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턴어웨이 / 다이애나 그린 포스터 / 동녘
엄마가 될 여성의 삶을 고려하지 않고 태아의 도덕적 지위를 토론하는 것은 사회가 여성을 거부하는 일이다. 임신중지를 할 수 없는 저소득층 여성에게 충분한 양육 지원과 식량 및 주거비 지원을 하지 않는 것도 정부가 여성과 아이 모두를 거부하는 일이다. 턴어웨이 연구는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임신중지를 원하지만 할 수 없던 여성을 비교해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한 첫 번째 연구다. 우리 연구 전에 임신중지가 여성에게 해를 끼치는지에 관한 논쟁에서 사용된 데이터는 임신중지를 먼저 고려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출산을 한 여성과 임신중지를 한 여성 사이의 비교연구다. 여성은 타이밍이 좋을 때 출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에 이런 비교는 문제가 있다. 즉 파트너와의 관계가 원만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고 아이를 키울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 때다. 반면 타이밍이 나쁠 때는 임신중지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파트너와의 관계가 부정적이고 건강이 좋지 않고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때다. 임신중지를 한 여성과 출산을 한 여성을 비교할 때 나타나는 차이점들은 임신중지를 한 사실보다는 여성이 원하는 임신이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p.34-35)
우리는 원하지 않은 임신이 출산까지 이어질 때의 해악을 많이 봤다. 지속적인 임신과 출산은 신체 건강의 높은 위험성과 관련이 있는데 우리 연구에 참여한 두 여성은 출산과 연관된 원인으로 사망했다. 또 출산으로 합병증을 앓거나 향후 5년 동안 만성적인 두통과 관절 통증, 고혈압을 경험하거나 전반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나쁘다고 평가하는 일도 많았다. 단기적으로는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이후 삶의 만족도가 낮아지고 삶에 대한 열망이 저조해졌다. 출산 후에 폭력적인 파트너로부터 벗어나기가 더욱 어려워지기도 했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은 자신의 뜻에 따라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을 몇 년이나 더 겪기도 했다.
임신중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종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이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며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임신중지를 결정한다고 비난한다. 턴어웨이 연구가 분명히 밝히듯 여성은 임신중지에 관해 숙고하고 사려 깊은 결정을 내린다. 왜 임신중지를 하고 싶은지 물으면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이유를 말한다. 그들의 두려움은 원하지 않은 임신이 출산까지 이어진 여성의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은 아이를 키울 여유가 없음을 걱정하고, 우리는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이 가난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은 그들이 맺는 관계가 아이를 키울 만큼 튼튼하지 않음을 걱정했는데, 우리는 출산을 하든지 임신중지를 하든지 관계없이 임신에 함께한 남성과의 관계가 해체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그들은 이미 키우는 아이들을 돌볼 수 없을까 봐 걱정했는데 우리는 임신중지를 했을 때보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 출산으로 이어졌을 때 아이들의 건강이나 발달 상태가 저조함을 발견했다. 턴어웨이 연구는 여성이 결과를 예측하고 그들의 삶과 가족에게 가장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한다. (p.54-55)
〈폴트 라인〉 에피소드의 처음에 뷔시는 임신중지 정책에 대해 매우 자신감 있게 말한다. 그는 ‘생명의 거룩함’을 신봉하고 “임신중지를 줄이거나 사라지게 할” 법을 옹호했다. 하지만 아와드가 “여성이 왜 임신중지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묻자 잠시 말을 멈췄다. 뷔시는 바로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며 몸을 꼼지락댔다. “글쎄, 이유야 많겠죠. 나, 나는 여성이 아니라 알 수가…….” 그는 농담하듯 얼버무렸지만, 굳은 표정으로 일관하는 아와드에게서 어떤 반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볼게요. 내가 여성이라면, 내가 왜 임신중지를 원할까…….” 뷔시는 하늘이 답을 내려줄 것처럼 위를 올려다봤다. “어떤 건 경제적인 문제예요.” 그는 답했다. “많은 부분이 경제적인 것과 관련이 있어요. 모르겠네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이 질문은 그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수십 년간의 싸움에서 우리가 포착한 이 한순간은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정치와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의 경험 사이의 단절을 보여준다. 임신중지에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이 남성은 그가 영향을 미치는 여성들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가 그토록 경멸하는 행위, 그러니까 여성이 왜 임신중지를 원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이다. (p.69-70)
