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만나는 헌법 / 차병직 / 창비
종합해보면 이렇습니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 조직과 작용의 기본 원리 및 국가기관의 권한을 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다.” 권력기구나 통치기구(조직)는 비슷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길게 표현하나 짧게 표현하나 헌법은 ‘국가권력기구에 관한 것과 기본권 보장에 관한 것으로 구성된 최고법’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을 더 줄여본다면 앞부분과 뒷부분 중 어디를 생략해야 할까요? 헌법은 국가권력기구에 관한 최고법이라고 해도 맞고,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고법이라고 해도 맞습니다. 둘 중에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누구나 기본권 보장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줄여서 정의할 경우 ‘헌법은 기본권 보장을 위한 최고법’이라고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앞에서 ‘헌법은 국가권력기구의 조직과 권한의 배분에 관한 법’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저 혼자만의 독단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헌법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합니다. 왜냐하면, 국가권력기구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기 때문입니다. 기본권 보장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지요. 기본권 보장은 당연하지만, 권력기구의 권한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내버려두면 어떤 폭력을 행사할지 모릅니다. 국가권력은 그 권한을 엄격히 정하고 한계를 분명히 그어놓아야 그 목적인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작동하고 범위를 벗어나 엉뚱한 길로 가는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위태로운 것입니다.
기본권 보장은 목적이므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입니다. 반면 국가권력은 목적 달성을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목적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변함이 없지만, 국가권력은 정확하게 정하지 않으면 혼란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헌법을 가장 짧게 정의한다면, ‘국가권력에 관한 최고법’이 되는 것입니다. (p.18-19)
우리가 헌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근대 헌법부터입니다. 근대 헌법이란 근대국가의 헌법입니다. 여기서 근대의 의미에 대한 탐구는 생략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헌법과 관련해서, 근대국가는 주권혁명 이후의 국가라고 정리합니다.
주권은 최고 결정권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국가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예전에는 인간사회의 주권이 신에게 있다고 믿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권을 가진 그 신은 인간사에 일일이 직접 간섭할 수 없으니 대신 수행할 사람을 지정했습니다. 바로 군주입니다. 왕·황제 등으로 불리던 존재들입니다.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는 뜻에서 왕권신수설이라는 이론도 등장했지요.
군주가 가지고 있던 주권이 모든 국민에게 돌아온 사건이 주권혁명입니다. 군주가 주권자일 때 국민은 군주의 통치 대상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국민이나 인민이라고 하지 않고 신민이라고 했지요. 그런데 한순간에 모든 것이 역전된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는 것인데, 그런 사상을 국민주권주의라고 합니다. 그 결과를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동일성’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통치하는 사람과 통치당하는 사람의 구별이 없어졌다는 말이지요. 실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혁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권자라면 그 주권을 어떻게 행사할 수 있을까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안된 제도가 대의제입니다. 대의제는 전체 주권자가 동시에 모여 주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대표자를 뽑아 대신 행사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의회제도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권한을 의회에만 맡기면 위험할 수 있지요. 의회가 결정한 내용을 집행하는 기관은 따로 설치해 행정부를 만들었습니다. 그 모든 과정과 결과를 포함해 옳고 그름을 따져 질서를 잡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기관은 사법부입니다. 주권을 제대로 실행하려면 권력분립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것을 바탕으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요.
이렇게 국민주권주의·대의제·권력분립·법치주의 등을 기본으로 하는 헌법을 근대 헌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의제·권력분립·법치주의 등은 통치기구를 어떻게 정하고 권한의 배분을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관한 것이지요. 그 모든 권력은 국민주권에서 나옵니다. 권력기구의 존재 이유는 국민주권의 실현에 있습니다. 국가권력은 국민의 주권에서 나오고, 국가권력의 작용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으로 귀결됩니다. 이것이 단순화한 근대 헌법의 원리입니다. (p.23-25)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했지만 1952년 헌법에서는 국민의 직선제로 바꾸고 국회도 양원제로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비상계엄이 선포된 가운데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위헌·위법의 개헌이었습니다. 이후 이승만은 장기 집권을 노렸습니다. 이승만(헌법 공포 당시의 대통령)에 한하여 중임 제한을 없애고 영원히 대통령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국회에서 한표 차이로 부결됐습니다. 당시 재적의원 203명 중 3분의 2 이상이 되려면 최소 136표를 얻어야 하는데 찬성이 135표였습니다. 그런데 여당에서 203명의 3분의 2는 정확히 135.33…인데 이를 반올림하면 135가 되니 135표도 가결이라고 우겨 전날 국회에서 부결된 것을 다음날 번복하는 경악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사오입 개헌’이라는 별칭이 붙은 1954년의 개헌은 역시 그 자체로 위헌이었습니다. 그렇게 계속 권력을 차지한 이승만이 85세가 되던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또 당선돼 무려 네번째 임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곧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었고, 4월 19일 전국의 학생을 중심으로 시위가 일어나 이승만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야 말았지요. 바로 지금도 헌법 전문에 기록되어 있는 4·19혁명입니다. 혁명으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린 두 달 뒤 의원내각제로 정부 형태를 바꾸는 개헌을 했습니다. 그 해는 계속 정치적 혼란으로 시끄러웠는데, 11월에는 3·15 부정선거 관련자들을 소급해 처벌할 근거를 담은 개헌을 또 한 차례 했습니다. (p.50-51)
우리 헌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음에도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1987년까지 우리 헌법의 평균 수명은 겨우 4.3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후 지금까지 38년 동안 개헌 없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개헌을 제외하고는 거의 다 위헌이나 위법적인 것이어서 체면이 서지 않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우리 헌정은 어떻게 될까요? (p.53)
제1조 1항은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국과 공화국을 합친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인데, 단순한 다수결에 의한 결정 방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문제를 채점하듯이 다수결로 결정하면 너무 간단할 것 같지만, 그렇게는 국가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수가 바뀌지 않으면 다수의 독재가 되고 한번 소수는 영원히 소수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언제나 소수의 의사를 존중하는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를 유지시키고 성숙하게 만듭니다. 소통과 협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민주국가란 근본적으로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국민 전체의 의사에 따르는 것이니 다수의 지배가 될 수밖에 없지요.
