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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굴레 / R. 태가트 머피 / 글항아리

 

 회사 업무 중심의 생활은 샐러리맨들의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의 대부분을 잡아먹었다. 샐러리맨들은 일본의 기업 문화가 허용하는 몇 가지 복장만 입을 수 있었다. 겨울에는 짙은 감색 또는 회색 양복 상하의와 하얀 와이셔츠와 넥타이, 무더운 여름에는 반팔 셔츠와 넥타이와 정장 바지. 그런 복장을 한 채 긴 시간 만원 통근 열차를 타고 출근하면, 업종이나 회사에 관계없이 똑같은 구조로 칸막이 없이 탁 트인 사무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무실의 구조는 회사의 조직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과 같았다. 여섯 개에서 여덟 개의 책상이 서로 마주 본 채 길게 열을 지어 늘어서 있고, 열마다 문에서 먼 끝쪽 자리에 관리자가 앉는다. 이런 자리 배치는 그 자체로 군대 계급장과도 같이 분명하게 서열을 보여주었다.
 샐러리맨들은 자정 전에 집에 돌아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야근이 없는 저녁에는 보통 직장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있었다. 남자들은 정서적인 지원을 해주는 인간적 유대를 주로 같은 부서의 남성 동료들로부터 구했다. 실제로는 동료들 사이에 그런 유대가 없더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어느 시점이 되면 결혼했다. 중간 관리자 이상으로 승진하려면 결혼해서 가정을 갖는 것이 암묵적인 필수 조건이었다. 하지만 부인을 만나는 것은 늦은 밤이나 주말뿐이다. 주말에도 회사 야유회나, 좀 더 승진을 하면 고객사나 납품 업체 사람들과의 골프 약속이 없는 때라야 가능했다. (p.252)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수의 젊은 여성이 자기 엄마와 언니들이 어떻게 살고 있으며, 각종 미디어에서 그 삶을 어떻게 다루는지 보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는 그렇게 살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고도성장 제도들이 작동하던 방식은 부지불식간에 수백만에 이르는 샐러리맨의 아내들을 올가미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 제도들의 성공적인 운용으로 인해 여성들에게는 그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단이 생겼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일본 출산율의 붕괴였다.
 고도성장의 초기, 젊은 여성들이 결혼 대신 택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는 '물장사(미즈쇼바이)'라고 완곡하게 표현되던 직종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인기 없고 사람들에게 괄시받는 노처녀가 되는 것뿐이었다. 샐러리맨을 양산해내던 사회계층에서 자란 일본 여성에게 바람직한 커리어는, 우선 2년제 전문대학에 진학해서 낮은 직급의 핑크칼라 직종에 필요한 각종 기능을 겉핥기식으로 배우는 것이었다. 좋은 직장에서는 혼자 사는 여성을 채용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졸업을 해도 부모님 댁에서 같이 살았다. 회사에 들어가면 유니폼을 입고 OL이라 불리던 오피스 레이디가 되었다. 사무실에서는 차를 내오거나, 서류를 준비하는 등 '사무실의 꽃'이라 불리던 이름에 걸맞게 각종 허드렛일을 했다. 여성 직원들은 동료 남성들과는 달리 근무가 정식으로 끝나는 시간에 퇴근할 수 있었다. (p.264-265)

 

 대학 입시는 보통 성별과 무관하게 성적만 봤기 때문에 여성도 4년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점점 많은 여성이 4년제 대학생이 되었다. 사실 여성이 일본 기업에 취직하려면 4년제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느니만 못했다. 많은 회사가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여성을 노골적으로 차별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회사로서는 어차피 학위가 중요하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야심 있는 젊은 여성들은 4년제 대학에 진학해 공부했다. 국제사회의 눈치 때문이었는지, 몇몇 회사가 젊은 여성 신입사원을 간부 후보가 될 수 있는 정사원의 자리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 진출해 있던 외국계 기업들이 고학력 일본 여성들이 노동 자원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대규모로 이들을 채용하기 시작했다. 일본 남성들은 외국계 기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외국계 기업은 직업 안정성도 떨어지고 일본에서의 사회적인 위상도 낮게 여겨졌다. 하지만 여성들에게 있어 외국계 기업은 일본 기업에서는 얻을 수 없던 기회를 제공했다. 외국계 기업의 인사팀장들이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일본에서는 남성을 채용하는 것보다 여성을 채용하는 것이 낫다고 하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커리어 우먼'이라는 선택지의 등장은 일본의 출산율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부 일본 기업과 많은 외국계 기업이 예전에는 남성들에게만 열려 있던 일자리를 여성들에게 열어주기는 했지만, 여성에게 특별대우를 해주려던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 노동투쟁의 결과 타협안으로 등장한 종신고용은 핵심 남성 직원들에게 경제적인 안정을 보장해주는 대신, 회사 일에 무제한의 시간을 바쳐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물물교환이었다.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고 집안 살림을 꾸리면서 그러한 헌신을 병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혼제도와 가정은 바로 남성들을 그런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다는 기대에서 진화해왔다. 가정에서 남성의 역할은 돈을 벌어다 주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아빠가 1년에 사흘 정도 가족들을 데리고 휴가를 다녀오거나, 간혹 일요일 오후에 아들을 데리고 캐치볼을 할 수 있으면 좋은 것이었으나,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었다. (p.268-269)

 

