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 / 윤지영 / 클
“입주민이 400명이면 우리는 그 400명을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 사건을 담당하면서 만난 아파트 경비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이후로도 아파트 경비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벌여왔지만 그들의 상황이 나아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입주민의 갑질 때문에 자살했다는 경비원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고용 형태는 점점 더 나빠져서 관리업체가 경비 업무를 따로 떼어 경비업체에 맡기고 경비원은 경비업체에 속해 일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고용구조가 다단계로 바뀌다 보니 입주자대표회의, 관리업체, 경비업체까지 모셔야 할 ‘갑’은 더 많아졌고, 누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질지는 더 모호해졌다. 경비업체가 가져가는 돈 때문에 경비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더 줄었다. 3개월짜리 근로계약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하는 일은 더 많이 늘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경비 말고도 ‘청소, 재활용품 정리, 주차 관리와 택배물품 보관 업무’까지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아파트 경비원의 임금은 으레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아파트라는 작고 일상적인 사회에서조차 계급이 존재한다. 입주민들이 쾌적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도록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일하는 경비원은 아파트 내 계급의 가장 말단에 있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해고될 것을 두려워하며 아주 적은 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계급의 꼭대기에는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입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관리비를 적게 내면서 더 많은 편의를 누리기를 바란다. 누군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평범한 이웃인 우리는 이 작은 계급 사회 안에서 어디쯤 서서 어디를 바라봐야 하는 걸까? (p.32-34)
속된 표현으로 ‘폰팔이’라고 불리는 핸드폰 판매노동자. 변변한 직장을 찾기 힘든 현실에서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는 직업. 그래서 주로 젊은 사람들이 ‘폰팔이’가 된다. 그런데 통신사-판매대행사(위탁판매사)-판매노동자의 다단계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판매노동자는 통신사와 판매대행사의 갑질에 피해를 입기 십상이다. 통신사의 가장 큰 목적은 가입자 수를 늘리고 유지하고 그래서 수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객을 응대하거나 판매를 책임지는 역할을 판매대행사와 판매노동자에게 떠맡긴다. 통신사는 판매대행사와 판매노동자가 지켜야 할 방대한 수칙을 정하고 이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불완전판매라고 단정하면서 그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판매대행사는 통신사에 잘 보여야 하니 반기를 들 수 없다. 동시에 고객이 내는 통신요금의 일부를 판매대행사도 나눠 갖기 때문에 판매대행사 입장에서도 고객을 유치하고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판매대행사는 각종 프로모션을 만들고 판매노동자에게 판매를 일임해서 무리한 판매를 유도한 다음 그에 따른 각종 민원은 판매노동자가 책임지도록 해놓았다. 판매노동자에게 말도 안 되는 민원이라도 다 들어주라고 명령하고, 그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고, 만약 판매노동자가 따르지 않으면 회사가 민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 비용을 판매노동자에게 청구할 수 있도록 미리 계약서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억지로, 무리해서 핸드폰을 팔아야 하는 ‘폰팔이’의 신세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53-54)
노동자에게 유리한 자료는 ‘그런 자료 없다.’ ‘폐기했다.’ ‘자료명을 정확히 말해라.’ 하면서 제출 거부하고, 직원들을 동원해서 허위 진술서를 쓰게 한 뒤 증거로 제출하고, 회사 직원을 증인으로 불러 위증시키고…… 노동자가 회사 상대로 소송을 하면 열 건 중 일곱 건은 이런 식이다. 청주방송은 이 수법을 노골적으로, 악랄하게 활용했다. 사실 이런 소송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입증 책임은 노동자에게 있는데 중요한 자료들은 회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회사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도 소송에서 불리할 게 없다.
이전에 내가 진행했던 사건 중 하나는 회사가 150여 명의 직원들로부터 ‘원고의 말이 틀렸다. 원고는 나쁜 사람이고 회사가 억울하다.’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 제출하기도 했다. 심지어 원고와 같은 일을 했던 동료들에게서 ‘우리는 프리랜서이지 근로자가 아닙니다.’라는 내용의 진술서를 받아 제출한 적도 있었다. 원고가 근로자로 인정받는 것이 진술서를 쓴 사람에게도 유리한데도 직원들은 회사를 위해 제 목에 칼을 겨누는 진술서를 써준 것이다.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진술서를 안 쓰면 찍히고 쫓겨나는 마당에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p.76)
그러나 몇 년이 지난 지금, 방송 비정규직의 상황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여성 아나운서와 남성 아나운서의 차별 문제를 지적했더니 방송사들이 이제는 성별 가리지 않고 죄다 프리랜서로 아나운서를 뽑고 있다. 방송사에 근무하는 PD는 방송사의 직원이라고 했더니, 외주 제작 방식으로 책임을 모면하고 있다. PD가 죄다 비정규직인 방송사도 생겼다. 현재 방송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비정규직 백화점인 방송사들. 바깥의 노동 문제는 파헤치면서도 자기들의 노동 문제는 절대 다루지 않는다.
