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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 공석진 / 수오서재

 

 다소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과일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니다. 땅과 자연환경, 그리고 농민의 땀이 어우러진 합작품이다. 특히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판에 박힌 일정한 모양과 크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B급의 존재는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크고 반듯한 외형의 농산물에만 좋은 가격을 주고 그렇지 않은 것에는 불합리한 가격을 매긴다.
 과일은 맛있으면 그만 아닌가? 꼭 크기가 커야 하고 모양이 곱고 반듯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고 예쁜 과일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이고 불편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소비자는 알고 있을까? 애호박을 반듯한 일자로 키우기 위해 플라스틱 필름에 끼워 성형을 하고, 과일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화학 비료와 호르몬제가 투입되고, 색을 잘 내기 위해 착색제가 쓰이기도 한다. 심지어 과일의 당도를 높이는 약도 있다. (p.18-19)

 

 가을철 사과 밭에 가면 온 천지가 반짝인다. 반짝이는 것의 정체는 사과나무 밑에 깔려 있는 반사 필름이다. 바닥에 반사 필름을 까는 것은 당도를 높이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사과의 아랫부분까지 햇빛을 닿게 해 색이 전체적으로 빨갛게 잘 나게 하기 위함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자란 사과의 아랫부분은 빨갛지 않다.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지 못하니 광합성 작용이 부족해 색이 빨개지지 않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시중에서 보는 대부분의 사과는 위아래 모두 빨갛다.
 색을 빨갛게 내는 이유는 단순하다. 빨개야 시장에서 좋은 가격을 받기 때문이다. 반사 필름은 사과에 화학적인 처리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종종 강한 햇빛에 사과가 화상을 입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과에 해를 끼치진 않는다. 다만 필름 가격이 상당하거니와 소모성 자재로 이삼 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결국 많은 농업 폐기물을 발생시킨다. 또한 필름을 깔고 걷는 일에 누군가의 노동력이 투입된다. 대부분 이주 노동자의 몫이고, 이로 인해 생산비가 올라간다. ‘환경을 보존하고 후대에 이어준다’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생각하면 꼭 필요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반사 필름을 깔고 싶어 하는 농민은 없다. 단지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매해 반복하는 일이다. (p.19-20)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시장에서 B급과 못난이라는 워딩을 포함, 과일의 외형을 언급하는 모든 수식어를 걷어내는 일이다. 사과는 그냥 사과, 감귤은 그냥 감귤이면 충분하다. 등급을 나누는 것이 꼭 필요하다면 외형적인 기준은 아니었으면 한다. 친환경 재배 농산물과 일반(관행) 재배 농산물과 같이 재배 방법에 따른 차이, 또는 와인처럼 포도의 재배 기후와 토양 차이에서 오는 맛의 희소성 때문에 나뉘는 등급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단지 외형적 기준에 의한 등급 분류 방법은 하루빨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게 맞다. 나아가 맛에 의한 등급 분류 또한 능력주의를 공정이라고 여기는 사회에서는 합리적이라 여길 수 있겠지만 농업의 본질적 측면에서 접근하면 조금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p.25-26)

 

 주제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먹고사는 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방법이 하나고,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방법이 다른 하나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문제들이 더 많이 욕망하는 삶을 추구해서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후자의 삶을 택했다.
 가게를 처음 열 때부터 마지막까지 1인 회사, 구멍가게로 남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대형 마트가 될 생각은 당연히 없었고 꼭 구멍가게여야만 했다. 모든 일을 혼자 하다 보니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만 일을 한다. 지금의 규모가 나에게는 딱 적당하다. 판매하는 과일이 없는 시기에 가게 문을 닫고 잠시 재충전 시간을 갖기도 하는데 솔직히 이 휴식의 시간 덕분에 지금까지 번아웃을 피해 갈 수 있었다. (p.63-64)

 