 여성들이 점점 사회적인 기대에 맞게 행동하기를 거부한다고 해서 부들부들 떨던 사람들은, 애초에 고도성장의 제도들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올가미 속에 가두었는지, 경제가 발전하면서 여성들에게 그 올가미의 존재가 얼마나 더 분명해졌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젊은 여성 다수가 여전히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수가 올가미에서 빠져나갈 길을 미리 확보한 뒤에야 결혼했다. 둘째 아들과 결혼하면 늙은 시부모를 모실 필요가 없었고, 좋은 집을 살 돈도 빨리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회사들과 관료 기구는 급여 체계와 고용 관행을 시대에 맞게 바꾸는 데 실패했다. 1955년에 형성된 급여 체계와 고용 관행은 당시 일본의 인구와 경제 상황에는 잘 맞았는지 몰라도, 1975년에는 적용에 무리가 있었고, 1995년이 되면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졌다. 집권층은 1950년대에 만들어졌던 사회적 합의를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재검토한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문제들만 건드렸다. '종신고용' 대상자를 적게 채용한다든지, 예전 같으면 신입사원들이 담당하던 일을 훨씬 낮은 보수를 주고 계약직에게 맡긴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이런 계약직의 상당수는 젊은 싱글 여성이거나 직업세계로 복귀하는 나이 든 기혼 여성들이었다. 따라서 결혼해서 함께 가정을 이룰 수 있는 젊은 남성 중에 올가미를 벗어나게 해줄 조건을 갖춘 남성의 수는 점차 줄어들어갔다. 사람들은 결혼을 해도 점점 아이를 갖지 않기 시작했다. 딩크족은 미국에서 만들어진 단어였지만, 이는 일본의 여성뿐 아니라 남성에게도 아파트 단지 안에 갇혀 사는 주부나 샐러리맨이라는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선택지를 정확히 묘사하고 있었다.
 1975년이 되면 일본의 출산율은 1940년대의 여성 한 명당 네 명에서, 총인구수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숫자인 두 명 아래로 떨어졌다. 2005년에는 기록적으로 낮은 1.26명을 기록했다. 출산율의 붕괴는 일본이 급격하게 변하는 경제 환경에 제도적으로 대응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나타난 가장 치명적인 결과 중 하나다. 부분적으로 이런 경제 환경의 변화는 고도성장의 제도가 작동하는 것을 가능케 했던 글로벌 경제 프레임워크에 균열이 생기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균열은 먼저 해외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누구도 기존의 일본식 시스템이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리스크가 명백해졌을 때, 일본의 지도층은 애초 고도성장의 제도들이 성공적으로 돌아가던 환경을 복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p.273-274)

 

 하지만 볼커의 고금리 정책에 일본의 기관 투자자들이 호응해준 데 크게 힘입어 달러에 대한 믿음은 회복되었다. 1980년 일본 재무성이 외환 통제법을 자유화한 것도 한몫했다(개정된 법 아래서는 일본의 금융기관이 해외 투자를 할 때 사전에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즈음 로널드 레이건이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레이건은 세금을 깎아주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날 것처럼 얘기하고 다녔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위 레이건 혁명의 결과는 미국 역사상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가장 큰 재정 적자를 낳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레이건과 그의 보좌관들은 전혀 의도치 않게 케인스의 주장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말았다. 예산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죽어가는 경제를 살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대규모 재정 적자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1978년에는 미국에게 대규모 재정 적자를 감수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는지 불투명했다. 하지만 폴 볼커가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일본이 달러 자산을 기꺼이 보유해줌으로써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레이건의 재정 적자 정책은 케인스가 예측했을 법한 효과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1982년이 되면 미국 경제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본 수출 산업의 마지막 황금시대가 열렸다. 미 재무성이 두자릿수의 금리를 제공하면서 전 세계의 미국채 수요가 급등했다. 달러의 가치는 엔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주요 국가 통화 대비 크게 올랐다. 미국 경제가 부활하고 소비가 되살아나면서 미국인들은 일본 제품을 샀다. 소니 워크맨, 파나소닉 비디오 플레이어, 샤프 텔레비전, 도요타 자동차, 후지 필름, 니콘 카메라, 일본제철 철강, 혼다 오토바이, 야마하 피아노, 고마쓰 굴착기, 리코 복사기, 세이코 시계, 카시오 전자계산기, 후지쓰 컴퓨터, 히타치 반도체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시기 일본 제품의 유행이 당시 많은 이가 우려했던 것처럼 미국 산업에 치명적인 재앙이었던 것은 아니다. 비싼 달러와 높은 금리를 견디지 못한 미국의 기업들이 무자비하게 쓰러져가면서, 'IT 오타쿠들' 말고는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신생 회사들로 자본이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컴퓨터, 시스코, 인텔, 선 마이크로시스템스 같은 회사들이다. (p.281-283)

 

 그것이 바로 버블의 정의다. 자산의 가치와 그 자산이 만들어내는 현금 흐름 사이에 연결이 끊어지는 현상. 여기서 현금 흐름은 집의 임대료나 기업의 수익을 말한다. '어떤 이유'로 인해 자산의 가치가 끊임없이 오를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는 한 버블은 계속 커진다. 버블이 커지는 한, 자산을 구매하기 위해 일으킨 대출을 갚기 위해서는 자산을 '더 어리석은 사람'에게 더 비싼 가격에 파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자산이 만들어내는 현금 흐름이 대출을 갚기에도 모자라는 것 정도야 무슨 대수인가? 금융 버블의 진행 과정과 그 영향에 관한 모델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금융 불안정성 가설)는 이런 '폰지 금융(Ponzi financing)'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버블이 커지고 있다는 확실한 징후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버블은 민스키의 설명에 확실히 부합한다. 그리고 투자 광기에서 시작해 패닉, 붕괴, 그에 뒤따르는 오랜 불경기와 불황이라는 고전적인 포물선형 주기에도 여러 면에서 들어맞는다. 일본의 경우 광기의 첫 단추는, 민스키가 모든 버블의 시작이 항상 그렇다고 주장하듯 여신의 과도한 창출이었다. 광기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은 이웃이 힘 안 들이고 부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한몫 벌어보고자 결심하게 되고, 광기는 그런 사람들을 다시 빨아들인다. 정보가 풍부한 내부자들은 "이번에는 다르다"고 외부 투자자들뿐 아니라, 이게 정말 중요한데, 스스로도 믿게 만드는 이야기를 퍼뜨린다. 사기와 총체적 부패가 점차 정치와 경제활동을 잠식하면서,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그 경계가 흐려진다. 이런 점에 있어서 일본의 버블은 과거에 발생했던 투자 광기들과 완벽하게 궤를 같이한다. (p.289-290)

 

