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식량 위기에서 구할 음식의 모험가들 / 아만다 리틀 / 세종서적
"현대 장비에 오염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의 소규모 농장 시스템이라는 이상향을 떠올리고 싶은 유혹이 강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산량이 적고, 농부들은 높은 위험과 무거운 빚에 시달린다. 일상생활은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데 집중되어 있고, 굶주림은 만연해 있다."
디프리스는 이렇게 경고했다. 오늘날 8억 명 이상이 영양 부족 상태에 놓여 있고,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 칼로리 분배가 불균형하다는 점은 녹색혁명의 가장 큰 실패로 남아 있다. 값싼 식품과 오랫동안 계속된 비효율적 공급망은 쓰레기 대량 생산으로 이어졌다.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품의 약 3분의 1은 운송 과정에서 부패하거나 버려진다. (p.40)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원예학자 아마야 아투차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에 있었던 과일 작물 피해를 보면 이게 근본적으로 새로운 규모와 빈도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천 년 동안 안정된 기후 속에서 살았지만 이제는 변화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변하고 있어요. 사과만이 아니라 포도, 체리, 복숭아, 크랜베리, 블루베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지역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에요. 모든 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어디서나 혼란이 생기고 있습니다."
미국 농무부의 제리 해트필드는 더 센 표현으로 이 현상을 설명했다.
"이건 단순히 7년이나 10년 만에 한 번 일어나는 절멸 사건이 아닙니다. 이제는 정기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 손에 더 많은 원예 작물의 피를 묻히고 있는 것입니다." (p.72)
카슨의 책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67년 미국은 나뭇잎을 떨어뜨려 적군이 숨을 수 없게 하려고 베트남 정글에 유독한 다이옥신이 들어 있는 제초제인 에이전트오렌지를 2만 리터 살포했다. 이 농약 살포 계획이 생태계와 사람의 건강에 가져온 결과는 오랫동안 파멸적이었다. 1984년에는 인도 보팔의 유니온카바이드 공장에서 만들던 살충제의 독성 성분인 이오시안화메틸 증기가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나 1만 5,000명가량이 목숨을 잃고 더 많은 수가 피해를 입었다. 2010년에는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인 제초제 아트라진이 수십 년 동안 쓰인 뒤에야 개구리 수컷의 생식기관에 영향을 주어 수컷이 알을 낳게 만든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대규모 농업에서 사용하는 농약의 문제는 일부분만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우려는 여전히 남아 있다. 멕시코만으로 흘러들어간 화학비료가 만든 '죽음의 지대'는 이제 2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다. 그런 화학비료는 증발된 뒤 공기 중에서 이산화탄소의 300배에 달하는 온실효과를 내는 일산화질소를 만들 수도 있다. 아이오와주에서는 농업수 유출로 청색아증후군(blue baby syndrome)이라는 병이 생기기도 했다. 수돗물에 스며들어간 비료에서 나온 질산염이 유아의 혈류 속 산소의 흐름을 방해해서 생기는 일이다. 벌집붕괴현상이라고 하는 꿀벌의 대규모 죽음은 니코틴과 비슷한 화학물질로 만드는 보편적인 살충제 원료로, 꿀벌의 생식 능력에 해를 끼치는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 사용과 결부되어 있다. 최근의 수많은 학술 연구에서는 기형아 탄생을 임신부의 고농도 유기인산화학물 살충제 노출과 관련짓는다. 이 살충제는 농사와 조경에 흔히 쓰인다. (p.134-135)
⟨사일런트 러닝⟩이 나온 뒤 거의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많은 게 변했다. 우리는 경작 가능한 땅의 3분의 1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라지는 속도도 점점 빠르게 만들어놓았다. 사라지는 땅의 상당 부분은 정치적으로 취약한 지역에 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는 식량의 75%를 수입한다. 이라크와 카타르, 아랍에미리트를 포함한 사막화된 중동의 다른 나라 역시 수입에 상당 부분을 의존한다. 최근 아부다비에서 돌아온 하퍼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곳의 흙에는 생물 요소가 0.001% 정도밖에 없어요. 강도 없고요. 당분간 물을 더 확보할 수 없을 거예요. 따라서 평소 물 공급량의 10%도 안 되는 양에 의존하는 실내농업이 그쪽에서는 21세기의 가정 채소밭이 될 수 있어요."
