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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먹을 것인가 / 캐롤린 스틸 / 메디치미디어

 

 2,200만 년 전에 플리오피테쿠스가 지구를 배회한 이후 어떤 인류도 등장하지 않은 채 2,000만 년이 흘렀다. 인류의 조상이 불을 길들이게 된 것은 200만 년도 채 되지 않았고 언어를 개발한 것은 지난 10만 년 안팎의 일이다. 인류가 농경 생활을 시작한 것은 1만 2,000년 전이고 도시를 지은 것은 그 절반인 6,000년 전이다. 증기 동력을 개발한 것은 300년 전이며 개인 컴퓨터를 사용한 것은 50년, 인터넷을 사용한 것은 그 절반인 25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 위대한 유인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획득한 기술 역량을 한 표에 담아보면 하키스틱을 닮은 곡선이 나올 것이다. 수백만 년 전에는 평행선과 비슷하던 것이 불을 길들이기 시작한 지점부터 점차 완만한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신석기시대에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해 오늘날에는 수직에 가까운 궤적을 그린다.
 바꾸어 말하면 인류는 기술을 사용해 진화의 논리를 뒤엎었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인간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환경에 적응하기를 멈추고 그 대신 환경을 우리에게 적응시켰다. 이런 ‘외부 친화적(exo-evolutionary)’ 접근법은 한동안 효과가 있었지만 최근 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인간의 몸이 세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다윈은 인간이 근본적인 진화의 오류를 범했다고 말할 것이다. 다윈의 관점에서 시간을 뛰어넘은 것이다. 자연주의자 에드워드 O. 윌슨이 언급했듯 “감정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고 제도는 중세에 멈추어 있으며 기술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는 다른 행성에서 왔다. (p.89-90)

 

 막을 수 없는 파도처럼 미국의 음식 문화가 세계 전역으로 퍼지면서 가는 곳마다 큰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 효과를 제일 먼저 체감한 이들이 마셜제도 주민이다. 태평양에 위치한 이 군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함락되었다. 세계대전 이전에는 주민 대다수가 수렵 채집인이었고 생선과 조개, 코코넛, 빵나무 열매, 푸른 잎줄기채소, 카로티노이드가 풍부한 섬유 열매인 판다누스 등을 먹었는데, 이야말로 영양학자들이 그리는 꿈의 식단이었다. 하지만 미군이 비키니환초를 핵실험 기지로 사용하게 되면서 주민 대다수가 수도 마주로로 이주해야 했고 그곳에서 미국산 수입 식품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백미와 콘비프, 채소 통조림과 단 음료로 이루어진 식사에 노출되면서 마셜제도 주민의 영양 상태는 머지않아 전 세계 최하위 수준으로 떨어졌다. 현재 이곳 여성의 75퍼센트, 남성의 50퍼센트에 가까운 인구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이고 35세 이상 성인 중 절반 가까이가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이 제도에서 시행된 수술의 절반가량이 당뇨로 인한 절단 수술이었다. 변화한 식단이 몰고 온 결과가 끔찍한 지경이다 보니 이를 지칭하는 꼬리표가 붙었다. 신세계 증후군(New World Syndrome)이었다.
 마셜제도 주민은 미국식 식단을 따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지만 주민 스스로 선택해서 미국식 식단을 따른 지역도 있었다. 패스트푸드가 침범한 또 다른 지역은 1991년 걸프전쟁이 한창이던 중동이었다. 미군 부대를 겨냥해 들어온 버거킹, 피자헛, 타코벨을 비롯한 여러 체인점이 현지인 사이에서 열광적인 인기를 얻은 끝에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곳에 남았고 현지인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피자헛의 베스트셀러인 치즈버거 피자 크러스트 같은 잡종이 만들어졌다. 현재 쿠웨이트는 전체 인구의 88퍼센트가 과체중이거나 비만으로, 미국을 제치고 지구상에서 가장 비대한 국가가 되었다. (p.102-103)

 

 소비주의의 부단한 압박을 받은 끝에 우리는 아직 잘 돌아가는 오래된 물건을 새로운 물건으로 대체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이렇게 쓰다 버리는 문화는 지구만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무언가를 위협한다. 크로포드가 주목한 것처럼 물건을 고치는 데 필요한 창조성에는 고도로 정교한 인지적 노력이 수반되며 특별한 보상도 따른다. 인간의 뇌가 이런 수작업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도 그리 놀랍지 않다. 결국 우리는 350만 년 동안 도구와 함께 진화한 존재가 아닌가. 우리의 조상은 머리만이 아니라 손도 함께 써서 해답을 찾아 나갔다. 답을 향해 ‘손을 뻗고’ 아이디어를 ‘붙잡는다’는 말에서도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 손을 쓰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선천적인 활동이다. 크로포드가 지적했듯 두 기능은 의식에서 서로 나눌 수 없는 절반씩을 형성한다.
 무언가를 만들면 기분이 좋아진다. 몸과 마음이 비로소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온 존재가 몰입하는 경험을 하는데, 이는 어떤 행위로도 맛보기 힘들다. 더군다나 유용하기 때문에 만족감도 크다. 우리를 세상에 발붙이게 하고 직접 가리키며 ‘내가 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결과물을 안겨준다. 이런 소속감은 제작에 깊이 관여한 중세 시대의 수공업자들이 느낄 법한 감정이라 생각할 수 있다. 현대의 농부들은 조상이 대대로 형성한 땅을 측량하며 이런 감정을 느낀다. 이와 같은 수작업과 노동에서 집에 대한 관념이, 즉 자신이 만들어낸 장소와의 유대감이 자란다. 지금은 자신이 살 집을 직접 지을 기회가 거의 없지만 누구나 학창 시절에 기우뚱한 솥이나 보송보송한 천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달력 같은 것을 만들고 집으로 가져와 부모님께 자랑스레 뽐냈을 때 느끼던 만족감을, 유용하고 아름답고 좋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내면의 반짝거림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요즘에는 본업에서 이런 기쁨을 느낄 일이 거의 없다. 창의력과 손재주는 일터에서 떨어져나갔다. 집에서는 어떤가? 한가한 시간을 원하는 대로 보낼 여력이 있는가? 그리스인에게 번영이란 세상에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었다. 스포츠가 중요한 것은 전투를 준비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활동이기 때문이었다. 온라인에 빠져 있을 때처럼 몸을 무시하고 정신을 산란케 하는 것은 그리스인에게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봇이 우리가 할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알고리즘이 우리의 모든 욕구를 예측하는 지금,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물리적 현실은 그리 많지 않다. 요즘 아이들에게 가상 세계가 현실 세계보다 더 실제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아이들이 가상 세계를 훨씬 더 자주, 즉시, 만질 수 있을 것처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연에 무지하고 사회적 기술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신체 기능이 심상치 않은 수준으로 쇠퇴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서 현재의 아동은 디지털 이전 시대의 아동보다 근시가 더 많고 균형 감각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p.184-186)