 리처드 쿠의 주장에 따르면 대차대조표 불황은 보통 과도한 투자 광기가 사그라들고 시장이 붕괴한 이후에 발생한다. 많은 회사가 투자 열풍 동안 신규 자산의 구입을 위해 대출을 일으켰다가 그 자산들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장부상으로 파산하거나 파산에 가까운 상태에 이른다. 회사의 총부채가 총자산보다 커지는 이런 상황을 회계사들은 파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중 많은 회사가 여전히 사업을 영위하며 핵심 영업활동으로부터 충분한 현금 흐름을 창출해내고 있다. 채권자들은 아직 회사 문을 닫고 자산을 압류하기를 원치 않는다. 자산을 다 팔더라도 그 자산을 구입하느라 일으켰던 대출을 갚기에도 모자란 가격이기 때문이다(주택 대출을 받아 집을 샀는데 집값이 대출 가격보다 떨어진 경우를 상상해보면 된다). 이런 상황에 처한 회사들은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이익을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기보다는 부채를 갚는 데 사용할 것이다. 채권자인 은행도 그것만이 대출 금액을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회사들을 강제 청산하기보다는 그렇게 하도록 놔둔다.
 하지만 너무 많은 회사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시장의 수요가 바닥난다. 아무도 공장에 들여놓을 새 설비를 주문하지 않고, 아무도 새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다. 다들 부채를 갚기에만 급급하다. 혹은 달리 표현하자면 대차대조표를 바로잡기에만 급급하다. 대차대조표 불황은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다. 개별 회사들은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것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 회복의 가능성이 파탄에 빠진다. 보통의 경기 침체에서 주로 사용하는 양적 완화 정책은 대차대조표 불황에는 먹히지 않는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아무리 낮추고 통화 공급량을 늘린다고 해도, 성장이 침체된 상황에서는 기존 대출을 더 낮은 이자의 신규 대출로 갈아타는 것 빼고는 회사들이 더 이상 대출을 통한 투자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방대한 유동성은 그렇게 정체되어 시중에 돌지 않고 쌓여만 간다. (p.292-293)

 

 민스키는 금융 버블의 원인은 '외적 충격(exogenous shock)'에 있다고 주장한다. 외적 충격은 투자자들이 특정 종류의 자산이 가져다줄 수익의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재평가하게 만드는 사건을 뜻한다. 예를 들면 경제 전반의 모습을 바꿔놓을 획기적인 기술 혁신 같은 것이 외적 충격이다. 유명한 사례로는 19세기 중반 철도의 등장을 들 수 있다. 너무나 많은 자본이 철도 건설을 위한 무모한 프로젝트에 몰려들면서 1873년 경제 붕괴를 일으켰었다. 또 다른 사례로는 자동차와 라디오에 대한 과도한 투기가 대공황의 전조가 되었던 일이라든지, 1990년대 말 인터넷의 '킬러앱'을 찾던 열풍이 불러온 닷컴 버블을 들 수 있다.
 외적 충격이 기술 혁신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전쟁의 발발이나 새로운 여신의 원천이 등장하는 것도 외적 충격이다(16세기에 금과 은이 신세계로부터 스페인으로 흘러들어간 일이라든지,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면서 투자자들이 멕시코로 몰려갔던 일). 이 모든 사례를 아우르는 핵심은 '외적'이라는 단어다. 기존의 경제 프로세스와 정책이라는 울타리 바깥에서 벌어진 일이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p.295)

 

 케인스는 모든 수단이 소용없을 때에는 정부가 나서서 적자 재정을 통해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비즈니스 사이클에서의 불황이라면 통화 정책(기업들이 대출을 받아 신규 설비 투자를 해서 수익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수준으로 이자율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경제의 활력을 회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이 대출 받기를 거부하거나 은행이 대출해주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는(혹은 둘 다의 상황) 정부가 직접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축 시스템 자체가 망가진다.
 요즘 미국이나 유럽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이것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계와 기업이 모두 빚을 갚는 데만 몰두해 있어서 지출의 총합보다 저축의 총합이 커지면, 그 차액은 예금이나 기타 상환금의 형태로 모두 금융 시스템에 흘러들어가게 된다. 금융기관은 이 돈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돈을 해외로 보내거나(해외 금융기관에 대출), 정부가 발행하는 각종 채권을 사는 데 쓰는 것이다. 가계와 기업이 빚 갚는 것 외에 다른 지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시기에 저축 시스템을 지키려면 이 두 가지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p.311-312)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제조업체들은 이런 회사들이 아니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곳은 완전히 다른 일군의 회사들이다. 이런 회사들은 자신들의 산업 분야 바깥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도 않다. 상당수는 소비자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품이나 소재를 취급하는 기업들이다. 이들은 기술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큰 전 세계 시장점유율을 누리고 있다. 가격 경쟁력도 있다.
 21세기 첫 10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회사는 키엔스(Keyence)다. 키엔스는 센서, 바코드 해독기, 디지털 현미경, 각종 정밀 측정 기기를 생산하는 회사다. 제약 분야를 제외하고 일본에서 두 번째로 수익이 높은 회사는 자동화 기기를 전문으로 하는 산업용 로봇 생산 업체 파낙(FANUC)이다. 세 번째는 프린터, 복사기에서 평면 디스플레이까지 모든 기기에 들어가는 각종 커넥터를 생산하는 히로세 전기 주식회사다. 네 번째는 일본 최대의 니켈철(ferro-nickel) 생산업체인 태평양 금속 주식회사, 다섯 번째는 드릴과 드릴 관련 기기, 고성능 리드나사 제조용 정밀 압연 기기를 만드는 유니온 툴(Union Tool)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을 이 회사들이 여러 산업 분야에서 일본의 절대 우위를 이끌고 있다. 예를 들어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정밀화학 분야에서 일본 기업들의 전 세계 점유율을 합하면 70퍼센트가 넘고, 탄소섬유는 65퍼센트가 넘는다. 애플의 아이폰을 뜯어보면 일본 기업의 이름이 들어간 부품은 많지 않다. 조그맣고 화려한 기계인 아이폰은 미국에서 디자인해 설계되고, 중국에서 생산되어, 한국과 타이완의 부품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이 중의 30퍼센트가 넘는 부가가치는 일본 기업으로부터 창출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가? 그것은 이런 부품들을 이루는 핵심 소재를 일본 기업이 만들고, 이런 부품들을 생산하는 공장의 설비를 일본 기업이 공급하기 때문이다. 보잉787 드림라이너에서도 일본 기업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비중은 비슷하다. 보잉사와 에어버스사 사이의 경쟁은 유럽 기업과 미국 기업의 경쟁처럼 보이지만, 그 생산과정과 부가가치의 구조를 뜯어보면 프랑스-독일 연합과 미국-일본 연합 간의 기술구조(technostructure)가 정면 승부를 벌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p.329-330)

 

