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뉴스는 없다 / 권태호 / 페이퍼로드
신문이 위기를 맞은 가장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100년 이상 유지돼 왔던 광고 모델이 서서히 종말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종이신문 매출액에서 광고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수입의 59.9%로 여전히 가장 높다. 그러나 신문사의 광고 수입과 종이신문 판매 수입 모두 계속 줄어들고 있다. 2014년과 2017년을 비교하면, 일간신문의 종이신문 판매 수입은 14.1%에서 12.9%로 2.2% 포인트 줄어들었다. 그런데 전체 광고액은 장기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신문사 매출구조에서 광고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5.9%에서 60.7%로 오히려 4.8% 포인트 늘어났다.
이는 국내 신문사들이 종이신문 구독 수입 하락분을 기존의 광고 모델을 확대하는 형태로 메우는 식으로 경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출에서 광고 비중이 60%나 된다는 건 그만큼 신문사들이 기업의 광고 추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익모델로서도 위태로운 구조다. 더욱이 향후 종이신문 판매수익 하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터넷 콘텐츠 판매 수입'으로 이를 상쇄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신문사들은 점점 힘을 잃고 있는 광고수입에 더 의존하게 되는 기형적 구조를 탈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각 언론사들은 최근 몇 년간 여러 가지 형태의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시도해 왔다.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성공모델을 꼽기 힘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언론사들은 꾸준히 '뉴스 유료화 모델'을 모색하고, 시도하고 있다.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비슷하지만, 한국 소비자들은 디지털 콘텐츠, 특히 뉴스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 『2017 한국미디어패널조사』(정보통신정책연구원)를 보면, 우리나라 성인들의 1인당 디지털 유료콘텐츠 이용 금액은 월평균 579원에 그쳤다. 양정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특히 '신문/잡지/책(웹툰 포함)'에 대한 디지털 콘텐츠 월평균 이용 금액은 38원으로 가장 저조했다. 상대적으로 콘텐츠 유료 이용이 활발한 웹툰 부분을 제외하면, 뉴스로 분류되는 '신문/잡지' 디지털 콘텐츠를 돈을 주고 사보는 사람의 수도, 금액도 매우 미미할 것이다. 가장 유료화가 진전된 분야는 '음악'(295원)이고, 그 다음이 'TV 프로그램'(100원), '게임'(92원). '동영상/영화'(54원) 등의 순이었다.
콘텐츠 서비스에 가입하고 유료 콘텐츠를 실제로 구매한 '유료 이용자'들만 놓고 따진 월 이용액도 신문/잡지/책의 경우에 국한하면 우리나라 성인들의 0.5%에 불과하고, 이들이 지불하는 월평균 이용금액은 7,683원에 그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소유하고 있는 뉴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은 초기부터 "양질의 저널리즘은 값싼 것이 아니다"라고 주창했다. 머독은 뉴스 생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고, 따라서 생산된 뉴스는 가치에 합당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래서 온라인 기사도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한다는 게 머독의 경영철학이었다.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보다 언론 매체의 콘텐츠 소유권 보호와 유료화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이런 기조에 따라 머독은 『월스트리트 저널』 뿐 아니라, 영국 『더 타임스』와 『선데이타임스』까지, 자신이 소유한 언론사에 대해선 모두 본인의 직접 주도 아래 2010년 7월에 전격적인 유료화를 단행했다. 미국 유명 신문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실시한 유료화였다. 또 미터제, 프리미엄제 등 다양한 시도를 하던 다른 미국 언론사와 달리, 처음부터 단순하게 '돈을 내지 않으면 기사를 볼 수 없다'는 형태로 일관했다. 가장 강력한 하드 페이월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디지털 뉴스 유료화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디지털만 유료로 보는 구독자만 15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디지털 온리' 구독자 수로는 『뉴욕타임스』에 이어 2위 규모다. 더욱이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구독자의 평균 주당 가격이 2달러 수준의 상대적 저가 공세로 디지털 구독자를 늘려온 반면, 『월스트리트 저널』은 디지털 유료 구독자들의 주당 평균 가격이 『뉴욕타임스』의 10배에 가까운 19.5달러에 이른다. 이로 인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로는 『뉴욕타임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2위에 머문다. 하지만 거꾸로 구독료 수익은 정반대다. 2018년 기준 매월 구독료 수입은 5,137만 달러(약 603억 원)로, 『뉴욕타임스』의 월 구독료 수입 2,424만 달러(약 284억 원)보다 배 이상 많다.
『메디아파르트』는 창간 10년이 안 된 2017년 말 기준으로 15만 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2011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2011년에는 순수익 57만 유로(약 7억 2,522만 원), 2012년에는 순수익 70만 유로(약 8억 9,047만 원)를 기록했다. 광고 없이 오로지 구독 수입만으로 이룬 것이다.