 

 도시 문명으로 전환하는 오랜 기간 동안 인류가 치른 가장 큰 희생은 세상과의 접촉이 끊어지면서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생존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외부에 위탁하면서 우리는 일련의 어떤 기술을 다른 기술과 맞바꾸었다. 풍경을 읽고 화살을 만들고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을 저버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설정하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인터넷을 탐색하는 기술을 얻었다. 양쪽 기술 모두 그 맥락 안에서는 더없이 유용하지만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전자의 기술이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라면 후자의 기술은 생존과 다소 떨어져 있다. 수렵 채집인은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반면 현대인은 생존하려면 무수한 타인에게 의존해야만 한다. 식량을 찾아 헤매던 선조들이 보았다면 입을 벌리고 경탄할 만한 기술 역량을 얻었지만 컴퓨터가 아니라고 답할 때마다 좌절에 빠지듯 삶을 제대로 영위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 되었다.
 노동과 지식의 분할로 도시 문명이 세워지고 인간은 개개인의 총합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가 되었지만 진보의 여러 면면이 그렇듯 상당한 대가가 뒤따랐다. 일반적인 수렵 채집인과 비교했을 때 현재 인류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거나 변화를 예민하게 관찰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스스로 먹여 살리거나 보호하는 일에 취약하며 전체적으로 자립하는 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부수적인 자극은 살면서 넘치도록 마주하지만 세상과 맺는 근본적 관계에는 늘 굶주려 있다. (p.188-189)

 

 매년 1조 5,000억 달러어치의 식료품이(전 세계 식량 공급량의 4분의 1이) 이런 시장에서 거래된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상품이 세계화된 거대 카지노와 다름없는 곳에서 유통된다는 사실을 걱정해야 하는 것일까? 인권 변호사이며 2008년부터 2014년까지 UN의 식량권 특별 보고관을 역임한 올리비에 드 슈터는 반드시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0년에 내놓은 짧은 보고서에서 드 슈터는 2008년 식료품 가격 폭등의 주된 요인이 투기라고 비난하면서 “또 다른 식료품 가격의 위기를 피하려면 더 넓은 범위의 전 세계 금융권에서 근본적인 개혁을 조속히 단행해야 한다”라고 결론내렸다. 하지만 금융화가 만병통치약처럼 통용되는 세계에서 이런 개혁이 가까운 미래에 단행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규제 완화와 자동화가 시행되면서 세계경제의 작동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디지털 금융이 발달하면서 상업과 정부, 시민사회를 가르던 오랜 경계가 희미해졌다. 한때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드러내던 부와 권력은 이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감추어졌다. 유로넥스트의 가상 거래소처럼 기관 및 기업의 실제 범위는 실체도 없고 사실상 한계도 없다. 공권력의 감시 아래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팔던 역사적 시장과 반대로 디지털 시대의 거래소는 찰나적이고 은밀하며 모호하다.
 이런 경제구조는 우리가 누릴 자유와 기회, 정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에 맞서는 것은 둘째치고 이런 구조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산업화에 따른 공간의 변화가 디지털 분화를 거치며 더욱 극심해지면서 모든 권력과 영향력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워낙 급격하고 급속히 이루어지다 보니 그 의미가 이제야 겨우 파악되기 시작했다. (p.207-208)

 