 일본의 사업 시스템은 원래부터 착취적인 면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착취는 주로 하청업체와, 하청업체의 하청업체 사이에서 발생해, 거대한 일본 산업 시스템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청업체들은 항상 비용 절감의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디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일하면서 그나마 경제적 안정성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직원들은 원청업체의 무한에 가까운 요구 탓에 야근에 시달리기는 하지만, 한 분기 한 분기 간신히 연명하는 작은 하청업체들도 정말 아무런 대안이 없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웬만해서 사람을 내보내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보통 그런 상황까지는 가지 않도록 원청업체들이 신경을 써주기 때문이다. 특히 하청업체가 계열사나 그룹사의 일원이라면 더욱 그랬는데, 그것은 한 회사라는 감정적인 배려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가족' 회사조차 망하게 놔두는 회사라면 재정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거라고 고객이나 은행으로부터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하청업체들은 그 덕에 어느 정도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런 것이 모두 무너지고 있다. 21세기 초반의 몇 년 동안, 특히 소비자 가전제품 업계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많은 회사는 이중으로 경쟁의 덫에 빠진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대량생산 시장에서는 주변 국가들이 치고 올라왔고, 모바일폰, 휴대용 뮤직 플레이어, 고성능 노트북과 같은 최신 전자기기 시장에서는 실리콘 밸리가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었다. 비용 절감은 이들에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대기업들은 오랫동안 제휴해왔던 국내의 하청업체들을 버리고 중국이나 타이 같은 해외의 새로운 생산기지를 택했다. (p.340-341)

 

 도쿄전력은 일본 기업들의 전반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축소판과도 같다. 후쿠시마 재난 현장의 수많은 도쿄전력 직원은 사고 직후 긴박했던 며칠 동안 영웅적이고, 글자 그대로 자기희생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반면 도쿄전력의 경영진은 명백한 직무 유기를 해오고 있었고 결국 파멸적인 결과를 불러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일본 기업들의 서비스 수준과 품질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서는 오직 꿈에서나 바랄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해 있다. 하지만 요즘 등장한 '블랙 기업'이라든지 비정규직을 거리낌 없이 착취하는 관행을 보면, 일본 재계의 기득권층이 비록 개인적인 축재를 위해서는 아닐지라도 자신들 계층의 지위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단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p.365)

 

 일식당의 화려한 상차림이나 정원과 사찰의 아름다운 사진을 통해서만 일본의 미의식을 접했던 서양 사람들이 처음 도쿄에 오면, 복잡하고 추한 일본 도시의 풍경을 보고 충격을 받곤 한다. 일본인들처럼 미의식이 발달한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풍경을 견디고 살 수 있는가. 그러나 일본에는 추함을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일종의 암묵적인 공감대가 있다. 정원이라든지 전통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통로 같은 장소나 사물은 모두에게 '아름답다'고 인정된다. 그 아름다움은 정말 숨 막힐 정도로 섬세하다. 정원에 인접해 있는 추하고 시시한 건물이나, 식당 바깥의 전신주와 정신 사나운 간판으로 가득 찬 지저분한 길거리에 주의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런 추한 것들을 알아차리지 않을 도리는 없기 때문에, 예술가는 그것에 대한 주의를 오히려 강렬하게 환기시켜 의도적이고도 흥미로운 부조화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는 일본 예술의 오래된 전통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부조화의 존재가 일본의 영화, 애니메이션, 패션, 비디오게임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충격적이고도 훌륭한 퀄리티를 부여해 계속해서 세계를 놀라게 한다. (p.374-375)

 

 일본의 옹호자들은 다른 나라들도 과거에 큰 잘못을 저질렀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즉각 지적한다. 일본이 어떤 사과의 말과 행동을 해도 주변국들은 절대 만족하지 않고 과거사를 채찍 삼아 일본을 계속 때리려 들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핵심은 그것이 아니다. 일본이 1930년대에 일어났던 일을 직면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나 중국을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을 위해서다. 많은 일본인은 자국의 지폐에 역사상 최악의 대규모 살인을 초래한 사람의 초상이 찍혀 있고 집권당이 수천만에 달하는 자국민을 사상(死傷)했던 나라가 과연 일본에 무언가를 요구할 도덕적 자격이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대약진 운동, 문화대혁명, 톈안먼 대학살에 대한 인정과 반성은 궁극적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과거에 대한 답은 일본인들 스스로가 구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본이, 일본의 독립성을 파괴하며 해외에서 일본이라는 단어를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광기의 대명사로 만든 사람들의 손에 장악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말이다. 아베가 하는 것처럼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진실을 순수하고 고결한 나라에 대한 이야기로 묻어 버리려는 시도는, 앞으로도 일본이 비슷한 일을 다시 벌일 수 있을 것이라는 추측만 더 그럴듯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아베와 그의 문부과학성 장관인 시모무라 하쿠분 같은 이는 과거를 직시하는 일이 어린아이들에게 가져올 효과에 대해 특히 민감한 것 같다. 애국심의 붕괴가 일본이 현재 갖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고, 일본이 바깥 세계와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그 어떤 지속 가능한 해결책도 우선 일본 국민이 자국에 대한 애정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그들의 주장도 맞는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저지를 수 있는 실수와 죄악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애국심, 진짜 세상의 논쟁으로부터 온실 속의 꽃처럼 보호되어야만 하는 애국심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아이들 사이에서만 통할 애국심이다. 아베와 시모무라 같은 이들은 아마도 대부분의 국민을 어린아이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을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국민의 나라를 다스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정치체제로는 앞으로 일본에 닥칠 최대의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반일 감정을 국가적 구호로 채택한 채 빠르게 부상하는 호전적인 초강대국 중국이라는 도전 말이다. 중국 또한 고분고분하고 단합된 자국민을 배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국가적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쓰고 있다. (p. 586-587)

 

 사실을 말하자면 아베와 그의 무리도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전쟁이 수반하는 것들을 갈망한다. 사람들 사이의 열광, 목적의식, 명확함, 위계질서, 경의가 생겨나기를 원하고, 의심과 거리낌과 비판을 일소하기를 바란다. 이런 갈망은 그저 환상일 뿐이다. 사회 전체가 빠르게 노화되고 있는 갸루와 초식남과 오타쿠의 시대에, 수백 만의 젊은이가 천황을 위해 죽지 못해 안달이던 1930년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아베는 그 시절의 정신 비슷한 것을 부활시키지 못하면 일본이 거침없고 호전적인 중국에 맞서는 것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중국도 물론 아베의 이런 착각을 바로잡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 또한 국가의 거대한 선전 기구를 통해 일본이 모든 악의 근원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관념을 중국 국민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주입해 넣는다. 양국에 있는 최악의 세력들이 서로를 이용해 공포와 히스테리를 부추겨, 마치 산소가 생명체를 번성케 하듯 선동과 억압을 더 강화한다. (p.599-600)

 

