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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경찰하는 마음 / 주명희 외 / 생각정원

 

 저마다 직업 선택 이유가 다르듯이, 14만 명의 경찰이 모두 영웅이 되고 싶어서, 희생과 봉사의 삶만을 생각하며 경찰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여경은 어떤 이유로 경찰이 되었든지 간에 욕을 먹는다. 여경은 ‘공무원이 되고 싶은데 다른 직종은 어려우니 만만한 경찰직을 타깃으로 삼은 사람’으로 치부되곤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면 일하는 내내 희생을 각오한 열정으로 가득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직업 선택의 이유마저 폄하될 때면 좀 억울한 생각이 든다.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말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였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던 나에게 엄마는 공무원이 되라고 했지만, ‘내 인생에 가장 가능성 낮은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에 어떤 결심으로 경찰이 되겠다고 선언하고는, 3년간 영어 강사로 일하며 쌓은 경력을 접고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경찰 시험에 최종 합격한 것은 26살의 겨울이었다. 매일 새벽 5시 20분에 기상해서 밤 11시에 잠들 때까지 공부만 한 지 10개월 만이었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르고 휴대폰은 사물함에 넣어두고, 좋아하던 술도 끊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학원에 나가는 나를 보며 엄마는 ‘뭐에 씌인 사람’ 같았다고 했다. 내가 절실하게 경찰이 되고자 했던 것은 어릴 적 꿈이 되살아났다거나,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고 싶은 의협심이 불타올라서가 아니었다. 심리학 전공자로 내내 관심을 두고 있던 범죄심리학을 현장에서 직접 범죄와 관련된 업무로 연결해보고 싶은 마음이 불씨가 되어 일어난 것이다. (p.68-69)

 

 이제 ‘여경 중에 가장 잘한다’라는 말은 더 이상 칭찬이 아니다. 혹은 ‘여경한테 그러시면 안 된다’라고 짐짓 여경 편을 들어주는 체하거나, ‘너는 여경이니까 빠져’라는 편협한 배려는 더더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유일하게 지구대에서 동료라고 느끼는 순간은 나를 ‘똑같이’ 대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이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을 때, 비로소 나는 ‘여경’이 아니라 ‘경찰’이 된다.
 여경이 여럿 모이면 자연스레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얼마나 부당한 차별을 받았고, 어떤 성희롱을 당했는지 이야기하며 분노한다. 그런 차별에도 불구하고 왜 경찰조직에 남아있는지 물으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한다. 우리 사회에 여경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 지구대에서 여경은 기본적인 치안 수요를 감당하는 것 외에 여성 피해자와 가해자 관리, 아동청소년 보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업무, 행정절차 상에 공정성을 높인다. 경찰조직 내 공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의 의견이 없다는 것은 시민 절반의 의견이 무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경이 ‘여성을 대변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엄마, 여자친구, 딸과 같은 다양한 층위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것과 같다. 나 또한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또는 각 시도청에서, 사건처리 과정 중 여성에게 꼭 필요한 부분들이 배제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내가 이 조직에서 나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 있다. (p.74-75)

 

 영상은 SNS와 각종 사이트, 유튜브에 도배되다시피 했다. 댓글은 나를 포함해 여성 경찰, 나아가 여성 혐오로 번지고 있었다. 처음엔 내가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들먹이며 ‘도망가는 여경’이라고 하더니, 나중에 목소리가 나오는 전체 영상이 공개되면서 ‘수갑을 시민에게 채우도록 시키는 정신 나간 여경’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고, 수갑을 시민에게 채우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체포를 돕던 교통경찰과 나, 여주인의 목소리가 뒤엉킨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 것이다. 사건 장소는 ‘구로동’이었지만 위험한 동네라는 인식이 강한 ‘대림동’으로, 40~50대의 두 남자는 술 취한 ‘노인’이라고 한 것도, 여경의 무능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작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의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다. 제풀에 넘어지기 일쑤고 맨정신일 때보다 힘이 엄청 세지기도 한다. 경찰은 기본적으로 방어 대응을 한다. 잘못하면 주취자가 다치는 등 과잉대응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체포 시에도 피의자의 안전을 고려하여 삼단봉이나 테이저건 같은 무기를 최대한 자제한다. 맨손 체포가 기본이다. 보통 한 명의 주취자를 제압하는 데는 경찰 두 명이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한 명이 제압하고 다른 한 명이 수갑을 채우는 식이다. 남경, 여경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취자와 경찰을 폭행하는 사람을 강력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p.79-80)