그런데 『메디아파르트』는 한국의 『오마이뉴스』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메디아파르트 창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디지털미디어 전문가 브느와 티유랑의 글, '오마이뉴스에서 메디아파르트까지(De OhmyNews à Mediapart)'에 의하면, '참여'와 '공동체'라는 두 가지 속성을 『오마이뉴스』 모델에서 빌려왔음을 밝히고 있다. 다만 『오마이뉴스』가 일반인들이 기사를 쓰도록 하는 '시민기자'를 폭넓게 운용하는 반면, 『메디아파르트』는 소수정예로 구성된 전문 기자들의 탐사보도를 중심으로 정보의 질과 독창성에 중점을 두었다. 탐사보도와 광고를 받지 않는 점 등은 『오마이뉴스』보다 오히려 『뉴스타파』와 더 비슷한 모습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디지털 에디터인 크리스틴 고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유료 사이트인 크로니클에서 주목하는 것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며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 댓글 등을 달며 참여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다. 그렇게 해서 유료 구독자로 바꾸는 게 목표다. 무료 사이트인 SF게이트의 경우, 독자가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보다 페이지뷰가 얼마나 높은지가 더 중요하다. 페이지뷰가 많아 크로니클보다는 SF게이트의 광고가 훨씬 많다. 광고 수익도 얻으면서 온라인 독자가 SF게이트를 통해 유료인 크로니클 사이트로 넘어오게 만들려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 탐사전문 온라인 저널리즘 매체로 등장한 『프로퍼블리카』는 『가디언』 다음으로 규모가 큰 비영리 언론사다. 16년간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국장을 맡아왔던 폴 스타이거(당시 65세)는 회사가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넘어가자 이 매체 창간 주역으로 새 출발에 나섰다.
『프로퍼블리카』는 비용부담 등으로 대부분의 언론사가 꺼리는 탐사보도에 집중한다. 기사가 중편소설 분량에 가까울 만큼 길고, 몇 년에 걸친 취재가 바탕이 된다. 게다가 이런 기사를 자사 웹사이트에 올림과 동시에 원하는 언론사에 무료로 제공하는 협업 모델을 실시한다. 초기에는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광고도 받지 않았다. 이는 금융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허버트 샌들러와 매리언 샌들러가 초기 3년간 이 회사에 매년 천만 달러씩을 기부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성역 없는 보도'를 실현해온 『프로퍼블리카』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강타한 뉴올리언스의 한 병원에서 당시 의료진이 소생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환자들을 안락사시킨 사실을 2년 반의 취재를 통해 밝혀냈다. 이 보도로 『프로퍼블리카』는 2010년 처음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창간 이후 10년 남짓한 동안 퓰리처상만 네 번 받았다. 『프로퍼블리카』의 심층취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는 소속 기자 대부분이 기존 언론사를 거친 베테랑들이거나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라는 점에도 있다.
『프로퍼블리카』의 사장 겸 편집인인 스타이거는 2012년 퓰리처상을 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프로퍼블리카』는 저널리즘이라는 도구를 통해 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권력남용, 공공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 등에 대해 '도덕적 힘'을 바탕으로 기사를 쓰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다"라고.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가 매년 공동 조사하는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8 한국'을 보면, '검색 및 뉴스 수집 서비스'를 통해 뉴스를 보는 한국인들이 77%(지난 1주일간 디지털 뉴스 이용에 주로 의존했던 경로, 단수 응답)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37개국 평균인 30%를 압도적으로 웃도는 한편, 2위인 일본(65%)과도 큰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여기에 또 다른 파도가 닥쳐왔는데, 그건 유튜브다.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에서 한국은 37%로 터키(41%), 대만(38%)에 이어 3위 수준이었다. 37개국 평균은 24%였다. 최근 국내에서 유튜브의 급성장 상황을 보면, 유튜브는 한국의 뉴스 유료화에 또 다른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뉴스타파』는 후원자가 될 수 있는 잠재고객을 1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 후원자 1,000명당 기자 1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직원은 50명 정도다. 2017년 9월 26일 기준, 매달 회비를 납부하는 정기후원자가 4만 명을 넘기도 했다. (40,223명) 그러나 2019년 2월 22일 현재 정기후원 형태로 후원금을 내는 회원은 33,835명이다. 후원자 1명당 월평균 11,500원 정도를 낸다. 전체 금액은 월평균 4억 원에 못 미친다. 회원들의 분포를 보면, 40~50대 남성이 주를 이루며 지역적으로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최근 20~30대 여성들의 후원도 늘고 있다. 『뉴스타파』는 후원회원들과의 지속적 관계 유지를 위해 정기후원을 적극 유도한다.
권태호 수익모델 측면에서, 다른 언론사들도 이 후원제를 채택할 수 있을까?
김용진 우리나라에서 100만 명의 후원자를 지닌 아동보호단체도 있다. 유니셰프의 연 모금액이 천억 원대다. 그런데 기부금 단체 순위에서 3위다. 한국 국민들이 경제적 지원을 통해 사회에 기여함으로 보람을 얻고자 하는 잠재성이 많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언론에 후원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앞으로 올바른 언론을 지원해 언론 생태계를 바꾸겠다고 하면,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기 위해 돈을 선뜻 내는데 국내 언론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돈을 내자고 말하는 것이다. '기레기'라고 욕만 하지 말고, 좋은 기사 쓰게 하고, 좋은 기자 양성하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이 널리 퍼지면 후원제 시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본다. 『뉴스타파』가 하나의 특별한 사례라기보다는 보편적 사례가 되길 바란다.
권태호 후원자들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나?