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여성이 직면하는 주요 장벽들에는 절차에 드는 비용,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시술 제공자에게 접근하는 것의 어려움,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조치들, 낙인에 대한 두려움, 임신중지 시술 장소에 나타나는 시위대 등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앞에서 봤듯이 미국에서 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여성의 가장 흔한 임신중지 이유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거나, 지금 있는 아이보다 더 많은 아이를 부양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이유로 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여성이 임신중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임신중지 비용을 버는 시간은 우리 연구에서 임신중지가 늦어지는 가장 흔한 이유로 드러났다. 임신중지 가능 기한에 가까워져서 병원에 도착한 여성의 3분의 2는 이런 이유들 때문에 늦어졌다고 보고되었다. (p.117)
후기 임신중지를 하는 여성을 임신을 미리 막지 못했고 임신중지를 하는 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는 이유로 악마화하기는 쉽다. 임신 20주가 지난 여성들의 공적인 발화는 거의 항상 태아 이상이나 태아와 여성의 건강을 모두 위협하는 경우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20주에서 24주 사이의 임신중지에 대한 작은 진실은 후기 임신중지가 주로 임신의 뒤늦은 발견 때문이고 또 임신중지를 하는 데 경제적, 이동, 법적 장벽들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도덕적으로 정당한 여성들만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는 걸 뜻하지 않는다. 신체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없고 돈이 있고 사회적으로 지지받는 성인 여성들만이 임신중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p.151)
우파드헤이 박사가 2009년에서 2010년까지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진 5만 4911건의 임신중지에 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했을 때 이 시기에 메디-캘을 통해 진행된 임신중지 중 사망 사례는 없었다. 임신중지로 인한 사망률은 0퍼센트다. 캘리포니아보다 큰 주에서도 임신중지로 인한 사망을 다룰 만한 사례는 거의 드물다. 다음으로 CDC의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간의 데이터를 살펴보자. 엘리자베스 레이먼드 박사와 데이비드 그라임즈 박사는 임신중지의 결과로 16만 명 중 한 명의 여성이 사망하고 출산의 결과로 1만 1300명 중 한 명의 여성이 사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에 사는 여성은 임신중지보다 출산으로 사망할 확률이 14배 높다.
임신이 질병은 아니지만 임신으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신체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다. 임신한 여성의 전체 순환계는 과열 상태가 되는데 호르몬 체계와 신진대사의 급격한 변화로 정상 수치보다 50퍼센트 많은 혈액을 생산한다. 신체적으로 복부 장기와 근육을 약 4.5킬로그램 이상의 자궁 무게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골반과 척추의 관절이 느슨해지면서 아이의 머리가 골반을 통과할 수 있도록 열린다. 정상적인 임신의 과정이다. 수술률을 줄이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 중 3분의 1 정도는 제왕절개 같은 수술 과정을 포함한다. 미국에서 네 명 중 한 명은 출산 과정에서 산과적 외상 및 열상(8퍼센트), 감염(6퍼센트), 과다 출혈(4퍼센트), 임신성 당뇨(4퍼센트), 전자간증(3.4퍼센트) 및 자간증(임신 중 위험한 경우 발작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고혈압)(0.1퍼센트) 등 심각한 합병증을 경험할 수 있다. 만성질환을 가진 여성은 임신 중 더욱 복잡한 과정을 겪게 된다. 교과서에는 임신으로 악화될 수 있는 항목들이 가득 쓰여 있다. 여성들이 이것들을 감내하고 출산으로 기뻐한다는 것 때문에 임신이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p.228-229)
우리의 양적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의 여성은 아이를 원하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아이를 염두에 두고 임신중지를 선택한다. 출산의 시기와 환경이 아이에게 이상적이지 않거나 현재의 아이에게 이 상황이 부정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시기와 환경이 이상적이지 않거나 미래의 아이나 현재의 아이에게 이 상황이 해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신중지를 선택한다. (p.308-309)
임신중지는 여성의 권리 대 배아 혹은 태아의 권리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이 아이를 돌볼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다. 모든 사람은 아이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데 이 연구는 여성이 자기 아이의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인지에 따라 출산을 고려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원하지 않은 임신 당시 이미 태어난 아이들(임신중지를 시도하는 여성의 60퍼센트는 이미 아이가 있는 엄마다), 미래의 아이들도 포함된다.