 

 처음 경찰에 입직했을 때는 나의 무도경력에 모두가 든든해했다. 내심 뿌듯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즈음 한 여경이 피의자 제압과정 중에 부상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성 경찰이 임무 수행 중에 다친 거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테지만, 여경의 부상은 입방아에 올랐다. 마치 힘이 없어서 서툴러서 다친 양, 여경은 역시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 분위기가 좀 험악해지려 하면 선배 경찰들은 나보고 뒤로 빠져 있으라 했고, 내가 위험한 현장으로 출동할 때면 지원이 붙는 경우도 많아졌다.
 동료들의 걱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었지만, 일방적인 무시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상황을 빠르게 판단해서, 체포가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적대지 않고 과감하게 대처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남자를 집으로 보내야 하는 일에 투입되었다. 주취자는 나보다 덩치가 크고 힘도 세 보였다. 횡설수설 남자의 시비를 지켜보던 중 갑자기 주먹이 휙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남자의 양 손목을 막아 잡았다. 그러나 버텨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힘에 밀리는 듯했고, 손을 놓아버리면 바로 공격이 들어올 것 같았다. 함께 온 선배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도 너무 순식간이었다. 그때 남자가 손목을 빼내려고 거세게 저항했다. 이거다 싶었다. 순간 그대로 뒤로 빠지면서 남자의 손목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힘의 균형이 무너진 남자가 비틀거렸고 ‘이때다’하고 재빠르게 제압했다. 곁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선배경찰관은 놀란 눈치였다. 엄청난 힘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무도의 기술을 이용했을 뿐. 무술의 기본을 충분히 익히면 신체적 열세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예였다.
 기동대에 배치된 뒤, 여러 시위 집회 현장에서 내가 터득한 무술은 활용도가 커졌다. 기동대에서 체포술 교관교육을 받고 난 뒤에는 여경 기동대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하게 되었다. 교육 내용을 단순하게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가 여러 현장에서 겪었던 다양한 변수와 상황을 고려하여, 안전하고 효율적인 체포술을 전수하려고 애썼다. 효과는 좋았다. 여경 기동대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겪었을 법한 상황들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p.95-96)

 

 내가 남녀를 구분하고 의식했다면 순전히 남자 형사, 남자 경찰만 등장하는 ‘경찰청 사람들’을 보며 경찰을 꿈꿀 수 있었을까? 어린 내 눈에 경찰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성별을 의식하게 된 것은 오히려 경찰이 되면서부터이다. 교육생 시절, 지도관님이 여경들에게 수없이 강조한 말이 있다. “여성이라는 성별을 버려라. 여경이라서 일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선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언제나 먼저 나서라!”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경찰로서 임무를 강조하는 게 아니라, 여경이기에 먼저 나서라는 게 무슨 말인가! 그때는 ‘여경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했다. (p.98-99)

 