이정환 독자 데이터베이스는 매우 중요하다. 많은 신문사들에게 이름과 주소, 계좌번호, 이 정도 정보밖에 없다. 여기에 전화번호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 돈을 내면 신문을 보내주고 돈을 안 내면 신문을 끊는 구조다. 우리도 '클린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기 위해 독자 관리 시스템을 다 갈아엎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전화번호도 집주소도 아닌 이메일 주소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뉴스레터다.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도 한계가 있다. 날마다 메일함을 열었을 때 찾아 읽을 수 있는 브랜드와 습관을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독자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메일 주소를 아이덴티티로 하는 독자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구축하고 있다. 지로용지를 툭 던져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독자를 여러 세그먼트로 분류하고 세분화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절독할 확률이 높은 독자 그룹에는 6개월마다 한 번씩 바나나우유 기프티콘을 보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결제 영수증을 이메일로 보낼 때도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연장 비율이 달라진다. 고객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네고 가치를 일깨우고 소속감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렇게 좋은 기사를 쓰니까 우리를 후원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식으로는 독자를 다 잃게 될 것이다. 이제 공짜 뉴스에 광고를 끼워 파는 시대가 끝났다면, 우리의 핵심 고객인 독자들과 소통하는 방식,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태호 '미오친구'의 실패 이후 전략을 수정한 것인가?
이정환 『뉴욕타임스』가 무료 기사를 월 5건으로 제한한 이후, 사람들은 단지 6번째 기사를 보기 위해 돈을 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기사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기사의 가치를 강조하고 자연스럽게 『뉴욕타임스』의 지향에 동참하도록 이끄는 전략이다. 유료 콘텐츠를 구매하는 게 아니라 공적 콘텐츠를 후원하는 성격으로 가입하는 것이다. 한국 언론도 이런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의 사명과 가치를 브랜딩해야 한다. 왜 신문에 돈을 내야 하는가, 이 신문에 돈을 내는 것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뉴스 콘텐츠 판매는 커뮤니티 모델로 가게 될 거라고 본다.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대, 이 사람들이 돈을 내게 만들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좋은 기사는 당연한 것이고 이걸 팔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
권태호 후원제가 아닌 온라인 콘텐츠 유료화를 계속 구상중인가?
이정환 한국적 특성상 기사를 못 보게 하는 페이월 시스템을 적용하긴 힘들다. 다만 과거 기사의 검색을 제한하고, 유료회원들에게만 허용하는 방법 등을 구상중이다. 『미디어오늘』은 미디어 전문지의 특성상 돈을 내고서라도 예전 기사를 꼭 봐야 하는 분들이 꽤 있으리라 본다. 기사가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관건이다. 네이버에 널려 있는 기사들과 우리 기사는 다르다는 걸 알게 만들어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네이버에 과거 기사 검색 제한을 요청한 상태다. 일단 1년 전 기사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삭제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최근 3개월 기사까지 좁힐 계획이다. 『미디어오늘』의 전문 분야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우리 스스로 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독자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권태호 유료화를 결단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있나?
이정환 유료화에 따라줄 것인가 하는 독자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아이디어를 구현할 기술력에서 늘 갈증을 느낀다. 언론도 이제는 장치 산업이다. 노르웨이 미디어기업 『십스테드(Schibsted)』가 다이내믹(Dynamic) 페이월을 실험하는 대표적인 미디어 기업이다. 100명의 독자에게 똑같은 하나의 페이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100개의 다른 페이지를 리얼타임으로 조합하고 계속해서 페이월을 실험하고 유료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다. 머신러닝과 데이터 분석, 개인화 전략이 필요하다. 막대한 기술 투자와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이 정도 투자를 할 여력이 있는 언론사가 많지 않기도 하고 뉴스 독자의 80% 이상이 포털 사이트에 갇혀 있는 현실에서 유료화 전략이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다이내믹 페이월과 반응형 개인화 편집, 머신러닝 기반의 독자 데이터베이스, 복잡해 보이지만 또 엄청난 기술력이 필요한 분야는 아니다. 정확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시행착오를 감수할 수 있는 조직의 우선순위 설정, 최고의 인력을 독자 관리와 인터랙션에 투자할 수 있는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기사를 쓰는 것 못지않게 뉴스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라고 본다.
권태호 한국 언론에서 후원제가 아닌, 디지털 유료 구독 모델도 가능하다고 보나?
김동현 쿨해져야 한다고 본다. 뉴스는 이미 무료로 어디에나 만연해 있다. 한국에서 매체 브랜드로 돈을 받을 만한 언론사가 과연 있겠는가. 또 뉴스를 돈 주고 사 본 마지막 세대가 50대다. 90년대 학번 세대도 동아리방이나 과방에서 『한겨레신문』을 본 적은 있지만, 자신이 돈을 내고 신문을 사 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인터넷 신문이 자리 잡은 게 약 15년 정도 된다. 이미 뉴스는 무료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다만, 멤버십 개념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그러려면 구독을 한다는 자체가 사람들에게 뿌듯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해당 매체의 뱃지나 스티커 등 굿즈를 갖고 싶게 만든다든지. 결국 각 매체가 권위 있는 뭔가를 창출해 내야 한다.
