에서 거의 부수적이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몰두하는 시간의 양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속보를 의심해야 하며, 당신이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걱정하라고 말하는 사실상 모든 사람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 (p.310)
나의 첫 아프리카 수업 / 김유아 / 초록비책공방
'아프리카는 무조건 지원이 필요하다'는 태도는 아프리카에서 임의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시 착취가 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게 했으며, 아프리카 모든 지역이 우리보다 못 살고 형편이 좋지 않은 곳이라는 편협한 고정관념만 키웠다. 장기간 아프리카 지역에 투자된 개발원조는 현지 국가의 주인의식과 회복탄력성을 저해했고, 아프리카 국가들 또한 대외 원조에 익숙해지며 의존하게 되었다. 특히 많은 아프리카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는 천연자원은 끊임없는 외부 세력의 개입을 야기하면서 내생적이고 주체적인 개발을 추진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르완다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자각하고 원조 분업과 같은 자체적인 개발 전략을 추진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단계에 접어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70-71)
프랑스는 그동안 자국의 학살 방조론 또는 책임론을 줄곧 부인해 왔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이 2018년 5월 프랑스를 방문한 르완다의 카가메 대통령에게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고, 르완다 정부 또한 2019년 4월 7일 25주년 추념식에 마크롱 대통령을 초청하는 등 프랑스와 르완다의 관계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인 르완다 집단학살 문제를 청산하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25주년 추념식 참석은 거절했으나 2019년 4월, 8명의 역사학자와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르완다 집단학살 조사위원회를 꾸린 것은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 직속의 이 위원회는 1994년 르완다 집단학살에 관련된 프랑스군과 정부기관의 자료를 찾아내고 프랑스의 개입이 있었는지, 개입이 있었다면 적절했는지 여부를 조사해 2021년 3월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프랑스 당국이 학살 준비에 대해 "무지"했고 그때 너무 늦게 반응하는 바람에 광범위한 학살을 이해하거나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부가 학살에 이른 사태 추이에 대응하지 않음으로써 "중대하고 압도적인 책임"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르완다 정부도 한 달 뒤에 보고서를 내고 프랑스 정부가 사실상 1994년 집단학살을 가능하게 했다고 규탄했다. 학살 27년 만에서야 양국이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공동 이해를 위한 발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p.170-171)
아파르트헤이트는 '분리(Apart) + 주의(Heid)'라는 의미의 아프리칸스어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추진되었던 인종 분리 정책이다.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연방 총선에서 국민당(NP, National Party)이 승리한 이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법률로 공식화되었고,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적 지배를 골자로 인종 분리 정책을 추진했다. NP는 이를 기반으로 가혹하고 강제적인 안보 체제를 만들고, 불평등하고 분리된 교육 체제, 지정된 직업, 거주지 분리 등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전역에 확대시켰다. (p.199)
넬슨 만델라는 평생을 인종차별 해소와 국민 화합을 위해 투쟁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무자비한 폭력으로 흑인들을 탄압하자 그는 프레토리아에서 열린 재판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반감과 인종차별 통치를 종식시키기 위한 의지를 천명하면서 사보타주(Sabotage)로 맞서며 저항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델라는 1964년 열린 이 재판에서 "나는 백인만을 위한 통치뿐 아니라 흑인만을 위한 통치도 반대한다. 나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모든 국민이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는 화합을 이루는 사회를 꿈꾼다. 이것은 내가 달성하고 싶은 꿈꾸는 사회의 목표이며 나는 이 목표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2개월 후 만델라와 7명의 피고인은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27년간 교도소에 수감된 뒤 73세의 노인이 되어서야 자유를 얻었다.
1993년 넬슨 만델라와 드클레르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와 평화적인 민주주의 도입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1994년 4월 치러진 대선 투표는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국제 선거 감시원들은 투표가 모범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흑인, 백인, 인도인 그리고 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유색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투표소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투표하는 모습도 보였다. ANC가 압도적인 다수표를 얻었는데도 거국연립정부는 정치적 경쟁자들과 그때까지 자신들을 억압하던 사람에게까지 정치적인 대표권을 확보해주었다. 같은 해 5월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다. (p.214-215)
드록바는 축구 영웅 이외에도 별명이 많다. 검은 예수, 전쟁을 멈춘 사나이, 드록신 등 전쟁을 멈추게 했던 그의 이야기는 이제 오랜 전설이 되었다. 2005년 10월, 코트디부아르는 2006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최종에서 수단과 겨루어 3대 1로 승리하며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당시 주장으로서 코트디부아르 사상 첫 월드컵 진출에 대한 소감을 묻는 방송 인터뷰에서 드록바는 동료들과 함께 카메라 앞에 무릎을 꿇었다. 1분 정도 진행한 이 인터뷰는 5년간의 내전을 멈추게 했다.