 ‘여경을 받았더니 바로 임신해버리고(왜 이럴 때 ‘버리다’라는 보조용언을 붙이는 걸까?), 공석이 생겨 힘들다’라는 말을 듣는 게 정말 싫었다. 나에 대한 평가에서 끝나지 않고 여경 전체가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너무 싫어서, 출근하는 마지막 날까지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왜 내가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할까. 나는 왜 이제까지 참고 망설였을까. ‘여경을 받았더니 바른말만 하며 따지려 들고, 권리는 다 챙겨 먹으려 한다’라는 비난이 두려웠던 것일까? 계장님한테 참았던 말을 쏟아내면서, 이제까지 내가 가졌던 수많은 물음에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어떤 비난도 당당하게 받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말하고 돌아섰는데, 정말 그 순간 큰 힘이 된 건 팀원 모두 웃으며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줬다는 것이다. ‘쟤 왜 저래?’ 하는 눈빛이 아니었다. 당시 우리 부서는 나를 빼고 모두 남자였는데, 그 상황에서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였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성애를 앞세운 용기는 헛되지 않았다. 그 뒤로 계장님은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별 뜻 없이 한 농담(?)일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행동과 말, 그로 인해 상처 입고 불쾌하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없어서 으레 재미있는 농담이려니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우리 사회는 많이 달라져서 출산을 장려한다. 임신하면 축복이 먼저인 분위기! ‘아마도 그때 그 계장님과 같은 분은 더는 존재하지 않겠지?’ (p.106-107)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성차별 경험은 지구대로 실습을 나갔을 때였다.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지구대장은 실습생인 나에게 “미안하지만, 커피 좀 타 달라.”고 했다. 짧은 실습 기간 그는 말끝마다 ‘미안하지만’이라는 단어를 붙이며 애써 매너 있는 척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막내여서가 아니라 조직 내 유일한 여성이기에 업무 외의 잡무를 서슴없이 시킨 것임을. 실습 기간 중 조금 친해진 순찰팀장은 말끝마다 나를 ‘김 여사’라고 불렀다. 함께 실습 나갔던 남자 동기에게는 앞으로 임용될 계급인 ‘김 주임’이라고 깍듯이 부르면서 말이다.
 실습을 마치고 경찰서로 발령받은 뒤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각종 행사에서 주인공에게 꽃을 전달해주는 ‘꽃순이’ 역할은 당연히 내 몫이었다. 회식 때마다 나의 지정석은 모두가 앉기를 꺼리는 상사의 바로 옆자리였다. 일부러 피하고 싶어 빨리 가도 어쩌다가 늦게 가도 상사 옆자리는 당연히 내 자리라며 비워놓았다. 회식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서라는 게 그 이유였는데 이러한 성차별은 업무에서도 계속되었다. 경찰을 꿈꾸며 들어온 이들이면 모두가 그렇듯 나 또한 수사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여경이라는 이유로 단칼에 거절당했다. 20대 여경은 장차 출산과 육아를 할 가능성이 있고 만약 그럴 경우, 밤을 새워야 하는 당직 근무에서 열외가 되기 때문이란다. 당시 미혼인 데다 남자친구도 없고, 당연히 출산 계획도 없는 나를 대신하여 그들이 세운 ‘중장기적인 인생 계획’을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p.116-117)

 

 나의 소심함과 미안함, 죄책감이 뒤엉켜 그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던 차에 ‘양평경찰서장님 앞’으로 소포 하나가 도착했다.
 울산 사는 한 할머니가 보내신 거였다. 정인이에게 입힐 알록달록한 스웨터와 용돈 3천 원, 그리고 편지였다. 할머니는 단정한 손글씨로, 정인이가 저승에서라도 예쁜 옷 입고 활짝 웃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스웨터를 직접 떴으며, 정인이가 잠든 수목장 관리소에 소포를 보냈지만 반송되었다는 것, 그래서 혹시 양평경찰서장님께서 전해주실 수 있는지 조심스럽고도 간절하게 물으셨다. 할머니의 편지와 스웨터를 들고 정인이 묘를 찾았다. 정인이의 명복을 빌면서 한 사람의 경찰관으로서 사과했다. 할머니의 선물을 정인이에게 전해준 다음 사진을 찍어 할머니에게 보내드렸다. 할머니는 경찰서장님의 귀한 답장을 받았다며 무척 고마워하셨다. 나야말로 할머니 덕분에 정인이를 만나볼 용기를 얻었고 더 좋은 경찰조직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할 수 있었다.
 경찰을 하다 보면 나쁜 사람들을 많이 만나지만 그만큼 좋은 사람도 만난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수많은 악행과 부당함, 거짓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결국 다시 사람이다. 약하고 상처받고 피해 입은 사람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아주 작은 걸음으로라도 세상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p.138)

 

