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 바버라 에런라이크 / 부키
나는 500달러짜리 원룸을 구한 것을 두고 의기양양했었는데, 그게 가능했던 건 저임금 생활을 시작할 때 떼어 놓은 1300달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1000달러는 첫 달 집세와 보증금 명목이었고, 100달러는 처음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할 자금이면서 동시에 수중에 현금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200달러는 비상금이었다. 물리학의 몇몇 명제가 그렇듯이, 빈곤 속의 삶도 시작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니 결국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가전제품이라고는 끽해야 전열기 하나밖에 없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를 잔뜩 끓여 냉동시켜 놓고 일주일 동안 먹는다든지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로 패스트푸드나 핫도그 또는 편의점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스티로폼 용기에 담긴 수프 같은 걸 사 먹게 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예를 들어 게일은 지금까지 최소한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갑자기 에스트로겐 호르몬제를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의료보험 수급 자격이 생기는 시점에서, 회사에서 서류를 잃어버렸다면서 보험 등록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허스사이드에서는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지나야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에스트로겐 약값을 보험 처리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편두통 때문에 1회분에 9달러나 하는 약을 사 먹어야 했다. 비슷한 예로 지붕 수리공이던 마리앤의 남자친구는 일자리를 잃고 말았는데, 발에 난 상처에 바를 처방전이 필요한 항생제를 살 수 없어서 일을 너무 오래 쉬었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을 나왔다. 그만둔 것이 아니라 그냥 나왔다. 해야 할 잡일도 마무리하지 않고, 금전 등록기에 가서 혹시 신용카드로 긁은 내 몫의 팁이 있는지도 안 챙기고, 물론 조이에게 가도 되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허락을 받지 않고도 걸어 나오는 게 가능했다. 허락을 안 받아도 문은 열렸고, 묵직한 열대야의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걸을 수 있었고, 내 차도 세워 놓은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이런 식으로 퇴장하게 되어서 시원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엿 먹어라' 하고 나와 버렸다는 통쾌함도 없었다. 다만 나와 내가 서 있는 주차장 주위를 온통 무겁게 짓누르는, 실패했다는 우울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
처음 이 체험을 계획했을 때는 수학적 명제를 걸고 실험을 한다는 과학도로서의 긍지 덕분에 용기가 났었다. 그런데 실제로 체험을 하면서 긴 근무 시간과 매 작업에 전력투구해야 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시야가 좁아졌고, 그러면서 이 모든 체험은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시험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명백하게 나는 실패했다. 청소부와 식당 종업원의 일을 그만두었을 뿐만 아니라 조지에게 내 몫의 팁을 주는 것마저 잊고 말았다.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게일이나 엘런처럼 열심히 일하고 인정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제일 잘 이해할 것이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해 만에 처음으로 내 눈물샘이 제자리에 있고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구직 과정에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많은 구인 광고와 직업 박람회에도 불구하고 포틀랜드 역시 또 하나의 시간당 6~7달러 수준의 도시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우주 공간에서 새로 포착된 방사선의 폭발이 천문학자에게 놀라운 것처럼, 이 발견은 경제학자에게 눈이 번쩍 뜨이도록 경이로워야 마땅한 현상이었다. 만약에 (노동력의) 공급이 수요보다 적다면 가격이 상승해야 한다. 그렇지 않나? 이것이 '법칙'이다. 내가 지원했던 청소 용역 회사 메리 메이즈에서 사장은 장장 1시간 15분 동안 나를 잡아 놓고는 착실한 직원 찾기가 힘들다고 불평했다. 그녀가 제시하는 급여가 일주일에 평균 40시간 일하고 200~250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해결책은 너무나 간단했다. 사장은 내가 일주일 급여를 시간당으로 환산하는 걸 눈치채고 "급여를 시간당 얼마라고 환산하지 마세요. 여기서는 그런 식으로 계산하지 않습니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계산해 보았더니 시간당 5~6달러에 불과한 그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이 숙녀분이 기꺼이 인정하듯 반복성 긴장 장애의 위험이 아주 높은 힘든 노동이었다. 그러니 계산을 할 줄 아는 구직자라면 당연히 그런 일자리를 피할 터였다. 그렇지만 곧 키웨스트에서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일만 해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수요 공급 법칙에서는 급여가 너무 낮아서 노동자는 최대한 일자리를 많이 구하도록 종용받는 상황이었다.