 사실 《국부론》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면 스미스는 1759년에 발표한 또 다른 역작 《도덕감정론》으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여기서 그는 우정과 공감에서 얻는 행복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분명 천성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운에 관심을 보이고 그들에게 행복이 꼭 필요하다고 믿게 하는 원칙이 있을 것이다. 비록 자신은 남의 행복을 바라보는 즐거움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자본주의의 아버지가 했을 법한 말과는 정반대로 스미스는 인간이 느끼는 비참함이 대부분 “부자와 권력자를 존경하고 심지어 숭배하면서 가난하고 평범한 이들은 경멸하거나 적어도 무시하는 잘못된 성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삐 풀린 듯 부를 좇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의 말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사실 《도덕감정론》에서 스미스가 그린 좋은 삶은 ‘유용성을 찾기 힘든 값싼 장신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공감하며 이름다움을 음미하는 능력에 달려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과 닮아 있다. 스미스에게 좋은 사회란 탐욕에 바탕을 두기보다는 ‘인간성과 정의, 관대함과 공공심’에 의존하는 곳이며 결국 사랑이 중심이 되는 곳이었다. “공감은 기쁨을 북돋고 슬픔을 달랜다.”
 1759년에는 이렇게 애정이 넘치던 사람이 어떻게 1776년에 이르러 ‘탐욕이 최선’이라는 괴물로 변한 것일까? ‘아무 이유 없다’가 답이다. 모두 같은 사람이다. 사실 스미스는 생이 다하는 날까지 《도덕감정론》을 퇴고하고 그 최종본을 《국부론》 다음에 내놓았다. 소위 애덤 스미스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는 스미스의 저서가 상호 보완적인 두 세계를 그렸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혁명의 여명기에 책을 쓰면서 그는 기계화의 이점을 목도했지만(핀 공장 사례는 실제 사례에 바탕을 둔 것이다) 머지않아 산업혁명이 야기한 참상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산업화에 필요한 변혁이 오히려 그 사회를 파괴하는 광경을 살아생전에 보지 못한 것이다. (p.238-239)

 

 새로운 체제에서 자유란 시장에 참여하는 능력을 의미하고 이것이 경제인을 정의하는 활동이 된다. 따라서 거대한 전환은 주변 풍경과 공동체를 파괴할 뿐만 아니라 한때 인간의 삶을 뒷받침한 가치와 의미를 변화시켰다. 조지 왕조 시대의 영국 이전에는 어떤 사회도 이를 좋은 삶이라 부르지 않았을 뿐더러 경제성장으로 인식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만큼만 벌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정도로는 충분치 않았다. 시장 사회에서 개인의 주된 목표는 부유해지는 것이어야 했다.
 초기의 공장주는 새롭게 바뀐 이런 환경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농장에서 나고 자란 공장노동자들은 단조롭기 그지없는 새로운 일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대다수가 일을 필요 이상으로 참아내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일주일 생활비 정도는 벌었다 싶으면 일하던 도구를 내려놓고 집으로 갔다. 노동자들이 더 오래 일하도록 임금을 올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다들 더 빨리 퇴근해버리는 것이었다. 결국 공장주들은 유일한 대안을 취했다. 노동자들이 하루 종일 일해야 생계를 간신히 유지할 수 있도록 임금을 대폭 삭감한 것이다. 이로써 지금도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남아 있는 원칙이 확립되었다. “일하지 않으면 굶어 죽는 상황에 처해야 사람들이 아무 대가 없이 일을 한다.” (p.241-242)

 

 1970년대에 이르자 뉴딜 정책의 끝이 보였다. 베트남전쟁과 1973년 석유파동,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통화 규제가 종식되는 등 세계적 사건이 연달아 일어나면서 유럽과 미대륙 양쪽의 경기 침체와 사회불안을 초래하고 있었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은 각각 1979년과 1981년에 집권하면서 사회주의를 문제로 인식하고 하이에크를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처가 “사회 같은 것은 없다”라고 주장하는 동안 레이건은 영어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말이 “정부에서 도움을 드리러 왔습니다”라면서 금융 규제 완화, 세금 인하, 공공서비스 민영화, 노동조합 박멸에 착수했다. 그렇게 신자유주의 실험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40년 뒤, 실험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2008년에 신자유주의의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로서 금융 위기가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권력은 계속 치솟아 빅토리아시대 이후 경험한 적 없는 수준의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2018년에 미국 내 상위 350개 기업 CEO의 평균 임금은 일반 직원보다 312배 더 높았다. 미국과 영국 중하위 계층의 소득은 침체되었지만 긴축정책으로 복지 예산은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 영국에서는 빈곤층에 지급되는 음식 꾸러미(food parcel)가 2019년 4월까지 한 해에 140만 개에 이르렀다. 한편 국제무역은 계속해서 기업의 필요에 부응했고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모두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환경보호 및 노동자 권리 보호 등의 ‘산업 장벽’을 제거할 것을 강요했다.
 신자유주의의 다소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수 있는 점은 1929년 대공황 당시의 대응과는 대조적으로 2008년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대부분 평상시처럼 사업을 재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재앙에 일부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 은행은 ‘대마불사’로 간주되어 무려 1조 1,620억 파운드라는 엄청난 자금을 들여 구제되었다. 내부자 거래 및 역외 탈세, 리보(Libor, 런던 은행 간 금리) 불법 조작을 비롯한 스캔들이 계속 이어지는데도 금융 규제는 기껏해야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p.250-251)

 

 여러 면에서 후기 산업화 시대의 위기는 식량과 돈의 차이로 귀결된다. 식량이 부의 근간이었을 때에는 부자가 될 기회가 제한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삶은 물질적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돈을 받아들인 지난 5,000년 사이에 문명이 번성했고 땅이나 노동과 깊이 단절된 부가 출현했다. 많은 이들이 외면하고 있는 질문은 산업이 완전히 순환하고 난 뒤 현재 우리의 운동화와 새우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들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는 것이다. 이런 일은 중국에서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먹는 테이크아웃 음식은, 편하게 사 입고 버리는 옷은 누가 만들게 될까? 로봇이? 만약 그렇다면 2050년에 지구에 살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100억 명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보낼까? 성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컴퓨터 게임이나 하게 될까?
 이런 질문은 포퓰리즘 운동의 이면에 자리한 진정한 문제, 즉 후기 산업사회를 어떻게 하면 좋은 곳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를 드러낸다. 이미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소비 지상주의적 생활 방식은 보이지 않는 노동자 수백만 명의 도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들은 한때 음험하고 사악한 공장에 만연했고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노동 조건 속에서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살며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2013년에 노동자 권리 단체인 중국노동감시협회(China Labor Watch)에서 연구한 결과, 애플의 두 번째로 큰 중국 공장에서 주당 66시간 일하는 미성년자 및 임신부 노동자의 임금이 최저임금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듬해에 《가디언》에서는 태국 새우 어업의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 살인이 폭로되었는데 이 상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멀리서 찾아볼 필요도 없다. 2016년에 영국 의회 특별위원회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의류 회사 스포츠 다이렉트(Sports Direct)는 ‘빅토리아시대의 작업장처럼’ 운영되면서 화장실에 너무 오래 있거나 임신을 한 근로자를 처벌하는 등 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대했다고 한다. (p.256-257)