 일본의 새로운 지도자는 형식적이고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과가 아닌, 일본의 학교 교육과 미디어에 속속들이 반영된 진정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과거의 일을 사과할 것이다. 1930년대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사과한다면, 위험하고 냉소적인 방식으로 반일감정을 선동하고 악용하는 중국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입장에 놓인다. 그런 후 필요한 것은, 조국과 동포를 사랑하는 일과 과거에 저지른 실수와 죄악을 인정하는 일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아님을 양국의 국민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리더십이다.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는 국민이 아닌 정치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명민한 애국심은 그런 깨달음을 필요로 한다.
 뛰어난 일본의 지도자는 일본 경제의 고질병 아래 놓여 있는 위험성을 이해하고 명확히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확실히 리스크를 회피하는 사회이고 오늘날의 세상에서 그런 사회는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때 경제적 안정성을 제공했으나 더 이상 그러지 못하는 시스템을 그대로 날려버리는 것이 경제적 고질병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 그 시스템을 일류 기업의 정사원과 관리자들로 이루어진 특권 노동자 시스템으로 대체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가차 없고 냉혹한 비정규직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사업의 리스크가 현실화되었을 때에도 빈곤과 사회적 비난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튼튼한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것이 창업의 활기를 되살리기 위한 관건이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대부분의 일본인이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보다는 사회복지에 기대어 연명하는 것을 선호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의 일본인에 대한 무지와 경멸만 드러낼 뿐이다.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할 재정적 여유가 없다고 하는 반대의 외침도 설득력이 없다. 아베 정권은 소위 아베노믹스의 두 번째 화살이라는 명목 아래 쇠락해가는 농촌 지역에서 '하얀 코끼리' 프로젝트들을 가동하는 데 이미 막대한 재정 예산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아베가 했던 것처럼 여성의 고용 촉진을 요구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성은 일본에서 가장 제대로 활용되고 있지 않은 자원이라고 많은 사람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수많은 여성이 안고 있는 과도한 노인 부양과 육아의 부담을 어떤 방법이라도 써서 줄이지 않는 한, 이들은 경제적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수백만의 여성 노동력이 더해져 경제에 도움이 되게 되도록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본의 출산율을 이탈리아 수준이 아니라 프랑스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프랑스의 가정들이 누리고 있는 정도로 탁아 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이 필수다. 동시에 현명한 지도자라면 신중하게 관리되는 이민 정책을 장려해 건설이나 간호와 같은 분야에서 모자란 노동력을 보충하려고 할 것이다. (p.603-605)

 

 하뉴의 태도 또한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등장한 추악한 외국인 혐오주의자들의 태도와도 대조를 이뤘다. 서점에는 '혐중∙혐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새 장르의 책들이 가득하고 인터넷은 '넷우익'들이 넘쳐나는 나머지, 한 일본의 주류 잡지가 혐중∙혐한 사이트로 몰려다니는 주부들에게 '네토우요 주부'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 와중에 하뉴는 그가 타인에게 지고 있는 빚을 의식하고, 감사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타인 중에는 일본인이 아닌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하뉴는 경쟁의식을 내려놓고 러시아의 뛰어난 스케이트 선수 예브게니 플루셴코에 대한 존경을 표하며, 그가 개인전을 기권해야 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전했다.
 하뉴의 이야기와 그의 태도는 엄연히 21세기 일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버리고 비극을 승리로 변화시키는 이야기다. 과거를 왜곡하려는 사람이 위협과 조소를 통해 이루는 승리가 아니라, 열심히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는 사람의 겸손한 승리다. 이 나라에 대해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특질인 선량하고, 예의 바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승리다. 이런 승리는 예전에도 있었다. 하뉴 유즈루와 그의 친구들과 그의 고향에 있는 후원자들과 같은 개인에게도 있었고, 일본이라는 나라 전체에도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일본의 미래가 아베가 불러낸 우울하고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국수주의가 아닌, 하뉴 유즈루 이야기의 궤적을 따라 결정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p.607)

 

 그리고 어떤 방법을 동원하든 한국과 일본은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과 독일의 아데나워 수상이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에서 회복하기 위해 서로 합의해낸 것과 같은 수준의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수 세기에 걸쳐 서로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고 과거 80년 동안 혹독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세 차례나 벌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저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이웃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세계정세는, 두 나라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지 못하면, 둘 다 다른 나라에 종속되거나 파멸할 수도 있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내 정치사회적 문제로 인해 미국의 패권주의가 쇠퇴하는 와중에 바로 이웃에서 호전적인 초강대국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은 각자의 미래에 대해 냉철하게 사고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나라의 정치와 안보는, 분명 이스라엘 다음으로 다방면에서 미국과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 정치, 경제, 문화 권력이 점차 쇠락해가는 지금, 한국과 일본이 어떻게 협력해서 공존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다시금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구축하기를 원하는 종속 질서에 빨려들어갈 것입니다. (책에서 이야기했듯 예전의 일본은 물리적 거리 덕분에 중국이 주도하던 질서 밖에서 생존할 수 있었지만, 이제 물리적 거리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p.644-645)

 

 

문샷 / 오잔 바롤 / 알에이치코리아

 

 확실성을 향한 이런 열망은 겉보기에 안전할 것 같은 해법들, 즉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는 방법만을 쓰게 한다. 어두운 곳으로 걸어가 열쇠를 찾는 위험을 지는 대신 현재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이다. 마케터들을 보라. 늘 똑같은 도구와 접근법을 사용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 성공하겠단 야망을 품은 기업가들은 안정적인 듯 보이는 '매출'이란 확신을 뿌리치지 못하고 장래성 없는 일에 매달린다. 제약회사들은 치매를 완벽하게 고쳐줄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대신, 그저 약간의 개선점을 가미한 비슷한 약만 개발하려 든다.
 그러나 획기적인 돌파가 이루어지는 시점은 해답의 확실성을 희생할 때, 즉 자전거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위험을 감수할 때, 가로등 아래를 벗어나 깜깜한 곳으로 나아갈 때다. 익숙한 것에만 머물기를 고집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을 결코 만날 수 없다. 위대한 '미지의 것'과 춤추는 사람들, 평온함 대신 위험을 찾아 나서는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 (p.40-41)

 