설교는 계속되었고 신도들은 사이사이에 어김없이 "아멘"으로 화답했다. 슬픈 눈을 하고 있는 이 신도 집단에 누가 산상 수훈을 읽어 주고 그와 함께 소득 불평등과 최저 임금을 올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강론해 주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예수님은 '시신'으로만 등장했다. 살아 있는 사람, 포도주를 들이켜는 방랑자와 조숙한 사회주의자로서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고 그가 했던 말도 전혀 소개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어쩌면 현세의 기독교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를 반복해서 그의 입에서 한 마디의 말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혼자서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블루 헤이븐 주민 사회에서 귀족이었다. 공동 세탁실에서 마주친 다른 장기 거주자들은 블루칼라 노동자로 유니폼과 아래위가 붙은 작업복을 빨러 왔고 밤 시간에는 말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있는 커플들이었는데 시트콤에 나오는 백인 노동자 계급 사람들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이들은 좁은 원룸이나 기껏해야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에서 서너 명씩 복닥거리며 산다는 것이 달랐다. 어떤 젊은 남자가 날보고 몇 호에 사느냐고 묻더니 자기가 바로 그 방에서 친구 두 명과 함께 살았다고 했다. 세 살배기 손녀를 데리고 있던 한 중년 여성은 내게 위로하는 듯한 말투로, 모텔 생활이 늘 처음에는 힘들고 특히 단독 주택에 살던 사람이라면 더 그렇지만 좀 지나면 적응이 되어 다 잊어버리고 살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일례로 그녀는 블루 헤이븐에서 11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우리의 세계는 통증이 지배했다. 통증을 참는 방법으로는 엑세드린이나 애드빌 같은 진통제를 먹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주말에만 가능했지만) 한두 명은 술로 달랬다. 집 청소를 맡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모텔처럼 정돈돼 보이게 하려고 투입된 사람들이 겪는 극심한 고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알게 되면 과연 양심의 가책을 받을까? 아니면 예를 들어 저녁 만찬에 초대한 손님들에게 자기 집 바닥이 온전히 가장 순수한, 갓 흘러내린 인간의 눈물로 닦였다고 자랑하는 식으로 자신들이 돈을 주고 산 것에 변태적인 자부심을 느낄까?
집주인과 얘기해 본 몇 번 안 되는 경우 중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책상 위를 보니 직업이 개인 트레이너인 몸매가 좋고 단단한 집주인 여자가 내가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을 보더니 "정말 운동이 되죠?" 하고 말했다. 비꼬는 투가 아니었다. 그러고는 정말로 내게 물 한 잔을 권했다. 일하는 동안 누가 마실 물을 권한 건 그때 한 번뿐이었다. 집 안에서는 아무것도 입에 넣을 수 없다는 규칙을 무시하고 나는 그 물을 받아 마셨다. 한 잔 더 하겠느냐는 어색한 제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물을 약간 남겨 놓았다. "나는 내가 지도하는 고객들에게 건강해지고 싶으면 집에 오는 청소부를 해고하고 직접 청소하라고 말해요." 그녀가 말했다. 나는 "호호."라고만 대꾸했다. 우리가 헬스클럽에서 만나 담소하는 상황도 아닌 데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완전 비대칭이고 무자비하게 반복적이어서 근육과 뼈를 단련시키는 동시에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자제력이 한계에 도달하는 일이 생겼다. 100만 달러짜리 콘도(순전히 내가 추정한 가격인데 집이 3층이고 밖을 내다보면 그 유명한 바위로 형성된 해안이 한눈에 들어오는 걸로 봐서)에 갔는데, 주인은(액자를 보니 실제 바버라 부시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나를 부부 침실로 데리고 들어가서는 샤워실 때문에 아주 속상하다고 했다. 샤워 부스의 대리석 벽에서 '피가 나듯' 물이 새 놋쇠로 만든 수도꼭지 손잡이에 떨어져 녹이 슬고 있다면서 대리석 사이의 이음새를 특별히 박박 밀어서 하얗게 만들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 주고 싶었다.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펫을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우리를 감시했다. 청소를 할 때 왜 욕을 하면 안 되느냐고 동료에게 물었더니 우리가 일하는 동안 주인이 녹음기를 켜 놓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비디오카메라 또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일부였다. 청소부가 물건을 훔치는 순간을 잡으려고 집주인이 귀중품 옆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 놓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소문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테드는 우리에게 늘 감시받고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라고 당부했다. 어떤 주인은 우리를 잡으려고 덫을 놓기도 했다. 어느 집에서 나는 원목 바닥에 깔린 여러 개의 페르시아산 카펫을 밑에까지 샅샅이 진공청소기로 청소하지 않았다고 팀장에게 야단을 맞았다. 알고 보니 그 집주인은 청소부들이 제대로 청소했는지 체크하기 위해 카펫 밑에 먼지 덩어리를 숨겨 놓는 사람이었다.
직업군으로서 청소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고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경우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 마사 스튜어트 풍의 집으로 일하러 가는 길에 홀리와 마지는 집주인에게 느낀 거만함에 대해서 불평했고 나는 왜 많은 집주인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대하는지 물었다. 홀리가 대답했다. "그들은 우리가 멍청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이 일 외에는 도통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마지도 갑자기 심각해졌다. "그 사람들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는 청소부일 뿐이라고."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몇 달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두 가지 일을 계속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하는 점이었다. 글 쓰는 일을 할 때면 나도 보통 일주일에 7일을 일하지만 그건 좀 경우가 달랐다. 글 쓰는 일은 자아를 살찌우고, 완벽하게 스스로 알아서 하고, 거기다가 이따금씩 칭찬을 듣기도 하는 일이다. 그러나 요양원에서는 그 토요일에 내가 영웅적으로 일한 것을 두고 어깨 한 번 두드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에 작정을 하고 린다에게 그날 일을 보고했지만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만 까딱한 게 다였다.) 1년에 360일 이상을 비천한 일을 하면서 살면 정신에도 일종의 반복성 긴장 장애가 생길까?