 

 이미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결국 유기농 닭고기가 산업 닭고기보다 두 배 이상 비싸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가격 격차는 닭을 키우는 방식의 차이 이상을 반영한다. 손으로 직접 키운 유기농 농산물이 비싸 보이는 이유는 영양가가 높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으로 생산되었다는 등 모든 면에서 좋은 식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실제 비용이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 비용을 반영하는 유일한 식품 종류라는 것이다. 다른 종류, 즉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95퍼센트를 공급하는 산업 식품은 실제 생산 비용을 체계적으로(보통은 정부 보조금으로) 외부화했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저렴하다.
 산업 식품을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중 대부분은(산림 벌채와 토양침식, 수자원 고갈, 수산 자원 고갈, 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 농촌 인구 감소, 실업, 비만, 만성질환, 기후변화, 대량 멸종 등) 우리가 상점에서 지불하는 가격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런 외부 효과에 가격을 매기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유기농 농장을 운영하는 영국 농부 패트릭 홀든이 설립한 ‘지속 가능한 식품 트러스트(Sustainable Food Trust)’에서 2017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인은 식품을 구입할 때 비용을 두 번 치른다. 대략 1,200억 파운드는 상점에 지불하고 같은 비용을 숨겨진 외부 비용에 지불하는 것이다. 식품의 실제 원가를 계산한다면 우리 자신과 지구에 끼치는 피해가 훨씬 줄어들 뿐만 아니라 결국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 역시 전반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홀든은 주장한다.
 사실 ‘저렴한 음식’이라는 말도 모순적이다. 모두 산업 식품 생산자와 정부가 실제 생활비를 속이려고 꾸민 환상일 뿐이다. 산림 벌채와 오염, 기후변화 같은 외부 효과의 원인을 다른 데서 찾는 사이, 산업 농부는 우리가 식품에 지불하는 낮은 가격에 의존해 생계를 유지하려고 분투해야 하지만 사실은 국가의 보조금으로 이를 충당한다. 음식의 실제 생산 비용을 내재화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산업 농업은 급격히 비싸져서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친환경으로 생산된 유기농 식품은 늘 그랬듯 저렴할 것이다. 식품 구입이 선순환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에서도 자연과 동물, 사람을 보살피는 음식을 선호하게 될 것이다.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생산자는 더 많은 제품을 판매해 지금은 산업 농식품계의 거물이 장악하고 있는 규모의 경제를 일부 실현할 것이다. 슈마허가 언급한 농부는 이제 유기농 식품을 먹을 뿐만 아니라 재배할 수 있는 여유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접근 방식을 나는 시토피아 경제라고 부른다. 음식의 내재적 가치에 바탕을 둔 가치 체계다. 음식이 사실상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런 경제를 채택하면 즉각적이고 혁명적이기까지 한 효과를 거두어들일 것이다. 음식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거래하고 요리하고 나누고 가치 매기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우리가 사는 풍경과 도시, 가정, 직장, 사회생활 및 생태 발자국까지 변모시킬 수 있다. 음식을 귀중히 여기는 것은 유기농 당근이나 좋은 치즈 한 조각을 즐기는 것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 이것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좋은 점은 음식을 귀중히 여기면 건강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누구에게나 득이 되는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음식은 우리가 매일 섭취해야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얻는 가장 믿을 만한 원천이다. 경제와 즐거움을 결합하면 위장 경제라는 현자의 돌을 만들어낼 수 있다. (p.264-266)

 

 도시가 세워진 후 5,500년 동안 도시의 역설은 줄곧 그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도시에는 시골이 필요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불편한 진실은 처음부터 명백히 존재했다. ‘시골’은 사실상 도시를 이루는 구성물로, 도시의 요청에 따라 존재하는 도시 외부 공간이다. 비록 도시를 건설하기 수천 년 전부터 인류의 조상이 정원을 가꾸었지만 고대 수메르의 관개 농경지와 밭, 정원 및 과수원과는 종류가 다르다. 명백히 도시 인구를 위해 만들어진 첫 번째 풍경은 사실상 세계 최초의 시골이었다. 고고학자들이 사랑하는 질문인 ‘도시가 먼저인가, 농업이 먼저인가’는 결국 그리 중요하지 않다. 농업과 도시 생활은 함께 진화했으며 도시 문명도 이들의 결합으로 탄생했다.
 현대 도시에 살다 보면 지형이 인류의 과거에 얼마나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지 잊어버리기 쉽다. 도시와 시골의 유대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만 역사를 통틀어 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했다. 도시가 강 위에 지어진 것은 신선한 물과 어류를 공급받고 쓰레기를 편리하게 처리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운송이 유용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산업화 이전의 도시에서는 강과 바다로의 접근성이 매우 중요했다. 이미 살펴보았다시피 곡물 같은 무거운 물건은 육로보다 수로로 운반하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사방이 육지에 둘러싸인 파리 같은 도시는 성장할 수 있는 크기가 제한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식품은 대부분 집 근처에서 생산되었다. 양돈장이 있던 켄싱턴뿐만 아니라 많은 가정에서 돼지나 닭을 키웠고 모든 도시 주변이 시판용 채소밭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곳의 과일과 채소는 거름으로 쓰기 위해 정성스레 넉넉히 모은 분뇨, 즉 동물 및 인간의 배설물로 잘 자랄 수 있었다. (p.301-302)

