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 서필훈 / 문학동네
링 위에서 구티에레스의 별명은 ‘폭풍사제(Fray Tormenta)’였다. 그는 30여 년간 레슬러로 활동했고 팬도 많았다. 레슬러로 번 수익금으로 평생 이천여 명의 고아를 돌보다 은퇴했고 지금은 연로해 투병 중이다. 얼마 전 「이제는 우리가 그를 도울 때입니다」라는 기사를 본 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다.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의 책 『성과 속』은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던 성스러움과 속됨이 일상에 혼재되어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나는 구티에레스 신부의 삶이 이 책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가장 성스러운 직업인 사제와 사람들의 환호와 갈채로 호흡하는 가장 세속적인 엔터테이너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았기 때문이다. 낮에는 말씀으로 사람들을 위로하고 밤에는 폭풍 같은 이단옆차기로 사람들의 시름을 덜어주었다. 낮과 밤, 성과 속, 선과 악, 승리와 패배……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고 믿어져 온 것들이 구티에레스 신부 안에서 소통하고 화해했다.
창업계획서 한 장 없었지만 내 꿈만큼은 창대했다. 구티에레스 신부처럼 커피리브레가 의미와 재미, 이윤과 윤리, 자유와 연대와 같이 이질적이라 여겨지는 것들을 한데 어우르는 주체가 되는 것. (p.34-35)
그러나 커피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지구온난화뿐만이 아니다. 국제 커피 거래가격의 기준이 되는 뉴욕상품거래소의 커피 가격은 2019년 하반기 파운드당 1달러선을 오르내리며 지난 13년 이래 최저 가격을 기록했다. 커피 거래가격은 지난 40년 동안 거의 변화가 없다. 커피가 석유에 이어 세계 2위의 교역량을 자랑하는 상품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지만, 대부분이 ‘후진국’인 커피 생산지와 ‘선진국’인 커피 소비지가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는 점은 세계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남북문제’와 오랫동안 정체된 커피 가격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게 한다. 또한 석유가 주요 산유국들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데 비해, 생필품에 가까운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와 농부들 대부분이 대를 이은 빈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커피 가격은 뉴욕(아라비카)과 런던(로부스타)의 커피거래소를 통해 매일 공시되는데, 기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시장 원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하지만 실제 커피 가격은 생산국가의 농장 단위까지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기업, 그리고 가격 변동성을 조장하는 투기자본의 입김에 크게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커피 가격 결정 과정에 커피 생산자, 생산국의 이해는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 이런 국제 커피 거래 시스템 아래에서 커피 생산자들이 커피 재배를 포기하고 다른 작물을 기르거나, 빚을 갚지 못해 저당 잡혔던 커피밭과 주거지를 빼앗기고 마을을 떠나 도시 빈민이 되거나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는 추세다. 이는 커피 생산 지역의 다양성 감소와 더불어 지역 공동체 붕괴와 도시 범죄율 증가로도 이어지고 있다. (p.61-62)
커피녹병은 원래 대부분의 커피 농장에서 늘 작은 말썽을 부리다가 건기가 시작되면 사라지는, 감기처럼 그리 대단치 않은 곰팡이병이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고 우기와 건기의 균형이 깨지면서 커피녹병을 일으키는 곰팡이들은 더 강해졌고 더 오래 기승을 부렸으며 내성이 생겨 기존의 약이 더는 듣지 않았다. 추운 곳에서 활동을 못하던 곰팡이는 따뜻해진 기온 탓에 고도가 높은 커피 농장까지 올라왔고 무방비였던 농장들은 절멸했다.
중미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커피녹병은 중미에서만 70퍼센트의 농장들을 감염시켰고 32억 달러(약 3조 7000억 원)의 손해를 끼치며 170만 개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국제열대농업센터(CIAT)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커피를 재배하고 있는 지역의 50퍼센트가 2050년까지 커피 재배지로 부적합해진다. 아직 먼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벌써 기후변화는 많은 커피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소농은 자금력과 대처 능력이 뛰어난 대농장에 비해 기후변화에 훨씬 더 취약하다. 왜냐하면, 커피녹병은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않아 면역력이 떨어진 나무, 가지치기로 정기적인 관리를 받지 못한 노령의 나무, 커피녹병 발생 초기에 적절한 구제를 받지 못한 나무에 더 큰 타격을 준다. 하지만 가난해서 비료나 퇴비를 구비하지 못하고, 당장 수입이 줄어들까 봐 가지치기를 하지 못해 수령 많은 나무를 그대로 두고, 커피녹병을 발견해도 약 칠 돈이 없어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소농이기 때문이다. 많은 소농은 기후변화에 따른 심각한 병충해와 수확량 감소, 국제 커피 시세 하락에 허덕이고 있다. (p.87-88)
커피 품질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일부 스페셜티커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커피는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결정되는 국제 시세에 기반해서 거래가격이 결정된다. 2019년 하반기를 기준으로 국제 커피 가격은 지난 13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세계 커피 생산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소농들의 평균 최저 생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커피숍에서 마시는 커피 가격의 1퍼센트 내외만이 커피 생산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많은 소농들은 생활비와 커피 생산에 필요한 최소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수집상이나 커피 수출 업체로부터 커피밭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데, 병충해나 이상기후 등으로 작황이 좋지 않아 제때 돈을 갚지 못하면 결국 커피밭을 빼앗기게 된다.