나로서는 알 수도 없고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그로 인해 야기될 증상에는 중증의 터널 시야(tunnel vision)도 포함될 거라는 추측은 할 수 있었다. 일이 삶의 전부가 되면서 직장 동료의 존재가 점점 커지다가 가족 혹은 심각한 원수의 수준으로 격상되고, 자기가 무시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에 대해 계속 생각하면서 확대 해석하고, 상사로부터 질책이라도 받게 되면 그 일로 인해 오밤중까지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것이다.
피트의 말대로 일은 우리가 사회에서 '왕따'로 전락하지 않도록 구원해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왕따의 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심지어는 역겹기까지 했다. 경비원, 청소부, 단순노동자,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 주는 사람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천민들이었다. 그리하여 테드 같은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부여된 것이다. 그는 탐욕스럽고 무뚝뚝하고 잔인했지만 더 메이즈에서는 유일하게 더 나은 세상, 사람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복을 입고 직장에 나가고, 주말에는 재미로 쇼핑을 하는 세상을 대표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청소할 집이 모자라면 그는 직원들을 ('정말 좋다'는) 자기 집으로 보내 일을 시켰다.
혹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을 번다. 뉴스 앵커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패션 디자이너나 학교 선생님, 변호사 들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이나 간호사 보조는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라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각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 매일의 오락은 물론이요 정치적인 선언이나 토론, 그리고 지적인 노력에서도 소외되고 있다. 내가 가 봤던 천막 부흥회가 일반적인 부흥회라면 이제는 종교에서도 빈민들의 어려움에 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고리대금업자들이 마침내 예수님을 성전 밖으로 몰아낸 것이다.
마침내 정체를 밝혔으니 그동안 늘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테드가 아니라 집주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은 그렇게 많은 걸 가진 반면에 당신들 같은 사람들은 먹고살기도 힘든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겨우 스물네 살인데 이미 디스크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며 신용 카드 빚이 8000달러에 달하는 로리의 대답은 이랬다. "내 생각엔 음, 나도 언젠가 그런 것들을 갖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내게는 동기 부여가 되고 조금도 억울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처럼 사는 게 내 목표거든요."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 콜린은 평상시엔 직선적이고 생동감이 넘쳤지만 이 질문에 대답할 때는 자기 앞의 한 지점을 똑바로 응시했다. 어쩌면 대기근을 피해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그녀의 조상들이 그 지점에서 빤히 그녀를 뒤돌아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대하는 만큼 그녀도 골똘히 생각하면서 말을 했다. "난 별로 개의치 않아요, 정말로. 나는 단순한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가진 걸 바라지 않아요. 내 말은 그런 건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는 건 다만 가끔씩 꼭 쉬어야 할 때 하루 쉴 수 있었으면, 그리고 그래도 다음날 식료품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이어서, 은밀한 갈등을 올바른 사고와 긍정적인 태도로 극복한다는 주제를 다룬 '당신은 정말 좋은 직장을 선택했다'라는 제목의 12분짜리 비디오를 보았다. 이 비디오에서는 다양한 '동료'들이 '월마트의 그 유명한 가족적인 분위기'를 증언하면서 우리에게는 노조가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주 오래전 한때는 미국 사회에 노조가 설 자리가 있었지만 이제 노동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노조를 '무더기로' 탈퇴하고 있다. 월마트는 상승세이고 노조는 하락세이다. 그러니 스스로 판단하라. 그러면서 우리에게 "노조들이 수년 동안 월마트를 공략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왜냐고? 물론 조합비 때문이다. 노조로 인해 당신들이 손해 볼 것을 따져 보라. 첫째, 당신이 납부해야 하는 조합비가 매달 20달러에 이를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훨씬 더' 나갈 수도 있다. 둘째, '당신의 소리'가 사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노조가 당신을 대신해서 말하게 될 테니까. 마지막으로, 당신의 임금과 기타 혜택을 모두 잃게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협상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렇다면 노조 창립자 같은 악당들, 그런 명백한 착취자들이 어떻게 지금까지 이 땅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오리엔테이션을 받던 10대 신입 직원들 또한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았다.
그날 밤 퇴근하면서, 내가 그 침입자에게 보인 반응을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만약에 그녀가 감독관이라면 내가 한 말 때문에 나쁜 평가를 받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떨어지기를 바랐던 게 더 사악했다.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가는 걸까? 사람이 9시간 연속 근무를 마칠 때쯤이면 그렇게 되는 게 정상인가? 그날 밤에 저지른 생각 속의 악행이 한 가지 더 있다. 반품으로 가득한 다음 카트를 가지러 탈의실 옆에 있는 카운터에 갔다가 밤 시간에 전화받는 일을 하는 남자를 봤다. 늘 휠체어에 앉아 있는 슬픈 얼굴을 한 젊은이. 허공을 주시하는 모습이 평소보다 더 슬퍼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에 든 솔직한 내 생각은 '당신은 그래도 앉아 있잖아.'였다.
이건 내가 아니다. 아니 적어도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는 아니었다. 그리고 아까의 그 여자 동료도 늘 그렇게 재수 없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자는 밤새워 일하고 낮에 아기가 낮잠을 잘 때 잠깐씩 눈을 붙이면서 살고 있었으며, 그 누구의 감독관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사벨과 같이 일할 때면 끊임없이 잔소리를 듣는 처지였다.