준비되지 않았을 때 아이를 갖는다면 여성과 아이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여성이 새로운 아이를 경제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감정적 유대가 떨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아진다.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 나중에 더 나은 환경에서, 원하는 임신을 할 가능성을 높인다. (p.323)
여성들은 정서적 회복탄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게 집세를 내주진 않는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들은 연구 기간 동안 식비, 주거비, 교통비를 감당할 충분한 돈이 없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경험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는 모르지만, 신용 보고서 연구 결과는 그런 경제적 결과가 우리의 연구 기간 이후까지 이어진다는 걸 보여준다. 임신중지의 합법성과 관계없이 현재의 무자비한 복지 기간 제한과 보장 자녀 수 제한 등을 없애는 건 좋은 출발점이 되겠지만, 이런 어려움을 없앨 단기적인 해결책은 없다.
경제적 부담을 넘어 언제 누구와 함께 아이를 가질지 결정하는 여성의 행위자성을 빼앗는 것은 여성의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턴어웨이 연구를 통해 임신중지를 거부당하면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의 계획을 축소하고 임신에 함께한 남성과 더 이상 같이 있지 않더라도 좋지 않은 관계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해 안정적인 삶이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키아라나 멜리사가 그런 것처럼 나중에 더 나은 상황에서 아이를 가질 기회를 얻지 못하기도 한다. 또한 우리는 많은 여성이 브렌다처럼 친밀한 파트너의 폭력을 경험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이 원하던 임신중지를 할 수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접근 제한은 여성의 의지에 반하는 임신의 심각한 위험성을 유발한다.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며,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래할 위험 말이다. 임신중지를 거부당한 여성이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 비해 5년 후 건강이 나빠졌다고 보고한 것처럼, 임신에 따른 건강 위험은 사소하지 않으며 출산 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된다. 정서적 회복탄력성만으로 이 연구에서 보고된 두 명의 사망 여성과, 딸과 엄마를 잃어 비통한 남겨진 가족들을 구할 수는 없다. (p.428-429)
나는 이 책이 여성들이 왜 임신중지를 하는지, 그들이 임신중지를 원함에도 할 수 없을 때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줬길 바란다. 여성을 믿으라는 틸러의 철학은 턴어웨이 연구가 전하는 교훈이기도 하다. 우리 연구는 여성이 그들의 몸, 가족, 삶에 사려 깊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했다. 여성은 자신의 부담, 타인에 대한 책임, 미래에 대한 열망을 저울질했다. 우리는 여성이 출산에 관한 중요하고도 개인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과 아이들의 건강과 경제적 안정을 도모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임신중지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이 폭력적인 관계를 끝내고, 더 좋은 관계를 맺으며,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성취할 더 큰 기회를 주고, 일부 여성에게는 나중에 자신이 더 원할 때 임신할 기회를 준다.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말을 빌리자면 임신중지는 단순히 태아 대 여성의 권리, 개인의 사적인 출산 결정에 대한 국가의 역할에 관한 것이 아니다. 임신중지는 여성의 경제적 안정, 건강과 신체적 통합성, 현재 키우는 아이들을 돌보는 능력, 건강한 관계에 대한 전망, 미래 계획에 관한 것이다. 임신중지는 여성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관한 문제다. (p.462-463)
실직 도시 / 방준호 / 부키
나이 50과 경력은 새 출발의 자산이기보다 걸림돌이다. 그걸 이제 알았다. “내가 사장이라도 부담스럽지. 안 될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니까 교육은 받아. 취업을 해야겠어서 받는 교육이 아니라 그냥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지. 안정을 시켜 줘, 음.” (한철민) “그런데 교육받고 자격증만 따는 분위기가 우리 사이에 생겨 버렸어. 한공장님 오늘 우리 몰래 또 가서 자격증 하나 더 따 왔더라고. 배신자.” (김성우)
어쩌면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다. 공부하고 자격증 따는 학생의 자세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다”는 흔한 말이 과장이 아니라 짠하다. 그렇게 살아야 덜 불안했는데, 그렇게 살아도 불안했다.