 이마트는 2016년에 ‘새벽 딸기’를 내놓았다. 이마트 보도 자료에 따르면 새벽 딸기는 ‘새벽 3시부터 수확한 딸기를 당일 오전까지 점포로 배송하는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오전에 수확한 딸기를 물류 센터로 입고한 뒤 상품 선별과 포장 등의 과정을 거쳐 점포로 배송했으나 새벽 딸기는 중간 단계를 줄여서 신선도를 높인 게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2024년을 기준으로 롯데마트를 비롯한 많은 유통업체에서 ‘새벽 딸기’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초신선 딸기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
 이마트의 새벽 딸기는 크게 두 가지를 바꾸어놓았다. 기존에 물류 센터에서 하던 포장 작업을 생산 농가에서 직접 한다는 점, 그리고 새벽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한 오밤중에 농민들이 수확 작업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야간 노동은 산업화 시대 고도 성장기에 흔했지만, 사회가 발전하며 특수 직종을 제외하고는 점차 사라져 왔다. 그런데 새벽 딸기는 야간 노동이 없으면 탄생 자체가 불가능한 상품이다. 농촌에서 내국인 노동자가 사라진 건 이미 오래고, 지금은 이주 노동자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 결국 가장 힘들고 험한 작업은 농촌에서도 역시 이주 노동자들의 몫이고, 야간 노동의 주체 역시 이들이 될 수밖에 없다.
 몇 시간 더 빨리 딸기를 배송하는 게 신선도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까? 물론 일부 영향이 있겠지만 내 경험상 획기적이라 할 만큼은 아니다. ‘초신선 마케팅’을 통한 매출 증대를 위해 농민과 노동자들의 야간 수면권을 사뿐히 뺏어간 그들은 얼마나 더 많은 이익을 얻었을까? 새벽 딸기를 먹은 소비자는 과연 더 건강해지거나 더 행복해졌을까? (p.69-70)

 

 나는 기본적으로 농가 직거래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농가 직거래를 권장하는 사람은 유통 마진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니까 직거래가 좀 더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논리를 편다. 그런데 그 일을 하기 위해 늘어나는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부수적인 것쯤으로 치부한다.
 농가 직거래의 모든 노동의 주체는 농민이다. 수확, 선별, 판매, 포장, 배송, C/S까지 모두 농민이 직접 해야 한다. 인력을 고용하면 일부 짐은 덜겠지만 맡길 수 있는 일의 한계가 명확하고 인건비를 제하면 남는 게 없는 것이 농가의 현실이다. 즉, 농민에게 직거래는 직장인 기준으로 현장 근무와 사무직 업무를 동시에 수행하면서 퇴근 이후에도 집에서 일하라는 말이다. 심지어 낮 시간에는 고된 농사일에 판매 업무까지 함께해야 한다. 손님들 전화받느라 흙 묻은 장갑 한 번 벗었다 다시 끼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고 작업 능률을 떨어뜨리는 일인지,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비롯하여 그 어느 때보다 직접 판매가 쉽고 편리해진 시대지만 이 역시 청년 농민(농촌에서는 50대도 청년에 속한다)들에게 해당하는 얘기일 뿐, 다수의 고령 농민들에게는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장애물이다. (p.74-75)

 

 농가 돕기라는 말이 주는 폭력성에 대해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다. 누가 누군가를 돕는 프레임은 보이지 않는 계급 관계(갑을 관계)를 만든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농민이 불쌍한 ‘을’의 지위로 포지셔닝된다. 농민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소비자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데에는 농가 돕기가 한몫했다. 농민은 농사를 업으로 삼는 전문 직업인이며, 농업은 나라의 식량 주권을 담당하는 영역이다. 그리고 그 선봉에 농민이 서 있다. 농민이 존귀한 존재임을 쉽게 잊고 한낱 불쌍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 늘 불쾌하다. (p.88)

 

 손님들에게는 누구의 복숭아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공씨아저씨네에서 그저 맛있는 복숭아를 많이 판매해 주기만을 바랄지도. 그러나 나에게는 맛있는 복숭아보다 ‘누구의’ 복숭아냐가 더 중요하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농민의 물건을 경매장에서 떼다가 파는 방식의 과일가게가 아니기에 오랜 기간 인연을 맺어온 농민의 1년 결실을 함께하는 것에 더 큰 의미와 보람을 느낀다. (p.106)

 

 딸기밭을 둘러보았다. 몇 농가의 딸기밭을 다녀 봤지만 그의 딸기밭은 조금 달랐다. 하우스 한 동이 휑했다. 이랑과 이랑 사이 고랑 폭이 유독 넓었다. 저렇게 하면 생산성이 안 나올 텐데 왜 저렇게 두었을까 의문이 생겼다.
 임영택 농민은 어느 해인가 딸기 체험을 하러 온 휠체어를 탄 학생이 좁은 고랑으로 다닐 수 없어 딸기 한 알 직접 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쓰여 그 학생과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놓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당한 수확량을 포기하고 두 개의 이랑을 허물었다. 이듬해 학생은 다시 농장을 찾았고, 누군가에게는 평범할 수 있는 작은 행복을 비로소 누렸다. (p.124)