아무려면 어떤가. 월마트에서 시간당 7달러를 받아서 일주일에 179달러 내고 작은 부엌이 딸린 파크 플라자 아파트에 산다는 게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말에 일할 직장을 구하려 했던 것이고, 맨 처음 묵었던 모텔 6 근처의 레인보우 슈퍼마켓에서 시간당 8달러에 가까운 급료 제의도 잠정적으로 받아 놓은 상태였다. 두 군데 직장을 다니면 일주일에 세금을 제하고 320달러 정도를 벌 것이고 그러면 집세 179달러는 내 수입의 55퍼센트 정도라 대략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인보우 역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일주일에 5일을 파트타임으로 일해 주기를 바랐고 주말에만 일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월마트에서 어느 날 일을 쉬게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워드가 내 근무 시간을 한 주는 금요일, 그다음 주는 화요일과 수요일을 쉬도록 짜 놨는데 좀 더 규칙적이고 내게 편리한 쪽으로 바꾸려면 하워드에게 아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았다.
새로운 능력이 생기자 전에 없던 조급함이 덩달아 생겼다. 어째서들 이런 급료를 받으면서 묵묵히 일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동료들이 나보다 생활에 여유가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들은 배우자나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거나 월마트 말고도 또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린과 함께 휴게실에 앉아 있는데 이 일이 그녀에게는 파트타임 일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월마트에서 하루에 6시간, 그리고 공장에서 시간당 9달러를 받고 8시간을 일한다고 했다. "엄청나게 피곤하지 않아요?" "별로,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라디오 그릴에서 일하는 요리사는 직장이 두 개나 더 있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내가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세상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체험한 여섯 가지 직종은 모두 집중이 필요했고 식당에서 컴퓨터에 주문을 입력하는 것부터 등에 지고 일하는 진공청소기 사용법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새로운 용어와 연장 및 도구, 그리고 새로운 기능과 기술을 습득해야 했다. 손쉽게 배울 수 있는 업무는 없었고, 내게 "어머나, 정말 빨리 적응하네요!"라거나 "금방 일을 시작했다고 누가 믿겠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생 전반에서 성취한 것들과 상관없이 저임금 노동의 세계에서 나는 일하는 법을 새로 배울 줄도 알지만 잘못해서 실수도 저지르는 그저 평균적인 능력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이와 비슷하게 월마트의 한 동료도 내게 비록 앞으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지나치게 많이 알게 되는 것'은 피하고, 적어도 관리자들에게 내 능력의 한도를 노출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충고했다. "우리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눈치채면 그만큼 더 부려먹으려고 하거든요." 그들이 게을러서 이런 조언을 해 준 것이 아니다. 다만 목숨 걸고 일해 봤자 돌아오는 보상이 아주 미미하거나 아예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을 뿐이다. 오늘 기운을 얼마나 쓰고 내일을 위해 얼마나 남겨 둘지를 계산하면서 일하는 것이다.
또 내가 경험한 직업들은 하나같이 육체적으로 고되었고 어떤 일은 몇 달 동안 계속한다면 육체적으로 손상을 입을 정도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수년 동안 역기 운동과 에어로빅으로 단련된 보기 드물 정도의 건강 체질인데도 헬스클럽의 어떤 사람에게서도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체력은 많은 경우 몸에 힘이 떨어졌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아는 데서 나온다는 것이다. 근무 시간이 절반 또는 그 이상 경과했을 때 힘이 떨어진다면 보통은 즉시 휴식을 취함으로써 나을 수 있는 미약한 질병의 증상으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그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힘든 일을 많이 해 왔음을 떠올리고 따라서 일을 더 할 수 있다는 증거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 바로 탈진 상태가 그 사람을 지탱해 주는 일종의 부목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식으로 무한정 자신을 기만할 수는 없다. 나 역시 수많은 여성들이 그러듯이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아기를 쫓아다니거나 온 식구가 어질러 논 것을 치우고 돌아다녀야 했다면 얼마 못 가서 한계점에 도달했을 것이다.