카라반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2018년부터 중미 국가들에서 미국으로 넘어가려는 수천 수만의 난민 행렬을 가리켜 카라반이라 하는데 그 시작이 온두라스였다. 커피밭을 잃고 쫓겨나거나 가난에 허덕이다 커피 농사를 결국 포기한 사람들이 난민으로 밀려난 것이다. 차기테 마을은 어쩌면 그 낭떠러지 가까이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98)
케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 교통체증은 심하고 생각은 꼬리를 문다. 마틴이 일하는 최신식 쇼핑몰의 커피숍에서 좁은 농로를 따라 길게 이어진 길 끝 커피 농가의 부엌까지. 케냐 커피가 배를 타고 멀리 유럽과 미국, 한국의 근사한 스페셜티커피숍에서 소비되기까지, 커피는 다양한 공간에서 변주된다. 100년 전 카렌의 커피 농장과 오늘날 응다로이니 가공소의 모습에는 놀라울 정도로 큰 차이가 없다. 세상은 혁명적으로 변모했지만, 이곳은 그 세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런 것을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고 하는 걸까.
커피를 바라보는 입장과 관점은 다르지만, 커피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전 속에 공간과 시간의 이질성을 관통하고 커피 거래구조의 다층적인 면면을 지나 우리에게 온다. 숱한 우여곡절을 거치며 커피를 기른 생산자들의 얼굴은 지워지고, 커피를 가공하고 유통하는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 채운다. 마침내 소비자의 손에는 브랜드만이 크게 인쇄된 컵이 쥐어진다. 커피는, 그리고 우리는 그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것일까. 카렌이 커피 농장을 운영할 때 가뭄으로 타들어가는 커피밭을 보며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나중에 내가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응공에 비가 내리는지 궁금해할 거예요.” (p.133-134)
에티오피아는 2020년 기준, 아프리카 최대 커피 생산국이자 세계 5위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커피 산지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하고 많이 마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산량의 거의 절반 정도를 자체 소비할 정도인데 이는 커피 생산국 가운데 가장 높은 비율이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정도 커피를 마신다. 어디를 가더라도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무역의 3분의 1 정도를 차지하는 주요한 외화 수입원이고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직간접적으로 커피 일에 종사하고 있다. 한편, 대부분의 커피 소비국에서 에티오피아 커피의 인기는 독보적이다. 한국 사람들은 신맛 있는 커피를 싫어한다면서도 산미가 꽤 풍부한 에티오피아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맛의 개성만 놓고 보면, 에티오피아 커피를 대체할 만한 커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티오피아도 다른 커피 생산국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생산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국제 커피가격으로 인한 빈곤의 악순환,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병충해 증가와 생산량 감소다. 에티오피아처럼 커피가 경제와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에서는 그 충격이 더욱 크다. (p.140-142)
영국 왕립식물원의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라 현재 아라비카 재배지의 99.7퍼센트는 2080년까지 커피 재배에 부적합한 지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대부분의 커피를 숲에서 야생 혹은 반야생으로 재배하는데 지난 30년 동안 숲이 빠른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커피는 온도에 예민한 식물이다. 평균 기온이 1도만 달라져도 맛이 달라지고 2도가 달라지면 생산성이 급락한다. 3도가 달라지면 그 지역에서는 더이상 자랄 수 없다. 1960년대 이래 에티오피아 연평균 기온은 1.3도가 올랐고 온도 상승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커피 재배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에티오피아가 원산지인 아라비카 품종은 유전적 다양성이 너무 부족해서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와 질병의 위협에 취약하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카파의 깊은 숲에 존재하는 야생 커피들이 가진 유전적 다양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품종만 수천 종류다. 커피의 미래에 대한 심각한 논의가 촉발된 이후로 아라비카 커피의 기원인 카파 숲은 천혜의 유전자은행으로서 커피 산업의 미래를 결정지을 유일하고 핵심적인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세계로 뻗어나간 커피는 결국 기원으로 돌아올 운명이었을까? (p.143-144)
커피를 재배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커피를 로스팅하고 매장에서 추출하는 일보다 커피 농사는 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사람의 노력과 열정보다 자연의 힘이 월등하게 크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데만 몇 년이 걸렸다. 비가 너무 많이 올 때, 가물 때, 바람이 몰아쳐 잘 익은 커피열매들이 땅에 떨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커피 품질을 향상시키는 데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했다. 토질을 바꾸고, 농장의 기후 조건에 맞는 가공 방식을 실험하고, 오래된 나무를 가지치기하고, 새로운 품종을 심는 것 모두. 나는 몸이 달았다. 외국의 많은 스페셜티커피 회사들도 좋은 생두를 찾아 산지에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마음속으로 동경하지만, 결코 넘고 싶어하지 않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에 그 강을 건너고 싶었다. (p.154-155)
하지만 르완다 방문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심사위원단과 단체로 관람했던 르완다 학살 추모관이었다. 거의 백만 명이 학살된 것이 1994년이었으니 고작 16년 전 일이다. 르완다내전을 후투족과 투치족 사이의 종족 갈등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추모관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에 경악했다. 평소 친절했던 동네 이웃이나 다니던 교회 목사, 학교 선생님까지 자신을 죽이기 위해 이름을 부르며 뒤쫓아왔다는 생존자의 증언이나 학살을 피해 성당으로 들어온 수백 명의 투치족을 민병대에게 넘겨 몰살시킨 신부의 사례도 잊히지 않는다.