국내 언론사의 디지털 유료화 과정에서 2013년 가을은 매우 중요한 시점이다. 이해 9~11월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 국내 메이저 언론사와 『내일신문』, 『미디어오늘』 등이 일제히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시작하거나, 유료화를 염두에 둔 프리미엄 사이트 등을 출범시켰다. 고품질 기사에 대해 가격을 매기는 방식이 공통점이었다. 특히 『조선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은 별도의 프리미엄 사이트를 만들었다.
당시 한국 언론계에는 '좋은 기사에는 독자들이 기꺼이 돈을 낸다'는 믿음이 유행했다. 한국 언론사들이 유료화를 실험하면서 페이월 방식보다 프리미엄 방식을 더 선호했던 것도 당시의 이런 믿음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방식은 현재까진 성공 모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프리미엄 조선』, 『미디어오늘』이 이 유료화 모델을 접었고,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은 프리미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기업 회원들이어서 '기업 광고 모델'의 변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내일신문』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은 '좋은 기사'라고 해서 돈을 내지 않았다. 또 당시 언론사들이 생각했던 '좋은 기사'란, 취재 뒷 이야기, 칼럼, 분석 기사 등이었다. 프리미엄 방식을 취했던 언론사들이 공개를 제한하고 유료화 장벽을 친 기사들이 대부분 이런 유형이었다. 그러나 이는 상당 부분 '공급자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강하다. 독자들은 언론사가 생각한 '좋은 기사'에 돈을 내고 볼 생각이 많지 않았다. 특히 단골로 등장하는 '취재 뒷 이야기'에 언론사들은 대단한 뭔가가 있는 것처럼 홍보했고, 독자들도 관심이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독자들은 돈을 주고서라도 볼만큼 '뒷 이야기'를 찾진 않았다. 더욱이 모든 정보가 실시간으로 낱낱이 공개되는 시스템이 강화되면서, 이제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비밀스럽게 전할 만한 '뒷 이야기'라는 게 별반 많지 않다. 또한 개별 기자들이 페이스북 등에 뒷 이야기들을 많이 올려 일반 독자들도 자주 접하고 있다.
또 유료화를 고민하던 언론사의 인식, 준비 등이 모두 미흡했던 것도 이 모델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주요한 요인이었다. 타깃 독자층을 누구로 할지, 독자들이 어떤 기사에 반응하는지 등에 대한 최소한의 조사도 없이 상당 부분 자체 판단력에 의지했다.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실시할 때 언론사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트래픽 감소와 이로 인한 광고 수익 하락이다. 또 언론사의 사회적 영향력 후퇴도 걱정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해 '후원' 성격의 디지털 뉴스 유료화 모델이 주로 실시돼 왔다. 이는 미국의 언론사들이 주로 '구매' 성격의 페이월 방식으로 디지털 뉴스 유료화 모델을 발달시켜 온 것과는 크게 구별되는 지점이다.
페이월 방식이 국내에서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이유는, 우선 소비자 입장에서는 포털 사이트를 통한 공짜 뉴스 소비 형식에 익숙해진 데다, 뉴스 신뢰도 하락으로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디지털 뉴스를 볼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공급자 측면에서 보더라도 포털 사이트에 무료로 뿌려지는 기사들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는 고품질의 차별성 있는 기사를 양산할 만한 언론사를 손으로 꼽기 힘들다. 미국에서도 페이월 방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언론사가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 1~2위 수준의 위상을 지닌 언론사라는 측면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의 디지털 뉴스 유료화 과정에서 '기부' 모델이 더 주목받고 더 자주 시험되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한국에서 디지털 뉴스 유료화가 어렵고 현재 뉴스 유통시장 구조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후원 모델을 검토하는 언론사들이 하나같이 본보기로 드는 사례가 영국 『가디언』이다. 그러나 『가디언』 후원 모델은 '저널리즘 본연'에 대한 지지와 후원 성격을 강하게 띠는 데 반해, 한국 언론사들의 후원 모델 대부분은 정치적 지향점이 비슷한 언론사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에서 후원의 동기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표시나지 않으나, 후원 매체가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다른 기사를 게재할 경우에는 후원 이유가 사라지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형태의 후원은 그 토대가 매우 박약해 장기적 수익 모델로 지속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또 매체 후원자들이 '40~50대 남성'에 집중돼 있어 그 대상 연령층과 폭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점도 후원 모델 확산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뉴욕타임스』의 뉴스분석 에디터인 제임스 로빈슨은 지난 2014년 9월 한국편집기자협회 컨퍼런스에서 "독자들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기사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기자에게 이해시키는 게 데이터 분석의 목표"라며 "누구에게 이 기사를 읽게 만들 것인지 기사의 대상을 먼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독자들의 관여도(audience engagement)를 측정해, 독자들이 어떤 기사에 오래 머무는지, 그리고 한 기사를 본 뒤 어느 기사로 넘어가는지 등을 체크하고, 그 독자들의 행동 양식을 참고로 해 기사를 작성하고, 홈페이지에 배치하고, 독자의 화면에 띄워주도록 하는 것 등이다. 『뉴욕타임스』는 패키지 맵퍼(package mapper)라는 툴을 개발해 독자들의 뉴스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패키지 맵퍼는 기사 유형을 3가지로 분류한다. 뉴욕타임스 외부에서 트래픽을 끌어와 다른 기사로 트래픽을 넘겨주는 기사인 Giver(아낌없이 주는 사람), 다른 기사에서 트래픽을 넘겨받지만 거기서 끝나는 Dead ends(막다른 골목), 다른 기사에서 트래픽을 넘겨받지도 않고 넘겨주지도 않는 고립된 기사인 Wallflowers(외톨이) 등이다. 『뉴욕타임스』 편집회의에서는 이런 독자 데이터를 분석하고 기사를 평가한다. 독자들의 기사 읽기 흐름을 보면서, 링크를 걸어주면서 막힌 통로를 뚫어 트래픽의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다.
