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공장 블루스 / 김원재 / 알에이치코리아
공장에서 일하다 보면 ‘글로벌’이라는 낯선 단어가 ‘부곡3리 마을회관’처럼 친숙하게 느껴진다. 어느 김치 공장이 한동안 생산에 큰 차질을 겪었는데, 그 이유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때문이었다. 아웅산 수치의 구금 소식에 미얀마 사람들이 전부 광화문 시위에 참여하느라 일을 못 한다는 것이었다. 그 김치 공장은 알게 모르게 미얀마의 민주화 자금줄이 되어온 것이다. 세상에, 지구촌을 넘어 한솥밥을 먹는 느낌이다. 나는 네팔과 몽골의 평화를 지극히 바란다. 만약 그들의 나라에 어떤 일이 생긴다면 나도 나서서 힘을 보탤 것이다. 나의 외국인 친구들을 위해. (p.44-45)
누가 먹어도 맛있는 김치라는 광고 말을 쓰기는 하지만, 세상에 그런 김치는 없다. A가 먹으면 맛있는 김치가, B에게는 맛이 없다.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여름에 다르고, 겨울에 다르다. 어제까지 맛있던 김치가 오늘은 맛이 없어지기도 한다. 사장님은 항상 말한다. 맛은 세 번째라고. 첫째는 위생. 둘째는 재료. 셋째가 맛. 처음 두 가지를 지키면 세 번째는 따라오기 마련이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다르게도 들린다. 위생과 재료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지만, 맛만큼은 한없이 주관적이다.
가끔은 옷이나 색연필, 장난감을 만드는 공장이 부럽다. 그 제품들은 공장에서 잘 만들어 내보내기만 하면 걱정이 없다. 배송되어 가는 길에 없던 지퍼가 생기거나, 밀봉해 둔 레고 브릭의 색깔이 바뀐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김치 맛은 고객님을 향해 가는 길에도, 고객님의 집에 도착해서도, 냉장고 속에서도 시시각각 변한다. 김치는 공장이 만들어, 고객님이 맛 들인다. 김치 공장과 고객님의 이인삼각, 이 경기가 공장에는 얼마나 혹독한지 모른다. (p.104-105)
코로나를 겪으면서 확실해진 사실. 제조업에서 가장 큰 변수는 사람이다. 사람이 멈추면, 생산이 멈춘다. 문제는 갈수록 생산직을 하겠다는 사람도, 돈 조금 더 받자고 힘든 일 하고 싶은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풀무원이나 오뚜기, 대상 같은 큰 기업들의 생산 라인은 자동화가 잘되어 있다. 제품도 자동화에 적합한 것들을 생산한다. 예를 들면 사람의 손이 필요한 포기김치보다는 썰어서 버무리는 맛김치를 생산하는 식이다. AI가 보급될수록 사람들은 장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AI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내야 할 테니까. 그런 면에서 포기김치는 서기 2064년쯤 되면 큰 사치품이 될 것이다. 로봇의 손으로는 배춧잎 사이사이에 양념소를 넣는 게 아무래도 어려울 테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판사와 약사 같은 고학력, 전문직 직장보다 김치 공장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기 더 어려울 것 같다. 고양이와 강아지 구분을 힘겨워하는 AI가 좋은 배추를 골라낼 수 있을까. 정상적인 배추의 깨씨무늬와 병든 배추의 검은 줄무늬를 구분할 수 있을까. 그것을 구분한들 로봇 팔이 배추의 여린 겉잎들을 떼어내, 그 속에 야무지게 양념을 넣으면서 이물을 골라낼 수 있을까. 로봇의 손끝에서 계절에 따라, 원물에 따라 양념을 조절하는 ‘손맛’이 날 수 있을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김치 공장에서만은, 인간의 역할이 기껏해야 로봇의 관절들을 닦고 조여주는 일에 머무르지 않을 것 같다. 온 세상이 4차 산업으로 변해가도 먹거리 산업만은 꿋꿋이 인간의 손끝에서 꽃을 피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p.148-149)
어느 오후, 양념실에서 무 세척실로 가는데, 머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지나갔다. 항상 찌푸린 얼굴로 반밖에 안 든 무통을 싣고 다니는 그가 어쩐 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나가기에 사장님이 물었다.