르완다내전은 벨기에가 식민통치를 위해 각 종족들을 차등 대우하며 시작되었고 당시 학살의 주범이었던 후투족 정부군과 민병대를 훈련하고 무기를 공급했던 프랑스 미테랑 정부, 방관을 넘어 학살에 직접 관여했던 로마 가톨릭까지 모두 믿을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나는 그날 저녁 호텔로 돌아와 내가 좋아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커피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p.187)
콩고민주공화국은 다이아몬드, 구리, 금, 코발트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어 부유한 국가가 됐을 법도 한데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다. 1990년대 중반 발발한 내전으로 육백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콩고민주공화국은 꽤 유망한 커피 생산국이었지만 내전 발발 이후 수확량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내전 중 많은 커피 가공시설이 파괴되고 전기 공급과 도로까지 끊기자 커피를 판매할 방법이 없어졌다. 커피 생산자들은 커피를 팔기 위해 낡고 작은 배에 커피를 실어 키부 호수 건너편 르완다로 이틀에 걸친 항해를 감행했다. 도중에 배가 침몰하거나 해상 강도를 만나 커피와 목숨 둘 다를 잃는 경우도 많았다. 운 좋게 르완다에 도착해도 현지 상인 모두가 이들에게는 다른 판로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커피를 넘겨야만 했다. 내전 이후 약 이천 명의 콩고민주공화국 커피 생산자가 이 호수에서 목숨을 잃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는 이곳, 키부 호수에서 말이다. (p.190-191)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던 시절 벨기에는 이곳에 커피를 심어서 수출하고 일부는 본국으로 가져갔다. 이 지역 국가들은 독립한 이후에도 생존하기 위해 계속 커피를 생산해야 했고 식민주의 국가가 만들어놓은 기존의 커피 거래 시스템을 통해 커피를 판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공용어로 벨기에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벨기에는 식민통치 시절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천만 명을 학살했지만 히틀러나 스탈린만큼 벨기에라는 나라가 비난받지 않는다. 지금도 키부 지역 국가에는 벨기에인과 프랑스인이 많이 들어와 여러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치적 독립은 오래전에 이루어졌지만, 경제적 예속과 문화·심리적인 상흔은 더 뿌리깊게 장기지속하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에게 커피란 무엇일까?