“내 자신이 바보 같아요. 아침이 안 왔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고.” (박철수) “우리 아파트 살던 직원이 자살했어. 마음이 참 그렇더라고.” (김성우) (p.34)
비 내린다.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비닐우산을 펼치면서, 나는 다시 낯선 세계를 생각한다. 번잡하고 짜증스러웠던 오늘 아침 서울의 밀도와 활력은 어느새 아스라하다. 이제 낯선 것은 그쪽, 서울이다.
무엇이든 과잉이다 싶을 정도로 꽉꽉 들어찬 서울에서 나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가득 들어찬 물건과 그 물건을 쥐고 다급히 걷는 사람을 보며, 누가 그 물건과, 밀도와, 혹은 경제적 활력이라고 부르는 것을 만들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기초는 제조업’이라는 명제는 너무 오래된 정답이라서 오히려 생각거리가 되지 않았다. 2010년대 후반 고용 기사를 쓰는 나 같은 젊은 경제 기자들은 이런 문장을 공식처럼 외웠다(역시 이상하다). ‘제조업=좋은 일자리’ ‘제조업=수출’ 그러므로 ‘제조업=중요해!’
그런데도 제조업을 말하고 생각하는 일은 드물었다. 좀 시대에 뒤처진 것처럼 느꼈다. 1980년대 후반 수도권에서 태어나 2000년대 이후 서울에 살며 작은 공장이나마 제대로 본 기억이 없다. 주변 대부분은 컴퓨터 화면을 일터 삼았다. 공장과 삶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반짝이는 것 같았다. 2010년대를 지내면서 공식처럼 외운 문장(제조업=중요해!)을 실감하는 일은 점점 드물었다.
세계를 잇는 금융 시장, 첨단 기술에 대한 비전, 가상 공간에서 구현되는 놀거리, 기획하고 경영하는 일, 글로벌 기업 헤드쿼터의 움직임, 한껏 멋을 낸 프레젠테이션과 탄성…. 마음은 이런 데 주로 동했다.
그런 채로 자동차, 배, 사료, 유리, 심지어 주사기 바늘까지, 이것저것 만드는 제조업 도시가 눈에 띌 리 없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땀 냄새가 날 것이었다. 기분 나쁜 쇳소리도 날 것이었다. 찐득하고 요란할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온갖 당연한 사물과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연원을 톺아보는 일은 필연적으로 비루함을 동반했다. 군산이 품고 있는, 산업 단지 같은 데서 만들어 낸 당연한 풍요 속에서, 고작 서울의 과도한 밀도와 활력을 짜증 내며 나는 잘 살았다. 덕분에 잘 살아 놓고 감히, 쉽게, 이제는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의 목록에 새겨 두었다.
그러니 눈 감아 버려도 괜찮은가? 그들의 고통은 고립된 채 그들만의 고통이어야 하는가? 그럴 수 있는가? (p.38-40)
마흔다섯 강민우가 바다와 면한 군산 산업 단지, 역동적인 현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차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스물세 살 때다. 대우차 공장 노동자가 되기로 했다. 당시 군산 젊은이라면 대개 그랬으니 별스럽지 않다. 그리 아득한 길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름의 정해진 절차를 따르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1997년 강민우는 군산 대우자동차 직업 기술 훈련원에 들어갔다. ‘직업 기술 훈련원에 들어가 교육받고, 해외 연수를 다녀오고, 공장의 노동자가 된다’는 자동차 공장으로 향하는 당연한 경로가 있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그 시작은, 지금 보면 무척 신기하게 느껴질 따름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키워 내고 일자리까지 마련해 준다니! 공장 옆에는 으레 사원 아파트 같은 것도 지었다. 집까지 마련해 준다니, 우아! 이를테면 1980년대생이 겪은 2000년대의 세상과 너무 다르다. 직업 훈련은 학원이든 학교든 자력으로 해결하는 게 당연했다. 복지는 국가의 역할이다. 다만 삶 전반을 채우기에는 늘 역부족이므로, 자력이 기본이다. 그러므로 기업은? 임금만 주면 된다. 이런 상식의 역사는 짧고, 그 탓에 고작 나보다 열댓 살 정도 많은 강민우가 그 순간 갑자기 어른으로 느껴졌다. (p.78-79)
한국지엠 부평 공장 노동자 이범연이 쓴 책 《위장 취업자에서 늙은 노동자로 어언 30년》에는 ‘회사 인간’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렇게 노동자는 회사 인간이 되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역할만 있지 자기는 텅 비어 있다.”