 열아홉 살의 내가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먹을 것과 누울 자리를 내어주는 대학이 최선이었다. 그리고 가정폭력 현장에 출동해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지 않는 경찰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래야 내가 겪은 무시무시한 일들이 왜 일어나야만 했는지, 어쩌면 유일하게 긍정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삶에서 경찰대 입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경찰이 되고 나서 나는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여성청소년강력팀에 지원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고통스러운 내 경험들이 이제는 의미를 가질 수 있고,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설렜다. 하지만 인사이동 시기마다 반복적으로 듣는 말에 무력감을 느끼고 실망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 팀에 이미 여경 하나 있잖아.’ 각 부서의 장들이 부서원들을 선발하고 배치하면서 꼭 고려하게 되는 것, 바로 ‘여경은 한 팀에 여러 명이면 안 된다’라는 것이다. 같은 계급이 두 명이면 서로 고과를 양보하면 괜찮고, 같은 출신이 여러 명이어도 서로 물어가며 배울 수 있어서 좋지만, 유독 여경이 두 명인 건 팀에 해로운(?) 일이 된다. 여경은 ‘여경 자리’에만 갈 수 있었다. 언론이나 논문에 언급되는 ‘유리천장’과 ‘유리벽’이라는 단어로는 이 감정들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러다 체념하고 다시 또 다른 ‘여경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내 모습에 속이 쓰렸다. (p.161-162)

 

 아동학대와 성폭력 사건을 다루면서 상반되는 부모의 유형을 보게 되는데, 특히 조현병을 앓는 성폭력 피의자의 부모 중에는 무조건 자식을 감싸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병을 이유로 선처를 호소하는데,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을 내세우는 피의자들은 점점 늘고 있다. 내가 만난 ‘조현병을 앓는다’는 남성들은 겉으로는 평범하다. 수년 또는 수십 년간 약 복용을 하며 꾸준한 치료를 받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한다.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다른 범죄로 수사를 받은 적도 없다. 그런데 유독 여성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만 ‘충동 조절’을 못한단다. 성추행으로 신고된 조현병 환자의 부모들을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해 조사하다 보면, 대부분 ‘우리 아들은 착해서’, ‘애가 아파서’, ‘피해자가 별것도 아닌 일을 신고해서’ 등, 어떻게든 자기 아들이 ‘고의로 피해 여성의 신체 부위를 만져 추행’한 사실을 부인한다. 이렇게 부모가 나서서 고의를 부정해주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형을 감경해주는 판결들, 그리고 이를 학습한 남성들에 의해 성범죄 피해를 보는 여성은 늘어나고 있다. (p.162-163)

 

 학대 정황 신고를 받고 출동하게 되면, 아이와 학대 행위자를 분리하는 ‘임시조치’부터 검토한다. 아무 일 없는 듯 평범하게 보이는 상황으로 판단하고 돌아서는 순간, 학대는 은밀하고 더 강하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동학대 신고야말로 아이가 잡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그래서 세심하게 살피고 의심하는 것이 조사의 시작이다. 임시조치를 결정하고 상황을 설명할 때는 아이의 두 눈을 마주치며 또박또박 말해준다.
 “어른은 아이를 때려서도 욕을 해서도 절대 안 되는 거야. 지금 일어난 일들은 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 아빠가 이곳에 온 것도 잘못된 행동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해서 그런 거야.”
 부모를 신고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했다며 자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지켜주어야 하는 사람이 자신을 해쳤다는 모순된 상황에 불안했을 아이에게 ‘여기는 안전해. 경찰이 너를 지켜줄게’라는 믿음을 주고 싶다. 그런데 임시조치 신청은 종종 검찰 단계에서 기각된다. 나의 마음이 조서에 온전히 전달되지 않은 것일까? 두려움 가득한 아이의 표정과 목소리, 아동학대 행위자의 뻔뻔한 태도가 아닌 기록만을 먼저 접했기 때문일까? 그때마다 자책과 아이들 걱정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p.164)

 