공화국 역시 소수가 아닌 다수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 즉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주권이 군주에게 있는 나라는 군주국, 참주국이라 부르지요. 군주국 중에서도 군주 혼자 전권을 휘두르는 나라는 전제군주국, 영국같이 군주가 존재하되 헌법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나라는 입헌군주국이라고 합니다. 소수의 몇 사람이 공동으로 통치하는 나라는 과두국가, 귀족국가, 계급국가라고도 합니다. 결국 민주국이나 공화국이나 거의 같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 국민주권주의를 명시한 제2항도 제1항과 같은 말의 반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p.55-57)
헌법을 따르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헌법을 잘 지키라는 말일 테지요. 우리는 어떻게 헌법을 지키나요? 어떤 조항을 어떻게? 헌법을 어기지 않으면 반사적으로 지키는 것이 될까요? 길을 건너는데 횡단보도가 멀리 있어 그냥 무단횡단 했다고 합시다. 그 행위는 도로교통법 위반에 해당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헌법 위반도 되는 것일까요? 도로교통법은 헌법질서 범위 내에 포함되는 것이니 도로교통법 위반은 저절로 헌법 위반도 된다고 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무단횡단은 도로교통법 위반이기는 하지만, 헌법 위반은 아닙니다. 헌법은 국민 개개인이 준수하라고 만든 규범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헌법은 국가권력기구가 지키도록 만든 규범입니다. 헌법의 존재 목적은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국가를 잘 유지해야 하며, 그런 이유로 주권자들이 국가기관에 권한을 준 것이고, 그 내용을 정해놓은 것이 헌법입니다. 따라서 국회나 정부, 법원 같은 기관이 헌법을 준수해야 할 수범자들이지만, 실제로는 구체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이 해당되겠지요. 대통령, 국회의원, 판사나 검사는 개인이 국가기관이기도 합니다. 그들이 헌법을 지켜야 할 수범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국민 개개인은 무엇일까요? 국민은 헌법의 수호자입니다. 국가기관이 헌법을 잘 지키나 감시하면서 헌법질서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권자의 의무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말에서 ‘지키다’는 준수한다는 의미와 보호한다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기관은 앞쪽의 의미에서, 국민은 뒤쪽의 의미에서 헌법을 지켜야 합니다. (p.69-71)
헌법재판의 종류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는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의 다섯 가지 헌법재판이 있습니다. 국회가 만든 법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가리는 것이 위헌법률심판입니다. 일반 재판을 하다가 어떤 법률이 위헌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 법원의 결정에 따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제청하여 이뤄지는 헌법재판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공무원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여 그대로 둘 수 없을 때 파면할 것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절차가 탄핵심판입니다. 정당해산심판은 정당을 강제로 해산시킬 수 있는 제도입니다. 어느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헌법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힐 경우 정부가 그 정당을 해산시켜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청구하면 심판이 시작됩니다. 정부의 대표로 대통령이 청구하지요. 실제로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4년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결정을 했습니다. 다음으로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서로 권한에 관해 분쟁이 생기는 경우, 어느 것이 어느 기관의 권한이라는 것을 판단해주는 작용이 권한쟁의심판입니다. 마지막으로 헌법소원은 일반 국민들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입니다. 국가기관의 권한 행사로 인해 개인이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을 침해당한 경우 개인의 청구에 의하여 심판 절차가 이뤄집니다. 누가 고소를 했는데 검사가 불기소처분을 하여 피의자를 처벌하지 않은 경우, 그로 인하여 자신의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일반 법원은 지방법원부터 대법원까지 심급별로 수많은 법원이 전국에 배치되어 있지만, 헌법재판소는 오직 하나이며 재판부도 하나입니다. 일반 법원의 판사는 대법관을 제외하고 모두 법원조직법에 따라 일정한 절차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하는데,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판사는 전국에 수천명이 근무하는데, 헌법재판관은 오직 9명뿐입니다(사건에 관한 조사나 연구를 통해 헌법재판관을 돕는 헌법연구관들이 있습니다). 법원의 재판 장소는 법정이라고 하고, 헌법재판소 재판 장소는 심판정이라고 부르는 것도 다른 점이군요. (p.99-100)
토볼트 이야기 / 로베르트 발저 / 민음사