키부 지역에서 커피는 대표적인 ‘충돌 내성 작물(conflict resistant crops)’로 기능한다. 이 유형의 작물은 국가와 환경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 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한 세력이 곡물을 소비하거나 판매하여 이익을 얻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커피열매는 사람이 바로 먹을 수 없고 가공에 상당한 설비와 시간이 필요하며 지역에서의 현금화가 쉽지 않다. 그래서 커피는 무력 충돌의 와중에도 커피 생산자가 정주할 수만 있다면 생산이 가능하다. 커피는 내전이 끝난 후에도 피해 복구와 지역민의 수익 증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스페셜티커피는 기존의 자급자족 상태에 머물러 있는 생산자를 국제 시장과 연결하고 높은 부가가치를 지속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다. 커피는 르완다가 내전으로 인한 파괴를 성공적으로 넘어서는 데 중요한 디딤돌이었고 콩고민주공화국이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사회 불안을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만난 모든 커피 생산자에게 커피는 희망이었지만 특히 르완다와 부룬디, 콩고민주공화국의 커피 생산자에게 커피는 죽음과 파괴를 딛고 일어서는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92-194)
국제 심사위원들은 아라쿠 지역 생산자가 출품한 커피 중 예선을 통과한 샘플부터 커핑을 시작했다. 이틀 동안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진행했는데 온종일 서서 100여 개가 넘는 샘플을 커핑하다 보면 지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번 평가에 할애된 50분을 다 쓰지 않고 대충 점수 매기고 앉아서 쉴 자리를 찾고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커피를 심사한다는 것은 커피 생산자가 1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해 수확한 커피를 단 50분 만에 평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커핑에는 커피가 가진 품질과 관능적 특성을 잘 살피는 것뿐만 아니라, 행여 나의 편리와 편견 때문에 1년의 결실을 부당하게 평가하지 않도록 커핑 테이블 앞에서 신중하고 집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p.196-197)
난디에서 아라쿠에 설립한 커피 협동조합에는 현재 이만오천 명의 생산자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기농 및 공정무역 인증 커피 조합이다. 아라쿠 커피 생산자는 이 조합에 각자 수확한 커피열매를 인도 평균 구매가격의 네 배 이상에 판매한다. 협동조합은 판매대금을 즉시 생산자에게 할당하지만, 일시불이 아닌 월 단위로 지급해서 연중 생활비가 부족하지 않도록 한다. 보통 다른 커피 생산국에서는 소규모 생산자가 커피열매를 판매하면 빨라야 4~5개월 후에 대금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생산자는 그사이 아무런 수입 없이 살아야 하고 내년 농사를 위한 준비와 투자를 할 수 없다. 아라쿠의 이런 대금 지급 방식은 커피 생산자의 안정적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되었고, 생산자가 커피 재배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커피 품질이 높아졌다. 또한 데이비드 호그가 이끄는 기술지원팀은 커피 재배 마을들을 일일이 방문하며 영농 교육을 계속하고 공동 퇴비장을 만들어 미생물과 함께 발효시킨 유기농 퇴비를 마을 단위로 공급한다. 이런 노력 덕에 아라쿠 커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p.199-200)
시상식을 마치고 심사위원 및 대회 관계자들과 함께 인근 여학교를 방문했다. 난디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학교다. 한국이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인도에서도 집이 가난하면 제일 먼저 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은 여자아이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어린 나이에 결혼 지참금에 팔려가듯 결혼을 한다. 특히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이런 일이 더 흔하다. 대중교통도 없고, 부모는 일찍 일하러 가야 하므로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줄 형편이 안 된다. 그래서 이 학교는 기숙학교로 운영하고 학생들은 집에 한 달에 한 번 간다. 아이들은 학교에 찾아온 외국인이 신기한지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한 교실에 들어갔는데 다섯 명의 아이가 나와서 환영의 노래를 불러주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힌두어였지만 감동했다. 담임선생님 말에 따르면 아이들 부모의 직업은 다양하지만 대부분 농사를 짓는데 특히 커피 생산자가 많단다. 지난 며칠 동안 커핑했던 커피를 재배한 농부들의 딸들이라고 생각하니 더 각별했다. 커피리브레에서 구매하는 커피가 이 아이들과 나를 연결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문을 나서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수줍어하면서도 너도나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아이들이 저마다 까르르 웃으며 악수를 하고 손을 흔드는데, 이런 맑고 순수한 환대를 느껴본 지가 언제인가 싶었다.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전 세계 많은 커피 이벤트에 참여했지만, 이보다 더 멋지고 인상적인 마무리는 없었다.
나는 아라쿠에서 귀국하자마자 방문했던 여학교를 운영하는 난디 기금에 서른 명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매년 그 수가 늘어나, 10년이 지난 지금은 약 사백 명의 아이들을 지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아라쿠 커피의 최대 구매업체가 되었다. (p.202-203)
스페인어 선생님 플로린다는 아홉 남매 중 한 명이다. 부모님이 힘들게 농사를 짓는 터라 자식들 모두를 교육할 여건은 안 돼서 플로린다를 빼고 나머지 형제들은 초등학교만 나왔다. 다들 집에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짓거나 과테말라 여기저기에 흩어져서 일하고 있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플로린다는 백방으로 장학금을 알아보러 다녔다. 플로린다를 기특하게 여긴 교장 선생님이 장학 프로그램을 소개해줬고 기적적으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스페인어로 말해서 드문드문 알아들었지만 나는 플로린다 얘기가 마음에 와닿았다. 내게는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대학에 가고 싶어서 공부했고 그후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큰 어려움 없이 그냥 공부했던 경험이 전부다. 공부는 선택과 의지의 문제였을 뿐,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거리고 어린 나이에 장학금을 알아보러 혼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절실한 마음이란 어떤 걸까. 이제 스무 살. 스페인어뿐만 아니라 배울 점이 많은 선생님이다. (p.244-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