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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세계 / 켄 베인 / 다산북스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은 기억력 증진에 불과합니다. 또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은 기계 장치의 작동 원리를 배우는 일일 뿐이죠. 모터를 조립하고, 파이프를 이어 붙이고, 여러 화학물질을 섞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 말입니다. 이 같은 성장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옛 방법에 아주 능숙해지는 게 목표입니다. 또 어떤 학생들에게 성장이란 타인의 수준이 자기보다 얼마나 형편없는지 추정할 수 있는 숭배 체제 같은 어떤 ‘체계’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패거리’에 소속돼 지시를 내리고, 서로서로 등을 두드리며 격려하고, 은밀한 내실에서 시가를 피우며 중요한 위원회에 소속되거나 하죠. 사이비 화가, 음악가, 배우, 예언가, 연설가, 정치인 같은 존재가 되는 겁니다. 여기저기 이름을 흘리고 다니면서 자신을 이런저런 지위로 포장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반면 극소수의 학생들에게 성장은 ‘정신의 역동적 힘’을 발견하는 일이었다. 자신을 발견하는 것, 즉 자신이 누구이며 자기 자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성장이라는 의미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베이커 교수는 인간 역사를 통틀어 신체나 삶의 경험을 똑같이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내 두뇌와 똑같은 두뇌를 가진 사람은 없다. 나는 고유한 존재다. 나는 다른 누구도 볼 수 없는 견지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나만의 고유한 정신 능력을 발휘하고 싶다면 먼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활동하는지 파악해야만 한다. (p.18-19)

 

 잠시 다른 세상을 상상해 보자. 그 세상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는 모든 것에서 심오한 의미를 발견한다. 또한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는 것의 함의와 응용에 관해 생각할 줄 안다. 이 새로운 우주에서 배움은 사람들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바꾸며, 그들을 더 나은 문제 해결자이자 더 창의적이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책임감이 강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으로 변모시킨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실수를 겁내지 않고, 질문과 아이디어로 가득 찬 상태로 새로운 영역을 쉽고 만족스럽게 탐색해 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 인정할 줄 아는 겸허함도 갖추었다. 이 세계에서 배움은 늘 모험이다. 몇 가지 사실 정도는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필요할 때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그 방법만큼은 알고 있다. (p.27)

 

 “내가 아는 수많은 사람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베이커 교수는 단언했다.
 “그들은 늘 똑같은 개념, 주변 환경을 보는 똑같은 방식, 구태의연한 답, 감정적이고 시각적으로 늘 똑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었어요. 그들에게 변화란 전혀 없었습니다.” (p.30-31)

 

 베이커 교수는 학생들이 자신의 공부를 방해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공부하기 싫은 자신의 저항 상태에 관해 글을 쓰라고 했다. 첫째, 평소 습관을 탐색해 볼 것. 둘째, 과거에 했던 창의적인 일을 생각해 보고, 그 일을 하기 전에 무슨 일부터 했는지 자문해 볼 것. ‘몸 상태나 기분은 어땠는가? 편히 쉬고 있었는가? 산책 중이었는가 아니면 창밖을 보고 있었는가?’ ‘아무 방해도 없는 폐쇄된 공간이 필요했는가 아니면 열린 공간이나 특정 장소에 가야 했는가?’ 셋째, 창의적인 일을 하는 자기 모습을 상상으로 시각화한 다음 그 일을 할 것.
 “나는 아이스크림부터 먹어야 했어요. 윌리엄 포크너는요.”
 베이커 교수가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말을 꺼냈다.
 “자주 나무를 탔어요. 또 몇 시간씩 신발을 벗은 채 동네 상점의 잡지 매대 옆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죠.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란 작품은 포크너가 미시시피대학교에서 난롯불을 지피며, 외바퀴 손수레를 뒤집어 책상 삼아 다 썼다고 하죠.” 포크너가 했던 대로 하자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누구이며 내 정신은 어떻게 작용하는지, 무엇이 내 정신 작용을 방해하는지 탐색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베이커 교수의 강의는 근본적으로 학생들 자신을 주제로 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공부나 다른 활동을 할 때 자신이 반응하는 방식을 탐색하며 자기 자신을 더 파악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스스로 책상 앞에 앉는지도 알 수 있다. (p.32-33)