 

 ‘경험’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과일의 생김새에 대한 고정 관념은 사실 그동안 외형과 맛에 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십여 년간 나는 회원들과 함께 경험치를 쌓았다. 동록 아리수에 보여준 회원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공씨아저씨네가 하는 이야기가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소리로만 전달되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은 중요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회원들도 안다. 과일의 맛은 외모와 관계 없다는 것을. 더 나아가 맛만 좋다면 작고 못생긴 것들이 크고 예쁜 것들보다 오히려 더 높은 가격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그동안 판매 글은 주로 ‘변명’과 ‘해명’으로 시작했다. 이러이러해서 모양이 이렇고, 저러저러해서 색이 저렇고 사족이 붙었다. 이후론 변명과 해명 없이 오직 설명만 한다. 10년이 걸렸다. 과일 외형에 불만을 제기하는 회원은 더 이상 없다. 단 한 명도. (p.140-141)

 

 나는 10할 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과일장사를 시작했다. 가게 문을 연 1년 차에는 내 기준에 조금이라도 맛이 못 미치는 과일은 팔지 않으려고 했다. 단 한 명의 손님에게도 불만족을 주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고, 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삶이 참 전쟁 같고 피곤했다. 안 좋은 후기라도 접하는 날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악플을 보는 건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이다.
 초창기 회원들이 우리 가게에 열광했던 이유는 10할에 가까운 타율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동반자인 농민에게 가혹했고, 결코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내가 타율을 올리려고 할수록 뾰족하고 날카로운 기준을 고수해야 하고 농민과의 협력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선수를 함께 가는 동료나 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팬들에게 칭찬받기 위한 수단으로만 대하는 몹시 이기적인 태도다.
 나는 과일장사를 ‘농민과 소비자의 중간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버티는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라는 표현으로 종종 비유한다. 지금은 농민의 편에 조금 더 가깝지만 처음에는 소비자의 편에 기울어 있었다. 노동자의 희생으로 얻은 좋은 평가를 바탕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장사치들과 내 모습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자각했다. 10할 타자를 꿈꾸었던 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팬보다 선수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있어야 하는 것이 감독이다. (p.150-152)

 

 복숭아 농사를 짓는 양영학 농민을 처음 만난 것은 2014년인데 11년가량의 긴 세월 동안 단 한 해도 순탄한 여름을 보낸 적이 없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날씨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노지 재배 기준으로 복숭아는 6월 중하순에 시작해서 9월 초순까지 수확한다. 이 시기는 여름 빌런 삼총사 장마, 폭염, 태풍을 모두 만나는 때이기도 하다. 보통 장마 기간은 대략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였다. 그러니까 예전엔 이 기간만 무사히 넘기면 됐다. 그러나 요즘은 장마 시작 시기도 들쭉날쭉하고 장마 기간도 길어졌다. 장마 때는 고온에 높은 습도로 인해 곰팡이와 탄저균의 피해가 과일장사의 복병이다. (p.156)

 

 왜 내가 멸종을 운운하면서까지 그토록 복숭아를 힘들어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숭아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하다. 가장 신선한 과일은 과수원에서 갓 수확해서 바로 출하한 과일이다. 일반적으로 맞는 이야기인데, 복숭아는 예외다. 복숭아는 열이 많은 성질의 과일이다. 한여름 뜨거운 날씨에 수확할 수밖에 없는 복숭아는 수확 후 열을 식히지 않은 채 발송하면 배송 과정에서 푹 삶아진다. 그래서 수확 후 반드시 공동선별장(현장에서는 보통 줄여서 ‘공선장’이라 부른다)에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예냉 과정을 거쳐 열기와 습기를 제거한 이후에 출고를 진행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방법이다. 보통 포장 작업은 농민이 직접 하지 않고 공선장 인력에게 맡겨 진행한다. 농민은 선별과 포장에 절대 개입할 수 없다는 게 작업장의 제1원칙이다. 작목반 주체로 공선장을 만든 이유는 농민을 포장과 선별의 과중한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목적이 첫 번째이지만, 포장할 때 복숭아에 작은 흠집 하나만 발견돼도 담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외형으로 차별해서가 아니라 흠집이 있는 복숭아는 여름철 배송 과정에서 반드시 부패하기 때문이다. 농민이 직접 포장하면 아무래도 자기 자식은 다 예뻐 보이기에 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담기기도 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처음 도입한 것도 바로 양영학 농민이다.
 최대한 꼼꼼하게 선별하고 포장해도 여름철 고온 다습한 날씨에는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무르고 부패한 복숭아가 나온다. 폭염주의보라도 내린 날에는 복숭아가 전부 푹 삶아져서 과즙이 질질 흐르는 상태로 도착하기도 한다. 여름철 택배차의 내부 온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거기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높은 습도에 복숭아 상자를 열었을 땐 이미 곰팡이들이 대환장 파티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p.157-159)