이것은 심각한 태만의 죄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맞서는 엄청난 악한이다. 인간이 게으름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죄를 짓는지를 나는 내 경우에서 본다. 나는 항상 내게 다가와야 할 무언가를 기다린다. 만약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모두가 그렇게 다가와야 할 무언가를 기다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코 아무것도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누구를 위해서도 기다리는 그 무언가는 오지 않는다. 한 사람이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는 것은 결코 오는 법이 없다. 그래서 모두가 고대하는 것은 결코 모두에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기에 큰 죄가 있다.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다가가기보다, 누군가가 내게 친절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이것이 진정한 게으름이자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교만이다. (p.7)
한 사람이 산책을 나섰다. 그는 기차에 올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도 있었겠지만, 그저 가까운 곳으로 걷고자 했다. 그에게는 가까운 곳이 멀리 있는 중요한 곳보다 더 의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게 여겨진 것이다. 이 정도는 너그러이 봐줄 만하다. 그의 이름은 토볼트였는데, 그가 실제로 그렇게 불렸건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불렸건, 어쨌거나 그는 주머니에는 돈이 조금밖에 없었고 가슴속에는 쾌활한 용기를 품고 있었다. 그렇게 그는 아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너무 빠른 속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서두르는 것을 경멸했다. 돌진하듯 급하게 움직이면 땀에 젖게 될 뿐이었다. 그럴 필요가 있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고, 주의 깊게, 점잖고, 절도 있게 나아갔다. 그가 내딛는 걸음걸음은 신중하고 깊이 숙고한 것이었으며 그 속도에는 지켜볼 만한 편안함이 깃들어 있었다. 태양은 아주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고, 이러한 사실에 토볼트는 내심 진정으로 기뻐했다. 물론 그는 비가 왔어도 흔쾌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면 우산을 펼쳐 들고 비를 맞으며 산뜻하게 행진을 이어 갔을 것이다. 심지어 그는 조금은 습기를 그리워하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태양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태양에 동의를 표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거의 그 어떤 것에도 트집을 잡지 않는 사람이었다. (p.27-28)
토볼트는 오래된 모든 것, 써서 낡아 버린 모든 것을 사랑했다. 때로는 곰팡이가 슨 것마저 사랑했다. 예를 들어, 그는 노인들을, 멋지게 닳아 버린 나이 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이로 인해 토볼트에게 정당한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이지 아름다운 경건함의 표현이니까. 그렇지 않은가? 그러고는 그는 황홀하고 사랑스러운 푸른 하늘 속으로 계속 걸음을 옮겼다. 오, 하늘은 얼마나 푸르렀던가, 그리고 구름은 얼마나 눈처럼 하얗던가. 구름과 하늘을 줄곧 바라보는 일은 토볼트의 행복이었다. 그는 도보 여행하기를 무척 좋아했다. 왜냐하면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차분히, 풍부하고도, 자유롭게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차를 타는 사람은 정확히 기차역이 아니고서는 어디에서도 선 채로 머물러 있거나 멈추어 설 수 없다. 역에서는 대개 우아하게 연미복을 차려입은 종업원이 혹시 맥주 한 잔 하시겠느냐고 물어 올 것이다. 토볼트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의 두 다리로 걸을 수만 있다면 맥주 여덟 잔 정도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두 다리가 그를 기쁘게 해 주었고, 걷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고요한 만족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이다. 방금 한 아이가 그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토볼트도 그 아이에게 ‘안녕’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걸어가면서 오랫동안 이 사랑스러운 꼬마 아이를 생각했다. 자신을 몹시도 예쁘게 쳐다보면서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던, 그리고 그에게 친근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해 주었던 그 아이를 말이다. (p.28-29)
내게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내가 닦던 램프들이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모험적이고, 기이하며, 범상하지 않게 보였던 것은 내가 정성껏 광을 내야 했던 바닥이었다. 이를테면 나는 언제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두운 광택이 나는 바닥의 한 부분 위로 노란 햇살 한 점이 아른거리던 그 모습을 말이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내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느꼈던 것들이다.