UN의 예측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50년에 98억 명이 될 전망이다. 현재 인구보다 33% 더 많은 수치다.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진 도시 이주가 계속되면서 그중 약 3분의 2는 도시에 살 전망이다. 오늘날에는 세계 인구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가 도시에 산다. 2050년이면 세계에서 아주 큰 도시 20개 중 14개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게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필리핀 마닐라, 파키스탄 카라치, 콩고민주공화국 킨샤사, 나이지리아 라고스가 도쿄와 상하이, 뭄바이의 뒤를 따른다. UN은 인구 증가율과 식생활 변화를 바탕으로 그때쯤 세계 식량 생산을 2009년 수준에서 70% 늘려야 한다고 추정한다. 그건 궁극적으로 우리가 식량 생산 공간을 더 큰 규모로 위는 물론 옆으로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이유가 된다. (p.212-213)
"특히 연어는 기업형 양식이 애초에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양식업에 반대하는 글로벌 연합(GAAIA)을 이끄는 돈 스태니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연어 양식을 멈춰야 합니다. 그것도 완전히요."
연어 양식이 환경에 부과하는 비용은 바다에서 그치지 않는다. 폐기물과 탈출하는 연어 관리, 연어를 먹이기 위해 많은 야생 물고기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큰 과제다. 오늘날 연어 양식은 세계 양식 산업의 약 5%뿐이다. 양식어 수는 틸라피아와 잉어, 메기 같은 저렴한 물고기가 훨씬 더 많다. 이들은 대개 아시아 시장에서 팔린다. 그러나 연어 양식은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고 수익성이 가장 뛰어난 분야다. "연구개발과 혁신에 가장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매사추세츠주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오스트랄리스 아쿠아컬처의 소유주 조시 골드만은 이렇게 말했다. (p.224)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어로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 되는 게 바로 양식, 특히 연어 양식이다. 돈 스태니포드는 "해결책이라기보다는 문제에 가까워요"라고 말했다. 일단 연어 양식은 문자 그대로 어로를 먹어치우고 있다. 연어는 자기 몸무게의 몇 배에 달하는 멸치, 청어, 오징어, 장어, 새우, 크릴 등의 야생 해양 동물을 먹을 수 있는 육식어다. 잉그리드 로멜데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줄어들고 있는 야생의 먹이에 의존하는 산업을 키워서는 안 됩니다."
양식 연어는 야생 어류를 먹어치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야생 물고기 서식지까지 오염시킨다. 양식 연어가 먹는 먹이의 최대 70%는 분변, 먹다 남긴 먹이 형태로 다시 물속으로 돌아간다. 스태니포드는 이렇게 강조했다. "수십 년 동안 연어 산업은 바다를 하수구로 사용해왔습니다. 배설물은 바다 밑바닥에 쌓여 그 지역 해양 생태계를 질식시킵니다."
양식 연어는 자연 생태계를 유전적으로 오염시킬 수도 있다. 양식 연어가 탈출해 야생의 연어와 짝짓기를 한다면, 생존에 필요한 유전적 특징을 잃은 자손이 태어날 가능성이 크다. 양식 연어는 야생의 친척과 유전적으로 구분된다. 부화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태어난 강으로 돌아가려는 귀소 본능이 없다. 그리고 양식장 안에는 포식자가 없어서 위험을 두려워하는 유전적 본능도 잃는다.
"양식 어류는 좋은 사료를 먹기 위해 싸우는 데 능합니다. 그래야 양식장 안에서 성공하니까요. 하지만 야생에서는 그게 별 소용이 없습니다." 스태니포드가 들려준 말이다.