이재학 씨는 생전에 직장갑질119에 도움을 요청하며 이런 메일을 보낸 적이 있다.
“14년의 세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언젠가 고생한 거 알아주겠지란 생각으로 달려온 시간이 너무 억울하네요. 저에게는 힘을 주지 못하셔도 제 다음 후배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설움을 못 느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의 바람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p.82)
파견은 사람을 공급하고 이익을 취하는 성질, 즉 사람을 사고파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1997년까지는 금지되었다. 그러다가 외환위기 당시 고용을 유연화하라는 국제통화기금 IMF의 요구에 따라 1998년 〈파견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이 제정되면서 허용되기 시작했다. 파견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목이었다. 그간 노동법에서 확립된 원칙은,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고 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가 사용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파견법〉은 사용사업주와 파견사업주라는 개념을 통해 이 원칙을 깨뜨렸다. 사람을 뽑고 일을 시켰음에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지 않는 P회사, 법적인 사용자이지만 역할은 극히 제한적인 인력파견회사. 책임과 사용의 분리.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공백. 파견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이 사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p.143)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활동을 하기 전에는 고등학생 현장실습제도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현장실습제도는 특성화고등학교에 존재하는데, 고등학생이면 당연히 대학에 진학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수능 날마다 온 나라가 들썩이는 상황에서 대학 진학 대신 취업을 목표로 하는 특성화고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다. 특성화고는 직업교육을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3학년 때 취업을 위해 노동현장으로 나가 실습을 받는다. 이것을 현장실습이라 부른다.
현장실습이 교육인지 노동인지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현장실습을 규율하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은 고등학교 현장실습은 직업훈련이지 노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규정만을 두고 있다. 법에 따르면 현장실습생은 근로계약 대신 현장실습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정부도 원칙적으로 현장실습생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본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현장실습생은 관련 법령에 따라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개설·운영되는 학교교육과정의 일부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자로서 학생의 신분이며 근로자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고용노동부도 “실업고생이 향후 산업에 종사하는 데 필요한 지식·기술·태도 습득을 목적으로 표준협약서에 따라 현장실습이 이루어지는 경우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라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값싼 노동력을 공급받기 위해 현장실습제를 활용한다. 실제로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상관없는 현장에 나가거나 교육 없이 곧바로 업무에 투입된다. 울산 선박 침몰 사고 1년 전, 기아자동차 광주 공장에서도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졌다. 당시 피해 학생은 토요일 밤에 특근을 마치고 쓰러졌는데 그 주에만 60시간 넘게 일했다. 기아자동차 현장실습생은 주·야간 맞교대, 잔업, 특근 등으로 정규직 노동자에 맞먹는 강도로 일했다. (p.156-157)
김군이 속한 은성PSD는 서울메트로의 스크린도어를 수리·관리하는 하청업체로 2014년 11월부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을 고용했다. 낮은 임금, 쉴 틈 없는 근무시간, 사고의 위험.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에 은성PSD는 인력난에 허덕였는데, 인력 공급 창구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를 활용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2015년 김군이 다니던 학교와 정식으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그러고는 학교에 현장실습생 파견을 요청했다. 수습기간은 3개월, 근무시간은 휴게시간을 포함해 9시 출근, 18시 퇴근이었다. 회사는 졸업 후에 월 160만 원을 주겠다는 조건도 현장실습 파견의뢰서에 포함시켰다. 이 현장실습 파견의뢰서는 인근의 성수공고, 한양공고, 성동공고뿐만 아니라, 서울공고, 용산공고에도 보내졌다. 말이 현장실습이지 실제로는 인력 충원이었다. 이런 상황을 선생님이나 학생들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총 21명이 채용형 현장실습으로 은성PSD에 입사했고, 1년도 안 되는 사이에 절반 가까이 퇴사했다. 김군은 입사한 지 반년 만에 죽었다.