“야, 너 왜 웃고 다니냐.”
“무 많아. 무가 많아.”
그날은 햇무가 들어온 날이었다. 포기김치 40톤을 만드느라 매일같이 무채 독촉을 받는 머기가, 지하수 뚫리듯 막힘없이 무가 쏟아지자 신나게 무를 채 치며 웃었다. 그 해사한 얼굴을 보며 문득 묻게 되었다.
우리는 왜 일을 하다가도 웃지?
퇴사 에세이와 열심히 살지 않겠다는 선언들이 베스트셀러의 반을 차지하는 요즘 세상에서 일터에서의 긍정 에너지는 인스타그램 속 친구의 얼굴 같다. 친구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만을 골라둔,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 아는 얼굴인데, 안다고 말하기 민망한. 누군가 본인의 업무를 긍정하면서 산뜻한 에너지를 발산하면 말문이 막힌다. ‘야, 거짓말하지 마. 제대로 일하는 거 맞아?’라고 되묻고 싶어진다. 누가 일을 즐기면서 한단 말인가.
머기가 무채를 더 빨리 썬들 그에겐 인센티브가 없다. 오늘의 무채왕이라고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다. 머기의 웃음은 누군가의 인정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다만, 머기의 일은 전적으로 머기에게 달려 있었다. 머기가 서두르면 무채가 빨리 나올 것이고 그가 늦으면 늦어질 것이다. 머기의 저 웃음은 다른 변수가 하나도 없는, 제 생산성에 대한 오롯한 기쁨 아니었을까.
일도 기쁨을 준다.
일이 주는 기쁨은 맛있는 케이크나 사랑하는 사람, 좋은 노래가 주는 것과는 다르다. 못하던 배영을 마침내 해내게 되었을 때나, 모르던 외국어를 마침내 읽게 됐을 때의 기쁨과 비슷하다. 일의 기쁨은 내가 몸소 싸워 나 자신에게 주는 기쁨이다. 무채를 써는 일이든, 책을 쓰거나 광고를 만드는 일이든, 회사가 시켜서 한 일이든, 그 기쁨만큼은 내가 이뤄낸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p.157-159)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라는 영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쓰레기 같은 소품으로 좋게 봐줘도 삼류밖에 안 되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부 부원에게 히로키라는 남자애가 묻는다. 아카데미를 받을 것도, 유명 여배우랑 결혼할 것도 아닌데 그런 영화는 왜 만드냐고. 그러자 영화부 부원이 답한다.
“음, 뭔가 가끔, 가끔이지만 말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랑 내가 좋아하는 게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게, 그냥 좋아서 말야….”
보잘것없는 우리의 일이 우리를 빛나게 하는 순간이 있다. (p.183)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구분해야 돼요. 주말까지 현업 끌어안고 일하는 거. 그거 본인 좀먹는 거예요.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안 하고 끊는 연습도 해야 돼요.”
끙끙대는 내 꼴을 보고, 미국 코리아김치페스티벌에서 도움을 주신 윤 이사님이 말씀하셨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려고 들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한다고. 사실 공장에는 중요치 않은 일이 없다. 전화를 받는 목소리가 회사의 목소리가 되고, 공장 마당에 버려진 꽁초 하나가 회사의 첫인상이 된다. 어떤 일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서 무작정 모든 일에 덤벼들다가 번번이 고꾸라졌다. 윤 이사님은 주말에 일하지 않는 것이 나의 숙제라고 했다. 현업에는 절대 손도 대지 말라고. 영어를 배운다든지, 전시회에 간다든지, 평소에 못 하는 일들을 해야 한다고.
처음엔 그저 배부른 소리 같았는데, 사람들과 대화할수록 내가 뒤처지는 게 느껴졌다.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느라 겨우겨우 그날 뉴스만 따라잡는 수준이었다. 그때 이사님의 말이 다시 귓전에 울렸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말라는 그 말씀이. (p.186-187)
하지만 고객님들의 전화를 받아보면, 허무할 때가 있다.