진정한 하인은 조용하고 과묵하며 부지런하고 겸손하다. 그는 예의 바르게 ‘안녕히 주무십시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건넬 뿐, 진기한 경험을 갈망하지 않는다. 하인은 자신의 단순한 영혼에 아무런 가치도 없는 독특하고 자극적인 사건보다 차라리 후한 팁을 더 바랄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누구나 중요한 경험을 이성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동경하기보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현재까지도 일상의 평안과 안식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p.36)
그 밖에도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 단순한 착상, 단순하고도 유희적인 생각을 품은 채 이리저리 돌아다녔는데, 이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서 거의 확고한 정신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바로는, 저는 이 점에 관해 매우 섬세하고 영리하며 명망 있는 신사와 열띤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친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로 미친 것일 수도 있는 그 정신이 언젠가 제 머릿속에 들어오더니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생각이란 현재화되고 상징화되기를 갈망하는 법이죠. 말하자면, 살아 있는 생각이란 언젠가는 꼭 실체를 가진 생생한 현실로 변모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당신은 하인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 아닌 듯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매우 영리하고 섬세한 신사가 제게 말했고, 저는 이 말에 대답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이 꼭 적합해야 하나요? 저 역시 당신과 마찬가지로 제가 전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는 이 기이한 착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렇게 해야만 해요. 왜냐하면 여기에는 내적인 명예가 있고, 이 내적인 명예를 만족시키는 것은 극도로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오래전부터 실행에 옮기기를 바라 왔던 것을 저는 언젠가 완수해야만 해요.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그런 질문은 제게 부차적인 문제예요. 그 일이 어리석은지 현명한지는 첫 번째 문제와 마찬가지로 제게 부차적으로 보이는 질문이에요. 천 명의, 어쩌면 수천 명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다시금 그 생각이 떠나가도록 내버려 두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에겐 생각을 실현하는 일이 너무 번거롭고, 너무 불쾌하고, 너무 한심하고, 너무 어리석고, 너무 힘들거나 너무 쓸모없게 여겨지기 때문이에요. 제 생각에 실행이란 그것이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미 좋은 실행이고, 그래서 건강하고 올바른 것입니다. 실행의 성패 여부는 재차 말하지만 제게 부차적인 문제예요. 결정적이고 중요하며 의미 있는 것은 용기와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고, 계획한 일을 어느 날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저는 지금 제 생각을 실현하고자 해요. 왜냐하면 실현하는 일만이 저를 만족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에요. 영리함은 어떤 경우에도, 적어도 일시적으로라도 저를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해요. 돈키호테는 그의 광기와 우스꽝스러움 속에서 진정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던가요? 저는 한 순간도 이 점을 의심할 수 없어요. 별나지 않은 삶도, 이른바 광기가 빠진 삶도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슬픈 몰골의 기사가 그의 정신 나간 기사도 정신을 실현했다면, 저는 제 하인 정신을 실현하려고 해요. 이 생각이 기사도 정신보다 더 미친 생각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그만큼 미친 생각임은 확실합니다. 당신 입에서 나온 현명한 가르침이 저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혹자가 말하길 실제로 경험해 보는 것이 머리로 아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이 말을 따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행동과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가르침을 얻고 싶다고 말이에요.” 저는 이런저런 말로 신사에게 대답했고, 그는 제가 발설하고 싶었던 그 말들에 대해 무척 세련되고 재치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p.43-45)
제가 평범한 하인으로서 마법 같은 식사 장면을 주의 깊게 바라볼 때면―저에게는 언제나 짧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기에, 그럴 기회는 충분했습니다―저는 마음속으로 속삭이듯 혼잣말을 하곤 했습니다. 저 식탁에 앉아 저마다의 역할을 연기하는 이들 중 누구와도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다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마시는 이들을 그저 관심 있게 바라보는 일이 멋지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만약 저 자신이 그 즐거움과 행복에 참여하게 된다면, 제가 가장 고귀하다고 여기는 아름다운 전체적인 조망을 완전히, 또는 적어도 절반은 잃어버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는 항상 제 가치, 지위 그리고 삶의 즐거움을 인식했고, 제가 구현하는 이 소박한 존재가 대단히 기쁘게 느껴졌습니다. 분명 환한 빛보다는 희미한 그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그늘을 무척 자애롭게 여기며, 그 안에서 심오한 경향에 따라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 온 세계로 되돌아간 듯, 가장 안전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보호를 받는다고 느낍니다. 저는 언제나 찬란한 웅장함과 광채를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제 자신은 예전부터 소박함으로 가득한 조용한 배경으로 물러나, 그곳에서 밝게 빛나는 광경을 기쁜 눈으로 들여다보고 우러러보기를 원했습니다. (p.6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