실습생 시절에 김군의 월급은 120만 원이었다. 같은 업체에 근무하던 전적자(서울메트로 출신 직원) 임금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전적자는 연차수당, 휴일수당을 받았지만 김군과 같은 현장실습생들은 아니었다. 중식비도 마찬가지였다. 근로시간도 약속받은 것과 달랐다. 실습한 지 일주일이 되자 현장실습생들 역시 다른 직원들처럼 아침 7시 반부터 일했다. 점심시간도 없었다. 장애신고가 들어오면 나이가 어린 사람부터 작업을 나갔다. 한 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힘들다’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청년들부터 현장 출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p.159-160)
두 청년 모두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일 때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일을 시작했다. 구의역 김군이 일한 은성PSD도, 유대한 군이 일한 뷔페업체도 평소 인력난에 허덕였다.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일이 많았고, 노동강도가 셌고, 오래 일했고,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모두가 기피하는 업체들이 특성화고에 손을 내밀었고 학교는 이들 업체에 학생들을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학교는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버티지 못하고 돌아오는 학생들을 나무랐다. 좋지 않은 곳임을 뻔히 알면서도 학생들을 내보냈다. 전공과 무관한 곳으로 억지로 밀어냈다. 오로지 취업률이 중요했다. 교육부는 매년 3월 31일 특성화고의 취업률을 파악하여 이에 근거해 차등 지원했다. 그에 따라 특성화고 자격을 박탈하기도 했다. 자격 유지와 지원을 위해 학교는 취업률에 사활을 걸었고, 열악하고 위험한 곳에 학생들을 내보내면서 일을 그만두지 못하도록 학생들을 단속했다. (p.162-163)
사실 학생이 재학 중에 학교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영준 씨는 부당함, 부조리함을 그냥 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현장실습업체에 그랬던 것처럼 학교에도 당당하게 잘못을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혼자서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포기할 법도 한데 구영준 씨는 그러지 않았다. 구영준 씨가 보내온 메일, 그리고 관련 자료들에서도 구영준 씨가 얼마나 반짝이는 사람인지 보였다. 통화를 할 때마다 그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했다. 단 한 번도 흥분하는 법이 없었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고, 그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 그를 화나게 만든 건 원칙을 깬 회사, 학교와 교육부였다.
사건을 검토하니 이 역시도 구영준 씨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특성화고처럼 대학에도 현장실습제도가 있다. 그리고 대학의 현장실습제 역시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확보하고 학생들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2017년 국정감사를 통해 현장실습 대학생의 76%는 무급으로 현장실습을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연간 15만 명 내외가 대학생 현장실습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이 받는 ‘열정 페이’와 노동력 착취 문제는 특성화고 현장실습 문제보다 덜 알려져 있다. 그나마 근거법령인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 〈대학생 현장실습학기제 운영규정〉이 전면 개정되어 현장실습제도가 악용되지 않기 위한 근거가 마련되었다. 문제는 바뀐 법령이 현장에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기술교육대학교마저도 법령을 무시하고 현장실습제도를 형식적으로 운영하면서도 현장실습을 받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p.165-166)
그리하여 결국 여러 논란 끝에 2003년 8월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이주노동자를 근로자로 인정하고 3년 동안 한국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산업연수생제도를 이어받아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기업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엄격히 제한했다. 일단 이주노동자의 이직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사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는 게 아니라 본국에서 직장이 정해져 들어오게 된다. 내국인을 구하지 못한 사업주가 이주노동자를 구인하면 정부가 외국의 이주노동자를 서로 연결시켜 주고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와 계약을 맺은 뒤 비자를 받아 한국에 입국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주노동자는 애초에 정해진 회사에서만 일하는 것이 원칙인데 문제는 좋은 사업주들도 있겠지만 안 그런 사업주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업주가 동의해야만 이주노동자는 이직을 할 수 있고, 그 이직 횟수도 제한되어 있으며, 농업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농업으로만, 제조업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는 제조업으로만 이직이 가능했다. 이런 이직 제한은 기본적으로 사업주를 위한 것이었다. 이주노동자가 다른 데로 가지 못하게 막아야 인력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건 단지 인력난 문제만은 아니다. 괜찮은 직장이었다면 사람을 뽑는 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노동조건이 안 좋고 문제가 많은 회사이기 때문에 내국인도 안 가는 곳이 된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덕분에 사업주는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대신 이주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비켜갈 수 있었다.