양식 어류는 탈출하지 않더라도 위협이 된다. 양식장 안의 먹이는 그 옆을 지나가는 연어를 유혹한다. 야생의 어린 물고기는 그물을 통과해 들어왔다가 먹이가 될 수 있다. 살아남은 것들도 양식 어류에 있는 질병과 기생충에 감염되어 야생에 퍼뜨릴 수 있다. (p.227-228)
연어가 다른 물고기보다 자원 효율성이 낮다는 사실은 오아란드도 인정한다. 예를 들어, 연어는 틸라피아와 메기, 대구보다 먹이를 더 많이 먹는다. 그러나 육지 동물과 비교하면 연어는 소식가다. 물고기는 냉혈동물이라 몸을 따뜻하게 하거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한 지방층이나 털가죽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서 필요한 칼로리가 더 적다. 부력이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니 중력에 저항하거나 네 다리로 서서 걸을 필요도 없다.
"양식 연어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는 사료가 약 1킬로그램 들어간다. 닭 1킬로그램을 생산하는 데는 사료가 약 2킬로그램 들어가고, 돼지는 3킬로그램, 소는 약 7킬로그램 들어간다." ⟨내셔널지오그래픽⟩ 기자 조엘 본은 이렇게 보도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구의 자원을 최소한으로 쓰면서 90억 명의 단백질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동물 단백질의 원천으로는 양식이… 좋은 시도로 보인다." (p.241-242)
채소와 과일, 곡물, 생선, 고기 생산의 새롭고 기이한 개척지를 향한 여정에서 나는 다가올 시대에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인류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기술의 약진뿐만 아니라 그런 기술을 현명하고 공평하게 적용하는 규범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시급함에서 조금도 뒤지지 않지만 좀더 난해하고 외면받아온 과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가장 건조하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물을 대는 데 도움이 되는 가뭄 대비 수자원과 스마트 물 배분 네트워크 개발 같은 일이 그렇다. 기아에 대응하는 긴급 계획도 준비해야 한다. 태도와 행동의 변화, 특히 폐기물 문제를 둘러싼 변화도 필요하다. (p.273-274)
환경단체인 천연자원보호협의회의 폐기물 연구자 다비 후버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식품은 5,200만 톤에 달한다. 여기에 더해 식품 1,000만 톤이 농장에 그대로 남아서 썩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미국인은 매일 9만 석짜리 경기장을 채울 수 있는 식량을 낭비하는 것이다. 1970년대보다 1인당 25%를 더 낭비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생기는 식품폐기물 중 대부분인 약 35%는 가정에서 생긴다. 평범한 미국인은 식품을 하루에 약 0.5킬로그램 내버린다. 이는 1년에 200킬로그램 정도다. 식당과 크로거 같은 판매점이 3분의 1 정도를 만들며 개인이 그 뒤를 바짝 따르고 있다. 미국에서 해마다 나오는 식품폐기물의 가치는 1,620억 달러에서 2,180억 달러 사이로 추정된다.
후버는 환경 측면에서 이 문제를 바라본다. "식품을 낭비한다는 건 그걸 기르고, 가공하고, 포장하고, 운송하고, 세척하고, 냉장하는 데 들어간 물과 에너지, 농약, 노동력을 비롯한 자원을 전부 낭비한다는 걸 뜻합니다." 비영리단체 리페드는 식품폐기물이 미국에서 신선한 물 전체의 약 21%, 비료의 약 19%, 경작지의 약 18%, 쓰레기 전체 부피의 약 21%를 소모한다고 추산한다. 게다가 메테인 문제도 있다. 미국의 식품폐기물 중 5%만이 세균과 열이 통제된 환경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분해해 식물에 필요한 풍성한 영양분으로 만드는 과정을 거쳐서 퇴비가 된다. 나머지 95%는 쓰레기 매립지로 가서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 부패하며 온실효과가 큰 메테인을 배출한다. 후버는 "미국 식품폐기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합하면 중국과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에 이어 3위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p.281-282)
WWF의 식품폐기물 연구 책임자 피트 피어슨은 이렇게 말했다.
"식품 폐기물 문제의 해답이 퇴비화라는 오해가 있습니다. 진짜로 강조해야 할 건 회사든 가정이든, 도시든 예방이 첫째고, 그다음이 회수와 기부, 퇴비화는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입니다."