 

 전 세계의 육류 수요가 계속 치솟자 이를 충족하기 위해 먼 곳의 풍경이 변하고 있다. 2018년에 브라질 숲의 7,900제곱킬로미터(런던 면적의 다섯 배에 달한다)가 소 방목 및 가축 사료를 위한 콩 생산을 목적으로 개간되었다. 미국인이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자연 배후지를 파괴한 것처럼 브라질인도 녹지를 파괴하고 있으며 거대 농기업 카르텔로 인해 미국은 여전히 이익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2017년에 브라질 세라도(브라질 면적의 5분의 1에 달하는 숲이 우거진 대초원)에 퍼진 산불은 버거킹의 주요 공급 업체인 카길과 번지의 대두 생산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아서 코넌 도일의 《잃어버린 세계》에 영감을 주었다고 짐작되는 원시 아마존 숲인 세라 리카르도 프랑코 주립공원이 파괴된 것은 이곳에서 소 24만 마리를 방목하려 한 JBS-스위프트와 관련이 있었다. 더군다나 2018년에 선출된 극우 성향의 브라질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브라질의 환경부와 농업부를 통합해 기업식 농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의 공포를 자아냈다. 대통령이 불법 벌목을 허가했다는 우려는 2019년 7월에 이르러 기정사실이 되었다. 정부가 자체적으로 감시한 결과, 삼림 벌채 비율이 전년도보다 88퍼센트 증가해 현재 최고 기록에 이르렀으며 매일 맨해튼 크기의 삼림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이 수치가 ‘거짓’이라고 일축했다.
 신성불가침의 풍경은 이제 없다. 바다 깊은 곳을 비롯해 야생 상태가 그나마 보존된 지역조차 몸과 마음에서 멀어지면서 윌리엄 크로논이 말한 ‘자본의 지리학’에 따라, 즉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만 고려한 접근법에 따라 무참히 변형되고 있다. 도시와 시골이 한데 어우러지던 고대의 춤사위는 결국 최후의 파멸적인 토지 수탈로 변모했다. (p.314-315)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20세기 초의 미국은 여전히 존 로크의 인정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전체 인구의 38퍼센트가 농부였고 미국의 소도시가 번성하던 때였다. 이제는 미국인 중에 농부가 2퍼센트도 안 되며 미국의 식품 시스템은 지구상에서 가장 통합되고 산업화되었다. 그 결과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빈곤 수준이 제일 높고 우울증을 앓거나 약물에 의존하거나 비만한 인구가 가장 많다. 도널드 트럼프의 열렬한 핵심 지지층을 대표하는 농촌 주민들은 자살률이 미국 전체 평균의 세 배에 이를 정도로 절망 속에 살고 있다.
 미국 농촌의 종말이 시작된 것은 리처드 닉슨 정권 당시 농무부 장관이었던 얼 버츠가 1970년대에 가족 농장과 전쟁을 선포하며 이를 더 효율적인 기업식 농업으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몸집을 키우지 않을 거면 나가라”는 “적응 못 하면 죽는다”와 함께 얼 버츠가 선호하는 구호였다. 마이클 폴란이 《잡식동물 분투기》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버츠는 ‘농부가 재배할 수 있는 모든 옥수수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책을 뒷받침했다. 그 결과 전 세계 농장 가격이 폭락하면서 바닥으로 치닫는 경쟁이 이어졌다. 한때 자아의식의 중심은 물론 국가 경제의 중심을 이루었던 미국의 가족 농장은 덩치 큰 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적 기업으로 변모했다.
 조엘 다이어가 《분노의 수확(Harvest of Rage)》에서 설명했듯 미국 농촌이 파괴되면서 광범위한 손상이 가해졌다. 수 세대에 걸쳐 같은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은 농장을 잃으면 ‘가늠하기 힘든 절망’에 빠진다. 이들은 간혹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농장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며 그에 따른 손실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보다 더 참담하게 느낄 수 있다. 다이어는 이렇게 말한다. “단지 농장을 잃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 그리고 여러 면에서 자신의 삶을 잃는 것이다.” 많은 농부들이 지속성과 의무를 가장 중시하면서 전통을 따라 근면하게 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참상은 더욱 가혹하다. 이들은 “땅을 잃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라고 이야기한다. (p.321-322)

 