잔업으로 특근으로 내몰리다가 오로지 회사와 일이 삶의 전부가 된 사람들. 시야는 좁아지고, 스스로에 대한 관심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도 옅어진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3년 정도까지 이어진 군산 산업 단지의 전성기는 군산에도 숱한 회사 인간들을 남겼다. 오로지 더 많은 잔업을 채우고 더 높은 임금을 쟁여 놓는 것이 전부가 된 생활이다.
그 가쁜 생활 덕에 아파트를 샀다. 서울 사람 사는 것 같은 생활 여건도 갖췄다. 대형 마트에 이어 대형 쇼핑몰도 생긴다고 한다. 군산의 명소 은파호수공원이 정비됐다. 도시의 풍경은 수도권을 닮아 갔다. 다만 부족한 잠, 다급한 손놀림 속에 피로가 온 도시를 지배했다.
공장의 생산량이 줄어들고 난 뒤에야 비로소 군산 공장 노동자들한테, ‘회사 인간’에서 벗어날 기회가 왔다. 우아하고 평온한 일상이 깃들었다. 서로 더 많이 떠들고, 그러면서 더 많이 생각할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어느 순간 다 같이 ‘덜 차별하고, 더 여유 있게 일하는 일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유로운 삶은 파국의 예감과 함께 존재했다. 모두 믿고 싶지 않았고, 애써 부정했다. 그래도 공장의 생산량 감소는 명백하게 숫자로 나타났다. (p.136-137)
2018년 7월 치킨집 문을 열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초반 장사가 꽤 잘 됐다. 한국지엠 다닐 때와 비교해 벌이가 크게 줄지 않았다. 초보 사장한테는 좀 놀라운 일이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고통은 생각과 좀 다른 데서 도졌다. 도저히 개인적인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자신의 노동 조건을 챙겨주지 않았다. 자영업이 스스로 몸을 갈아 넣어야만 그럭저럭 유지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었을 텐데, 공장 안에서 지내 왔던 삶과 비교해 보니 격차가 컸다. 낮 2시쯤 가게에 나와 장사 준비를 하고 5시 문을 열고, 새벽 1시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서 늦은 밥을 먹고, 잠든다. 아니 잠들려 한다. 잠이 안 와 “뒤척이다 3시는 넘어야 잠이 드는 것 같다”고 했다. 눈 뜨면 다시 아침이다. 공장 습관이 남아서 서너 시간 만에 눈을 뜬다. 멍한 채로 다시 장사 준비를 시작한다. 이런 일상이 하루도 빠짐없이 돌았다. 주말은 없다. 휴가도 없다. 단 하루도 쉬지 못한다. 정순철은 앞서 적었듯 “돈보다 중요한 건 가족과 여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위해 여유를 포기해야 한다. 여유를 포기하니 가족과 멀어지는 것 같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막막함이 그런 사람, 정순철한테 놓여져 있다. (p.198-199)
2018년 말 김성우와 동료들 이야기를 처음 기사로 썼을 때, 댓글은 역시나였다. 차마 다 적을 수 없다. ‘꼴 좋다’는 내용 정도로 축약하기로 한다. 그때 짧은 신문 기사는 간단한 구조로 짜였다. ‘정규직으로 평생 살아온 50대 언저리에 실직이 닥쳤다. 열심히 교육 훈련만 받는다. 나이 탓에 재취업 기회가 막혀 있다. 지역을 떠나면 일자리가 있다지만 임금 수준은 너무 적고 생활비도 부담된다.’ 행간의 많은 말이 삭제됐다. 더해졌대도 좋은 반응을 구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기업 생산직 관리자 출신, 중산층이라는 위치 자체가 그저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는 엄연하다. 많은 이들이 가닿지 못하는 꿈 같은 일터를 이들은 한때나마 쥐고 있었다. 정규직의 불행을 바라보며 얹는 조롱의 말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듣고 전하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p.216-217)
위기 이후 대응은 어떠해야 하나? 1990년대쯤이라면 아주 쉬운 대답이 있었다. 실직과 폐업 앞에 모두가 동일한 고통을 겪을 거라고 전제한다. 경제적 궁핍. 다만 이 문제는 다른 일을 찾으면 끝난다. 그러니 돈을 쥐여 주고 재취업까지 버틸 힘을 마련해 주면 그만이었다. IMF 외환 위기 이후 20년 우리는 그런 식으로 위기 대응 체계를 마련해 왔다. 다행히 경제의 총량은 위기 이후 몇 년의 시차를 두고 회복했고, 일자리는 늘어났고, 어떤 사람들은 그 회복에 올라탔다(물론 그 재취업의 행로가 많은 경우 사회 안전망 바깥 비정규직이기는 했다).