 

 평범한 학생들은 역사, 음악, 수학, 글쓰기 등 무엇이 되었든 못한다고 일찌감치 포기한다. 학교 교육은 빠른 대답에 보상을 제공한다. 먼저 손을 들수록 탁월한 학생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정신의 역동적 힘 그리고 긴 시간에 걸쳐 세상을 바꾸는 것들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전한다. 그래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고, 헌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달려들어 반복하며 씨름하기 전까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p.42-43)

 

 여전히 많은 사람이 학습 의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좋은 독서법이나 공부법을 가르치기만 하면 학생들이 그 방법에서 배운 전략들을 활용하리라 믿는 것이다. 이는 ‘우수한 학생이 되는 법’을 다룬 수백 권의 책을 살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접근법이다. 이러한 공부법 관련 책들은 의도나 동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공부 요령과 학업 성공 비결만을 소개한다. 물론 읽기, 글쓰기, 계산 능력도 훌륭히 길러야 하고, 공부하는 데 노력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깊이 있게 배우고자 하는 의도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공부의 기술’을 익히더라도 기대한 성과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p.71-72)

 

 학생들을 전략적·피상적 학습법으로 이끄는 요인은 복합적이다. 전략적·피상적 학습법을 벗어나 심층적 학습법을 활용하고 싶다면 심층적 학습법의 힘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전략적·피상적 학습법으로 이끄는 요인 중 일부는 학교에서 비롯된다. 가령 아무 연관성 없는 이런저런 사실들만 인지하는 시험을 계속 접하다 보면 의미에 대한 탐구가 아닌 고립된 사실들의 암기가 인생의 목표라는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당연하다. 교수나 책이 말하는 내용을 단순히 복기하게만 하는 서술형 시험은 심층적 학습법이 아닌 피상적 학습법으로 이끈다. 나의 전 동료는 이 같은 경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우리 대학에 착륙해 대학 교육의 목적을 파악한다면 아마 서술형 시험지 채우는 법을 익히는 거라고 할 걸요.”
 공부할 내용이 너무 많아 공부량만을 강조하면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깊이 숙고할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다. 단순히 많은 양의 자료를 빠르게 습득하느라 서두르게 될 뿐이다. 엄청난 양의 과제를 요구하는 강의는 학생들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얄팍한 지름길을 찾을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게다가 학생들의 생활은 공부 말고도 다른 할 일들로 빼곡해서 애초에 깊이 있게 공부할 시간도 부족하다. 치솟는 학비에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도 많아서 많은 학생이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 외부에서 오랜 시간 일도 해야 한다. 경제적 상황 때문에 하루빨리 졸업장을 받아 취업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 학생도 많다. 물론 그렇다고 학교에만 책임을 전가할 일은 아니다. 학교라는 기관은 더 넓은 사회에 자리하고 있다. 끊임없이 피상적인 것들만 강조하면서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지식보다 명예와 인정을 중시하도록 유도하는 범인은 바로 그 ‘사회’다. (p.74-75)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학교라는 제도권 기관에 오면 학교는 학생들의 내재적 동기를 죄다 뭉개버릴 만한 외적 동기(보상)를 가지고 학생들을 압도한다. 학생들은 저학년 때부터 ‘금색 별표’나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자기 주도권이 상실되는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해 학생들은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독립적인 인간이라는 인식이 빠져나가면서 그들의 흥미는 해야 할 일과 과제의 홍수 속에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진다. 자신의 배움을 주도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어린 시절 호기심은 이렇게 시드는 경우가 다반사다.
 제도권 교육의 구조는 이러한 호기심 퇴화 과정을 강화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흥미를 느끼거나 그저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려 할 때 또는 타인이 통제한다는 느낌 없이 답이나 해결책을 찾으려 할 때 심층적 학습법을 활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육 과정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주도하지 못하므로 학교 교육의 현실과 심층적 학습법을 촉진하는 조건 사이에 격차가 발생한다. 물론 학생보다 교사가 가진 지식이 더 많고, 학생들이 평소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이유로 교사가 질문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에서는 전략적·피상적 학습법이 더 조장될 뿐이다. (p.76-77)

 