피어슨에 따르면 식품폐기물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건 '시작부터 싹을 잘라낼 수 있는 단일한 기술이나 조정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문제는 상류에서도, 하류에서도, 밭에서도, 창고에서도, 포장 과정에서도, 유통 과정에서도, 마트에서도, 식당에서도, 가정에서도 일어납니다." 기업이 파놓은 참호에서 싸우는 파커 같은 몇몇 '식품폐기물 보안관'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여러 층위에서 싸우는 군대가 있어야 한다. 유효기간을 표준화하고 식품 회수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와 정책 입안자도 필요하다. 시와 주 정부 안에서 음식물쓰레기 수거∙퇴비화 계획을 세우고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수수료를 올리는 사람도 필요하다. 식품이 남는 사람과 부족한 사람을 연결하는 앱을 만드는 개발자도 필요하다. 부패성 식품을 보존하고 유통기한을 늘릴 새로운 방법을 찾는 재료과학자도 필요하다. 퇴비화를 대규모로 더 빨리 할 수 있는 기계를 설계하는 공학자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캠페인을 이끄는 활동가도 필요하다. (p.283-284)
"미국에서 자라는 신선한 농산물 중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이 미적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시장에 가지도 못합니다." 후버는 이렇게 강조했다. 최근 미네소타주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생산하는 과일과 채소의 약 20%는 우리의 좁은 미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쓰레기가 된다.
흔한 희생자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쐐기 모양으로 자라지 못한 포도송이는 밭에서 그대로 썩거나 곧바로 쓰레기 매립지로 간다. 균형이 맞지 않는 피망, 울퉁불퉁한 당근, 흠집이 생긴 사과 등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던, 앤디 퍼거슨의 서리 맞은 사과를 떠올려 보라. 더할 나위 없이 건강하고 맛있지만 서리 띠가 있는 사과는 팔리지 않는다.) 후버의 말에 따르면, 유기농 채소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농부들은 농산물의 모양이 좀 더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통상적인 농부보다 더 많은 양을 내다버린다. 얄궂게도, 훼손된 농산물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종종 더 영양가가 많고 맛이 좋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실제로 과일과 채소는 곤충이나 열, 서리, 마름병 따위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맛과 항산화 성분을 만들어낸다. (p.286-287)
농업은 목마른 사업이다. 과일과 견과류를 생산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몬드 한 알을 기르는 데는 4리터에 가까운 물이 필요하다. 올리브는 11리터, 석류는 19리터, 자몽은 26리터, 아보카도는 34리터가 들어간다. "농업에서 물은 몸속의 피와 같아요. 또는 소리 속의 진동, 또는 오즈의 마법사지요. 본질입니다. 물이 없으면 식량도 없어요." 페레그가 말했다.
농업은 전 세계 물 공급량의 4분의 3을 소모한다. 농업이 주력사업인 국가에서는 비율이 더 높아진다. 이스라엘에서는 물 공급량의 약 80%가 식량 생산에 들어간다. 이웃 나라와 끊임없이 정치적 갈등을 겪는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식량과 물을 완전히 자급자족하기 위해 노력했다. (p.306)
이 지역에서 물과 토지 분배의 윤리는 논쟁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동맹국이나 적국 모두 이스라엘의 물관리 기술을 현대의 경이로 바라본다. 세계에는 물이 부족한 국가가 많지만, 그토록 건조하면서 농업생산성이 그렇게 높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이스라엘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은 하수 정화 미생물부터 고효율 관개 시스템과 초거대 담수화 시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이 모든 기술의 기반은 이른바 '스마트 물 네트워크'로, 전국에 물을 분배하는 센서 내장 송수관 시스템이다. 페레그는 이 시스템을 구석구석 설계하는 기업 중 하나를 운영한다. 페레그가 스스로 부여한 직업명은 '최고 배관공'이다.