아울러 미디어-독자 외에 독자-독자와의 관계 형성에까지도 개별 언론사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현재 진보매체를 중심으로 디지털 뉴스 유료화와 관련된 후원자들의 구성은 대부분 '40~50대 남성'이고, 평균 매월 1만 원 가량을 내고 있다. 이런 구조로는 후원 모델의 확장성과 지속성, 그리고 확대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3~4개월에 5만~30만 원의 회비를 받고 취미·독서 모임을 만들어주는 커뮤니티 사업 등이 20~30대, 특히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활발히 퍼지고 있다. 미디어 기업 중에서도 디지털 뉴스 유료화에 어느 정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곳은 거대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가 아니라, 『닷페이스』, 『아웃스탠딩』, 『퍼블리』 등 20~30대 젊은 직원들로 구성된 미디어 스타트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겟 독자층을 분명히 하고, 독자와의 소통, 일체감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이다. 전통 미디어들이 겸손히 배워야 할 부분이다.
마크 톰슨 『뉴욕타임스』 최고경영자는 지난 2019년 6월 2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세계신문협회(WAN-IFRA) 주최로 열린 제71차 세계뉴스미디어총회(WNMC)에서 『뉴욕타임스』의 혁신에 대해 "우리의 많은 시도들이 실패했다"며 "성공했을 때만이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축하하려고 한다. 모든 실험은 항상 나중에 도움이 된다. 실험을 많이 해라.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뉴욕타임스』 CEO에 취임한 톰슨은 디지털 혁신을 가속화해 당시 100만 명 수준이던 유료 구독자를 2019년 5월에 450만 명까지 끌어올렸다. 그러나 초기에는 모바일에서 신속성과 비주얼 요소를 내세웠지만 구독자는 좀처럼 늘지 않았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프로그램에도 상당액을 투자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실패들이 경험이 되어 최근 3년간 급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유료 구독자 증가 외에 최근 뉴미디어 분야에서도 약진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팟캐스트 서비스인 '더 데일리(The Daily)'가 대표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이후 정치 환경 변화 속에 출범한 이 팟캐스트는 청취자 75만 명으로 시작해 현재는 4,300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열성 청취자 절반 가량이 30세 이하일 정도로 젊은 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더 데일리'의 성공을 바탕으로 『뉴욕타임스』는 OTT 업체인 훌루(Hulu)와 손잡고 기자들의 취재 현장을 영상으로 전하는 '더 위클리(The Weekly)'를 개설하는 등 동영상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 역시 '실패' 경험의 축적이 낳은 성과이기도 하다.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할 요소가 있다. '저널리즘의 가치'다. 이는 디지털 뉴스 유료화를 왜 하는지, 나아가 각 언론사들이 왜 뉴스를 계속 생산해 내는지에 대한 궁극적 질문이 되기도 한다.
언론은 돈을 벌기 위해 운영하는 사업이 아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않으면 민간 언론사는 계속 뉴스를 만들 수 없다. 폴란드의 전설적 언론인 아담 미치니크는 이를 "사명감 없는 저널리즘은 냉소주의일 뿐이고, 사업성 없는 언론은 파산할 뿐"이라고 표현했다. ("Journalism without mission is cynicism, journalism without business is bankruptcy.")
한국의 일부 언론들은 그동안 '사명'보다 '사업'에 더 주안점을 뒀던 게 사실이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편집권 독립과 가치 등 '사명' 영역을 점점 축소시킨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미래를 갉아서 현재의 손실을 벌충하는 방식일 뿐이다. 또 이런 행태는 언론의 존재가치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한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최고경영자인 존 리딩은 양질의 기사 콘텐츠를 제공하는 '퀄리티 저널리즘(quality journalism)'에 대해 "저널리즘의 가치라는 사명(mission)을 완수하고 사업(business) 수익성을 높인다는 양 측면 모두에서 투자 가치가 있다고 내다봤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사람들이 읽을 것이고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은 신화였음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독자들이 언론의 신뢰도를 낮게 평가하는 것처럼, 언론도 독자들에 대한 믿음을 접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언론의 사명일 것이고, 최악의 경우 '사명'과 '사업'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사명'을 택하는 쪽이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줄리아 카제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교수는 2018년 5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좋은 저널리즘은 재정이 탄탄하고 주주의 모든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이며, 탐사와 심층 보도를 위해 충분한 시간을 들이고, 기사의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조회 수에 연연하지 않는 저널리즘이다. 또한 좋은 저널리즘은 정보를 '잘' 전달하는 저널리즘이다. 독자가 어떤 기사를 읽었다면 읽은 내용 모두를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권태호 한국 언론계에서 그런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잘 안 되는 이유는 뭔가?