“왜 이런 쓰레기를 보냈어요?”
“이게 사람이 먹는 거예요?”
“왜 이딴 박스에 보내요?”
칭찬 전화도 많이 받지만, 클레임 전화도 많이 오니까.
고객님의 전화를 받다 보면 사람은 성선설을 믿는 쪽과 성악설을 믿는 쪽으로 나뉘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당한 나쁜 일에 항상 악의를 전제한다. 예를 들면 택배 박스가 부서진 채로 도착했을 때, 어떤 고객님들은 우리가 이미 부서진 아이스박스에 제품을 담아 보냈다고 생각한다. 품질이 별로인 배추를 받으면 공장에 있는 모든 배추가 그럴 거라 생각한다. 이물이 나오면 모든 제품이 그 모양일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고객님들을 속여 먹는 나쁜 회사라서.
‘실수’라는 말을 감히 입에 담기가 무섭다. 잘못을 손쉽게 지워주는 단어니까. 하지만 공장에서 하루에 나가는 택배가, 많은 날엔 6천 건 정도, 김치 톤 수로는 7~80톤 정도다.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재료와 수많은 공정을 거쳐 만들기에 실수가 없기는 어렵다. 단 하나의 실수도 하지 않는 지경에 도달할 때, 우리는 완벽하다고 말한다. 지금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완벽을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은 아닌데, 가끔은 속이 상한다. (p.198-199)
아무도 귀히 여기지 않는 음식. 급식실에서 하루에도 몇십 킬로그램씩 그냥 버려질 밑반찬. 나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고통을 반복하며, 직원도 관리자도 아닌 어정쩡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부사장으로 출근하고 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해피엔딩일까. 아직까진 어떤 복선도 없다.
다만,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를 버텨냈듯이 앞으로의 일들도 어떻게든 버텨내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는 이 시절을 돌아보며 ‘그때는 너무 힘들어서 내가 맨날 중2병처럼 굴었다’라는 이야기를 웃으며 할 수 있기를, 오직 그것만을 바랄 뿐이다. (p.206)
주택, 시장보다 국가 / 문수현 / 이음
이처럼 독일의 ‘주택체제’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이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집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일반 상품과 마찬가지로 다루어질 수는 없다는 사회적 합의는 견고하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독일의 주택 문제에 대해 무수히 많은 뉴스 보도, 다큐멘터리, 웹사이트 등을 보았다. 대부분 선량한 일반 시민의 주거권이 투기자본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는 분노를 표출하는 내용이었다. 주택 건설업자, 혹은 임대인이 등장한다면 예외적으로 임차인에게 우호적인 경우일 뿐이었다. 임차인의 시선에서 주택시장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현재 독일 언론이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반면 한국에서 주택 문제는 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마음대로 임차인을 내몰 수 없게 되었거나 갑작스럽게 주택보유세를 내게 된 주택 소유자의 입장을 주로 다루고 있다. 드물게 임차인의 입장에서 주택 문제가 다루어진다면, 임대인이 불이익을 얻게 됨으로써 임차인도 함께 불이익을 얻게 되리라는 식의 보도이다. 간단히 말해 주택 가격이 폭락해 손해를 보거나 주택보유세 부담을 어떻게 질 것인가는 한국 언론에서는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이지만, 독일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 문제이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임차인은 미래에 임대인이 될 가능성을 기약하면서 미리 임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강요받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접근은 임차인인 한국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맞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을 저해한다. 이와 더불어 소유자를 연민하는 시선은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는 정신적 성숙에의 도달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달리 독일 언론은 “사회의 공동체성과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합당한 세금 부담은 필수적”이라는 점을 두말할 필요가 없는 일로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p.26-27)
곰곰 생각하면 주택 문제는 결국 임금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주택을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둘 수 없는 것은 약자 배려의 차원에서만은 아니다. 프랑스가 사회주택 비율을 높여가고 있는 것도, 그리고 그 중요한 재정적 기반이 전체 직원 급여의 1%에 달하는 ‘건설 노력을 위한 기업주의 분담금’(1953), 혹은 ‘주택법’(2004)에 놓여 있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주거비용 인상은 임금 인상을 낳고 종래 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전후 독일에서 있었던 ‘라인 강의 기적’은 ‘주택강제경제’를 통한 낮은 주거비에 기인하고 있었다. 이토록 자명한 경제적 현실을 독일 언론은 문제로 제기하지만, 한국 언론은 감수해야 할 부분인 양 다루고 있다.