 오늘도 뉴스에서는 성추행에 시달리다 자살한 여성, 불법 성착취물로 피해를 입은 여성 그리고 헤어지자고 했다가 죽임을 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여성은 두렵다. 이는 합리적인 두려움이다. 두려워야 더 조심하고 그래야 더 안전할 수 있기에 여성의 두려움은 사회가 만들어낸 약자의 본능적 방어기제다. 여성과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느끼는 두려움의 크기가 다르고 경험이 다름에도 그들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실질적 평등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고민들이 ‘성 평등한 치안서비스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져, 2021년에는 마음 맞는 동료들과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세미나에서는 112에 신고된 사건들을 성인지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성별에 따라 다른 신고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또 성범죄의 특성을 가진 범죄들이 법체계상 성범죄로 분류되지 않음으로써 피해자 보호에 구멍이 생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직 무엇이 정답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부딪치며 느낀 갈등과 혼란을 문제로 인식하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더 나은 삶으로의 희망을 추동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소중하다. (p.179)

 

 그런데 아무리 피해자가 조심하고 주위를 살펴도 참극을 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일어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가족이었거나 연인 등 친밀한 관계였으므로 피해자의 집, 회사의 위치는 물론 출근을 몇 시에 하는지, 퇴근 후 어디로 가는지 등 평소 생활 동선을 하나하나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맞닥뜨려 112 신고를 하고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몸을 숨기거나 저항하는 것은 오롯이 피해자와 그 가족의 몫인 셈이다. 벌써 올해 들어 스마트 워치를 받은 여성이 3명이나 살해당했다. 이 중 2명은 갑작스러운 피의자의 공격으로 스마트 워치를 제대로 눌러보지도 못했으며, 그나마 한 명은 신고했으나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한국 여성의 전화’ 발표에 따르면 ‘2021년 친밀한 관계에 의해 살해되거나 죽을뻔한 여성이 최소 220명’에 달한다. 이는 평균적으로 1.4일에 한 명꼴인 셈이다. (p.184)

 

 형사과 근무를 시작하던 날에 한 선배가 “형사 업무가 영화처럼 멋지게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고 충고했다. 처음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경찰의 일은 영화처럼 멋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험을 막아주고, 악인들이 벌 받도록 기회를 주는 엔딩이 있으니 말이다. (p.197)

 

 여러 나라에서 파견된 경찰들과 함께 근무하다 보니 나라마다 다른 성향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시받은 일을 당연하게 해내는 여경이 있는 반면, 운전이나 화장실 운운하면서 ‘여자라서 그 일을 하기 어렵다’고 꺼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그가 속한 사회와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온 여경들은 어릴 때부터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고, 스포츠 활동도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당연히 업무 현장에서도 남자라서, 여자라서 다른 역할을 요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다른 것을 기대하지 않고, 다르게 대우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면에 교육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는 가정과 학교에서 남녀가 다른 교육을 받는다. 사회에서의 남녀 역할도 나누어져 있다. 과거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경찰을 처음 시작했던 2000년 초반에도 형사과나 파출소(지구대) 순찰팀에 여경은 거의 없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여경 채용과 관련한 논란이 일었다. 핵심은 경찰 체력측정에서 ‘여경은 왜 무릎을 꿇고 팔굽혀펴기를 하느냐’였다. 왜 남경과 똑같은 기준의 체력을 요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라이베리아에서 이 뉴스를 접한 나는 외국인 경찰 동료들에게 당신들의 나라는 어떠냐고 의견을 물었다. 대부분 비슷하게 답했다. 남녀가 특별히 다른 방법으로 체력측정을 하지 않지만, 남녀 간의 기준은 다르며 여경의 기준은 대부분 남경에 비해서 낮다. 즉 남녀가 동등한 교육을 받고 동등한 역할을 하지만, 동등한 신체적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202-203)

 

