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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 중산층 / 구해근 / 창비

 

 한국에서 중산층의 등장은 20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급속한 산업발전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1960년대 초반 수출지향적 산업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인구의 대다수가 농촌에 거주하며 일하는 농경사회였다. 물론 그 이전 일본 식민지 시대에도 적지 않은 직업구조의 변동이 있었다. 식민지 산업화로 공업노동자가 늘어나고 일본제국주의 체제를 지탱하기 위한 하급 관료들과 은행원, 교사, 그리고 소수 지식인 계층이 등장했다. 이 집단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중간계층으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은 크기가 매우 작았고 식민통치와 밀접한 관계하에 존재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중간계급이라 부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렇지만 1960년대에 시작된 산업화는 한국인들이 일하고 돈 벌고 삶을 영위해가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특히 직업구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1950년대 후반에는 노동인구의 80%가 농민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1980년대 초에 와서는 농업인구가 전체 노동인구의 3분의 1로 줄어들고 1990년대 후반에는 10%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불과 30여년의 기간 동안에 소작 영농의 나라가 도시 임금노동자들의 나라로 변모하였다. 장경섭이 적절히 묘사한 것처럼 한국이 경험한 산업화는 서구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분명 ‘압축된 근대(compressed modernity)’라고 할 수 있다. (p.34-35)

 

 중간계급과 달리 중산층이란 단어는 정치적으로 더욱 안전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개념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이란 가난에서 막 벗어나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기 시작한 사람들이 나도 이제 남만큼 살게 됐다고 느낄 때 그들의 사회적 위치를 대변해줄 수 있는 편리한 개념인 것이다. 1970~80년대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자신의 부모 혹은 자기 자신의 가까운 과거와 비교해볼 때 그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나아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국 경제의 꾸준한 발전이 자신과 자식 세대에게 더 밝은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중산층의 개념은 모호하기는 했지만, 이렇듯 경제 상황의 개선과 계층상승에 대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던 낙관적인 기대를 함축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중산층은 열망의 개념(aspirational category)으로 이해될 수 있다. 즉, 많은 사람들이 현재 소속감을 느끼거나 혹은 가까운 미래에 속하기를 원하는 ‘사회적 정체성’을 제공해준 개념이 바로 중산층이었다.
 그러면 중산층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 개념은 한국의 학계, 미디어, 그리고 정치권에서 무수히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 정확하게 정의되는 경우는 드물다. 중산층 연구가 초기에 활발하게 일어나던 1980년대 말,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실시한 중요한 사회조사에서는 중산층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렇게 잘 살지는 못하나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고 체면치레할 만큼 교제도 하며 여름휴가엔 가족 바캉스도 다녀올 수 있고 문화적인 생활도 어느정도 즐기고 있”는 이들. 이와 비슷한 예는 많았다. 예컨대, 『당신은 중산층인가』(삼성출판사 1980)의 저자는 중산층을 남부럽지 않은 수준급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이들로 간단히 정의하고, 여기서 “수준급 생활”이라 함은 “약간의 무리는 하면서도 애들 학교 보낼 수 있고, 체면치레할 만큼 교제도 하고, 가다가 틈틈이 문화비 지출도 가능한 정도”를 의미한다고 부연했다. 결국 중산층은 어느정도의 경제적 안정과 여유를 누리는 사람들이고 이 경제적 여력으로 자녀 교육과 사회적 관계에서 남들이 하는 만큼 따라서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해되어왔다. 중산층이 된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것은 모든 일반 노동자와 서민들이 열망하는 삶의 목표가 되었다. (p.36-38)

 