결국 주택 문제뿐만 아니라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도 매우 높은 경로의존성을 따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주로 주택 소유자의 시선에서 주택 문제를 바라보게 만드는 경로의존성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한국사회가 고수하는 주택 소유자에 편향된 시선은 국가가 임차인과 임대인, 주택 소유자를 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마저도 잊게 만든다. 영미권은 임차인과 임대인을 민법상의 대등한 계약당사자로 간주하며, 독일, 네덜란드, 북유럽 국가들은 임차인을 약자로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절대적인 사유재산권을 보호하는 것만이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유일한 접근법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영미권과는 다른 독일의 주택정책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p.28-29)
임대료 통제 정책 등 세입자 보호정책은 종전 이후까지도 지속되었다. 강력한 임대료 통제 정책으로 인해 임대료는 물가인상률에 한참 못 미치고 있었다. 정부의 ‘주택강제경제’ 조치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을 때, 임대료 부담은 전쟁 전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다. 사실상 가격 인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유일한 지출에 속했다. 독일 사용자단체의 계산에 따르면 1914년 소득 가운데 20%를 주거비로 이용했던 미숙련 노동자들이 1922년에는 2.36%를 지불하고 있었다. 거의 공짜로 거주한다고 보아도 무방할 법한 금액인 셈이다. 반면, 재산세, 상하수도세, 유지보수비 등 주거 관련 임대인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지속적으로 인상되고 있었다. 결국 엄청난 인플레이션 시기에 임대료가 통제됨으로써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에서 일정 정도 부의 재분배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부의 재분배 현상은 격렬한 사회적 대립을 배경으로 하여 가능했다. 주택강제조치가 부도덕하다는 임대인 단체의 반응에 대해 사민당 계열의 신문인 함부르거 에호의 대응은 매우 흥미롭다.“임차인 보호조치법이 제정되기 전, 임대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법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잘 알았다. 이러한 협약이 부도덕함을 입증하려고 했던 시절에, 그들의 법률가들은 법은 도덕과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제 와서 그들은 갑자기 법안에서 도덕을 원하며 그들이 해왔던 것과 정확히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는 임차인을 비난한다.”
이 기사는 결국 임대인들의 황금기가 이미 지나갔으며 더 이상 임차인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둘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조언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 시기 임차인 보호를 둘러싼 논란은 독일 주택정책의 역사에서 새로운 한 장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결국 전쟁 시기에 최초로 생겨나고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에 공고해진 임차인 보호법은 향후 100년간 지속된 독일 주택 체계의 중요한 한 축이 되었다. (p.123-124)
1970~80년대에 동독인들 다수는 그들의 주거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컨대 1974년의 경우 결혼 2년 미만의 신혼부부 가운데 20%가 독립하지 못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에서는 구주택에 거주하는 젊은 거주자의 1/3만이 그들의 주거 조건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반면 신도시 주택의 경우 주거 조건에 만족한다고 평가하는 비율은 76%에 달했다. 1984년 10월 라이프치히에서 실시된 서베이 결과 괜찮은 주택을 마련하는 것이 청년층이 가장 중시하던 인생 목표였다.