변명의 말을 하자면,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 월급을 더 주는 직장을 구하지 않고 그냥 월마트에서 일을 했고(대부분 교통 문제 때문인 듯했다), 일주일에 200~300달러를 내면서 모텔에 장기 투숙하는 불합리한 선택을 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단순히 나 개인의 부족함과 계산 착오에 기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된 문제였다.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이 겪는 주택난에도 불구하고 주택 공급의 차질에서 비롯된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는 무관심이 사회 전반에 팽배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적인 원인은 이러한 현상이 공식적인 빈곤 통계에 전혀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빈곤 수치는 지난 수년 동안 관심을 끌지 못할 정도로 낮은 13퍼센트 선을 유지하고 있다. 빈민들이 실제 경험하는 주택난과 공식적으로 정의되는 '빈곤'이 불일치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한 가구의 구성원 수를 따져서 최소한의 식비를 산정하고 그 액수에 3을 곱하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빈곤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임대료가 시장의 움직임에 극심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임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가서 살면서 일했던 도시들은 모두 그 지역 기업인들이 '노동력 부족'이라고 인정하는 상황으로 지역 신문에는 관련 기사들이 실렸고 가는 곳마다 "직원 구함", 혹은 좀 더 절박하게 "지금 구직 신청서 접수 중"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 시장의 맨 밑바닥쯤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임금은 별 변동이 없었고 심지어 '정체'돼 있었다. 2000년 3월에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임금에 관한 전국 통계 수치를 검토해 봤을 때 임금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조짐은 전혀 없었다.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상승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데 보내는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앨런 그린스펀도 2000년 7월에 미 의회에서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는 전망을 자신 있게 보고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낮은 실업률이 임금 상승을 유발하지는 않는 것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모순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즉 진정한 '노동력의 부족 현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현재 제시된 임금을 받고 일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설명하자면 '렉서스 품귀 현상'이란 렉서스 한 대에 기꺼이 4만 달러를 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가장 명백한 이유는 고용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금 상승을 막기 때문이다. 메인에서 나를 고용했던 사주에게 이 문제를 직접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더 메이즈의 사장이던 테드가 나를 차에 태워 일손이 부족한 팀에 데려다주었을 때 일이다. 그는 자기가 정말 고달프게 살고 있다고 푸념하면서 믿을 만한 직원들만 충분히 구할 수 있다면 사업을 두 배로 확장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려고 노력하면서 그렇다면 왜 급여를 올리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 질문에 대답할 의사가 없는 듯했다. 다만 자기가 '어머니를 위한 근무 시간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는데(그 말대로라면 일이 오후 3시에 끝나야 마땅했을 텐데) 마치 "그런 편의를 제공해 주는데 어떻게 급여를 가지고 불평할 수 있는가?"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처음에 나는 동료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지 않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들은 내가 허스사이드에서 제리스로 옮겼던 것처럼 급여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지 않는 걸까? 그 해답의 일부는 인간은 구슬과 다르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구슬과 달리 거취를 결정할 때 적지 않은 '마찰'을 경험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가난할수록 기동성이 더 떨어지기 마련인데, 차가 없는 저임금 노동자들은 흔히 차가 있는 친척의 도움을 받아 출퇴근을 한다. 이것은 매일 반복되고 어떤 경우에는 출퇴근 길에 보모의 집이나 탁아소에 들르도록 부탁해야 한다. 따라서 일자리를 옮기게 되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지형학적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고 어찌 됐든 이제껏 차를 태워 주던 친척에게 새로운 직장에 맞춰 경로를 바꿔 달라는 미안한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키웨스트에서나 미니애폴리스에서 일부 동료는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는데 그럴 경우 당연히 직장을 찾는 지리적 범위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또 차가 있다고 해도 기름 값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고, 차가 있건 없건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취업 지원서 제출 및 면접, 약물 검사 등 일반적으로 구직에 따르는 절차를 이행하는 것도 차가 없으면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구관이 명관'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어서 새 직장이 더 나은 급여와 혜택을 제시하는 경우에도 이직을 꺼린다. 한번 직장을 옮길 때마다 낯선 환경에서 친구도 없이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용주들은 직원들이 경제적 문맹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 잠재적인 고객들에게는 "타 매장과 가격을 비교해 보세요!" 하고 권하지만, 직원들에게 타 직장과 급여를 비교하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전에 언급했듯 특정 채용 과정의 경우에는 일부러 임금에 관한 논의나 공개를 막는 것처럼 보였다. 면접이 끝나자마자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해 천박한 주제인 돈에 관해 얘기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일부 고용주들은 급여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는 일반적인 금기에 의존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직원들에게 서로의 급여를 얘기하고 비교하지 않을 것을 명시적으로 요구한다.
채용 전에 실시하는 인성 검사, 적어도 그런 검사에 등장하는 내용 또한 대부분 인격을 모독하는 일종의 침해라고 생각한다.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 물어보는 질문들은 정당화될 수도 있다. 만약에 기회가 생기면 도둑질을 할 것인가, 아니면 도둑질을 하는 동료 직원을 고발할 것인가 등등. 하지만 피검사자에게 '자기 연민이 드는 경우'를 묻는다거나,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가 혹은 남들이 자신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정당화될 여지가 없다고 본다.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도 의학적 혹은 심리적 치료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타인에게 보여 줄 법한 자기 마음 깊숙이 숨어 있는 자신감의 결여라든지 소변 같은 지극히 사적인 것들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노출한다는 것은 적어도 심기가 불편해지는 일이다.