 스펠만대학의 신입생은 ‘아프리칸 디아스포라(African Diaspora)’, 다시 말해 아프리카인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게 된 역사, 특히 노예가 되어 강제로 이주당한 역사를 배우는 1년의 커리큘럼을 의무로 수강해야 했다. 이 과정은 여러 역사 연구를 소개하며 자기 인식 능력을 심화시켰고, 매주 여러 편의 짧은 글도 작성했다. 작성한 글에 대해 풍부한 피드백을 받으며 글쓰기 실력이 향상되도록 돕는 과정이기도 했다. 티아는 이 과정에서 역사 과목에 점점 더 매료되었지만, 글쓰기 과목에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그녀는 D를 받았다.
 티아는 성적에 크게 낙담해 패배감에 빠졌다. 하지만 이 실패 경험은 티아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1년간 이어지는 과정이었기에 아직 한 학기가 더 남아 있었다. 물론 지금보다 더 나쁜 성적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봄 학기가 되자 티아는 교수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글에 짜임새가 없어 생각을 뒷받침하지 못한단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티아는 변했다. 스스로 배움의 주도권을 쥔 채 자신이 쓰는 글과 배우는 내용에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티아는 다른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성실하게 공부했다. 논지를 구성했고, 문장을 이리저리 다듬으며 수정했다. 자기 생각을 분석하며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자문했고,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캐물었다. ‘내가 여기서 가정한 게 뭐지?’ ‘어떤 개념을 사용하고 있지?’ ‘이 부분을 옮기면 어떨까?’ 매번 다른 시도를 할 때마다 기숙사에 있는 친구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어느 날 인터뷰 도중 차를 마시다 갑자기 생각난 듯 티아가 말했다.
 “저는 운이 아주 좋았어요. 공부에 관심도 많고, 기꺼이 저를 도울 마음까지 내어준 친구들이 많았으니까요.”
 그 후 몇 개월에서 몇 년이 지나며 티아는 점점 과학, 수학, 사회과학, 인문학, 언어, 예술 등 다양한 과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던 그녀는 수면과 잠재의식에 관한 연구에도 큰 흥미를 느꼈다. 서양 음악에 관한 강의를 수강하며 그 내용을 자신이 사랑하던 재즈 음악과 통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티아는, 어떤 음악이든 배우고 나면 음악 전체를 이해하는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티아는 곧 어떤 주제에 관한 큰 질문과 중요한 개념 그리고 스스로 한 통찰 사이의 연관성에 사로잡혔다. 티아의 기숙사 방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토론이 끝없이 벌어지는 세미나장으로 변모했다. 강의를 향한 티아의 관심과 열의는 나날이 커졌고, 공부할 때도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았다. 그녀는 늘 사전, 노트, 형광펜을 갖고 다녔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필요한 부분에 필기하며, 그 내용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했어요.” (p.98-99)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현실을 구성하고, 현실을 구성했던 그 정신 모델(패러다임)을 이용해 새로운 감각 정보를 받아들이며 이해한다. 그러지 않으면 장소를 이동하는 일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체로 자신이 만든 정신 모델에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다. 게다가 완전히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우리는 새로운 개념을 ‘오래된 상자’에 끼우려는 강력한 (그리고 대개는 성공적인) 습관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창문을 죄다 닫은 깜깜한 감옥에 갇힌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우리 뇌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즉 어떻게 현실을 구성해 가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만든 한계를 넘어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기존에 구축한 모델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이 일어날 확률은 매우 낮다. 다른 각도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것, 즉 이 새로운 통찰의 순간을 ‘예상 실패’라 부른다. 두뇌는 (스스로 만든 모델 때문에) 어떤 일의 특정 결과를 예상하는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발생하면 즉시 사고를 멈추고, 다시 이해해서 새로운 정신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기존 지식을 의심할 만큼 경천동지할 계시가 담긴 책을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교수가 학생들의 사고를 자극하기 위해 미리 설계해 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삶은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어요. 알아채기만 한다면 말이죠.”
 닐 디그래스 타이슨의 말이다. 우리는 자기 생각이 ‘도전장’을 받지 못하도록 피하는 일에 아주 능하다. 예상 실패가 그 영향을 제대로 끼치려면 충격적이고 과감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구축한 정신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왜 작동하지 않는지 그 이유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p.111-113)

 