동독의 주택 관련 청원서는 이사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를 잘 보여준다. 노모를 간호하고자 하나 직장이나 주거를 옮길 수가 없었는가 하면, 가정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서 벗어난 후 아이들과 머무르는 집을 구하기까지 대기시간이 길었고, 직장을 옮기게 되어 어렵사리 이사한 경우일지라도 자녀 교육 시설이 갖춰진 곳을 찾기가 극히 어려웠다. 이에 따라 이사로 인해 직장을 바꾸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1980년 라이프치히에서는 주거 문제에 대한 탄원이 전체 청원서의 31%에 달했다.
동독의 주택 문제를 한층 복잡하게 했던 것은 동독의 주택 정책이 인간의 평균적인 기본 수요를 지향할 뿐, 그 밖의 주택과 관련한 다양한 수요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는 점이다. 동독에서 주택은 상품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따라서 주택을 할당하는 데 있어 소득이 아니라 주거 수요의 긴박성이 중시되었다. 주택을 구하고자 한다면, 현재 독자적인 주거공간을 갖지 않아야 했다. 이 경우 주거공간은 방을 포함하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이외의 방식으로 독자적인 주택을 확보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이에 따라 동독의 평균적인 결혼 연령이 1970년에 여성은 21.9세, 남성은 24세였고, 이러한 추세는 큰 변동 없이 지속되었다. 성년인 싱글이나 이혼한 자녀, 자녀가 없는 신혼부부 등 체제가 장려하는 가족 모델 바깥에 있는 경우 자기 삶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주택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p.224-226)
주택 문제와 관련하여 현재 독일에서 활용되는 제도는 네 가지 정도로 갈무리된다. 먼저 명령과 금지에 기초한 통제 정책의 측면에서 보자면, 민법에 규정된 임대권을 들 수 있다. 임차인과 임대인을 두 대등한 계약당사자로, 그리고 임대 계약을 일반적인 비즈니스 계약으로 간주하는 영국의 경우와 달리, 세입자와 주택소유자 간의 세력 불균형으로 인하여 세입자를 국가가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법에 담긴 근본정신이었다. 독일 주택의 경우 일반적인 민법의 근본 원칙인 계약자유원칙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임대료를 인상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데 있어 제한을 둘 수 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독일의 임대 계약은 원칙상 무기한이며 임대 기한이 정해진 임대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주택에 대한 개인적인 필요, 혹은 개보수 등 합법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무기한 계약인 상태에서 임대인이 임대 계약을 끝내기 위해서는 합법적인 사유가 필요할 뿐만 아니라, 임대인이 합법적인 사유로 임대 계약을 끝내고자 할 경우에라도 임차인이 특별한 곤경에 처해 있는 상태라면 퇴거를 강제할 수 없다. 임신, 시험, 장애, 심각한 질환, 학교와 유치원을 바꾸기 어려운 상태, 고령인 세입자가 이미 장기간 거주한 경우, 단기간에 두 번 이사하는 경우, 세입자가 주택에 투자한 경우, 합리적인 조건의 적합한 대안적인 주거 공간을 마련할 수 없는 경우 등 그 곤경의 사유로 인정될 수 있는 상황들의 리스트는 ‘도대체 퇴거가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길다. 한국에서라면 매우 흔하고 일반적인 사유, 즉 주택을 매매하거나 혹은 임대료를 인상하려는 목적으로 세입자를 몰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임대 계약이 갱신되는 경우 자유로운 임대료 인상도 불가능하다. 