이 밖에 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피고용인들이 스스로 주제 파악을 하게 만드는 더 직접적인 방법도 있다. '잡담', 심지어 '대화' 금지 규칙은 동료들끼리 서로 불만을 얘기하거나 더 대담한 사람이라면 변화를 시도하려고(예를 들어 노조 결성을 추진하는 등) 다른 직원들을 포섭하는 것을 막는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민주 국가에 속한 자유로운 노동자인 저임금 노동자들이 늘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전혀 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임금, 그리고 중간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대다수는 직장에 들어설 때 시민으로서 누리는 자유권을 모두 다 문 밖에 두고 와야 한다. 여기가 미국이라는 것을 잊고 미국이 옹호하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근무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입을 꼭 닫고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렇게 일상적으로 자유권을 포기하는 현상은 임금과 빈곤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깨어 있는 시간의 절반을 쉽게 말해서 독재라고 표현할 환경에서 보내고 있다면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우월한 민주 국가라고 마냥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관리자들은 자신이 줄기차게 감독하지 않으면 업무가 마비될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목격한 바에 의하면 그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내가 저임금 노동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일에 냉소적인 사람들도 있고 자기 몸의 에너지를 '경제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깨우친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로 일을 기피하는 사람은 없었고 더욱이 마약 중독자나 도둑은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임금으로 보나 회사에서 인정받는 정도로 보나 자기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너무나 미미한데도 자신의 직무에 놀라울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걸 보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고 한편으로는 슬픈 생각도 들었다. 많은 경우에 노동자들은 일을 제대로 하려고 하는데 오히려 관리자들이 방해가 되었다. 웨이트리스들은 지배인이 고객에게 인색하게 구는 것이 불만이었고, 청소부들은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청소를 한 척만 해야 할 때 화가 났으며, 판매원들은 매장을 보기 좋게 유지하고 싶어 했지만 관리자들은 매장에 물건을 잔뜩 쌓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자율적으로 일하게 내버려 두면 노동자들은 나름의 협력 체계와 작업 분배 체계를 고안해 위기 상황이 닥칠 때 훌륭하게 대처할 줄 안다. 솔직히 말해서 복종을 요구하는 것 외에 관리자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문제는 실제로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시키는 요인이 무엇이든(내가 한 얘기들은 모두 문제의 핵심과 거리가 먼 수박 겉핥기 식의 피상적 설명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액수에 훨씬 못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하는 데 필요한 액수는 과연 얼마인가? 경제정책연구소가 생활 임금(living wage)을 다룬 수십 개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결과 어른 한 명에 자녀가 둘인 가정의 경우 시간당 14달러에 해당하는 연간 3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수치는 목숨만 겨우 부지할 정도의 최저 생활비가 아니다. 여기에는 의료보험료, 전화요금, 그리고 예를 들어 정식으로 인가받은 탁아소에(수백만의 부모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지만) 아이를 맡기는 비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외식 비용이나 비디오 대여료, 인터넷 사용료, 술값과 담뱃값, 복권 구입비, 또는 심지어 고기를 넉넉하게 사 먹을 비용은 포함하지 않은 액수이다.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인 노동자의 약 60퍼센트에 해당하는 절대다수가 시간당 14달러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는 배우자나 장성한 자녀와 같은 다른 임금 노동자와 함께 사는 방법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일부는 푸드 스탬프나 주택 보조금 바우처, 근로 장려 세제 같은 정부 지원을 받고, 비교적 관대한 주에서 막 복지 혜택을 포기한 사람이라면 탁아 비용을 보조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 예를 들어 혼자서 자녀를 키우는 싱글맘은 딸린 식구가 몇이든 오로지 자기가 벌어들이는 임금만으로 생활해야 한다.
가난을 직접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빈곤을 일반적으로 어렵지만 어찌어찌해서 넘어갈 수 있는, 생존 자체는 위협받지 않는 상태로 이해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으니' 말이다. 특히 빈곤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심각성은 더욱 짐작하기 어렵다. 점심을 과자나 핫도그 빵으로 때웠다가 근무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현기증이 나 기절할 지경이 되는 것을, 차가 '집'이 되기도 하는 상황을,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도 이를 악물고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을, 병가 수당도 의료보험도 없으니 오늘 하루 일을 못하면 당장 내일 식료품을 살 돈조차 없는 절박함을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경험들은 지속할 수 있는 삶, 심지어는 만성적 결핍에 시달리는 삶의 일부라고도 할 수 없으며 낮은 수준의 처벌을 끊임없이 받는 것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어떻게 정한다 할지라도 이들이 처한 상황은 응급 상황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백만 저임금 노동자들이 겪는 빈곤을 비상사태로 보아야 한다.
맨 꼭대기의 20퍼센트를 차지하는 사람들은 훨씬 더 강력한 다른 형태의 권력도 이 세상에 행사하고 있다. 내가 전에 쓴 책 『추락의 두려움: 중산층의 두 얼굴(Fear of Falling: The Inner Life of the Middle Class)』에서 '전문직-관리직 계급'이라고 이름 붙인 이 사회 계층에는 교수, 변호사, 회사 중역, 연예인, 정치가, 판검사, 작가, 프로듀서, 편집자 같은 우리 사회의 결정권자들, 여론 주도 세력, 문화계의 진두 지휘자들이 속해 있다.
그들이 입을 열면 모두가 경청한다. 그들이 불평하면 보통은 누가 잽싸게 문제를 시정하고 사과한다. 그들이 불평을 계속할 경우 그들보다 부와 영향력이 훨씬 작은 누가 야단을 맞거나 심지어 해고를 당할 수도 있다. 정치적 권력도 상위 20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들은 아무리 후보 간의 차이가 적을지라도 어떤 후보를 지지해야 득이 될지를 빈민들, 심지어 중산층보다 훨씬 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자기네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기부하고 참여하고 투표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서 부유한 계층은 자신들보다 덜 부유한 계층에 부당할 정도의 정치적 권력을 행사한다. 특히 어떤 공공 서비스를 시행할지, 최저 임금은 얼마로 할지, 어떤 법으로 노동 관련 문제를 다룰지를 결정하는 등 빈곤층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더욱 크다.