 20여 년 경찰 생활 끝에 터득한 교훈은 여경들은 어떻게 일해도 욕을 먹는다는 것, 또 하나 여성들이 권력을 탐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특히 여경은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수록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치열하게 열정적으로 일해서 승진하면 ‘직원들을 달달 볶았다’라거나 ‘독하다’, ‘이기적이다’라고 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실함으로 승진하면 ‘한 일도 없는데 여경이라 특혜를 봤다’고 한다. 이러니저러니 욕을 먹을 테니 나는 갈 데까지 가보자 싶었다.
 물론 나의 ‘권력에의 의지’를 드러내는 데는 불편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경상도 가부장적 집안에서 4대째 장손인 오빠를 둔 딸로 자란 나에게도 가부장적 규범이 내재되어 있다. 딸은 욕심내면 안 되고, 오빠에게 밥을 차려줘야 하고, 심지어 오빠보다 성적이 좋으면 오빠 기죽인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속에서 어떤 욕심을 드러내는 일은 익숙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권력의 화신이야’라는 진담을 농담처럼 말하는 나를 사람들은 어떻게 봤을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 말을 하면서 약간의 해방감, 착한 여자여야 한다는 자기 검열을 깨부수는 듯한 자유를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p.211)

 

 ‘최초’이던 여성 감찰계장이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존재가 된 것. 나는 그 허무함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온갖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노력해서 편견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여경이기 때문에 어떤 부서에 가는 것만으로 특별하게 취급받거나, 여경이라서 뭔가를 특별히 잘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주변의 모든 경찰관들과 똑같은 별다를 것 없는 경찰관의 이야기이다.
 또 하나, 여성의 권력 추구와 권력 행사가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누구나 원한다면 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 항상 옳은 일을 하거나, 항상 모범적일 필요도 없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략적 선택을 하고, 적당히 타협도 하고, 때로는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과정이 그런 권력 욕구가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더 비난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모든 남자들이 하고 있기에.
 모든 여성 경찰관들이, 편견을 맞닥뜨리지 않고 수용되고, 조직문화에 적당히 순응하고 한편으로 바꾸어내면서,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특별하게 취급받지 않는, 그런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p.214-215)

 

 나 또한 여경이라는 이유로, 지구대에서 현장 출동 배제를 겪었다. 같은 조의 동료는 나와 함께 순찰차를 타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대놓고 말했다. 팀원들 야식과 이런저런 자잘한 일을 도맡아 하는 나에게 “살림 솜씨가 많이 늘었냐?”, “이제 결혼해도 되겠다.”라는 말을 해댔다. 팀을 위한 작은 봉사로 기꺼이 맡은 일인데, 동료들은 여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더한 일도 있었다. “여기 지구대를 떠나면 너는 절대 다시 현장으로 나오지 않을 거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면 끝이니 지금 즐겨라.”라는 말들…. 여경은 대충 간만 보며 일하다가 결혼하고 육아하면서 편한 보직을 찾아 옮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자괴감이 들고 힘이 쑥 빠졌다. (p.226)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찰로서의 나에 대한 정체성은 또 다른 복병을 만나 흔들렸다. 바로 여경들 간의 끊임없는 비교와 평가이다. 나의 첫 발령지 파출소에는 여경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업무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서 파출소 내 직원들과 친밀했고, 나에게도 친절했다. 하지만 나는 선배에게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교육생 시절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여경 선배가 제일 무섭다’, ‘여자의 적은 여자다’, ‘여경 선배한테 찍히면 경찰 인생 끝난다’라는 말들 때문이었다.
 여경은 자주, 은연중에 비교된다. 처음에는 팀 또는 부서 내에서 ‘너는 저 선배의 반만 해도 잘하는 거다’, ‘저 팀 여경은 저렇게 하는데 너는 왜 못 해’라는 말로 시작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얼굴도 모르는 옆 지구대, 다른 부서 여경들과 비교되고 평가의 말이 날아든다. 나중에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여경과 비교되기에 이른다. 어떤 여경이 칼을 보고 무서워서 순찰차 안에 숨었다더라, 예전에 어떤 여경이 현장에서 날아다녔다더라 등. 비난이든 칭찬이든 마치 교훈처럼 새겨들으라는 듯 말하지만, 결국은 반면교사가 아니라 단지 그 대상과 나를 비교하는 데 목적이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비난 조의 대상자를 언급할 때는 그 사람을 특정하기보다는 ‘여경’ 전체를 대상화하면서 ‘너도 언제든 그런 여경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이러한 비교는 연차가 쌓여도 계속되며 심지어는 후배 여경들과도 비교된다. 유능한 여경 후배들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기 때문에 분야별로, 꼼꼼히, 비교당한다. (p.233-234)