최진순 우선 '독자'를 잘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디지털 오디언스를 이해하는 사람이 조직 안에서 '독자 관계' 증진을 주도해야 한다. 국내 언론사에서 '독자' 관련 부서의 책임자나 관계자들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본다.
둘째, 통합적 고려가 필요하다. 뉴스조직과 독자 관련 조직이 따로 놀고 있다. 구독자 멤버십은 물론 온라인 뉴스 이용자들에 대한 입체적인 파악과 대응이 가능할 수 있도록 콘텐츠 전략과 독자 전략은 함께 다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편집국과 마케팅 부서 간 칸막이는 없애야 한다.
셋째, 독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독자를 파트너로 생각해야 한다. 예우해야 한다. 하다못해 언론사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뉴스에 댓글을 남기거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에게 보상해야 한다. 취재 기자들이 독자와 유리되지 않도록 독자와 소통하는 시스템과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 이 모든 독자 소통 과정을 누락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언론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디지털(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한 데 있다.
흙의 시간 / 후지이 가즈미치 / 눌와
앞에서 프린스에드워드섬을 예로 들어 소개한 것처럼 3억 5천만 년 전의 북아메리카 대륙은 적도와 가까운 열대 환경에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습지에 양치식물 숲이 우거져 있었다. 양치식물이 높이 40미터의 거대한 나무가 되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중에서도 칼릭실론(Callixylon), 레피도덴드론(Lepidodendron) 등의 '양치나무'가 유명하다. 양치나무는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거대한 숲을 이뤘다.
그래도 양치식물은 양치식물이다. 줄기의 강도가 낮아서 바람이 불면 쉽게 쓰러져버렸다. 그 때문에 나무의 유해가 계속 퇴적되었고 그 결과, 역시 이탄토가 축적되었다. 이탄토가 되어버리면 숲이 생기기 전이랑 똑같은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숲이 되었다는 것은 성장량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탄토의 퇴적 속도도 빨라진다. 대량의 이산화탄소가 땅속에 고정되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양치나무를 지탱하는 거대한 '뿌리'는 산성물질을 방출하여 암석의 풍화 속도도 빨라지게 한다. 암석에서 나온 칼슘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하여 탄산칼슘을 생성한다. 지금도 건조지대의 토양에서는 탄산칼슘 집적층이 종종 발견된다. 양치식물 숲은 지상뿐 아니라 지하에서도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고정시켰던 것이다.
양치식물이 만들어낸 토양의 변화는 지구 전체에 기후 변동을 일으켰다. 본래 4억 년 지구에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현재의 10배 이상이었고, 기온도 현재보다 3°C 정도 더 높았다. 그런 상황에 거대한 숲과 토양이 생기고, 1억 년에 걸쳐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결과, 3억 년 전에는 지구의 기온이 7°C나 낮아졌다고 한다. 북극과 남극에는 대륙 빙하가 형성되고, 물이 줄어들어 해수면이 수백 미터나 내려갔다. 한편 대기 중의 산소 농도는 현재의 2배에 가까운 35퍼센트까지 상승했다. 높아진 산소 농도는 곤충을 거대하게 만들었다. 60센티미터 길이의 잠자리, 1미터 크기의 바퀴벌레, 2미터에 달하는 지네 등 거대 곤충이 번성했다고 한다. 그에 비하면 지금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곤충의 크기는 매우 귀여운 수준이다.
지금은 산나물 정도로만 여겨지는 고사리나 고비와 같은 양치식물도, 물가에 초기 토양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지구상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숲과 흙을 형성하여 대륙 이동과 함께 장대한 기후 변동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p.47-50)
낙엽이 분해되면 미생물에 의해 많은 부분이 이산화탄소로 변환되어 대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바로 분해되지 않았던, 먹다 남긴 낙엽도 서서히 분해되면서 부엽토가 되고 부식질이 된다. 썩는다는 것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된다는 말이다. 이런 유기물 분해에 의해 양분(질소, 인, 칼슘 등)이 순환된다. 이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동차로 치면 교통 체증, 인간의 신체로 치면 소화불량이 일어났다는 의미다. 3억 년 전에 일어난 영양 순환의 정지는 생태계에 커다란 위기로 작용했다. 하지만 구세주라 할 수 있는 버섯의 진화가 그 상황을 크게 변화시켰다.
보통 우리 인간들에게 '버섯'이라고 하면 '먹을 수 있는' 식재료라는 인상이 강하다. 하지만 버섯이란 번식을 위해 버섯(자실체)을 만드는 미생물(담자균이나 자낭균)의 총칭이다. 그리고 그 본체는 흙과 쓰러진 나무에 뻗친 균사이다. 생태계 전체로 보면 유기물을 '먹는' 분해자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특히 담자균에 속하는 버섯은 유능한 분해자로서 숲 속에서 양분의 순환을 담당하고 있다. (p.55-56)
내가 조사한 태국의 농촌에서는 인간과 흰개미 간에 흙의 양분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벼의 수확이 끝난 건기, 마을 남자들이 방콕으로 돈 벌러 나가면 농지는 비게 된다. 그런 농지에서 식물 유해를 재빨리 청소하는 생물이 있다. 바로 흰개미다. 흰개미는 아무도 오지 않는 농지에서 낙엽을 물어 숲 속의 자기들 둥지까지 가지고 간다.