임대 계약 갱신으로 기존의 임대 계약이 지속되는 경우 지역의 비교 임대료가 임대 계약에 있어서 상한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역의 ‘비교임대료’에서 20~50%까지를 더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독일과 한국의 주거 여건에서 가장 큰 차이는 이처럼 강력한 임차인 보호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독일의 주택임대 정책이 전적으로 통제의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임대 계약에 대한 규제는 영국, 스페인 등 여타 국가들에서도 제도화되어있었지만, 독일의 경우 이들과 달리 민간 임대 부문의 발전을 끌어낼 여러 제도적인 장치들이 있었기에 임대부문이 충분히 발전할 수 있었다. 신규 임대 계약의 경우 임대료가 비교적 자유롭게 결정될 수 있고, 임대인이 주택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도록 개보수 전체 비용의 11%까지를 연간 임대료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처럼 독일의 경우 개보수가 임대료를 인상시키는 합법적인 명분이 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적절한 때에 주택 개보수가 일어남으로써 임대주택이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임대권을 통한 규제 이외에 다른 세 가지 수단은 모두 재정과 관련되는 것으로서, 객체 지원과 주체 지원으로 나뉘며 ‘금지’보다는 ‘견인’을 의도하고 있었다. 객체지원 방식은 자가주택 소유 및 사회주택 건설 촉진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먼저 주택 소유를 촉진하기 위한 제도로 공적자금 대출 및 세제 혜택을 꼽을 수 있다. 초기에는 주로 세금 감면의 형태로 이루어졌다. 구체적으로 1949년부터 주택을 건설하면 첫 2년 동안은 건설비용의 10%에 해당하는 소득세를 감면받았고, 이후 10년간은 3%씩 감면받을 수 있었다. (p.315-317)
현재와 같은 주거난에 직면하여 불과 몇 년 전에 있었던 공공 주택의 대규모 민영화가 극히 어리석은 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구체적으로 2006년 시 소유 주택 48,000호를 모두 미국 투자회사에 판매함으로써 “사회주택 제로”의 길에 들어선 드레스덴의 경우를 보면, 시의 여론은 깊이 분열되어 있었다. 민영화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드레스덴 시가 시 소유 주택 매매를 통해 8억 유로, 1조 천억 원에 달하던 부채를 갚게 될 경우 이자와 상환을 위해 사용되던 비용을 사회복지 분야에 지불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7,000~8,000만 유로, 즉 연간 천억이 넘는 예산이 확보된 셈이었다. 사회주택은 소수의 거주자에게 이로울 뿐이지만 지자체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함으로써 교육, 인프라 등에 집중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를 반대하는 독일노총, 사민당, 녹색당 등의 경우 임차인을 시장에 내맡겨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시 재정의 구조적인 개혁 없이는 머지않아 다시 적자에 빠져들게 될 것인데, 그 경우에는 다시 내다 팔 대상조차 없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이 가장 격렬하게 이루어졌던 그룹은 공산당(PDS)이었다. 시의회 공산당 의원 가운데 절반은 기민련과 더불어 이 주택 매매에 찬성했고, 나머지 절반은 이에 대해 반대했다. 베를린도 마찬가지로 시 소유 주택에 대한 대규모 매매가 이루어졌다. 같은 결정을 내린 정당은 이번에는 사민당과 공산당이었다. 무엇보다도 통일 이후 급증한 베를린 시의 높은 부채 탓이었다.
공공 주택의 민영화를 지지하는 편에서는 공공 주택기업의 채산성이 민간 기업보다 2~3% 낮다는 등의 비효율성을 지적했고, 이에 더해 2006년 현재 43%의 지자체 소유 주택회사들이 민간 임대업자들과 같은 조건으로 임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자체 소유 주택기업들이 민간 임대업자들과 다른 측면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과거 사회주택이다가 복무 기간을 마친 주택의 경우일지라도 지자체 소유인 경우 2005년 현재 과거 사회주택 거주 자격 기준을 충족시키는 거주자의 비율이 74.4%로, 민간 임대주택의 58.7%보다 현저히 높다.