페레그의 회사인 타카두에서는 수학적 알고리즘을 이용해 송수관에서 누출과 파열을 찾아내고 예방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송수관의 새는 부분을 찾아내는 건 대단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물이 귀하고 비싼 환경에서는 중요하다. 페레그는 이렇게 들려주었다. "이스라엘에서 물은 샴페인과 같아요. 깨진 잔에 뵈브 클리코를 따를 수는 없잖아요!" (p.307-308)
그때 전 세계 송수관은 누출이나 파열로 수송과정에서 평균 3분의 1의 물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런던처럼 아주 낡고 약한 송수관에서는 흘러나가는 양이 약 60%에 달한다. "그 공학자가 제게 런던의 송수관으로 들어가는 물의 절반 이상이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지요. 이 문제는 땅을 파서 어디가 새는지 확인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없어요." 미국, 특히 농장에 물을 대는 시골 지역 송수관망은 공급하는 물을 최대 약 30%까지 잃어버린다. (p.309)
네타핌 설립 2년 전인 1964년 또 다른 이스라엘 공학자 알렉산더 자르친은 해수에서 소금을 제거하는 상업 기법을 발명했다. 먼저 진공상태에서 해수를 얼려서 소금이 없는 순수한 결정을 얻는다. 그리고 그 결정을 녹여 마실 수 있는 물을 만든다. 1년 뒤 자르친은 '세계의 바닷물을 저렴하고 깨끗한 물로 바꾸겠다'는 목표 아래 IDE라는 회사를 세웠다. 그 뒤 IDE는 다른 담수화 기법을 개발했고 세계 최대 담수화 시설 제조기업이 되었다. 이런 시설을 바탕으로 신이 '짠물을 달게 만드는' 내용이 나오는 출애굽기 구절에 빗대어 농담처럼 '신의 행하심'이라고 부르는 일을 페레그는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공학자들이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수를 걸러 재활용수로 만드는 초창기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한 때도 1960년대였다. 현재 이스라엘은 변기, 부엌, 배수구로 흘러나가는 물의 85% 이상을 재활용한다. 하수는 폐기물을 분해하는 미생물을 이용하는 '바이오 정화' 같은 일련의 여과과정을 거쳐 깨끗해진다. 그 결과 마시기에는 부족해도 작물을 기르는 데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한 물을 만들 수 있다. 재활용수는 밝은 자주색으로 칠한 방대한 송수관망을 통해 움직인다. 이 '자주색 송수관망'이 현재 이스라엘의 농장과 공장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별도의 망은 갈릴리해 같은 민물 공급원과 값비싼 담수화 시설에서 끌어온 최상급의 물을 공급한다. 페레그의 표현을 빌리면, 이 물은 식수와 요리, 목욕용으로 각 가정의 수도꼭지로 흘러가는 귀중한 '샴페인'이다. (p.312-313)
이 소프트웨어는 각 송수관망의 '정상적인 행동'을 기준으로 삼는다. 하루 종일 흘러가는 물의 정상적 패턴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누출이나 파열을 암시하는 이상현상을 더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다. 소프트웨어는 사람들이 직장에 가기 전과 다녀온 뒤인 아침과 저녁에 물이 가장 많이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역에 따른 요소도 고려한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의 한 수도회사에서 이 시스템은 어느 금요일 오후에 일정한 간격으로 물의 흐름이 비정상적으로 크게 치솟아 오르는 현상을 감지했다.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월드컵경기 중간의 쉬는 시간에 팬들이 화장실 물을 내리는 패턴을 알아챈 것이다. 이 소프트웨어는 물 도둑질도 적발할 수 있다. 멜번의 수도회사 유니티워터에서는 소화전에서 비정상적으로 물이 많이 흘러나가는 현상을 감지했다. 관공서에 알려주었더니 소화전에서 물을 끌어가던 딸기 농부 한 명을 찾아냈다. 이논이 설명해주었다.