고도로 양극화되고 불평등한 우리 사회의 시각적 특성 때문에 빈민들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 빈민들은 부자들을 텔레비전이나 잡지 표지 등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부자들은 빈민을 볼 기회가 거의 없고 일부 공공장소에서 마주친다 해도 가난하다는 걸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중고품 위탁 판매점과 월마트 같은 상점들 덕분에 빈곤층은 실제보다 더 여유 있는 계층처럼 보이도록 치장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40년 전에는 도심과 애팔래치아 산맥에 흩어져 있는 빈곤 지대를 다룬 '빈곤의 발견'이 가장 인기 있는 기사 주제였다. 오늘날에는 빈곤 지대의 '사라짐'에 관한 기사를 볼 가능성이 더 높은데, 이는 이른바 '인구 통계학적 현실' 혹은 중산층의 상상력 부족 때문이다.
보스턴에 본부를 둔 고용 문제 연구소 '미래의 직업(Jobs for the Future)'이 최근 시행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94퍼센트가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 만큼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데 동의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남보다 앞선다."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정도 살 수 있다." 나는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얘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일을 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고 빚만 늘어갈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한참 모자라다.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배를 곯는 덕에 당신이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여자가 먹고살기에도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그 여자는 당신을 위해 지대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기운과 건강과 생명의 일부를 당신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사회적 동의에 의해 '워킹 푸어(working poor)'라고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박애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남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방치하고, 남의 집을 쾌적하고 광이 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은 수준 이하의 집에서 산다. 그들이 궁핍을 견딤으로써 인플레이션이 떨어지고 주가가 올라간다. 워킹 푸어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해 익명의 기증자, 이름 없는 기부자가 되는 것이다. 식당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게일이 말했듯이 그들은 '주고 또 준다'.
코네티컷 대학교 로스쿨의 카린 구스타프슨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볼 때 복지 혜택을 받으려고 신청하는 것은 대략 경찰에 연행되는 것과 아주 유사하다. 일단 머그샷을 찍힐 수 있고, 지문 채취를 당할 수도 있으며, 자녀들이 진짜 자기 자식이냐는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기를 막기 위해서라지만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으로서는 가난이 일종의 범죄인 양 느끼게 된다.
공직자들이 극빈자들에게 내뿜는 적의는 숨이 멎을 정도로 강렬하다. 몇 년 전에 '폭탄 대신 식량을(Food Not Bomb)'이라는 모임이 미국 각지에 있는 공원에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한 몇몇 도시들이 공공장소에서 극빈자들과 음식을 나누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을 통과시켰고 그 모임의 백인 중년 회원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 올랜도에서는 나누기를 금지하는 법이 번복됐지만, 불법적인 관용과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올랜도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심을 신청했고, 코네티컷 주의 미들타운은 지금도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플로리다의 게인스빌에서 무료 급식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루에 130명 분으로 제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애리조나의 피닉스에서는 어느 지역 성당이 노숙자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막으려고 건축물의 용도를 제한하는 법을 적용했다.
이제는 놀랄 일도 아니지만, 정부는 빈곤층에 도움이 될 만한 서비스를 계속 없애 버리는 한편 법의 집행은 강화하고 있다. 공공 주택은 문을 닫으면서 노숙하는 것은 범법 행위로 규정한다. 공공 부문의 일자리는 늘리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빚을 지면 처벌한다. 빈곤한 사람, 특히 피부색이 검고 가난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은 우리에 갇힌 쥐가 시도 때도 없이 가해지는 전기 쇼크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만약에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벗어나려고 잠시 마약을 이용해 황홀경에 빠지면 다시 또 '꼼짝 마라'의 상황이 된다. 마약 사용은 당연히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은 세계 제1이라는 믿기 어려울 만큼 높은 수감률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 교도소에 갇혀 있는 미국인은 230만 명으로 공공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 수와 같다.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공공 주택들은 점점 더 교도소처럼 돼 가고 있는데 아무 때나 경찰이 들이닥치고 점점 더 많은 도시에서 공공 주택 거주자들에게 약물 검사를 시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안전망은, 아니 아직까지 남아 있는 안전망은 이제 수사망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미국의 그 많은 노동 인구가 맞닥뜨린 빈곤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10년 전에 이 책이 처음 출간됐을 때 나는 일반적인 자유주의자의 바람을 그 답으로 제시했다. 더 높은 최저 임금, 보편적인 의료 혜택, 집세가 적당한 집, 좋은 학교, 믿을 만한 대중교통, 그 외에 선진국 중에서 미국만이 유일하게 추진하지 않는 여러 공공사업들.