 한국에서 중산층의 또다른 중요한 측면은 사회계약으로서의 기능이다. 중간계급이 선진국 사회에서 사회계약의 주된 기반으로 기능하였다는 사실은 여러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한 바이다. 준즈(Olivier Zunz)에 의하면, “2차대전 후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맺어진 사회계약은 전쟁 전 미국에서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이 서로 간의 어느정도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커다란 중간계급으로 합쳐졌던 흐름을 따라가는 한편 그 흐름을 오히려 더욱 촉진시켰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종류의 사회계약이 발전국가와 시민 사이에서 암묵적인 형태로 형성되었다. 이 계약은 국민이 각자 열심히 일하고 국가의 발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성심껏 노력한다면 그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이었다. 국가는 국민에게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를 규제하고, 고용주의 말에 순종하며,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훗날로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 대가로 국가는 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고 그들이 중산층에 합류하여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 이러한 암묵적인 사회계약은 대부분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는 공정한 교환이었다. 그렇지만 블루칼라 산업노동자들에게는 아니었다. 공장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극도의 착취에 시달렸고 그들이 부르짖은 최소한의 인권 보장과 정의는 1987년 대규모 노동봉기가 터져나오기 전까지는 폭력적으로 억압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산층 담론은 국민 전체를 국가의 발전 프로젝트에 동원하고 헌신하도록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p.39-40)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한국의 중간계급은 19세기 유럽이나 미국에서 형성된 중간계급과는 사뭇 다르다. 19세기 서구에서 중간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은 상인 및 자본가계급인 부르주아지였다. 그들은 상류 귀족계급과 하층 농민, 도시 노동자들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었으며, 20세기의 물질주의적 자본가들과는 크게 다른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많은 역사적 문헌들이 보여주듯이 19세기 유럽의 부르주아지는 단순히 경제적 자산의 소유를 기반으로 하기보다는 그들 특유의 도덕적·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서 자신들의 계급 정체성을 수립하려고 노력하였다. 데이비도프와 홀은 영국의 중간계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9세기 후반 이후로 중간계급을 대표할 만한 사람들은 차츰 더 자신들의 도덕적 우위와 영향력을 확립하려 노력하였고, 이런 태도는 이 땅에서 이룬 세속적인 부귀보다 천상에서 받는 신의 은총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과 자부심에 의해 강화되었다. 토지를 기반으로 한 부를 명예의 원천으로 삼는 것을 거부하고 내적 영혼을 우선시하면서, 그들은 좋은 기독교인의 삶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는 일에 집착하게 되었다.


 북구 유럽의 중간계급을 연구한 프뤼크만과 뢰프그렌도 19세기 유럽의 중간계급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부르주아지는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여러가지 덕목들을 근거로 자신들이 사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 덕목들이란 높은 도덕적 기준, 자기 규율과 절제, 검약과 합리성, 과학과 진보에 대한 확고한 믿음 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계급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는 계급 둘 다 이런 품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믿었다.

(p.43-45)

 

 현재 한국에서 중산층 체감 의식이 계속 낮아지는 중요한 이유는 많은 중류층 사람들이 생각하는 준거집단이 변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그들에게 준거집단은 자신과 비슷한 경제 상태에 있는 이웃사촌들이었다. 비슷한 소득에 비슷한 집에 살며 거의 같은 종류의 국산 차를 몰면서 비슷한 여가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을 의미했다. 경제적으로나 생활방식에서 좀 차이가 나더라도 그것은 그리 큰 질투심을 자아낼 만한 것은 아니었으며, 사람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도 남만큼 산다”고 자부하면서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판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기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 사람 중에 억대 단위 봉급자가 나타나고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의 집값이 2배 3배 오르는 일도 벌어진 것이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특히 부유층이 돈을 쓰는 스케일이나 사는 모습이 달라졌다. 살고 있는 아파트가 더욱 커지고 현대식으로 고급화되었으며, 몰고 다니는 차는 더이상 현대 소나타가 아니라 고급 국산 차 아니면 비싼 외제 차로 바뀌었고, 입고 다니는 옷이나 핸드백, 구두, 시계 등의 소지품도 소위 명품 아니면 그에 준하는 고급스러운 것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p.54-55)

 

 중간계층은 동질적인 계층이 아니며 과거에도 중산층 안에 비교적 부유한 중산층 가정들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등장한 신중상층과 과거의 부유층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예전에는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는 가운데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어느정도 공평한 혜택을 받았고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반면, 현재는 그러한 상승이동의 기회가 막혀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의 신중상층은 대다수 중산층 사람들이 경제적 불안을 겪으며 하향이동을 할 때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은 호전되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즉, 현재의 부유층은 경제적 양극화가 대다수 인구를 패자로 몰아가는 가운데 승자로 등장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일반 중·하층 집단과 구별짓고 싶어하며, 그 욕구를 자신의 차별화된 거주지역, 소비 형태, 생활양식 등을 통해서 추구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점점 불안해져가는 사회에서 자신이 획득한 계급적 위치를 자식 세대가 계승할 수 있도록 사교육을 통한 교육 경쟁에 매진하게 되는 것이다. (p.114)