 좋은 예로 최근 런던의 부동산 호황을 들 수 있다. 애나 민턴이 《거대 자본(Big Capital)》에서 주장하듯 최근 런던 부동산 시장이 변화한 것은 이곳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밀려들어서가 아니라 규제가 대폭 완화된 런던의 주택에 현금을 예치하려는 이들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소비 열풍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에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에서 보고한 바에 따르면 런던 소재 부동산 4만 4,022개가 놀랍게도 해외 기업의 소유이며 그중 90퍼센트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같은 비밀 관할구역을 통해 구입한 것이고 986개는 ‘주요 정치 인사’와 연계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 런던은 세계 자금 세탁의 수도가 되었고, 불법으로 쌓은 재산을 세탁하려는 부패 정치인과 독점 재벌 들에게 런던의 최고급 동네는 벽돌로 둘러싸인 안전 금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런던으로 현금이 쏟아지면서 파급 효과가 일어난 결과, 일반 런던 시민들이 도시 밖으로 밀려나고 도심은 부자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이런 현상에 외국인 투자자만 가담한 것이 아니다. 시의회 역시 절실히 필요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주택단지를 무리하게 구입했다. 런던 서더크 지역에서 얼마 전 철거된 헤이게이트 주택단지의 주민들은 결국 살던 집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슬라우나 로체스터로 흩어졌다. 런던 내 주거용 부동산의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훨씬 뛰어넘자 신규 부동산은 건설되기도 전에 외국 투자자의 손에 넘어갔다. 이와 관련해 민턴은 이렇게 언급했다. “영국 주택시장은 순수 시장으로 기능하지 않으며 지역 상황이 아니라 전 세계 자본의 흐름과 이어져 있다.” (p.336-337)

 

 7만 년 전에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이동한 인류는 그 과정에서 마주친 무수한 생명체에 재앙을 초래했다. 일례로 인류가 도착하기 전인 4만 5,000년 전의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거대 코알라와 유대류 사자, 2.5톤에 이르는 웜뱃 등 대형 동물 24종이 사는 야생동물의 화려한 낙원이었다. 이 중 단 한 종만 제외한 나머지는 인간과 함께 서식한 지 수천 년 안에 전멸했다.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으로 대량 학살된 종은 북아메리카 들소가 아니었다. 1만 4,000년 전 인류가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북아메리카 대륙에 살고 있던 생명체 47종 중 34종이 2,000년 안에 사라졌다. 종합해보면 인류의 디아스포라가 시작되던 당시 지구 위를 거닐던 대형 포유류 200종 중 절반이 인류가 농사를 시작할 무렵 멸종되었다. 유발 하라리가 언급했듯 진보는 인류를 “생태계의 연쇄살인범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현재 인류가 지구에 가하는 가장 치명적인 행동은 사냥이 아니라 농사다. 인류가 다른 종을 희생시킨 채 특정 동식물을 선택적으로 사육하고 재배하면서 지구 내 야생종의 분포 범위와 다양성이 대폭 감소했고 이제 인류가 사육하지 않는 종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인류가 공룡의 멸종처럼 치명적일 수 있는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2017년에 미국 생물학자 폴 R. 에얼릭을 포함한 연구진이 발견한 결과, 개체 수가 감소한 척추동물 종이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1900년 이후 연구된 모든 개체군은 분포 범위가 30퍼센트 이상 감소했고, 개체 수가 80퍼센트 이상 감소한 종은 40퍼센트에 이르렀다. 저자들이 관찰했듯 이런 수치는 향후 멸종을 예고하는 분명한 신호다. 실제로 지난 한 세기 동안에만 척추동물 200종이 사라졌고 같은 기간의 멸종 속도는 지난 200만 년 동안의 평균 속도보다 100배 더 빠른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냉혹했다. 우리가 “생물학적 전멸”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문명에 필수적인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 서비스를 인류가 막대하게 잠식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생물 다양성이 손실되어도 우리는 생각만큼 두려워하지 않는다. 호랑이나 북극곰이 처한 곤경에는 안타까워하지만 그들의 운명이 자신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결국 인간은 우람한 짐승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 수많은 방식을 터득했다. 하지만 생물종의 멸종은 인류에게 기후변화보다 훨씬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자연의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다윈의 통찰만 생각해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걱정해야 할 것은 ‘광고에 실린’ 근사한 동물만이 아니라 무척추동물, 그중에서도 단연 규모가 가장 큰 곤충이다. (p.379-380)

 

 워즈워스와 콜리지 같은 영국의 낭만주의자는 장엄한 자연의 축소판인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만족해야 했지만 미국인인 에머슨과 뮤어 및 그 동료들에게는 자신의 꿈을 투사할 아메리카 대륙이 있었다. 이런 광활함을 바탕으로 미국 낭만주의가 탄생했고 미국의 환경보호주의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핵심 임무에서 멀어졌다. 이렇게 미국 낭만주의가 길들여진 자연을 희생시키고 야생의 자연을 숭배하면서 일종의 자기혐오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자신의 실제 삶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이르렀다고 크로논은 주장했다.
 크로논은 야생의 자연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중요한 점은 자연의 모든 풍경이 연속체를 이루며 그곳이 인류의 집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한 삼나무 숲에서처럼 집 앞 정원의 변변치 않은 덤불 앞에서도 감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에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가 어디인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소로가 옳았다. ‘야생성(wildness)’(야생성은 야생의 자연(wilderness)과 구별된다) 안에서 세상이 보존된다. 그렇다고 야생성을 발견하기 위해 시에라 산맥을 오를 필요는 없다. 야생성은 주변 어디에나, 도시에, 공원에, 집에, 정원에, 심지어 우리 몸 안에도 있다. (p.409)

 