"제발 무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대신 선거를 합시다. 그러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입니다. 이제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것을 멈추고 즐기고 싶습니다!"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2002년부터 그바그보 정부가 장악한 남부 기독교 세력과 기욤 소로가 이끄는 북부 이슬람 반군 세력 간의 내전으로 하루라도 총성이 끊이는 날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드록바의 발언은 고통받던 수많은 코트디부아르 사람의 지지를 받았고 양쪽 지도부들이 일주일 동안 휴전하는 것에 합의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p.236-237)
먹을 음식과 깨끗한 물, 몸을 감싸는 옷, 포근한 잠자리 등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낯선 지역을 떠도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난민들이다.
각종 분쟁이나 내란 등이 일어나면 수많은 난민이 발생한다. 국제사회는 난민 보호에 관한 국제법과 국가 간 협력, 국제기구 운영 등으로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이 난민이 되고 이들은 굶주림과 질병 등의 위험에 처해있다.
적극적인 평화는 단지 분쟁과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종류의 폭력이 사라지고 정의가 구현된 상태이다. 나라를 잃고 인간의 존엄성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폭력에 놓여있는 난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존엄성과 인권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와 주변국의 안보를 지킨다.
난민 문제의 해결은 자국의 안보뿐만 아니라 이웃 국가 안보까지 안정화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으로 세계시민은 자신이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누군가의 권리가 침해당하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 지금보다 안정된 평화를 함께 누리기 위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p.242-243)
우간다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국가이다. 우간다 정부가 난민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이 없는 데다 국민도 난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970년대 독재와 내전으로 우간다 국민은 조국을 떠나야 했다. 난민 신세가 된 자신들을 다른 국가에서 받아주었듯이 이제는 자신들이 난민을 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18년 8월 기준 우간다에서 수용하는 난민 수는 더욱 증가하여 1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 약 50만 명이 2016년 7월 내전 재발 이후 몰려든 남수단 난민이고, 8만 6,000명 이상이 2017년 12월 분쟁 이후 급증한 콩고민주공화국 난민, 약 4만 명이 2015년 7월 대선 이후 유입된 부룬디 난민이다. 2020년 12월 UNHCR 기준 우간다 비디비디 난민촌에서 수용하고 있는 난민은 약 23만 명이며 이 중 86%가 여성과 아동이다. 지금도 전쟁과 기아를 피하기 위해 하루 평균 2,000여 명의 여성들과 아이들이 맨발로 국경을 넘어 우간다로 향하고 있다.
UNHCR이 밝힌 우간다 난민 지원에 필요한 자금은 5억 7,000만 달러지만 실제 원조 금액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UN 세계식량계획도 어쩔 수 없이 배급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난민촌 내 학교는 텐트로 만들어져 비바람을 막지 못하므로 아이들은 비에 젖기 일쑤이다. 전기가 부족해 하루 수십 명씩 발생하는 응급 환자를 치료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p.252-253)
한국의 평균 난민 수용률은 3% 미만에 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난민 신청자 누적 총수는 2만 2,792명이었으나 이 중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672명으로 2.9%에 불과했다. 절반이 넘는 1만 1,565명(50.7%)은 난민 인정이 거부되었고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사례는 1,156명(5.1%), 2,538명(11.1%)은 자진 철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5년 말 난민 수용률 4.2%, 인도적 체류 허가 7.2% 등과 비교해서 줄어든 것이다.
2018년 한 해 전체 난민 신청자는 1만 6,173명으로, 1994년 난민 인정 신청 접수를 한 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 신청했다. 전년 대비 62.7%가 증가했으나 전체 난민 신청자 수 대비 난민 인정률은 0.9%에 그쳤으며, 2019년에는 총 1만 5,451명 중 단 71명만 인정받아 0.5%에도 미치지 못했다. 1994년 이후 전체 난민 신청자의 난민 인정률은 3.9%로, 세계 190개국 전체 난민 인정률(30%) 및 난민 보호율(44%)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난민 수용 수준은 지나치게 인색하다. 그마저도 해마다 난민 인정 빈도가 지속해서 낮아지고 있는데 이는 한국 난민 정책의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법무부는 난민 심사에 까다로운 이유가 불법 취업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에 수천 명씩 난민이 쏟아져 들어올 경우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p.270)
그러나 국가의 정치·경제적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도입되었던 개혁 처방이 모든 개발도상국에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아직 산업화의 토대가 완전치 않고 경제 및 정치체계 또한 굳건하지 않았던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이 같은 조건부 개발 원조가 결국 국내 산업의 몰락, 빈부 격차로 인한 사회 혼란을 가중시켰다.