군산의 위기는 좀 더 복잡한 질문을 던진다. 실직 이후 일정한 시간을 버티고 나서 노동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갈 곳은 어떤 곳인가?
전과 같은 경로로 제조업 도시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나라 제조업이 사람을 더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시대 수혜를 누렸던 숱한 노동자들이 이제 완연한 중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며, 막상 실직하고 보니 홀로 설 수 있는 기술은 없기 때문이다. (p.226-227)
김현철 교수가 군산에 자리 잡을 때 마침 대우자동차가 군산에 터를 잡고 공장 건설을 준비했다. 공장의 흥망을 지켜봤다. 그는 지역의 이름 있는 산업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운동에도 관심이 많다. 점점 군산 시민운동 기반이 미약해지는 것도 걱정거리다. 시민과 지역과 기업은 한데 얽혀 있어야 했다. 기업만 빛난 시간이 너무 길었다. 25년 넘게 산업 단지를 중심으로 펼쳐진 지난 시간에 대한 학자의 평가는 냉정하다.
“지역이 대기업 생산 기지만 가지고 성장하는 모델은 10년짜리라고 봐요. 자동차도 조선도 결국 산업 사이클이 있고, 하강기에 접어들면 의사 결정 기구 같은 핵심적인 기능이 없는 지역 생산 기지부터 잘려 나가죠. 그리고 다시 호황이라면서 돌아올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돌아와 봤자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경우가 허다해요. 또 떠나야 하니까. 이런 성장은 마치 마약 같아요. 달콤하니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계속 나빠지는.” (p.240-241)
한국지엠 군산 공장이 무너지던 날, 회사 대표에게 “살길을 찾기 위한 3개월의 시간만 벌어 달라”고 했던 그날 이후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석 달 고민 끝에 이정권은 두 가지를 생각했다. 일단 급한 대로 현대·기아차 2차 협력사로 등록하기로 했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우리 회사가요. 그러니까 차체 분야에서는 한국지엠 1차 협력사 중에서도 1등 하는 회사였어요. 품질 상도 가장 많이 받았고요. 그런 회사가 2차 협력사로 등록하겠다고 아등바등하게 된 거예요.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이겠어요. 사실 수지도 맞지 않아요. 국내 자동차 협력사는 외국 기업에 비해서 마진 자체가 적은데 2차 협력사는 더 적으니까요. 그래도 다른 사업 안정될 때까지 공장은 돌려야 하니까. 최소한의 사람들은 남겨 둬야 하니까.”
180명인 직원을 30명 수준으로 줄였지만, 그마저 모두 내보내고 공장을 멈출 수는 없었다. 새로 무언가 시작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발판은 남겨 둬야 했다.