청소라고 하면 마치 좋은 일을 해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도둑질이다. 농민의 입장에서는 비료를 도둑맞은 셈이다. 식물의 유해는 다음 해에 옥수수를 재배하는 데 중요한 양분이기 때문이다. 한숨을 쉬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냥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여기저기에 있는 흰개미 집을 파괴하고 그것을 농지에 마구 뿌린다. 흰개미 집은 질소와 인을 대량으로 포함하고 있기에 작물의 생육을 촉진하는 좋은 비료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죽은 흰개미는 닭장에 먹이로 준다. 닭에게는 귀중한 단백질원이 되기 때문이다. 미소의 나라 태국에서도 양분을 둘러싼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p.111)
아직 속씨식물이 번성하지 못했던 2억 년 전 쥐라기, 브라키오사우루스는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브라키오사우루스의 식생활을 알려주는 '흙' 화석이 발견되었다. 바로 브라키오사우루스의 똥 화석이다. 이 내용물을 조사한 연구 덕분에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소나무목의 침엽수, 은행나무, 양치식물 잎을 먹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만일 이 거대 공룡이 현존하는 최대 초식동물인 아프리카 코끼리와 비슷한 대사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고 치면, 몸길이 20미터 이상, 체중 70톤에 달하는 몸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에 건조 중량 기준 최대 4백 킬로그램의 잎을 먹어야 한다.
상상해보라. 2억 년 전 아열대림의 잎 생산량은 1헥타르당 6천 킬로그램 정도였다. 일본의 남서부에 펼쳐져 있는 상록활엽수림 전체와 맞먹는 규모다. 이 잎을 모두 다 먹어치운다면 1 헥타르의 숲이 불과 1개월 만에 사라진다. 결국 한 마리의 공룡 때문에 12헥타르의 숲이 1년 만에 사라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환경 파괴다. (p.130-131)
공룡에게는 에너지 말고도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 거대한 골격 화석은 공룡에게 인과 칼슘도 대량으로 필요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엄마 공룡은 알을 낳기 위해서라도 칼슘과 인 그리고 질소를 대량으로 섭취해야만 했다. 공룡의 체내 성분도 그 근원을 올라가 보면 식물이고 흙이다. 산성토양에서 자란, 양분이 적은 침엽수 아라우카리아 잎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밥 이외에 반찬도 필요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역할을 은행 열매가 했다고 보고 있다. 은행에는 단백질과 인 등의 양분이 듬뿍 함유되어 있다. 작은 열매가 커다란 공룡의 양분을 보충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브라키오사우루스는 어떻게 대량의 은행 열매를 확보할 수 있었을까?
은행나무는 강인한 식물이다. 이 놀라운 나무는 지금도 가혹한 환경에서 가로수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2억 년 전, 은행나무는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파괴왕 브라키오사우루스가 활보하던 황량한 땅에서 빈 공간을 찾아내 번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공룡은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은행 열매를 맺는 은행나무의 서식 환경을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공룡이 그저 파괴자이기만 했다면 은행나무는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자연계의 신비로운 시스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p.134-135)
흙에서 하천으로, 또 바다로 영양염은 일방통행으로 전달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흙이 일방적으로 모든 걸 갖다 바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바닷새는 물고기를 먹고 똥을 육지에 되돌려준다. 새똥은 하얀 부분도 있고 까만 부분도 있는데, 그중 하얀 부분이 요산, 결국 질소다. 새도 그냥 하늘을 날고만 있는 건 아니다. 양분 순환 측면에서는 하늘 위의 슈퍼맨이기도 하다.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물고기는 바닷속의 슈퍼맨이다. 강에서 넓은 바다로 여행을 떠난 연어와 송어는 바다에서 영양을 흡수해 자라고, 1년 후에는 고향 강으로 돌아온다. 산란 후에 많은 연어와 송어는 곰의 먹이가 되고, 똥이 된다. 결국 육지로 양분이 돌아오는 셈이다.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양분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자연스럽게 순환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산성토양을 둘러싼 숲의 양분 순환은, 생물들이 때로는 흙에 맞서고, 때로는 흙을 이용하는 만만치 않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p.145-146)
동물이 흙을 먹는 행위에는 미네랄 섭취나 해독, 장을 깨끗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존의 원숭이들 중에서 잡식을 하거나 곤충을 먹는 종류는 흙을 먹지 않지만, 과일만 먹는 잎원숭이는 흙을 먹는다고 한다. 과일 등에서 당분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산증(酸症)에 의해 혈액이 산성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산을 중화할 수 있는 미네랄과 점토를 섭취해야 하는 것이다. (p.148)
주된 산업이 없는 열대의 농촌에서는, 화전농업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다. 열대림을 태우는 측면만을 두고 환경 문제를 거론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몬족은 원래부터 화전을 일구면서 유랑생활을 하는 소수 민족인데, 그러한 생활 방식 때문에 종종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지목되어왔다. 하지만 화전도 충분히 넓은 숲만 존재한다면, 안정적으로 계속할 수 있는 전통 농업이다. 밭벼만 하더라도 생산 효율은 낮지만, 적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충분했다.