 와일즈는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하게 된 과정을, 깜깜한 저택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에 비유했다. 첫 번째 방에서 출발해 온갖 물건들을 더듬어보고 찔러보고, 그것들에 부닥치기도 하면서 여러 달을 보냈다. 이렇게 방향도 모른 채 무작정 혼돈 속을 헤매다가 마침내 전등 스위치를 찾은 후, 깜깜한 다음 방에 들어가 그 모든 과정을 반복했다. 이런 돌파야말로 "암흑 속에서 넘어지고 구르는 일이 반복된 여러 달 가운데 정점(그런 시도들이 없었으면 존재할 수도 없었을 정점)이었다"면서.
 아인슈타인도 자신의 발견 과정을 이와 비슷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확인하는 결과는 거의 자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느껴지긴 하지만 표현할 순 없는 진리'를 탐색하는 오랜 세월, 모든 것이 선명하게 이해되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강렬한 바람, 확신과 포기의 반복은 오로지 그런 것을 온전히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p.42-43)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현대의 문제는 "멍청한 사람은 자신만만하고 똑똑한 사람은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데 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노벨상을 받은 뒤, 자기가 "혼란에 빠진 원숭이"일지도 모른다며 주변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는데, 그 덕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미묘한 차이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틀릴 수 있는 해답을 안고 살기보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사는 것이 한층 더 흥미롭다."
 파인만의 이런 사고방식은 스스로의 무지를 인정할 줄 아는 상당한 수준의 겸손함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나는 모른다"는 그 끔찍한 말을 입 밖으로 낼 때면, 자아는 쪼그라들고 마음은 열리고 귀는 쫑긋 선다. 몰랐던 것을 배우고 성장하려면 자신이 모르는 것을 온전히 의식하는 '의식적인 불확실성'을 가져야 한다. (p.49-50)

 

 그러나 미지의 것을 즐기는 사람은 천문학자만이 아니다. 또 다른 스티브인 스티븐 스필버그. 장면을 하나씩 찍을 때마다 스필버그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불확실성에 사로잡히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새로운 장면을 찍을 때면 몸이 바싹 달아오르며 초조해진다. 배우의 대사를 듣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할지, 배우에게 내가 무슨 지시를 내릴지, 또 카메라를 어디에다 둘지, 나는 모른다."
 다른 사람이라면 똑같은 상황에 놓일 때 공황을 느낄지 모르지만, 스필버그는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감정"이라고 말한다. 엄청난 불확실성이라는 조건만이 창의성을 최고조로 끌어낸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다. (p.53)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머스 쿤은 "발견은 어떤 것이 올바를 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엉망일 때, 즉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기대하던 것이 아닌 특이한 일이 일어날 때 나타난다"라고 설명한다. SF 소설가 아시모프가 "유레카!"라는 외침이 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표현이란 논리를 반박하고 나선 일은 유명하다. 그는 과학적인 발견이 흔히 비정상적인 것을 발견하곤 "그것 참 재미있네"라고 말할 때 시작된다고 봤다. 그러고 보면 양자역학, 엑스선, DNA, 산소, 페니실린 등의 발견은 모두 과학자가 변칙성을 무시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가능했다. (p.61-62)

 

 명왕성의 암살자인 마이크 브라운은 이 행성의 강등 사건을 적개심의 원천이 아니라 교육의 기회로 보았다. 그는 또 명왕성의 탄생(발견)과 죽음(강등) 이야기는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에서도 올바른 해답의 길이 일직선인 경우가 거의 없는 이유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려 하는 교사에게 좋은 소재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행성(Planet)'의 어원도 이런 점을 분명하게 해 준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방랑자'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고대 그리스인은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별들의 여러 위치를 거슬러 움직이는 물체들을 포착하곤, 그것을 '방랑자'라고 불렀다. (p.67)

 

 대중문화에서 로벨이나 글렌 같은 우주비행사는 위험을 무릅쓰길 좋아하고 허풍을 떨며 또 위험한 로켓의 조종석에 태연하게 앉을 정도로 배짱 좋은 아주 잘나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이런 캐릭터는 드라마에도 적격이다. 그러나 사실 우주비행사에 대한 그런 선입견은 잘못된 것이다. 우주비행사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은 초인적인 강심장을 가져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줄여줄 지식을 활용하는 데 통달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우주비행사 크리스 해드필드는 이렇게 말한다.
 "매우 중요한 상황과 높은 스트레스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지식이 필수적이다. 실패 가능성과 정면으로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 실패를 연구하고 분석하며 그것의 모든 요소와 결과를 해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초기 우주비행사들 중 많은 이들은 허술한 로켓 조종석에 앉아서도 자기가 온전히 통제력을 갖고 있다고 느꼈다. 그 우주선 설계에 본인이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기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바로, 무엇을 걱정해야 하고, 무엇을 무시해야 하는지였다. 이런 인정이야말로 그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첫 단계였다. '극미중력'이 시력을 손상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 글렌에게 시력검사표를 가지고 로켓에 탑승하라고 지시한 것처럼 말이다.
 이 접근법은 또 하나의 잠재적인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면, 불확실성을 계속 갖고 있어도 그에 대한 공포는 줄어들게 마련이다. 작가 캐롤라인 웹은 "경계선을 불확실성 쪽으로 더 넓게 정할수록 남아 있는 모호함을 한층 잘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p.69-70)

 

 로켓과학자는 리던던시를 추가하는 것 외에도 안전마진을 구축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처한다. 예를 들어, 우주선을 만들 때 필요 이상 튼튼하게, 단열 강도도 훨씬 높게 만든다. 이런 안전마진 덕에 우주의 불확실한 환경이 예상보다 더 위험하더라도 우주선은 안전하게 보호된다.
 중요한 일일수록 안전마진도 높여야 한다. 실패 확률이 높은가? 일이 잘못될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큰가? 한 방향으로만 열리는 문인가 아니면 양방향으로 열리는 문인가? 한 방향의 문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안전마진을 더 높이 설정해야 한다.
 우주선을 놓고 우리가 내리는 의사결정은 대부분 물리거나 돌이킬 수 없다. 우주선이 발사되고 나면 하드웨어를 리콜할 기회는 전혀 없다. 그러므로 우주선에 탑재하는 도구는 다목적 사용이 가능해야 한다. 즉, 양방향 문이어야 한다. (p.76)

 

 비밀은, 선명한 경로가 보이기 전에 먼저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퀴가 고장 나고 드릴이 부러지고 산소탱크가 폭발하더라도, 우선 걷기 시작하라. 후진 기어로 이동하는 법을 배울 수도, 초강력 접착테이프로 재앙을 막을 수도 있을 테니, 우선 걸어라. 뉴턴의 제1법칙처럼 움직이는 물체는 계속 움직이려고 하므로 일단 가기 시작하면 계속 가게 될 테니, 우선 걸어라. 당신의 작은 발걸음이 결국 거대한 도약이 될 테니, 우선 걸어라. 쉬워서가 아니라 어려우니까, 우선 걸어라. 앞으로 나아갈 유일한 방법이니, 우선 걸어라. (p.79)