결국, 사회주택 유지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 논거는 비용이 많이 들면서도 주택시장 전체로 보면 소수만 혜택을 보게 되는 사회주택 건설 및 유지보다 주거보조금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택 없이 주거보조금이 성립될 수 없고, 주거보조금 없는 사회주택도 성립될 수 없으며, 양자가 서로 길항관계에 있다는 판단이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p.325-327)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에 속하는 주거의 문제는 모든 역사적인 국면에서 정치 체제 안정의 근간이었다. 이는 20세기의 파국을 주도했다 할 독일사의 몇몇 페이지를 들춰보는 것으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나치의 집권을 가능케 한 경제공황은 임금이 삭감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고 저축과 연금이 경제적으로 무의미해지는 현실뿐만 아니라, 무수한 도시의 중산층 임차인들이 단칸방, 길거리 혹은 빈민 거주지로 나앉게 되는 현실과 맞물려 있었다. 브레히트의 희곡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유래했던 바, “먼저 먹을 것, 월세는 그 다음!”이라는 구호는 나치 집권 직전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런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동독 체제 붕괴 역시도 주택난과 결부되어 설명되고 있다. 코트버스, 아이젠휘텐슈타트 등 상대적으로 주거 조건이 좋은 신도시가 아니라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구도시, 구도심의 열악한 주거 조건이 1989년 반체제 시위의 주요한 배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시대 어느 정치 세력이건 주거안정이 가지는 정치적인 의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한국 사회에서 바라본 독일은 강력한 국가 개입을 통해 임대와 소유가 균형을 이룸으로써 주택이 상품이 아니라 거주지라는 이상이 가장 잘 실현된 곳이다. 반면 각종 세금 감면 조치 및 고도로 발전한 주택 금융시스템에 근거하여 자가보유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2/3에 달하는 미국이나 사회주택의 비율이 전체 주택의 17%를 차지하는 프랑스는 한국이 전범으로 삼기에 부적합해 보였을 법하다. 실제로 독일의 자가소유비율은 51.1%로서 유럽 국가들 가운데서도 스위스를 제외하고는 가장 낮다. (p.370-371)
그렇다면 ‘독일의 주택정책사에서 한국사회가 참고할 구체적인 정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그에 대한 이 글의 답은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니다”이다. 주택 문제는 불투명성과 복합성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에 다양한 역사적 국면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에 의해 논의되고 제도화되었던 주택정책들을 살펴봄으로써 이 불투명성과 복합성에 한걸음 가까이 갈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일 주택 정책사에서 있었던 모든 실험들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독일주택정책사에서 한국사회가 참고할 정책은 전혀 찾을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있다. 현재 독일의 ‘역사적 주택체제’를 이루는 여러 요소들은 지난 150년간 여러 역사적인 국면에서 누적, 진화 발전해온 결과로 만들어진 지층이며, 그 지층 가운데 어느 한 단면을 잘라내서 시공간적인 맥락이 전혀 다른 사회에 그대로 이식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예컨대 현재 독일 아닝턴 그룹이 영국 아닝턴 그룹과 전혀 다른 경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독일에서 매우 강고한 임대차보호법 때문이지만, 그 임대차보호법은 연이은 세계대전으로 인해 혹은 양차 세계대전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다툼 끝에 가까스로 제도화될 수 있었다. 재연이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고도화된 한국 자본주의 사회가 타산지석으로 삼을 정책을 해외 각국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지 오래이기도 하다.
현재 ‘역사적 주택체제’로서 독일의 주택체제가 보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으로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정책이기보다는 “주택이란 무엇이라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담론 문화이며, 주택이 상품이기만 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집단적 분노이다. (p.373-374)
“세월은 가도 옛날은 남듯이” 정권은 가도 집은 남는다. 사회 전체의 유지를 위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 한국형 주택체제가 무엇일지에 대해 시민사회가 고민하고 요구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지금껏 해왔던 대로 아파트를 끝없이 부수고 지으며 주택에 대한 과세를 약속하고 철폐하기를 반복하는 궤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주택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기 바라는 것은 민주 국가에서 당연한 일일 테지만, 곰곰 생각하면 시민사회가 집을 상품으로만 바라보는데 정부가 집을 인권으로 바라보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주택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궁극적으로 재생산에 대한 본능과 결부된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보장해주기 위해 ‘죽은’ 집을 물려주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살아있는’ 동시대 구성원들이 건강한 미래사회를 물려주어야 한다는 사회 전반의 인식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개인의 소유욕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것만이 자본주의일 수 없으며, 국민의 소유욕을 부추기고 그에 기생하고 아부하는 것만이 민주주의일 수는 없다. 집이 상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인권이며 재산을 물려주는 것만큼이나 안전한 사회를 물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 안에서 공고히 자리하지 못한다면, 어떠한 정부 정책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p.382-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