 

 이와 같은 변화가 웰빙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명품과 달리 웰빙은 원래 경제학자들이 일컫는 이른바 ‘지위재(positional goods)’가 아니다. 지위재는 상대적 가치를 가진 물품으로서 지위 경쟁에서 소유자의 상대적 위치를 나타내는 재화를 뜻한다. 소유자가 사는 아파트, 몰고 다니는 차, 입고 다니는 옷, 가방, 구두, 시계 등이 대표적인 지위재이다. 지위 경쟁은 이런 지위재를 둘러싸고 주로 일어난다. 반면 우리가 집에서 무슨 음식을 먹는지, 어떻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지, 또는 어떤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는지 등은 신분 경쟁에서 중요한 종목이 되지 않는 비지위재(nonpositional goods)이다. 많은 저소득층 젊은이들이 집에서는 자주 라면으로 식사를 때우면서도 차는 비싼 것을 몰고 다니는 이유가 바로 지위재와 비지위재의 차이로 설명될 수 있다. 그러나 웰빙 유행에서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변화는 웰빙에 포함된 먹거리, 운동, 여가 활동이 빠른 속도로 상업화되면서 과거에는 극히 사적이었던 영역의 것들이 차츰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위재로 변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웰빙도, 더 정확히 말해서 웰빙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도 아주 중요한 지위재로 변했다.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운동을 하여도 어디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계층적 의미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주말에 가까운 산으로 등산을 다녀와서 동네 목욕탕에서 몸을 푸는 것도 충분히 좋은 휴식이 되겠지만 제대로 된 웰빙은 호텔 피트니스 클럽이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거나 스파에서 마사지를 받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웰빙 라이프스타일은 계속 고급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므로 의식주 모든 영역에서 웰빙 바람이 불면서 이를 통한 신분 경쟁도 더 심해졌음은 물론, 각 가정의 가계 지출도 늘어나게 되었다. (p.163-164)

 

 자본주의 시장이 계속 고급 상품과 서비스를 창출하는 것은 당연한 법칙이겠으나, 왜 경제적으로 극히 불안한 상태에 있는 중·하층 사람들이 상류층 소비 추세를 모방하며 과소비를 하고 있는지는 궁금한 문제이다. 그에 대한 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중·하층 사람들도 소비 경쟁을 피할 수가 없으며, 또 남에게 뒤떨어지고 싶지 않은 심리가 공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사회에서 발견되는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중간층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비교하는 대상의 수준이 과거보다 무척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다른 말로 얘기하면, 그들의 준거집단이 많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의 주된 준거집단이 자신들과 경제적 지위가 비슷하거나 혹은 자신들보다 약간 더 부유한 이웃들이었다. 따라서 이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너무 무리한 소비를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의 준거집단은 자신과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소득수준의 사람들이다. 미국의 과소비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한 줄리엣 쇼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우리들이 선택하는 비교 대상은 더이상 우리 자신과 비슷한 소득이나 혹은 한 단계 높은 소득수준의 사람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기 자신보다 소득수준이 3, 4, 5배 높은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그들을 ‘준거집단’으로 선택하곤 한다. 그 결과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제는 국가적 문화가 되다시피 한 고급 소비문화(upscale spending)에 동참하게 된다. 이 현상을 나는 신소비주의(new consumerism)라고 부르겠다.

(p.165-166)

 

 그러나 한국의 대학 서열과 학벌 구조의 더 중요한 특징은 이것이 연고주의와 밀착되어 있다는 점이다. 같은 대학 출신들이 동류의식을 갖고 끈끈한 인맥으로 연결되어 취업이나 승진 등에서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행위는 자주 볼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연고주의와 마찬가지로 학벌로 형성된 연고주의는 자기 집단 사람들은 감싸주면서 타 집단을 배제하거나 배척하는 행위로 자주 나타나곤 한다. 동문들이 사회의 상층부에 많이 포진한 명문 대학을 나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벌은 개인이 대학입시를 볼 시기에 결정된 후 평생 따라다니는 일종의 신분증서 같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정해진 학벌은 바뀌지 않고, 또다른 방법으로 대체하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정말 무서운 낙인찍기라고 할 수 있다. 김동춘이 잘 지적한 대로, “한국의 수험생들에게 대학 서열은 이후의 인생의 진로와 직결되고 한번 정해지면 뒤집기 어려운 가장 엄한 지위 서열이자 계급이다.” (p.178-179)