 

 할리우드의 유명 제작자 브라이언 그레이저는 공동으로 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왜 파란색이냐고 거리낌 없이 묻는 아이는 커서 훨씬 파괴적인 질문을 한다. 나는 종인데 너는 왜 왕이지? 태양이 정말 지구 둘레를 빙빙 돌까? 왜 피부 검은 사람은 노예고 피부 하얀 사람은 주인이지?" (p.130-131)

 

 우리는 호기심에 대해 입에 발린 말만 할 뿐, 실제론 호기심을 억누르기 바쁘다. 기업은 혁신을 강화한다며 '창의성의 날'을 정해 프레젠테이션도 하고 비싼 돈을 들여 강연자를 초빙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하루를 제외한 나머지 364일은 평소대로 산다. 직원들은 기존 경로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가가 아니라 그 경로를 잘 지키는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16개 산업 분야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어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호기심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데 꼭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 비율만큼의 응답자가 직무 관련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를 직장에서 느낀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84%는 고용주가 문서상으론 호기심을 장려한다고, 응답자의 60%는 현실에선 호기심을 드러내려 할 때마다 장애물에 가로막힌다고 답했다.
 호기심을 표준으로 삼는 대신, 우리는 위기가 호기심을 부를 때까지 기다린다. 일자리가 끊어진 뒤에야 대체할 진로를 찾아보기 시작하며, 젊고 호전적이고 굶주린 경쟁업체로 인해 회사가 망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새로운 생각을 함께할 사람들을 끌어모아 몇 시간이고 머리를 맞댄다. 그래봐야 성과는 없다. 해답을 찾기 위해 동일한 방법론, 동일한 브레인스토밍 접근법, 진부하기 짝이 없는 동일한 신경경로 들에 의존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혁신방안이 전혀 혁신적이지 않은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기껏해야 현 상태에서 그저 약간 바뀐 정도. 자기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대기업이나 관료조직에서는 호기심이 작동했던 흔적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p.131-132)

 

 조지 버나드 쇼는 "한 해에 두세 번 이상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는 한 주에 기껏 한두 번 생각하는 것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것과 창의성은 상반되는 개념이다. 받은 메일함을 말끔하게 비워버리는 동안 당신은 결코 획기적인 돌파구를 만들 수 없다. 목이 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야 한다. 위기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지금 당장 호기심을 가져야 한다. 호기심이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죽일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그 덕에 당신은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 (p.133)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한 유치원 교사가 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피던 중, 한 아이에게 무엇을 그리냐고 물었다.
 "신(God)을 그려요."
 표준적인 교과과정에서 많이 벗어난 아이의 대답에 깜짝 놀란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있음 알게 될 거예요."
 어른들은 대부분 깨닫지 못하는 우주적 진리를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포착한다. 그 진리란 바로 모든 것은 하나의 게임, 거대하고 신기한 게임이란 사실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 《해럴드와 보라색 크레파스》에서 4살배기 주인공은 그림을 그려 무언가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걸어갈 길이 없을 때 소년은 길을 그렸다. 길을 비춰줄 달이 없을 땐 달을 그렸다. 올라갈 나무가 없을 땐 사과나무를 그렸다. 이야기를 통해 그의 상상력은 사물을 세상에 존재하게 한다. (p.135)

 

 지루함을 느낄 때면 인생을 허비하고 있단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2명의 영국인 연구자는 한 논문에서 지루함을 "학습과 창의성 측면에서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적절한 감정"이라고 결론 내렸다. 지루한 상태에 빠져들 때 우리의 뇌는 외부 세상과 연결을 끊고, 내면 세상과 연결된다. 이 마음 상태는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복잡한 도구인 뇌를 느슨하게 만드는데, 이때 뇌는 집중 모드에서 분산 모드로 전환된다. 생각이 정처없이 떠돌며 백일몽을 꿀 때, 뇌의 기본설정 네트워크(몇몇 논문에 따르면 이는 창의성 측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가 가동되기 시작한다. 음악을 만드는 건 음과 음 사이의 침묵인 법이다. (p.141-142)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와일즈에 따르면, 꼼짝도 못 하는 상황은 "전체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그는,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 익숙지 않아 스트레스를 매우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장애물에 막힐 때면(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난다) 일손을 놓고 마음을 느긋이 한 채 호수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는 그는 "걷는 행위는 이완 상태를 유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이는 잠재의식이 일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지켜보면 물은 절대로 끓지 않는다. 때로는 잠시 문제에서 벗어나야만 해답이 찾아온다. (p.144)

 

 우리는 흔히 선호하는 해결책과 사랑에 빠진 나머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그 해결책이 없어서 그 문제가 발생한 거라고 예단한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리 3개 달린 착륙선을 더 좋은 성능으로 만들어야 해."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큐베이터를 충분히 보급해야 해"라고 하면서. 기술을 위한 기술을 추구하는 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꼴, 수단에 집착하느라 목적을 잃어버린 꼴, 형태를 고집하느라 기능을 외면하는 꼴이다. 이런 접근법은 전술을 전략으로 오해하는 실수를 낳는다. 전술과 전략은 흔히 혼용되지만, 그 개념은 전혀 다르다. 전략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 전술은 그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구체적 행동이다.
 우리는 전략을 잊은 채 전술과 도구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의지한다. 그러나 작가 닐 게이먼이 상기시키듯이 도구는 "미묘하기 짝이 없는 함정이 될 수 있다." 망치가 당신 앞에 놓여 있다고 최상의 도구는 아니지 않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폭넓은 관점으로 전략을 결정할 때 비로소 결함 있는 전술에 성급하게 의존하는 실수를 피할 수 있다.
 전략을 발견하려면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라.
 "지금 이 전술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지?"
 이 질문은 '무엇'과 '어떻게'를 버리고 '왜'에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다리 3개 달린 착륙선은 전술, 화성에 안전하게 착륙하는 것은 전략이다. 인큐베이터는 전술, 미숙아를 구하는 것이 전략이다. 문제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고자 한다면 외부자를 끌어들여라. 주기적으로 망치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앞에 망치가 놓여 있다 해도 그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p.225-226)

 