 

 수렵과 채집의 시대를 지나 농업이 가능했던 것은 빙하기를 끝낸 홀로세의 안정적인 기후 조건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류세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농업은 위태롭다. 예측 불가능한 날씨 때문이다.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꽃이 피지 않고, 때를 모르고 내리는 비는 더 이상 반갑지 않다. 이러한 예측 불가함은 최근 몇 년간 극단으로 치닫으며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두보가 환생한다면 2024년 여름의 호우는 뭐라고 표현할지 묻고 싶다. 기후 변화에 따른 수확의 불확실성 탓에 여름은 모든 농민과 과일장수에게 힘겨운 계절이 되었다.
 가장 직접적인 1차 피해는 농민의 몫이다. 가뭄으로 고생하는 농촌에 내리는 봄비는 여전히 약이지만 ‘적당히’를 상실한 근래의 여름비는 독에 가깝다. 어느 해 복숭아 밭에 갔을 때는 밭이 텅 비어 있었다. 전년에 내린 폭우 때문에 물이 빠지지 않아 뿌리가 썩어서 나무가 죽은 것이다. 절반 이상을 뽑아내고 새로 심었다. 새로 심은 나무에서 다시 복숭아를 먹으려면 4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날씨 변수가 없을 경우다. (p.195-196)

 

 공씨아저씨네는 2021년부터 벌꿀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자 김동호 농민의 건강 문제도 일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채밀되는 꿀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채밀되는 꿀의 밀원은 아까시(‘아카시아’라고 흔히 잘못 알고 있는)꽃이다. 국내 벌꿀 채밀량의 70퍼센트가 5월 중순 아까시꽃이 개화할 때 결정된다. 2021년에는 5월 중순의 잦은 비와 냉해 때문에 전국의 아까시 꿀이 전멸한 적이 있다. 202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영국 가디언지는 2024년 1월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연구 결과를 보도하며 “벌꿀 수확량의 감소는 꿀벌 서식지의 파괴, 기후 변화, 살충제, 질병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로 ‘기후 변화’를 꼽았다. 불규칙한 기후 변화로 곤충 생태계가 피해를 입는 것은 물론, 토양 식물(꽃)의 생산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포항공대신문도 “평년보다 기온이 올라간 겨울 날씨가 지속되면서 원래라면 동면에 들어가야 할 꿀벌들이 먹이를 채집하러 나서게 되는데, 이때 꿀벌 대부분이 외부의 큰 일교차를 버티지 못하고 죽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꿀벌은 단순히 꿀을 제공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과채의 수정 매개체로서 농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이 업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는 꿀벌과 과일의 상관관계가 희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에서 벌꿀을 판매하는 이유는 과일 생산의 근간을 꿀벌로 보기 때문이다. 꿀벌 수의 감소는 수정벌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져 과채 농가의 농업 생산비 상승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p.199-200)

 

 여름이면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자두와 복숭아의 정기 구독 상품을 2023년부터 전면 중단했다. 비와 폭염으로 수확을 포기하는 품종이 절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제 과일장수에게 여름은 덤으로 생각해야 하는 계절이 되었고, 감귤 없는 제주의 모습을 내 생애 마주할지 모를 일이다. 이미 감귤류의 재배가 전라도 지역까지 올라온 지 오래다. 시설에서 재배하는 만감류는 충청도에서도 수확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과일 지도를 완전히 새롭게 개편해야 할 날을 목전에 두고 있다.
 동종 업계에 종사하는 동료 세 명과 1년간 팟캐스트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농업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농촌사회학을 연구하는 정은정 작가를 패널로 초대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라는 나의 식상한 마지막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농촌의 아름다운 소멸을 지켜보는 것뿐입니다.”
 사회학 연구자로서 그는 농촌의 소멸은 당연한 것이며 그저 아름답게 소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보고 있었다. 과일장수도 함께 소멸되는 미래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비극적인 이야기였지만 아직도 내 가슴 한편에 저장되어 있는 문장이다. 왠지 그럴 것 같다. (p.202-203)