 

 명문대 학생들의 스펙에 대한 집착과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연세대학교의 인류학 교수 조혜정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학생들은 명문대에 입학하고, 그것도 유망한 학과에 들어오고 나서도 영어 능력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에 몰두하고 있고, 다양한 공모전이나 자격시험을 준비하느라 애쓰고, 해외 연수나 인턴십 같은 기회를 열심히 찾는다. (…) 스펙을 쌓는 데 온통 집중하는 젊은이들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내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시간관리를 실천해왔다고 말한다. 나는 이 학생들이 자기계발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매뉴얼을 즐겨 읽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혜정이 관찰한 이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현재 한국 학생들의 정신적 삶에 얼마나 깊이 침투했는가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노동력을 시장에서 매매되는 하나의 상품과 같이 취급하며 그 상품의 시장적 가치와 효용성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념이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은 스스로를 시장에서 팔아야 할 상품으로 생각하며 자기의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스펙 쌓는 일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학생들은 흥미로운 책을 읽거나 사회적·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들에 참여할 시간도, 그에 대한 관심도 없을 정도로 스펙 쌓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있다. (p.190-191)

 

 한네르스가 지적하는 대로, “코즈모폴리턴한 문화적 지향은 더 많은 교육과 더 많은 여행, 더 많은 여가를 필요로 하고 다양한 문화적 형태의 지식을 배양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적인 자원이 수반되어야 한다.” 비슷한 측면에서 캘훈 역시 코즈모폴리터니즘을 획득하는 것은 “사회적·문화적·경제적 자본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그는 코즈모폴리터니즘이 “자주 여행을 다니는 이들의 계급의식”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코즈모폴리터니즘을 문화자본으로 이해할 때, 두가지 형태의 코즈모폴리터니즘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부르디외의 개념을 사용해서 본다면, 하나는 ‘제도적인 문화자본’이고 다른 하나는 ‘체화된 문화자본’이다. 전자는 학위나 증서, 자격증처럼 제도에 의해 수여되고 확증되는 문화적 능력을 의미한다. 후자는 획득하고 몸에 익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언어 능력, 문화적 취향, 매너, 고급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능력 등을 포함한다. 세계화 초기에 한국에서 코즈모폴리턴 문화자본으로 중시된 것은 주로 영어 능력과 우수 외국 대학 학위, 또는 외국 기관이 발행한 자격증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체화된 형태의 코즈모폴리턴 문화자본이 차츰 더 중요해지는 경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컨대 잦은 해외여행으로 얻은 견문, 다른 문화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능력, 세련된 감각과 매너, 국제적인 화제에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능력, 서구적인 생활양식 등이 차츰 코즈모폴리턴의 주요 특징같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은 물론 고전적이고 윤리적인 의미의 코즈모폴리터니즘과는 크게 다르다. 세계의 모든 인종과 문화를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범세계적인 자아 정체성을 추구하는 코즈모폴리턴 이상은 결여되고, 그 대신 코즈모폴리턴 라이프스타일을 통해서 상류층 지위를 과시하려는 계급적 욕구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p.224-226)

 

 결국 현대 한국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불안의 근본 요인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계급·계층 간 불평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불안은 가진 자나 못 가진 자, 경쟁에서 성공한 자나 실패한 자 다 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불안의 종류나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말이다. 승자는 자신들이 소유한 것을 잃을까봐 불안해하고, 패자는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잃고 더 추락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p.243)

 

 

에디터의 일 / 김담유 / 스리체어스

 

 언젠가 출근하는 전철 안에서 좀처럼 잊히지 않는 만평 한 컷을 보았다. 다수의 인간 군상이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좀비처럼 걸어가는데, 그 행렬에서 비켜난 한적한 벤치에 인공지능 로봇이 편안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읽는 광경이었다. 걷는 와중에도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인간 무리와 책을 읽으며 유유자적 사유하는 기계의 배치도는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기계가, 기계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인간이 놓인 전도된 이미지 한 장에서 앞으로 도래할 인간과 기술의 미래를 통째로 보았다면 과장일까. 아니 이미 상당히 진행된 현실이라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다만 나는 그 만화에서 희망의 씨앗도 보았다. 책이라는 오브제가 상징하는 ‘사유하는 존재’야말로 그것이 인간이든 기계든 맹목적인 흐름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이면서도 우아하게 각성 상태를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살아있음의 참맛, 일과 시스템에 압사당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는 생의 참맛이 ‘독서하는 기계’를 통해 우회적으로 환기되자 책 만드는 나의 직업이 특별한 각도로 다가왔다. 사유하는 최후의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계속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결기가 솟은 건 그 때문이다. (p.8-9)