2000년대 초 세계은행은 탄자니아 정부에 차관 제공을 조건으로 수자원의 민영화를 요구했고, 이에 2003년 탄자니아 정부는 영국의 다국적 기업인 바이워터(Biwater) 사와 10년간 상수도 공급을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오로지 이윤 창출에만 관심이 있었던 바이워터 사의 형편없는 서비스로 인해 탄자니아 시민들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결국 2005년 계약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소말리아의 경우에는 1981년 IMF의 구조조정 정책 아래 정부 보조금을 축소한 결과 국내 농업과 목축업이 몰락하여 기아와 빈곤이 심화되었다. 짐바브웨는 공공부문의 지출 억제로 의료 지출이 3분의 1로 감소해 유아 사망률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개발도상국의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무리하게 시행된 개혁 처방이 긍정적인 효과보다 개발도상국의 국가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불러오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p.289)
한국은 차관 형식으로 일정한 이자 상환을 필요로 하는 유상 원조와 무상으로 지원하는 무상 원조를 하고 있다. 유상 원조는 한국수출입은행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통해 실시하고 있으며, 무상 원조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1945년 해방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으로부터 경제 재건을 위한 원조를 받아 1945년부터 1999년까지 약 127억 달러(약 14조 3,000억 원)의 원조를 받았다. 이러한 원조와 국민 모두의 경제 재건을 위한 노력에 힘입어 최빈개발도상국에서 벗어나 OECD DAC에 가입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한국은 2009년 OECD DAC에 가입한 이후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을 제정했으며, 2019년 기준 한국의 총국민소득 대비 ODA 지원 비율은 0.15%로 OECD DAC 29개 회원국 중 25위를 차지했다. 국제사회에서 공여국으로서의 위상이 제고됨에 따라 2020년까지 GNI 대비 0.20% 달성을 목표로 계속해서 ODA를 증대하고 있다. 특히 지원 추이를 보면 대아프리카 개발 협력은 아시아 다음으로 많은 분포를 차지하는 데다가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어 한국이 아프리카 지역을 전략적 요지로 보고 지원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p.322-323)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의사인 드니 무퀘게(Denis Mukwege) 박사는 두 차례의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중 잔인한 성폭행이나 신체 훼손을 당한 여성 피해자들을 치료한 공로로 2018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6년 9월 서울 평화상을 받기도 한 무퀘게 박사는 아프리카 부룬디대에서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프랑스 앙제르대에서 산부인과를 전공하고, 1999년 그의 고향인 남키부주 부카부에 돌아와 판지병원을 설립했다. 그는 이곳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제공하며 내전으로 인한 높은 모자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의 첫 환자는 산모가 아닌 반군에 의해 성폭행을 당해 신체가 심각하게 훼손된 여성이었다. 내전으로 인해 성폭행 피해 여성이 늘어나자 그는 피해자를 돕기 위한 치료 시설과 재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콩고민주공화국 내전으로 약 5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피해를 당했으며, 지난 20여 년간 판지병원에서 치료받은 환자가 연간 3,500명이 넘는다. 무퀘게 박사의 환자는 산모보다 성폭행 피해자가 더 많았고 그는 하루에 10명이 넘는 환자를 수술해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드니 무퀘게 박사는 노벨 평화상 외에도 2008년 올로프 팔메상과 UN 인권상, 2009년 레지옹도뇌르 공로상과 올해의 아프리카인상, 2014년 11월 사하로브상을 비롯하여 네덜란드, 벨기에, 이탈리아 등 국내외에서 다양한 상을 받은 바 있다.
그가 기여한 보건의료와 여성 권익 보호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성취되어야 할 핵심 목표들이다(목표 3. 모든 연령층의 모든 사람을 위한 건강한 삶 보장 및 복리 증진, 목표 5. 양성평등 달성 및 모든 여성과 소녀의 권익 신장 등).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특히 모자보건 관련 지원을 통해 복지를 증진하는 등 생존권을 보호하는 것은 위험 요소를 최소화한 지속가능한 환경을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p.328-329)
가나에는 아프리카 최대의 e-폐기물(전자 장비 및 부품 쓰레기) 쓰레기장인 아그블로보시 시장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매년 21만 5,000톤 가량의 중고 전자 제품이 들어오며 이로 인해 12만 9,000톤의 e-폐기물이 발생한다. 특히 PC 브라운관과 납, 수은, 코발트를 포함한 각종 부품은 환경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그블로보시 시장 인근에는 약 4만 명이 거주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고 있다. e-폐기물로부터 구리와 같은 부품들을 분리하기 위해 쓰레기를 소각하는데 이때 발생한 매연에 피해를 당하는 인구만 25만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그렇지 않아도 빈곤한 지역민들이 위협적이고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2019년에 UN에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매년 버려지는 5,000만 톤의 e-폐기물이 2050년에는 2배로 증가할 것이라 전망되었다. 또한 폐기물의 20%만이 적절히 재활용되고 나머지는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으로 밝혀져 환경 및 보건 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가나의 e-폐기물은 주로 아그블로보시 동쪽에서 약 32km 떨어진 테마 항구를 통해 서유럽 및 미국으로부터 수십만 톤의 컨테이너로 유입되고 있는데 e-폐기물이 아닌 각종 폐기물까지 중고 전자 제품 항목으로 운송되고 있어 보건적 측면으로도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다. (p.348-3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