 

 명절은 과일 유통 시장의 핵이다. 제사 문화 덕분에 아직까지 설과 추석은 유통업계에서 대목으로 여기고, 과일은 빠지지 않고 명절 선물 목록에 포함된다. 명절 전에 수확하는 게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속도위반의 달콤한 유혹을 견뎌내기란 쉽지 않다. 과수 농가에게 명절은 단기간에 많은 물량을, 그것도 좋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는 1년에 딱 두 번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반면 숙기가 아닌 과일을 차마 딸 수 없어 명절 이후로 수확을 미루는 농민에겐 명절이 원망스럽다. 명절 이후는 가격의 이점도 없고, 유통업체에서도 판매가 부진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신념을 지키는 대가치고는 너무 쓰다. 그리하여 결론은 많은 농민이 재배 방법과 수확 시기를 ‘절기와 날씨’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설과 추석’에 맞춘다. 이 지점이 농산물 시장 구조를 뒤틀며, 제대로 맛이 들지 않은 과일을 수확해 유통하는 ‘과일 조기 수확’ 문제를 야기한다.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농민도, 유통인도 모두 잘 알고 있다. (p.205-206)

 

 과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성질이 있다. 레드향은 신맛이 약하고 빨리 사라지는 반면에 한라봉은 신맛이 강하고 오래 유지된다. 장점이나 단점으로 특징지을 수 없는 품종의 특성이다. 그래서 한라봉 농가에서는 설에 맞춰 시장에 과일을 내기 위해 인위적으로 산미를 빨리 뺀다. 그런데 산미가 강하고 오래 지속된다는 것은 저장성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한라봉은 다른 만감류에 비해 더 오랜 기간 저장해서 유통할 수 있는 강점을 가진다. 2007년 4월에 제주 전통 시장에서 판매하는 한라봉을 아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그때까지 산미가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레드향은 산미가 정말 초스피드로 빠진다. 심지어 수확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신맛은 물론이고 단맛도 느껴지지 않는 무(無)맛으로 변해버리는 특이한 성질의 과일이다. 사실 제때에 먹으면 될 일이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모든 과일의 적정 수확 시기와 과일별 특성을 세세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그래서 농민과 유통인이 제때에 수확해서 유통하는 일이 중요하다. (p.208-209)

 

 과일 유통 시장의 맥락을 알고 그동안 만감류를 먹었던 시기를 반추해서 본다면 해마다 변하는 만감류 맛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설 이후에도 많은 만감류들이 시장으로 나온다. 어쩌면 설 이후에 수확해서 판매했어야 할 것들이었지만 대부분 명절 특수를 노리고 설 이전에 수확했다가 다 팔지 못한 것들이다. 이렇게 되면 같은 과일이라도 재고의 개념이 된다. 제때에 수확하지 않은 과일들의 맛이 좋을 리 없다. 설 전에 이미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은 과일의 남은 운명은 오직 가격 할인뿐이다. 결국 우리는 과일이 제일 맛있을 때 먹는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유통 시장의 편의에 따라 과일을 소비하고 있다.
 만약 만감류가 설 특수를 피해서 정상적인 숙기에 재배되고 유통된다면 가격은 오히려 안정될 것이며 농민들은 더 나은 소득을 얻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소비자도 더 다양하고 맛있는 과일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내 눈에는 이게 정상이고 모두에게 이득인 것 같은데,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중요한 건 소비자에게는 선택의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p.210-211)

 