 규모가 커지면 이런 전통적인 가축 사육 방식에 내재한 이점 역시 거대해진다고 페얼리는 말한다. 예를 들어 돼지에게 음식 찌꺼기를 먹이면(오래된 관습이지만 유럽에서는 2001년에 구제역 위기를 겪은 뒤 금지되었다) 영국에서만 연간 80만 톤의 돼지고기를 생산할 수 있는데 이는 영국인의 총 육류 소비량의 6분의 1에 해당한다. 더불어 인간의 식량 작물보다 일부 사료작물이 더 잘 자라는 곳에 사료작물을 파종하는 방안 역시 묵살해서는 안 된다. 동물은 인간만큼 먹는 데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재배한 작물을 훨씬 더 잘 활용할 수 있다. 일례로 감자밭은 저장 손실이나 불량품, 벗겨진 껍질 때문에 절반이 낭비될 수 있지만 돼지는 그 땅에서 나는 것을 기꺼이 모두 먹어 치운다. 소 역시 수확이 끝난 땅을 즐겁게 뜯어먹으니 그곳이 놀라울 만큼 엄청난 사료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미국의 식품 분석가 J. G. 페이들이 1999년에 진행한 연구 결과에서 밀과 쌀, 보리, 옥수수 및 사탕수수 등 세계 5대 작물의 수확 후 잔여물만으로 젖소가 전 세계에 우유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에너지는 물론 필요한 단백질의 3분의 1을 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페얼리는 동물성 식품이 채소나 곡물보다 평균 1.2배 더 영양가가 높으므로 식물 기반 접근법의 일환으로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열렬한 육식주의자들이 황급히 달려가 바비큐 불을 지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연구 결과가 스테이크를 실컷 먹어도 되는 구실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페얼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 어디에도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은 없다. 타당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기는 사치다.” 그래도 ‘기본 가축(default livestock)’이라 부르는 방식이 설득력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기본 가축이라 함은 ‘채소에 지속 가능한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농업 시스템에 없어서는 안 될 부산물’로서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에 그랬듯 동물을 사육하면서 풀과 음식 찌꺼기, 수확 잔여물 등 안 그러면 바로 쓰레기가 되는 영양분을 먹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접근 방식을 택하면 서양에서 소비하는 육류 및 유제품의 양을 대폭 줄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베이컨이나 치즈를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페얼리가 계산한 바에 따르면 ‘기본 가축’ 사육 방식을 전 세계적으로 시행할 경우 인류가 현재 소비하는 육류 및 유제품의 절반가량을 공급할 수 있다. 다시 말해 1인당 연간 고기 18킬로그램(주당 350그램)과 우유 39킬로그램(주당 우유 0.7리터 또는 치즈 75그램)을 소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 엄청난 양은 아니지만 곡물 및 채소 재배로 발생하는 잉여분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무료라고 페얼리는 말한다. (p.420-422)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대부분 먹을 수 있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약효 성분이 있는 식물도 있고 생태계에 특정 역할을 하는 식물도 있다. 땅을 뒤덮어서 잡초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해충을 쫓는 향을 뿜어내는 식물이 그 예다. 삼림 원예의 핵심은 야생 자연에서처럼 생태계가 투입물과 산출물의 자연스러운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일례로 오리나무는 이 삼림 정원에 일찌감치 심어진 개척자 나무로, 정원의 주요 공급원인 질소를 땅에 묶어두는 기능을 한다. 쥐오줌풀은 미네랄 축적기로서 다른 식물은 도달할 수 없는 곳까지 깊이 뻗어나가는 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한다. 꽃을 다 피우면 꽃잎을 잘라내 영양분을 토양으로 방출해서 다른 식물이 사용할 수 있게 한다. (p.452-453)

 

 인간과 시간의 관계에서 핵심이 되는 역설은 더 오래 산다고 반드시 더 좋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불멸의 치명적인 매력은 우화나 동화에서 하나의 비유로 흔히 사용되는데 대부분 끝이 좋지 않다. 실제로 불멸을 저주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 불멸을 얻은 자는 지루한 반복과 무관심, 무의미로 가득한 삶을 죽음으로 끝내고자 갈망한다. 불멸이 신을 위한 것이라고 한 고대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우타나피쉬티가 영생의 비밀을 찾는 길가메시에게 말했듯 인간은 언젠가 죽어야 할 운명이니 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게 고생해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끝없는 고역을 치러 몸은 지치고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하니 삶의 마지막을 앞당길 뿐이다.” 길가메시는 비탄에 빠졌지만 우리가 앞서 보았듯 우르크의 성벽이 자신보다 더 오래 남을 것임을 깨달은 뒤 위안을 얻었다.
 지상에 자신의 물리적 존재를 확장하고자 하는 갈망은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이었다. 돌로 성벽과 사원을 지으면서 우리는 자신의 덧없는 생을 넘어 시간 위에 거점을 마련하고자 열망한다. 그러다 최근 들어 생명공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자신의 몸을 조작해 죽음을 면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그렇게 해도 훌륭한 결과물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 젊음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다소 미숙하게 느껴진다. 성장을 거부하는 것은 삶을 일차원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생에 대한 갈망이 인류의 문명이 도달한 단계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앞으로 어떤 기술 혁신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분명 인류세를 촉발한 시대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한 산업혁명이 인류의 문화적 청소년기였고 배를 두둑하게 채운 20세기가 중년이었다면 앞으로 맞이할 노년은 생태학적으로 고갈된 시대일 것이다. 그러니 젊음을 되찾으려 애쓰는 대신 사회가 우아하게 늙어가면서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살고 그런 삶의 기쁨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익히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p.473-474)

 