 “우리 사회에서 이타적이기란 정말 힘듭니다. 지금 이곳에서 저는 가진 게 너무 많지만, 의료 현장에 나가면 제 삶은 소박하고 순수해집니다. 하지만 그걸 이타적이라고 할 순 없어요. 현장에 갈 때마다 제 기분이 좋아지니 오히려 이기적이라고 해야죠. 미국에서 수술하든 콩고에서 다리에 총을 맞은 소녀를 수술하든 제겐 그런 인간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설사 말이 통하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어요.”
 메리 앤은 자신의 생각과 정서적 욕구, 삶에 대한 접근 방식 등을 깊이 있게 성찰했다. 그녀가 자신의 주변에서 찾아 발전시킨 위대한 통찰은 결국 그녀가 어떤 사람이 되고 무엇을 하는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p.151)

 

 종래의 지적 능력을 바라보던 경직된 시각은 지능을 ‘사다리’에 비유했다. 일부는 태어날 때부터 사다리 꼭대기에 고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아래 여러 단에 있다는 식이다. 드웩 교수가 강조했던 유연한 시각(성장 마인드셋)도 이 사다리 은유에 속하지만, 누구나 사다리 윗단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보았다. 베이커 교수는 드웩 교수와는 다른 은유를 사용한다. 바로 ‘무수한 가지가 달린 나무’다. 나무야말로 우리가 인터뷰했던 사람들에게서 지능에 관해 가장 많이 들었던 비유였다. 나무의 모든 갈래와 가지는 고유한 존재로서의 개인을 비유한다. 나무의 모든 부분은 서로에게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이 가지가 저 가지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가지마다 다를 뿐이며, 각 가지마다 특별한 방식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며, 각 개인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표는 ‘능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미친 경주’가 아니라 ‘각 개인이 갖고 있는 특별한 관점을 키우는 일’이 된다. (p.180)

 

 우리는 레이나를 포함해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전적으로 그들의 공이라거나 인간에게 닥치는 가장 터무니없는 불의들을 극복할 힘이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레이나를 비롯해 그들이 지극히 음울하고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준 그들의 태도와 가치관, 실천 방법을 알고자 했다. 물론 그들에게 어느 정도 운이 따랐다는 사실도 부정하면 안 된다. 레이나는 적절한 순간에 사려 깊은 스승을 만났고, 대학 교육 시스템이 제공하는 광범위한 기회와 지원이라는 혜택을 누렸다. 게다가 알코올의존증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된 아버지조차 처음에는 더 나은 기회가 있는 땅으로 자녀들을 데려와 더 많이 배우라고 끊임없이 독려했다.
 레이나가 살았던 시절에는 기회와 절망이 공존했다. 그녀는 100년도 더 전에 발발한 전쟁으로 그어진 국경선 너머에서 태어났다. 국경선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했던 소녀의 소망을 꺾는 장벽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법을 어기며 딸을 미국에 데려오고 난 1년 후 미국 의회의 다수당이었던 민주당과 공화당 출신 대통령은 불법 이민자 300만 명에게 합법적으로 이민자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래서 레이나와 그녀의 가족은 영주권을 받았다. 그 순간부터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미국에서 살 수 있었다. 만일 레이나가 그때보다 10년만 더 늦게 태어났더라도 그녀의 삶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p.287-288)

 

 우리의 논의를 처음 촉발시켰던 질문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이 보여준 성공과 창의성에 대한 핵심으로 돌아가 보자. 창의적인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성공하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창의성을 발휘하거나 성공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 따로 집중해 생각할 것은 없다. 물론 자기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 중요하다. 이때 집중해야 할 것은 감정이나 창의적이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배우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변화시키고 싶은 것 혹은 스스로 갖고 있던 질문들, 자신을 움직이는 열정이다. 단기적 성공이나 유명해지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성공이나 창의성, 심지어 명성도 얻지 못한다. 우리가 연구했던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자신을 더 매료시킨 것을 세상에서 발견한 사람들이다. 성공과 창의성―때로는 명성―은 그저 그들이 당면한 문제나 과제에 완전히 몰입하며 만든 성과의 부산물이다. 무언가에 관심과 애정을 가져라. 그리고 그 열정이 당신의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가게 내버려 두어라. (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