화전농업이 때때로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 문제의 바탕에는 바로 인구 증가가 있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가 화전으로 부양할 수 있는 인구 수준을 넘어서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많은 경우, 거기에는 반드시 정치나 경제가 엮여 있다. (p.167-168)
인간은 여러 방법으로 흙을 비옥하게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그중 하나가 비료다. 여기서 일본의 비료 사정을 살짝 들여다보도록 하자. 현대 농업에서는 농지에서 도시로 가져간 양분 손실의 많은 부분을 화학 비료로 보충하고 있다. 비록 돈은 들지만 충분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일본은 비료 원료(질소·인·칼륨)의 많은 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그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질소 비료의 원료는 대기 중의 질소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질소 비료의 합성에 사용되는 원유나 천연가스 등의 에너지는 수입에 의존한다. 질소 비료 자체는 일본산도 많다고들 하는데, 희한하게도 실제 자급률은 영 시원치 않다. 칼륨은 80퍼센트를 캐나다에서 수입하고 있다. 인은 대부분 중국·미국·모로코·서사하라에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전량을 수입하고 있다. 비료의 원료 중 질소 이외의 두 가지 원소는 지하 광물이 거의 유일한 공급원이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지하자원, 특히 인의 공급량에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지하자원이 고갈될 경우 우리 주위의 양분을 재활용하지 않으면 흙의 비옥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일본은 그것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일본 농업의 상황이다. (p.186)
하버-보슈법의 발명은 '물과 석탄과 공기에서 빵을 만들어'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낳았다. 하버-보슈법이 발명되기 전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전 세계 농지에의 질소 투입은 천둥번개나 콩류 식물의 질소 고정에 의존했다. 그 양은 1억 2천만 톤 정도였다. 하지만 인공 질소 비료가 발명되면서 거기에 1억 톤이 더 얹어졌다. 덕분에 지난 1백 년 동안 세계 인구는 70억 명까지 급증했다. 현재 세계 인구의 3분의 2, 즉 50억 명은 합성 질소 없이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p.195)
일본의 팜유 소비량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그만큼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열대우림은 기름야자나무 농원으로 바뀌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세계 곳곳에 있다. 브라질에서도 열대우림이 농지로 바뀌었고, 옥수수와 콩 배합 사료로 육우가 길러진다. 육우는 햄버거로 형태를 바꾸어 우리의 위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열대우림이 햄버거로 변하는' 문제는 이미 '햄버거 커넥션'이라는 이름까지 꿰찼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기름야자나무 농원과 식물유지의 관계는 '포테이토칩 커넥션'이라고도 부를 만하지 않은가.
물론 포테이토칩은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고, 햄버거나 포테이토칩이 '범인'은 아니다. 애당초 포테이토칩을 만드는 식물 유지가 팜유밖에 없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포테이토칩의 원료로 해바라기유를 쓰고 있고 캐나다에서도 카놀라유가 사용되고 있다. 비누도 팜유 말고 다른 것을 주성분으로 하는 것도 많다. 생활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슈퍼마켓에서 제품 뒷면에 기재된 것을 잘 읽어보고, 부엌에서 식용유를 절약하고 재활용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열대우림의 감소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 보호에 관한 설명은 피해왔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물의 다양성과 이산화탄소 흡수에 관련된 열대우림의 기능을 현지인들에게 설명해봤자, 그다지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이런 보호에 대한 설명들은 모두 선진국의 논리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받드는 오랑우탄이 실제 현지에서는 농작물을 망치는 동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기름야자나무 농원보다도 지속적으로 돈이 되는 토지 이용 계획이 필요하다. 계획 없이는 열대우림을 보존할 수 없다. (p.225-226)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란 말이 있다. 퇴비를 많이 넣는다고 해서 흙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농지에 투입할 수 있는 퇴비의 양은 생물의 질소 흡수량, 토양의 질소 흡착량에 의해 제한된다. 여분의 질소는 지하수로 유출될 것이고, 그 지하수를 마신 사람들의 건강을 해칠 위험까지 있다. (p.234)
콩과 식물은 양분이 모자란 조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으로 획득한 것이다. 뿌리혹박테리아는 단세포 생물의 일종이지만, 질소 가스를 암모니아로 변환할 수 있다. 단세포 생물의 효소 니트로게나아제가 하버-보슈법처럼 '질소 비료'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인류가 불과 1백 년 전에 발명한 기술을 콩과 식물은 딱 공룡이 멸종되었던 6천6백만 년 전에 뿌리혹박테리아와의 공생 시스템으로 획득했던 셈이다.
콩의 뿌리에도 뿌리혹박테리아가 공생하고 있다. '밭의 고기'라고 불리는 콩은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 대량의 질소를 소비하고, 그 질소의 반 이상은 '중개업자'인 뿌리혹박테리아가 공급한다. 다만 이 공생 관계는 상당히 빡빡하다. 질소 비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대량의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공생하고 있는 콩은 재빨리 광합성을 하여 당분을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제공해야만 한다. 급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콩과 뿌리혹박테리아는 이해타산에 근거한 일종의 계약을 맺고 있다.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