"타카두가 없을 때는 사실상 눈과 귀가 막혀 있었습니다. 이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우리 송수관망은 투명하지 않아요. 심전도계나 엑스레이 같지요. 우리 시스템이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거예요. 우리는 이제 더는 배관공이나 수공학자가 아닙니다. 예방의학의 세계에 들어왔지요." (p.314-315)
페레그는 이스라엘과 달리 미국에는 사실상 물 관련 정책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물을 낭비하지 못하게 막고 보존하면 보상을 주는 '당근과 채찍' 정책이 없다. "사람들 말이, 캘리포니아에서는 노조가 세 자기 직업이 사라질 것을 우려해 원격센서를 설치할 수 없게 한다는 겁니다." 페레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또 물 낭비를 억제하기 위해 더 강력한 가격 신호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페레그는 자신의 뒷마당 농장에 물을 대기 위해 지불하는 엄청난 물값을 자랑스러워했다. "미국인은 물이 공짜에 무제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기처럼요. 그러나 이스라엘의 철학은 이래요. 정원이나 수영장이 갖고 싶다고? 좋아. 돈을 내!" 이스라엘에는 3단계 가격 시스템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5인 가족 기준으로 정해진 양만큼만 낮은 가격에 물을 쓸 수 있어요. 그 양을 넘어가면 물값은 50% 더 비싸집니다. 그다음 단계에서는 완전히 날아오르지요."
미국 수도회사의 가격 정책은 과소비를 조장한다. "미국의 카운티 중 3분의 1은 아직도 물값 정액제입니다. 기업이든 가정이든 일정한 돈만 내는 거예요. 가령 9.99달러만 내면 마음대로 쓰는 식이지요." 송수관만이 아니라 정책도 구식이라는 게 페레그의 말이다. 가뜩이나 남캘리포니아처럼 물이 부족한 지역이 새롭고 아주 값비싼 물 공급원에 투자하기 시작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페레그는 미래의 상수도에는 단계별 가격정책과 수질에 따른 분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유소와 똑같습니다. 보통 기름이나 프리미엄 기름을 고를 수 있지요. 컵에 따라서 마시는 것과 수질이 똑같은 물로 밭에 물을 대거나 변기에 쓰는 건 미친 짓이에요." 캘리포니아는 폐수의 약 15%를 재활용하지만 물이 부족한 남부 지역의 2,200만 명이 쓰는 물은 거의 전부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온다. 대부분 산을 넘는 장거리 송수관을 타고 와야 한다. 남캘리포니아는 다른 여섯 개 주와 멕시코에 둘러싸여 있는 콜로라도강에서도 상당량을 끌어다 쓴다. 이런 북쪽과 동쪽 양쪽의 민물 공급원이 줄어들면서 남캘리포니아의 도시로 들어가는 물의 가격은 1년에 거의 10%씩 올랐다. (p.317-318)
지적자본론 / 마스다 무네아키 / 민음사
사람들이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이유는 그쪽이 편하기 때문이다. 행복이 목적이라고 하지만 그 행복이 무엇인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자문하고 고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간단히 그 크기를 측정할 수 있는 금전 쪽으로 목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획을 생각해 내는 것과 '보고—연락—상담'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어려울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기획이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쉬워 보이는 '보고—연락—상담'을 일의 목적으로 삼는 사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할 뿐 줄어들지 않는다.
그리고 이 도식은 '관리'와 '자유'에도 적용할 수 있다. 히와타시 시장과의 대화에서도 언급하겠지만 사실 자유롭게 존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렵고 힘들다. 관리받는 쪽이 훨씬 편하다. 그래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자유를 내던지고 관리받는 길을 선택하려 하는데, 그런 사원들에게 진정한 기획 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나는 사원들에게 자유를 요구한다. 사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려운 길이지만 그 길의 끝에는 커다란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기획이 실현되었을 때의 감동은 그 정도로 거대한 것이다. (p.19-20)
"그렇습니다. 사실은 '편하다.'라는 단순한 감각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물리적인 장소에 사람을 모으려면 인터넷상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바람이나 빛, 그리고 그것들이 만들어 내는 '편안함'이지요.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을 찾은 방문객 중 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p.29)
그렇기 때문에 '지적자본론'이다. '서적 자체가 아니라 서적 안에 표현되어 있는 라이프 스타일을 판매하는 서점을 만든다.'라는 서점의 이노베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의 지적자본이 필요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제안 능력이 회사 내부에 축적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척도가 된다. (p.74)
지적자본을 축적한다는 목적으로 '○○ 종합 연구소' 따위의 조직을 구성하는 회사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그 자체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 연구소가 축적한 지적자본이 해당 회사의 무기가 되어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연구소는 데이터베이스에 데이터를 단순히 저장만 할 뿐, 현장에 데이터베이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난센스다. CCC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분사화를 결단한 것이다.