 

 

크루얼티 프리 / 린다 뉴베리 / 사계절

 

 동물은 도덕성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혹은 인간과 같은 지성이 없기 때문에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갓 태어난 인간 아기가 도덕이나 책임감 따위는 전혀 몰라도 권리를 가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동물에게 지성이 없다는 주장은 예컨대 개, 돌고래, 돼지, 영장류와 일부 새들의 영리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동물의 권리를 고려하는 법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많다. 어떤 동물은 보호하는데 다른 동물은 마구 죽인다. 일부러 동물에게 잔인한 짓을 해도 처벌은 너무 가볍고, 동물 학대 죄로 판결받은 사람이 동물을 기르지 못하게 막는 법적 조치도 충분치 않다.
 2009년이 되어서야 유럽연합은 가축이 ‘지각 있는 존재’라고 선언했다. 동물도 감정을 지니고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전까지 가축은 양배추나 밀가루처럼 농산물로 분류되었다.
 전 세계 복지 단체들은 농장이나 동물원 혹은 야생에 살거나 반려동물로 키워지는 모든 동물이 돌봄과 배려를 받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항상 이익을 위해 동물을 착취하고 싶은 욕구 및 고기와 유제품에 굶주린 세계에 되도록 값싸게 식량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과 충돌한다. 동물이 법적으로 거의 혹은 전혀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가 너무 많다. (p.18-19)

 

 생활 거의 전반에서 우리는 ‘물건을 버린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뜻일까? 물건이 어디에 ‘버려진다’는 걸까?
 우리는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된다는 뜻,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는 곳에 물건을 둔다는 뜻으로 주로 이 말을 쓴다. 대개는 쓰레기통이다. 하지만 우리가 ‘버린’ 것은 전부 다 어딘가로 가야만 한다. 보통은 쓰레기 매립지이다. 쓰레기 매립지는 땅속이나 땅 위에 세워 생활 폐기물과 상업적 폐기물로 가득 채운 거대한 구조물로, 전 세계 곳곳에 있다.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를 처리하는 요즘 가장 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쓰레기를 매립지로 보내고 나면 아마도 여러분은 쓰레기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는 여전히 거기 있다. 분해되려면 수백 심지어 수천 년이 걸릴 테고, 양이 늘어나는 만큼 동물이 처할 위험도 커진다. (p.112)

 

 그 밖에 내가 아이였을 때, 그리고 꽤 최근까지도 축제에서 상으로 금붕어를 주는 일이 흔했다. 이 불쌍한 물고기들을 물을 채운 작은 비닐 주머니에 한 마리씩 넣어두었다가 사은품으로 주었다. 몇이나 살아남아서 적합한 환경에서 키워졌을까? 물고기를 기를 계획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다니 잔인하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동물을 결코 상으로 주어서는 안 된다. 동물을 돌볼 책임을 맡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동물이든 주지 말아야 한다. 영국 자선단체인 RSPCA가 이런 구호를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개는 평생을 위한 것이다, 크리스마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불행히도 동물 구조 단체에는 여전히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고 나면 버려진 반려동물과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사거나 선물로 받은 동물이 많이 온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봉쇄 기간 동안 벗 삼으려고 반려동물을 들였다가 나중에 싫증을 내면서 버리는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p.156)

 

 왜 그런지 몰라도 채식주의자에게 악담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우월감을 갖고 설교하려 든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속으로는 우리 이야기가 일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고기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서 우리를 깎아내리려 하는 걸까?
 “아, 하지만 너 가죽 신발 신었잖아?”라거나 “네 고양이에게는 고기를 주지 않니?” 같은 질문을 들으면, 마치 우리에게 위선자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해서 우리 입장을 무너뜨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내 대답은 (“아니, 난 낡아빠진 정원용 장화 말고는 가죽 신발은 안 신어”라든가 “그래, 내 고양이에게는 고기를 주지” 같은 대답을 제외하고) 나 자신을 완벽한 채식주의 생활 방식의 모범으로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지키려는 원칙이 있고,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다. 누가 이것을 가지고 트집 잡을 수 있단 말인가?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