 어린 시절 ‘홍옥’이라는 품종의 사과는 흔했다. 홍옥은 이름만 들어도 입에서 침이 고일 정도로 신맛이 아주 강한 사과다. 홍옥 좀 판매해 달라는 회원들의 요청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지만 홍옥을 재배하는 농가 찾기가 어렵다. 강렬한 산미가 매력적인 홍옥은 신맛이 강하다는 이유로 조금씩 외면받더니 결국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감귤류의 사장 상황도 비슷하다. 갈수록 신맛을 꺼리는 소비자의 성향에 맞춰 감귤류 재배 농가도 산미를 낮추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2010년 즈음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된 레드향은 어느새 설 명절 가장 인기 있는 선물이 되었다. 한때 최고급 과일의 지위를 누렸던 한라봉은 이제는 소비자들 머릿속에 그저 신맛이 강한 평범한 과일로 전락했고, 산미가 적고 당도는 높은 레드향 같은 과일만 인기몰이 중이다. 제주에서 새로 나온 신품종 감귤류의 특성을 보면 한결같이 고당도 저산미다.
 대표적인 여름 과일 천도복숭아 중 7월에 수확하는 ‘선프레’는 다른 품종에 비해 유독 산미가 강해 소비자의 선호도가 해마다 낮아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듯 신맛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당도는 높은 ‘신비’, ‘옐로드림’, ‘금홍’ 등의 신품종 천도복숭아가 최근 인기다. 자연스레 농민은 시장의 소비자 트렌드에 맞춰 재배 품목을 전환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과일에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p.218-219)

 

 유행은 다양성 또한 말살시킨다. 품종의 다양성은 물론 맛의 다양성까지도 삭제한다. 과일은 다양한 맛을 품고 있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거기에 감칠맛까지. 사과는 신맛과 단맛, 대저 토마토는 신맛과 단맛, 그리고 짠맛까지 느낄 수 있다. ‘팔삭’처럼 쌉쌀한 쓴맛이 매력적인 과일도 있다.
 화학 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감귤에서는 감칠맛이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새콤달콤한 과일이지만 감귤과 한라봉의 맛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향이다. 과일이 1퍼센트도 들어가지 않은 과일 주스에서 과일 맛을 느끼는 것은 첨가된 인공 과일 향 때문이다. 향은 맛에 있어 그만큼 중요한 핵심 요소다.
 그러나 근래 우리는 과일 맛을 이야기할 때 다양한 맛과 향보다는 오직 당도만을 이야기한다. 과일을 평가하는 기준 역시 당도에 매몰되어 있다. ‘당도 보장’, ‘꿀수박’, ‘꿀참외’ 등 맛있다는 의미로 과일을 홍보하는 문구는 항상 당도만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p.222-223)

 

 소비자의 입맛이 변화하는 것을 내 힘으로 막을 도리는 없다. 자연스런 시대의 흐름이다. 그러나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가 홍옥을 잃은 것처럼 당도 높은 과일만 좇거나 유행만 따라가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과일 품종의 상당수는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새로운 품종이 계속 나오겠지만 늘어나는 숫자가 질적인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과일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의 스펙트럼이 점점 좁아진다는 점이다. 결국 특정 범위에 존재하는 고유한 맛의 영역을 평생 잃게 될지도 모른다.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사람들의 당 섭취량이 증가함은 물론이다. 영양학적 측면에서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p.224)

 

 비단 딸기뿐만이 아니다. 유통에서는 속칭 ‘로얄과’라 부르는 크기의 과일만을 모아 프리미엄 상품을 만든다. 딸기와 방울토마토 같은 쪼그만 과일까지 크기 선별을 통해 등급이 나눠지고 있다는 사실에 과일장수 초창기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무농약, 유기농 인증의 친환경 농산물에까지 갈수록 동일한 잣대가 매겨지고 있으니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이런 방식은 농산물을 공산품화 시켜 농업의 본질적 가치를 훼손시킨다.
 토마토 한 줄기에서 100개의 열매가 열린다고 가정하자. 100개의 크기가 다 같을 수는 없다. 결코 말이다. 설사 과일을 일정한 크기로 균일하게 재배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다고 하더라도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왜 일정한 크기의 과일을 먹어야 하는지 먼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자연에서 자라는 과일들은 다양한 크기로 나오는 게 당연할 것인데 우리는 왜 그토록 자연스러움을 거스를까?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문화가 아직도 우리 일상에서 실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기준 안에 들어가지 못한 과일은 여전히 이 땅에서 루저다. 신맛은 다양한 맛 중에 하나이고, 크기는 개성일 뿐이다. 맛도 다양하고 크기도 다양한 것이 정상이다. 제각각인 크기와 다양한 맛을 지닌 수많은 과일의 존재가 온전하게 인정받는 일상의 민주주의를 바란다. 그것이 정상적인 사회다. (p.227-228)