(…)
이제 그 단계를 거친 CCC의 모든 사원들은 데이터베이스와 직접 연결되어 그것(지적자본)을 활용해 고객 가치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획을 내놓아야 한다. 따라서 조직은 지적자본과 현장이 분리되는 일 없이, 휴먼 스케일에 기초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p.132-133)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 이유리 / 한겨레출판
이 시기 여성복은 몸을 옥죄고 행동을 제약하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슈미즈, 코르셋, 여러 겹의 패티코트, 스타킹 등 열 가지가 넘는 속옷을 챙겨 입은 뒤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긴 드레스를 걸친 여자. 그녀 혼자 뭘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무겁고 꽉 끼는 의복 탓에 여성은 일거수일투족을 타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코르셋을 착용한 여성은 몸을 앞으로 숙일 수 없기에 다른 이에게 신발 끈을 묶어달라고 해야 했다.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며 남성이 주워줄 때까지 부채만 파닥거린 것도 같은 이유다. 옷을 입고 벗는 일조차 혼자서는 불가능해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여성들은 순종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상을 자연스레 학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우리가 옷을 입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옷이 우리를 입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가부장제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p.20-21)
⟪화가의 아내⟫라는 책이 있다. 긴 세월을 화가인 남편과 동고동락하며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버팀목이 된 아내들의 이야기를 엮은 책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사실이 있었다. 각 챕터마다 등장하는 화가들의 삶과 작품은 모두 개성 있고 많이 다른 반면, 아내들의 삶은 거의 다 비슷했다. 나중에는 모든 이야기가 뒤섞여 이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저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헷갈릴 정도였다.
예술가는 한 자루의 촛불과 같아서 주변의 모든 산소를 다 빨아들인다고 했던가. 남성 화가의 아내, 연인, 뮤즈인 여성들은 대부분 음지식물처럼 그의 그늘에 살면서 말없이 뒷바라지하다 소멸했다. (p.42)
실제 대부분의 '진짜 여자아이'들은 그렇게 수동적이지도, 무표정한 인형 같지도, 그리고 순진과 도발을 넘나드는 모습도 아니다. 미국의 유명 생활용품 브랜드의 캠페인 영상이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어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고 "여자아이처럼 달려보라"고 주문했더니 그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두 팔을 흐느적거리면서 뛰었다. 그렇다면 진짜 여자아이들에게 같은 주문을 했을 땐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편견과는 달리 그들은 '여자아이답게' 씩씩하고 힘차게 뛰어다녔다.
우리 집 소녀에게 한번 주문해봤다. "어린이 모델이 됐다는 상상을 해보고, 포즈를 취해줄래?" 그랬더니 아이는 양손으로 허리를 힘차게 잡은 후,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함박웃음을 지었다. 현실 속 '진짜 여자아이'의 모습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p.86-88)
호주의 코미디언이자 희귀 유전병 '불완전 골형성증'을 앓은 장애인 스텔라 영(Stella Young)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장애인의 고군분투가 비장애인들에게 동기부여용 휴먼스토리로 소비되는 현상을 '감동 포르노'라고 비판하며 한 말이다. 이 일침은 예술가의 그림에도 유효하다. "나의 가난, 내 삶의 비참함, 내 몸에 새겨진 고통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가 아니다"라고. 그것은 피해자의 대상화이며, 대의를 가장한 관음이며, '고통 포르노'일 뿐이라고 말이다. (p.117)
프랑스의 화가 베르트 모리조가 유독 실내 풍경을 많이 그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서 빛을 관찰하고, 빛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를 화폭에 담는 인상주의 운동에 참여한 선구적인 화가였다. 하지만 모리조는 다른 인상파 화가와 달리 화폭에 가족이나 주변 여성, 아이들의 모습 등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그릴 수 있는 일상을 많이 담았다. 모리조가 '가정적인 이미지'를 자주 그린 이유를 흔히 얘기하듯 '여성 특유의 모성애'와 '섬세함'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게 모리조의 선택일까? 아니, 그것은 사회의 강요였다. 왜냐하면 여성인 모리조는 마네처럼 술집에서 독주를 마시며 사람을 관찰하거나, 모네처럼 보트를 타며 여행하거나, 드가처럼 한밤의 공연장을 드나들거나, 르누아르처럼 강변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리조 역시 샤프롱 역할을 맡은 어머니에 의해 미술관과 화실 안에서 감시받았다. 새장 속의 새처럼, 그녀는 날개가 있음에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시간만큼 자유롭게 머무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모리조는 자신에게 가능한 방식으로 예술적 실험을 위해 분투했다. (p.195-196)