 

 에디터는 분절과 단속으로 점철된 일상의 세계를 연속된 흐름의 언어로 변환하는 일, 혹은 그 반대의 일을 습관처럼 해내야 한다. 그러자면 사변을 쳐내고 핵심 생각을 붙드는 힘이 중요하다. 작디작은 문제라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며 문제를 문제답게 키워 공공 의제로 승화해야 한다. 에디터의 강한 문제의식 하나가 1만 명의 생각을 바꾸고, 10만 명의 감성을 바꾸고, 100만 명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오만일까? 하지만 기적처럼 그런 일이 벌어지고는 한다.

그래서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질문이다. 삶에 대한 질문, 사람에 대한 궁금증, 사물에 대한 호기심, 무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 앎의 도약이 주는 환희 등등. 이것은 모든 이에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 질문과 호기심과 앎의 욕구는 결국 언어의 회로, 문자의 체계를 따라 움직인다. 문제는 질문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항심(恒心)과 하심(下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항심이 시간을 통과하는 힘이라면, 하심은 어디서건 무엇이건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p.25)

 

 편집의 속성을 궁리할 때면 대학 시절의 도서관 아르바이트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 돈이 필요해 시작한 일인데 의외로 내가 무질서하게 흐트러진 정보나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훗날 새로운 기획을 위해 수많은 자료 더미를 헤맬 때 큰 도움이 됐다. 원하는 자료를 찾고자 최적의 동선을 탐색한다거나 몸을 써서 어떤 공간을 질서정연하게 만들어 본 경험은 비물리적인 공간, 이를테면 머릿속에서도 위력을 발휘한다.
 가령 오래 찾아 헤매던 A라는 문건을 인터넷에서 발견했다고 치자. 머릿속에서 A 문건이 어떤 시대와 지역에 속하는지 위상학적으로 탐색하는 동시에 지적 세계에서 A가 차지하는 곳의 좌표를 찍기 시작한다. 일단 이 좌표를 시작으로 원점이 생기면 그것을 기준으로 A’, A’’, A’’’…라는 유사점에 의한 종 계열 또는 B, C, D…라는 차이점에 의한 횡 계열로 문서의 위치 짓기(positioning)가 수월해진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이 범주화되면, 설령 빈틈이 많을지라도 머릿속이 거대한 도서관으로 바뀐다. 나만 아는 서가에 나만 아는 통로로 들어가면 원하는 정보가 놓여 있다. 한편으론 머릿속에서 정보와 정보가 새롭게 연결되며 완전히 낯선 지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또 다른 지식의 위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입체적으로 형성된 지식의 3D 도면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굳이 모든 지식을 알지 않아도 된다. 어디를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요령이 있어, 원하는 정보를 고구마 줄기 캐듯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은 지식의 위상학이자 공간학의 정점에 있는 분야다. 지식을 생산하는 일이 저자의 일이라면 지식의 위계와 범주를 설계하는 일은 에디터의 일이다. 에디터는 저자처럼 어떤 한 지식에 정통할 필요가 없다. 모든 지식을 알 필요도 없다. 원하는 지식이 무엇이고, 필요한 저자가 누구인지 분별하고 선별하는 일에 기민하면 된다. (p.76-78)

 