이 문제적인 법률 때문에 별 희한한 일들이 벌어졌다. 경기도 양주의 농장에서 일하게 된 이주노동자의 경우 일터인 밭과, 비닐하우스 안 컨테이너 박스 하나인 숙소 어디에도 화장실이 없었다. 이 사실을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야 알았다. 사업주는 아무 데서나 용변을 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는 이직을 위해 고용지원센터를 찾아갔지만 고용지원센터는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사업주가 동의할 리가 없었다. 결국 사업주에게 돈을 주고 동의를 받아 겨우 이직했다. 사업주에게 폭행을 당한 이주노동자도, 성폭력을 당한 이주노동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p.216-217)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에도 헌법재판소는 같은 취지로 합헌 결정을 냈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도 아쉬운 게 하나 있는데 헌법재판소가 합헌 취지로 ‘내국인근로자의 고용 기회를 보호하기 위함’을 그 근거로 내세웠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헌법재판관들에게 잘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제한한다고 내국인노동자의 고용 기회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정반대다. 이직을 제한하면서까지 싼값에 마음대로 이주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데 사업주가 뭣 하러 내국인을 고용하겠는가. 이주노동자를 착취해서 득을 보는 건 단지 사업주일 뿐이다. 이주노동자를 값싸게 부릴 수 있게 되면서 건설업에서 내국인노동자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금도 줄어든 것처럼, 이주노동자의 이직을 제한할수록 내국인노동자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내국인, 외국인을 불문하고 모든 노동자는 연결되어 있다.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이 적으면 내국인노동자의 고용 수요가 줄어들고 내국인노동자의 임금까지 덩달아 떨어진다. 그래서 미국이나 유럽은 자국민의 임금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낮게 책정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생을 위해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내국인보다 낮게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주 가사노동자까지 들여오게 되었다. (p.228-229)
건설회사와 조합원들의 채용을 교섭했던 양회동 건설노조 간부는 공갈 등의 혐의로 조사받다가 “내가 오늘 분신을 하게 된 건 죄 없이 정당하게 노조활동을 했는데 집시법 위반도 아니고 ‘업무방해 및 공갈’이라니 자존심이 허락되지가 않는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내가 아는 노동단체 여성 활동가는 전과만 73개다. 범죄 경력 조회를 위해 경찰서를 방문했는데 담당자가 조심스럽게 눈을 치뜨면서 범죄경력회보서를 주더란다.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궁금한데 무서우니 제대로 눈을 마주칠 엄두가 안 났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는데 누구도 그 활동가가 전과 73범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것이기 때문이다. 투덜대면서도 사람들이 부탁하는 일을 자기 일처럼 챙기는 사람이고, 궂은일 마다하지 않는, 누구보다 사람들을 아끼고 생각하는 성품인데 그런 사람도 전과 73범이 될 수 있다. 노동운동하는 사람을 반국가세력으로 보는 이 나라에선 말이다. 노동 영역에서는 정의감이 투철하고 희생정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앞장서서 싸우다가 감옥에 가는 일이 잦다.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닌데 노동조합 활동이라도 할라치면 투옥되는 걸 감수하고 다짐하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각종 공안범죄로 피고인이 되어버린 노동자들을 변호하는 일이 지금까지 내가 맡은 형사 사건의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p.234-235)
법을 다루며 느끼는 것은 싸우더라도 ‘고상하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적 충돌은 피하고 고소, 고발, 소송으로 법정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지금까지 한 행동은 비열했으나 겉으로는 고상했고, 이에 반해 노동자들의 행동은 고상하지 않았고 즉각적이었다. 그 결과 회사는 수십 명의 노동자를 부당해고하고 노조 활동을 이유로 부당노동행위까지 저질렀는데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반면 회사의 불법을 저지하려던 조합원들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고상한 싸움은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호사를 선임할 돈. 거액의 소송비용을 부담할 경제적 능력. 이게 없는 사람들은 고상하게 싸울 수 없으니 그 결과는 혹독하다. (p.276-277)
노동 사건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노사가 대등하게 마주 앉는 것이다. 그리고 합의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노동3권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라고 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이 근로3권, 즉 노동3권을 정한 이유를 풀어 설명한 적이 있다.사용자에 비하여 경제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근로자로 하여금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를 갖추도록 하기 위하여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 등 이른바 근로3권을 부여하고, 근로자가 이를 무기로 하여 사용자에 맞서서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도록 하는 제도를 보장함으로써 사적자치의 원칙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다. (헌재 1991.7.22. 89헌가106)
근로3권의 보다 큰 헌법적 의미는 근로자단체라는 사회적 반대세력의 창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형성에 있어서 사회적 균형을 이루어 근로조건에 관한 노사간의 실질적인 자치를 보장하려는데 있다.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가 사용자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단체의 결성이 필요하고 단결된 힘에 의해서 비로소 노사관계에 있어서 실질적 평등이 실현된다. (헌재 1998.2.27. 94헌바13·26, 95헌바44 병합)
(p.280-2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