아무튼, 메모 / 정혜윤 / 위고
나는 늘 말한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살기에도 시간과 힘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세네카가 말했어.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그런데 이 말을 꼭 속으로 뭔가를 억누르면서 한다. 이건 말뿐이고 현실 세계의 나는 늘 삶을 낭비한다. 늘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앗긴다. 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한다. 나에게도 뇌라는 것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데 쓰고 싶고,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나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겪는다. 더 슬픈 것은 정열을 기울인 많은 일이 무의미로 끝났다는 점이다. 열정적으로 무의미한 일을 하느라 최소한 다른 무의미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정도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러나 열정적이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동시에 무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 (p.25)
어쨌든 사회 속에서의 삶이 수동적일수록 능동적인 부분을 늘릴 필요가 있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이 사회와는 조금 다른 시간―고정관념, 효율성,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개인이 자기 자신으로 사는 사적 자유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사회가 힘이 셀수록 그저 흘러가는 대로, 되는 대로 가만히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 필요가 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p.45)
세상만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어두움이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기만 아는 것들―거의 이해하는 것이 없다는 것, 실수했다는 것, 후회스럽다는 것, 말만 앞선다는 것, 유치하다는 것, 속이 좁다는 것. 수시로 자기비하의 유혹에 빠진다는 것, 거의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칭찬에 중독되었다는 것, 중요해 보이고 싶어 한다는 것. 무조건 이기고 싶어 한다는 것, 돈을 심하게 밝힌다는 것, 남과 비교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 비판을 감당 못한다는 것, 지나치게 방어적이라는 것,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한다는 것.
우리 안의 어두움이 다 나온다면 세상은 인류 멸망의 아침처럼 어두워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슬퍼할 줄 아는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이 씁쓸함은 여행으로도 쇼핑으로도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둠 속에서 함께할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쓰다듬을 머리카락 같은 것, 파고들 품 같은 것, 나눌 체온 같은 것, 이를테면 온기 같은 것. 우리 마음의 밝음이란 게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부드러운 밝음, 마치 어려운 용서와 화해처럼 부드럽고 좋은 것, 그것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와 절대로 뗄 수 없다. (p.46-47)
꿈이란
기쁘게 이 세상의 일부분이 될 방법을 찾는 것이다.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 그런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꿈은 왜 필요할까
어떤 사람이 멈추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면 그것은 꿈 혹은 진실 때문일 것이다. 꿈은 우리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도록 도와준다. 마음이 흔들릴 때 "나는 꼭 이 일을 해야 해!"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가장 좋은 단어가 꿈이다. 공허하지 않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꿈을 따라가는 삶이다. (p.86)
엄청나게 아름다운 복근을 가진 뉴욕시 소방관 이야기를 아는데 길게 못해서 아쉽네요. 그 소방관은 하루도 쉬지 않고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더운 날 가장 더운 오후 시간을 골라서 호숫가를 달렸어요. 그 덕에 몇 년간이나 뉴욕시 미스터 소방관으로 뽑혔는데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자기애 때문도 아니고 미스터 소방관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었어요. 그의 꿈은 고층 건물 소방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어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지 않을 때 뛰어 올라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예요. 건강하게 시작하고 싶어서요. 한두 번밖에 안 해서 문제지만 저에겐 일을 시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의식입니다. 내가 내 몸과 가장 잘 지내는 순간은 내 몸을 어디에 쓸지 알고 있을 때고, 나는 내 몸과 함께 할 일이 있습니다. (p.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