 

 과일의 제철이 변한 이유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수익의 안정화를 위한 노지 재배에서 시설 재배로의 전환, 수입 과일의 증가, 그리고 다른 계절 과일과 경쟁하기 위한 재배 시기의 변화, 거기에 기후 변화까지 다양하다.
 딸기는 모두에 해당된다. 통상 국내에서 재배되는 과일이 별로 없어 관세가 풀리는 3월은 미국산 오렌지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시기였다. (미국산 오렌지는 3월에서 8월 사이에는 관세가 없는 계절 관세 품목이었다. 심지어 규모가 제법 큰 국내 모 업체에서는 3월을 오렌지의 제철이라고까지 홍보한다.) 한미 FTA 체결 당시 35퍼센트였던 미국산 오렌지 관세는 해마다 줄어 2018년 3월 완전히 사라졌다.
 딸기는 오렌지가 본격적으로 시장에 풀리기 전인 겨울에 나와야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구조가 되었고, 그러기 위해 겨울에 재배할 수 있는 촉성재배(온실이나 온상 안에 태양열이나 인공열을 가하여 보통재배에 의한 것보다 속히 거두어들이는 재배법) 품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제일 많이 먹는 설향 품종이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이제 딸기는 제주 감귤의 경쟁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미 결과는 딸기의 압승이다. 겨울철 감귤의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데는 이런 시장 변화에도 이유가 있고, 제주 만감류의 수확 시기가 당겨진 데는 미국산 오렌지 관세의 영향도 있었다. (p.234-235)

 

 뭔가 뒤죽박죽 꼬여버린 기분이다. 어린 시절 기억하는 과일의 제철과 지금의 제철은 완전히 변했다. 겨울에 먹는 딸기에는 조금 적응이 됐지만 3월에 먹는 참외는 솔직히 낯설다. 어색해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더 이상 좋고 나쁨을 논하거나, 선택이 가능한 문제가 아니다. 농민은 농사를 통해서 소득을 창출하여 생계를 유지해야 하며 그래야 농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 동시에 농민은 수입 농산물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난 봄에 나는 딸기만 먹겠다’ 하며 겨울 딸기는 가짜고, 봄 딸기만 진짜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아직도 종종 만난다. 나 역시 봄 딸기, 여름 참외가 그립다. 제철 과일만 팔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내가 왜 안 해 봤겠는가. 농민을 어렵게 설득해서 여름 참외에 도전해본 적도 있고, 노지 재배 토마토를 시도해본 적도 있다. 결과는 ‘폭망’이었다. 모두 유의미한 수확에 실패했다. 10년 전 즈음에 한 출판사로부터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제철 과일에 대한 책을 써줄 수 있겠냐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는데 시기상조라 여겨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다. 만약 그때 제철의 사전적 정의와 고지식한 기준으로 책을 썼더라면 난 지금쯤 희대의 사기꾼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결국 교과서에 나오는 제철의 정의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가 되지 않는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제철 과일 먹기를 포기하거나 직접 농사를 지어보길 바란다. 그 방법 외에는 없다. 지금의 제철 또한 영원불변할 리 없다. 과일의 제철은 계속 변화하는 중이다. (p.236-237)

 

 현대 자본주의 농업의 목적은 ‘증량’과 ‘증수’로 요약된다. 농사의 목적이 크게, 많이 키우는 것이라면 물을 많이 주고 합성 농약과 화학 비료를 (과다) 투입할 수밖에 없다. 농업 현장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이런 농업 방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질소, 그리고 기후 위기 시대에 주목받고 있는 탄소에 있다. 소득 증대를 위해서는 시장의 기준에 맞춰 크기를 키우고 재배 기간을 단축할 수밖에 없기에 현장의 농민들은 질소 비료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농민들이 화학 비료를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키워야만 값을 잘 받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화학 비료를 생산하는 데는 탄소를 다량으로 배출시키는 화석 연료가 사용된다. ‘농업’과 ‘농촌’이 주는 이미지는 굉장히 환경친화적일 것 같지만 화석 연료 사용에 의존하는 현대 농업은 기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그래서 기후 위기 시대 탄소 중립을 실현하는 해결책으로 유기 농업이 회자되기도 한다. 거듭 반복하여 말하지만 유기 농업의 본질은 “농업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보전하여 환경오염을 최소화”하는 데 있다. (p.249-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