 드러리는 많은 기업의 리더들이 놓치는 비밀을 알고 있다. 바로, 낮은 데 매달린 과일은 누군가가 모두 따서 이제 남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자기보다 강한 경쟁자를 모방해선 그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경쟁자가 하는 것과 정반대 행동을 함으로써 그 경쟁자를 이길 수는 있다.
 최상의 관행이나 업계표준을 따르지 말고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질문의 틀을 다시 설정하라. 그 반대의 행보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이 단순한 사고과정만으로 당신은 자신의 여러 가정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현재의 관점에서 훌쩍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하면서 문제를 찾으려고 노력하라.
 "내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관점을 바꾸면 그 문제는 어떻게 바뀔까?" "전술이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 그 질문의 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압정상자를 뒤집고, 또 이 자원을 기능 측면이 아니라 형태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을까?"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될까?"
 획기적인 돌파는 상식이나 통념과 달리, '똑똑한 대답'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똑똑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p.238-239)

 

 내가 좋아하는 미 연방대법원의 의견 중 하나는 1896년 '플레시 대 퍼거슨(Plessy v. Ferguson) 사건'에서 존 마셜 할란 판사가 제시한 반대의견이다. 할란 판사만이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표명했던 이 판결에서 다수의견은 인종차별이 합헌이라고 보았다(이 판결은 나중에 '브라운 대 교육청 사건'에서 뒤집힌다).
 할란의 반대는 많은 이에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할란은 백인 우월주의자였고 노예를 소유했으며 정부가 인종을 이유로 국민을 차별하는 걸 금지하는 수정헌법에도 굳건히 반대하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신념을 뒤집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그는 단순명쾌하게 대답했다.
 "일관성을 유지하기보다 옳은 것을 선택하겠다."
(p.269)

 

 그러므로, 목표는 통제할 수 있는 변수, 즉 아웃풋이 아닌 인풋에 집중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라고 묻고, 인풋 요소들을 바로잡아야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물론 그 질문만으론 충분치 않다. "이번 실패에서 잘된 점은 무엇일까?"라고도 물어야 한다.
 파이어폰 실패에 대한 아마존의 반응을 생각해 보라. 수익성 등의 표준지표로 보자면 파이어폰은 재앙에 가까운 실패였다. 그러나 아마존은 결과를 넘어 다른 것을 보았다. 아마존의 앤디 재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우리는 인풋을 본다. 멋진 팀을 고용했는가? 그 팀은 사려 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나? 아이디어를 철저히 파고들었나? 시의적절하게 실행했나? 품질은 높았나? 기술은 혁신적이었나?"라고 말한다. 설령 그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효과가 있던 인풋들을 잘 챙겨 추후 프로젝트에 활용할 수 있다. 재시는 "우리는 파이어폰 기술에서 배운 것뿐 아니라, 우리가 구축했던 모든 기술을 가져와 다른 서비스와 기능에 적용했다"고 밝혔다.
 아마추어는 단기적인 결과를 내는 데 집중한다. 이와 달리, 프로는 즉각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풋을 완벽하게 하려고 여러 해 노력한다.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가 초짜 테니스 선수가 저지르는 최악의 실수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샤라포바는 최대한 공을 지켜보며 인풋에 초점을 맞추라고 주의를 준다. 결과에 대한 압박감을 털어낼 때 기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면 성공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가 된다. (p.334-335)

 

 모든 실패가 같진 않다. 어떤 건 우아하고 어떤 건 추하다. 우아하게 실패하려면 로켓과학자처럼 테스트라는 도구를 활용해야 한다. 혁신정책을 전사적으로 시행하기 전, 정책이 실패하더라도 피해는 일부에만 국한되도록 한 사업부에서만 혹은 한 고객층만을 대상으로 실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웨스틴과 쉐라톤 등의 브랜드를 소유한 스타우드호텔은 특정 향기를 브랜드와 접목한 시그니처 향기나 호텔 로비에서의 거실 체험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험실로 더블유호텔을 이용한다. 그리고 효과가 있는 경우에만 이 아이디어를 다른 호텔 브랜드에 적용한다. 결국 효과가 없더라도 스타우드호텔 전체적으로는 손해가 제한적이다. (p.349)

 

 그러나 명심할 점이 있다. 몇몇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여전히 성공을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뜻밖의 행운(Dumb Luck)'이다. 설계에 결함이 있는 우주선도, 여러 조건이 그 결함을 유발하지 않는 한 화성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축구경기에서도 잘못 찬 슛이 선수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골망을 흔들 수 있다. 전략이 좋지 않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법이 우연히 내 편이 되면 승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성공은 이런 실수를 눈에 보이지 않게 감추는 방법을 가지고 있다. 승리와 성공을 자축할 때, 우리는 행운의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작가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표현했듯이 "행운은 자수성가한 사람 앞에서 할 말이 아니다." 우리는 자기가 현재 위치에 오른 것은 노력과 재능 덕분이라고 생각하기에, 행운이 자기 성공에 작용했다는 얘기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이란 사실을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장차 다가올 재앙의 밥이 되고 만다. 나쁜 의사결정과 위험 들이 계속해서 미래에 끼어들고, 한때 경험했던 성공은 좀처럼 우리 손을 잡아주지 않을 것이다. (p.360-361)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참사가 일러주듯이, 판에 박힌 듯 반복되는 성공은 장기적 문제의 조짐일 수 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성공과 무사안일주의는 손잡고 나란히 걸어간다. 우리는 성공했을 때 더는 힘겨운 노력을 하지 않는다. 만족감은 천장까지 차오르고 개척정신은 쪼그라든다. 기업의 고위 경영진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전략에서 벗어난다고 비판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성공적이던 전략을 버리고 다른 전략을 선택해 실패할 때 받을 징계 위험이 훨씬 높다. 그러니, 새로운 모험을 하지 않는다. 그저 성공을 가져다주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 기존 공식을 답습해 실패하는 쪽을 선택한다. 이 전술은 잘 먹힌다. 정확하게 말해, 더 먹히지 않을 때까지만 잘 먹힌다. (p.368)

 

 사전부검 방식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 즉 행동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시점에 그 행동을 조사한다. 로켓 발사 전, 매매 체결 전, 합병 완료 전, 미리 그 행동을 조사하며 결과를 예측한다. 사전부검에서는 미래로 시간여행을 떠나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전제하고 사고 실험을 한다. 그다음 "무엇이 잘못됐을까?" 하고 묻는다. 암울한 시나리오를 시각적으로 생생히 떠올림으로써 장차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만나보고, 이를 피할 방법을 결정한다. 한 연구에서는 사전부검을 하게 되면 미래에 나타날 결과의 이유를 정확히 짚어내는 역량이 30% 증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p.3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