 인간과 시간의 관계는 어떤가? 서양에서 지배적인 견해는 시간이 결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일에서 저 일로 분주히 옮겨가고 화면을 응시한 채 부랴부랴 점심을 해치운다. 쉬엄쉬엄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조차 “돈은 많지만 시간이 없다”라고 불평한다.
 시계와 인공조명이 없던 시대에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사람들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사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인간은 자전하고 공전하는 행성에 살고 있으니 과거 인류의 삶은 오고 가는 바람, 썰물과 밀물, 바뀌는 계절, 밤과 낮의 변화에 따라 배열되었다. 토착 문화에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시간을 측정했다. 계절과 날의 우주적 리듬을 측정하는 것, 그리고 수확과 제분 같은 특정한 사건이나 빵 만들기 같은 집안일과 관련된 리듬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행동이 시간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일례로 마다가스카르에서 ‘밥 짓기’는 30분, ‘옥수수 굽기’는 15분, ‘메뚜기 튀김’은 ‘눈 깜짝할 사이’와 비슷한 짧은 순간을 의미했다. 중세 영국에서는 몇 분이 흘렀는지를 달걀 하나를 삶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계산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음식과 연계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요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팀 잉골드가 언급했듯 전통 사회에서 시간은 과업 지향적이고 사회적이었다. 일상의 활동을 추상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간이었다. 사실 과거에 시간은 삶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에 관한 추상적인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학자 에드워드 E. 에번스프리처드가 설명했듯 남수단 누에르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누에르어에는 ‘시간’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따라서 누에르족은 시간을 보내고 낭비하고 아낄 수 있는 무언가로 말할 수가 없다. 그들은 시간과 싸운다거나 추상적인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활동을 조정해야 하는 등의 감정을 평생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기준이 되는 것은 주로 활동 자체이기에 그들은 무엇을 하든 여유롭다. (…) 누에르족은 운이 좋다.

 에번스프리처드가 언급했듯 시간 앞에서 평온할 수 있는 누에르족의 여유를 누구든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수면 부족에 시달린 채 밤낮없이 초고속으로 이어지는 지금 우리의 문화와 완전히 동떨어진 삶의 방식은 상상하기 힘들다. 서양에서는 산업혁명과 함께 삶이 일과 여가로 나뉘고, 시간이 돈이라는 프랭클린의 숙명적 관념이 퍼지면서 시간적 자유가 산산조각이 났다. 역사학자 루이스 멈포드가 《기계의 신화》에서 언급했듯 기계시대의 도래를 알린 것은 기차가 아니라 시계였다. ‘자동 기계의 모범’과 같은 시계는 시간과 공간을 수량화함으로써 ‘서양인이 전 지구에 퍼뜨린 통제 시스템에 없어서는 안 될 일부’가 되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E. F. 슈마허는 시간이 상품화하면서 인간이 생산자와 소비자로, 즉 시간 논리의 노예가 된 불완전한 두 반쪽으로 갈라졌다고 말했다. (p.476-478)

 

 서양은 역사상 금욕주의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위험을 회피하면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소비주의 문화는 결국 삶에서 모든 고통과 괴로움, 수고로움을(심지어 감자 껍질을 깎는 수고로움조차) 없애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어떤 인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서 보았듯 이런 삶의 분투와 부정적 측면을 덜어낸다고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고통이 없는 고요한 삶을 기대할수록 현재 누리는 안락함에서 그리 큰 즐거움을 얻지 못할 뿐이다. 수도꼭지를 틀거나 변기 물을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감사의 한숨을 내쉬어본 적이 언제였는가? 우리는 삶을 떠받치고 있는 안락함이라는 완충제를 잊어버렸다. 고통이나 노력이 기쁨이나 충만함과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음을 잊었다.
 세네카의 글이 지금도 의미가 있는 것은 죽음이 음식과 마찬가지로 끝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시대가 달라졌지만 궁극적으로 삶을 규정하는 질문은(죽음 앞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변함이 없다. 무엇보다 스토아학파는 현실주의자였기에 제멋대로인 이 세상에서 우리가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그 사상의 중심에는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익숙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다. 스토아학파에게 자연과 균형을 이룬다는 것은 물리적 영역에 개인을 맞추는 것은 물론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p.487-488)

 

 1932년에 발표한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이 논리가 뒤집히면 삶이 어떤 모습일지 탐구했다. 책의 배경이 되는 미래의 세계국가에서는 모든 가족 관계가 폐지되고 인간이 시험관에서 사육되어 사회계층(지식인층인 알파 플러스부터 단순 노동을 맡는 최하위 엡실론 계층까지) 내에 할당된 제 위치를 채운다. 그 안에서 친밀함과 감정은 금지되고 삶은 끝없이 이어지는 무의미한 소비와 게임, 유흥과 섹스로 소진된다. 누구든 괴로움을 느끼면 정부에서 승인한 무료 약물인 소마를 복용할 수 있다고 총독인 무스타파 몬드가 설명한다.

노인에게도 시간이 없게 되었지. 쾌락에서 벗어날 여유가 없고 잠시도 앉아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졌어. 간혹 안타깝게도 견고하게 짜인 여가 속에서 시간의 틈이 벌어진다면 언제나 소마가 있지. 감미로운 소마. 한나절의 휴일에는 0.5그램, 주말에는 1그램, 아름다운 동양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2그램, 달나라의 영원한 암흑 속에서는 3그램….

 《멋진 신세계》는 세상에 나온 이후 어느 때보다 지금 더 의미가 있다. 인간의 유전자 변형이 가능해지면서 시민과 소비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로봇이 생계를 위협하며 수백만 명이 항우울제와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는 지금, 우리의 세계와 헉슬리의 세계는 거북할 정도로 가깝게 느껴진다.
 헉슬리는 고통을 근절한다고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며 고통과 행복은 동일한 하나를 이루는 두 반쪽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마를 복용하는 시민들에게 삶은 무의미할 뿐이며 인간으로서 느끼는 모든 감정을 박탈당한 뒤라 잃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헉슬리는 행복이 그와 정반대되는 것으로 결정된다면서 불행할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둠이 없으면 빛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p.5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