 출판 동네에 있다 보면 듣지 않아도 좋을 것을 듣고,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보게 된다. 사람과 말에 관계하는 직업이다 보니 누구보다 깊숙이 알게 된다. 만인이 감탄하는 작품을 쓴 사람이 사실은 대필 작가를 고용했다거나, 아름다운 시를 짓는 사람이 누구보다 세속적으로 부를 축적한다거나, 약자에 대한 존중을 주장하는 이가 정작 약자만 골라서 괴롭히는 현장을 목격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출판업 자체에 회의감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나의 업을 팽개칠 수는 없으니 문장과 행위, 글과 사람이 일치한다는 환상을 내려놓아야 오래오래 책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은 완전하지 않고 지극히 모순적인 생물이라서 생각과 말과 행위가 서로를 자주 배신하고 엇나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진짜 출판이 시작된다. 그래야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사언행(思言行)이 조화로운 이를 발견하고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
 왜 우리는 글을 쓰고 책을 만들까? 저마다 곡진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 행위가 인간만의 일이자 가장 인간다운 일이라고 여긴다. 사람보다 아름다운 존재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길 위에 놓인 한 덩이 돌조차 사람보다 아름답지 못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돌은 글을 쓰지 못한다. 책을 만들지 못한다. 언어적 존재, 관념과 추상의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돌은 돌만의 분자 구조를 가진 사물일 뿐이다. 그 사물의 심원을 직관하는 눈과 논증하는 언어는 인간의 것이다. 이 인간다움의 총체가 출판으로 귀결된다. (p.97-98)

 

 

쇼 미 더 허니 / 데이브 도로기 / 이김

 

 미리엄은 아이디어와 함께 내게 첫 번째 양봉 강의를 해 주었다. 그는 벌들은 군체에서 꽃꿀을 수확하기 좋은 곳으로 최대 5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고 설명했다. 이 작은 생명체의 뇌는 우리 뇌의 2만분의 1 크기라는 것을 명심하자. 뇌 크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꿀벌들은 GPS의 도움 없이 매번 비행 후에 정확히 같은 장소, 그러니까 처음 출발한 벌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벌들은 갑판으로 돌아왔다. 나는 상대적으로 거대한 두뇌를 갖고 있는데도 가끔씩 동네 쇼핑몰에서 차를 어디다 주차해 놨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놀랍게도 벌은 최대 시속 24킬로미터로 비행할 수 있는데, 이는 작은 2행정 기관과 맞먹는 성능이다. 꿀벌은 작고 연약한 날개 한 쌍을 1분에 11,500번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
 미리엄은 꿀벌은 집밖에서 날아다닐 때 오직 벌집과 꽃꿀 두 장소에만 신경을 쓴다고 강조했다. 벌에 대한 초급 지식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벌들이 이 두 중요한 장소까지의 방향과 거리를 서로에게 알리는 방식을 일컫는 기발한 이름이다. 이 완전히 과학적인 양봉 용어는 와글댄스(waggle dance)다. 벌은 꽃꿀이 흐르는 곳을 찾아 매일 벌집을 떠난다. 벌집으로 돌아올 때 그들은 다른 수백 마리의 벌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야 한다. 말을 할 줄은 모르니 춤으로 소통한다. 와글댄스는 매우 전문적이고 정교한 꿀벌들의 블루스인데, 꽃꿀이 흘러 넘치는 식물과 꽃 쪽으로 가는 길을 알려 준다. 벌들이 둠칫 둠칫 두둠칫 하며 와글댄스를 추는 복잡한 동작과 효율성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다. (p.20-21)

 

 북아메리카 사람들은 1년에 약 60킬로그램 정도의 설탕을 먹는다. 이 음흉하고, 건강에 해로우며, 중독성이 있는 달콤한 물질은 대부분의 가공 식품에 숨어 있다. 만약 설탕이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면 우리는 따뜻한 커피에 설탕을 몇 스푼 더 넣고 음식에도 더 뿌렸을 것이다. 우연히도 ‘벌집 주’에 살면서 유타 의과대학에서 진행하는 당뇨병과 심혈관 질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내 친구 데이브 사이먼스 교수는 설탕을 “죽음의 백색물질”이라고 불렀다. 내가 꿀이 설탕의 훌륭한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려고 이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음, 그럴지도. 하지만 그런 얘길 하기 전에 내가 양봉을 시작했을 때 충격 받았던 일을 하나 얘기하려고 한다. 벌치기들은 우리 모두가 마트에서 사는 것과 똑같은 하얀 과립 결정을 자기 벌들에게 먹인다. 그렇다! 벌들은 인간처럼 가공된 백설탕을 먹으며 먹는 양도 엄청나다. 나 같은 벌치기들 덕분에 취미용 벌통 하나가 매년 평균 23킬로그램가량의 백설탕을 먹어치운다. 벌과 사람의 몸무게 비율을 고려하면 이 땅의 벌들은 일반적으로 그 해롭다는 설탕을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이 먹는다. (p.167-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