10년이 지난 지금, 바람은 더 간소한 동시에 더 성취하기 어렵다. 빈곤을 줄이고 싶다면,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계속 그렇게 살게 만드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임금을 너무 적게 주지 말자.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다루지 말자. 그들이 원한다면 더 나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얻기 위해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주자.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나 길에 나앉은 극빈자들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자. 어쩌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빈곤을 줄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집행할 예산을 확보하기가 정말로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기빙웰 / 퍼트리샤 일링워스, 토머스 포기, 레이프 위나 / 이매진
이런 규모의 필란트로피 활동은 많은 윤리적 질문을 제기한다. 기부를 하는 사람들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건가? 그런 행동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가? 우리는 그렇게 많은 기부를 한다고 그 사람들을 칭찬해야 하는가, 아니면 더 많이 하지 않는다고 비판해야 하는가? 소수의 갑부들이 그렇게 중대한 결정을 내리는 상황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리고 이 부자들에 관한 판단은 우리 자신의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p.31)
자기가 쌓은 부의 많은 부분은 사회 덕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워렌 버핏의 말을 인용했을 수도 있다. 버핏은 말했다.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한가운데에 던져놓으면 그렇게 좋지 않은 땅에서 이 재능으로 얼마나 많은 수확을 얻게 될지 알게 될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이자 사회과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미국이나 서유럽 또는 북유럽 같은 부유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버는 돈의 최소한 90퍼센트는 '사회적 자본' 덕분이라고 추산했다. 사이먼이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란 천연자원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요인인 공동체가 보유한 기술과 조직 기능, 좋은 정부의 존재 등이다. 이런 요인들이야말로 부자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토대이다. 사이먼은 덧붙였다. "도덕적 견지에서 보면 90퍼센트의 정률 소득세를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사이먼은 그렇게 무리한 세율을 주장하진 않았다. 의욕 저하 효과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계산에 따르면 부자가 축적한 부는 모두 고된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이기 때문에 자기 부를 고스란히 소유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의 토대가 허물어진다. 사이먼의 말이 옳다면, 이런 주장은 기껏해야 부자가 가진 부의 10퍼센트에만 해당되기 때문이다. (p.34-35)
원조의 영향과 효과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빈민 원조의 핵심 과제이자 기본 딜레마가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나라들은 원조가 제대로 작동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여러 증거를 볼 때 원조 자금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서 능력과 투명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의사결정과 자금 지출을 자국 시민에게 제대로 설명할 책임이 있는 나라에서 원조가 제대로 작동한다. 그렇지만 원조가 필요한 나라들은 심각한 기술 부족, 허약한 국가 기구와 의회 기관, 불충분한 법률 체계, 미약한 규제 체계, 강력한 이익 집단이 조작하기 쉬운 허약하고 미성숙한 시장과 같은 요소들이 결합된 상황이다. 또한 공공 지출을 감독할 능력이 있는 자유 언론과 튼튼한 시민사회가 부재한 나라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점점 더 많은 극빈국이 분쟁과 내정 불안에 시달리게 되면서 소란스럽고 예측하기 힘들어져 결국 원조 사업의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조성된다. 바로 이런 요인들 때문에 원조의 영향력이 훼손되고 축소되기 쉽다. 원조를 제공하기 위해 자금을 사용해서 최대한의 효과를 낸다는 보장이 필요하다면, 영국이나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나라들로 원조의 방향을 돌려야 할 것이다. (p.135-136)
원조는 또한 경제에도 역효과를 미칠 수 있다. 원조 자금은 대체 가능하며, 공적 원조 흐름에서 풀려난 돈은 현지 정부가 다른 용도로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수혜국 정부는 원조 자금을 군사력 증강에 전용할 수 있다. 원조 자금이 경제에 유입되면 기초재의 가격 인플레이션이 커지거나 현지 통화의 환율이 인상돼 수출 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네덜란드 병'). 부자 나라들이 보내는 (헌 옷 같은) 현물 기부는 (의류업 같은) 국내 제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제조업은 가난한 나라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통적인 경로 중 하나다. 보건 등의 분야에서 젊은이를 훈련시키는 데 투자하는 경우에, 그 나라에 충분한 일자리가 없거나 다른 나라에 있는 일자리가 보수가 더 좋으면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두뇌 유출'을 자극한다).
또한 원조 사업이 국가 내 다른 영역에서 더 생산적으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을 흡수해 가기도 한다. 케냐에서 세계은행이 진행한 농업 지원 사업은 케냐 정부 소속 고위 경제학자보다 12~24배 많은 급여를 직원들에게 지급했다. 코소보에서는 해외 원조 기관들이 많은 현지 교사와 행정 관리들을 통역자와 운전사로 고용했다(코소보에는 원조 기관이 워낙 많아서 주택 가격이 현지인들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으로 올랐다). (p.177-178)
원조 사업에 관한 장기적 관점에서의 염려는 이런 계획 때문에 개발도상국 정부와 시민 사이의 연결 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염려는 특히 공여자들이 정부를 무시하고 시민들에게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 두드러진다. 해당 정부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에서 자금을 받는 비정부기구들이 극빈층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한다는 사실로 인해 정책 결정에서 극빈층을 무시하기가 더 쉬워진다. 한편 시민의 관점에서 보면, 자기에게 기초 서비스를 제공하는 창구가 국가 정부나 지방 정부가 아니라 비정부 기구일 때 정부에게 투명성과 책임성, 민주주의를 증대하라고 압박할 이유가 줄어든다. 이런 염려는 비정부 기구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받아 기초 서비스의 상당한 부분을 책임지는 수십 개 나라에서 특히 심각하다. (p.178-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