‘어떻게든 문 닫지 않고 공장을 유지하는 일’은 노동자뿐 아니라 협력사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공장이라면 노동자 한 명이 아쉽다. 모든 것을 무너트린 뒤, 다시 살아난 산업단지에서 새로 노동자를 채용하고 훈련시켜 이전의 상태를 복원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공장 유지를 위한 2차 협력사 등록은 피치 못할 선택지였다. (p.249-251)
2021년 10월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는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단에 갔다. 군산이 자동차의 도시라면 영암은 조선업의 도시다. 조선업은 회복하고 있는데 노동 조건은 열악하다. 내국인 노동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외국인 노동자가 채웠다. 자기가 얼마나 일 잘하는 숙련 노동자인지 미등록 이주 노동자는 자랑했다. 다만 끝내 시민으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괴상한 자기 처지를 두고 대뜸 사과했다. “미안해요. 불법이에요.” (p.300)
여자들은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다 / 장민지 / 서해문집
개인에게 가족이라는 형태의 삶은 매우 친숙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기 쉽지만, 가족이라는 조직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생활 영역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규범이나 가치 체계(제도) 중 하나에 가깝다. 결혼은 가족이라는 제도 안으로 유입되기 위한 또 다른 제도이며, 이러한 가족 제도―결혼을 중심으로 맺어진 혈연 집단, 즉 가족과의 동거―는 개인의 특성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영향력을 갖는다(생애미혼율이 점점 더 높아지는 현상이나 동반자법 제정 운동 등이 이를 반증한다). 특히 인터뷰 참여자들이 이주를 상상하거나 결심한 데에는 이러한 전통적인 가족 제도에 대한 불만이 영향을 미쳤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구속이나 속박을 동반하는 전통적인 여성성의 강조, 가족과의 관계 맺음에서 발생하는 불편함 등이 이주에 대한 욕망으로 환원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집은 안식과 안전, 즐거움의 장소로 여겨져왔지만 경험적 측면에서 집은 이러한 긍정적인 장소성 외에도 다양한 감각과 의미를 전달한다. 집의 의미는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 인간 주체의 주거 행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편 가족은 아버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질서를 이루며 구성되지만 언제든 해체 가능성이 있는 ‘제도’다. 집은 가족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이나 정서는 쉽사리 비가시화한다. 이렇듯 가부장적-남성적 장소인 집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은 여성청년들로 하여금 이주를 위한 다양한 경로를 모색하게 만들며, 이주 생활을 상상케 함으로써 기존의 ‘집’을 떠날 수 있는 기반을 생성한다. (p.50-51)
2011년 최고은 작가의 죽음은 청년 고독사 문제를 사회적으로 표면화했다. 생명이 위협받을 만큼 극단적인 빈곤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던 한 청년이 지역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에서 사회적 무관심이 불러일으킨 여성청년의 사망은 동시대인들을 당황하게 만들고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특히 서구 사회에 비해 가족 중심주의나 집단주의가 중요한 가치관을 이루고 있는 한국에서 개인이 사회로부터 극단적으로 소외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고독사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은 (동일한 세대적 위치에 있다고 판단되는) 청년들에게 집단적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을 갖는다. 한국에서 청장년층의 빈곤 및 소외 문제는 사회적 책임에서 벗어난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라 그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인터뷰 참여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는 ‘잠재적 고독사 가능성’에 대한 공포는 정서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육체적 아픔으로 전이되더라도 구술 혹은 서술되기 힘들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국 사회는 정신적 병이나 심리적 고통을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의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우울증적 주체를 극단적으로 타자화하거나 병적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 또한 존재한다. 결국 우울증적 주체는 자신의 고통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비가시화되거나, 가시화되더라도 방임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불안감은 그 실체를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증폭되는 경향이 있으며 열악한 주거 환경, 고립된 사회관계, 경제적 빈곤 등으로 인해 심화되어 주체에 각인되거나 내재화되기도 한다. (p.188-189)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는 잉여인간은 경제학적 차원에서 단순히 자본 투자로부터 획득한 이윤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쓸모없는(wasted)’ 인간을 의미한다. 잉여인간은 바우만이 사용한 용어로,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버려진 인간을 가리켰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잉여인간의 범주는 시장에서의 생산 기능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사회적 공간 전반에서 제 기능을 상실한 사람들 모두를 포섭하며 점차 확장되고 있다. 특히 교육이나 자기계발, 취업을 위해 서울로 이주한 여성청년들은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주체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잉여인간으로서 사회의 공적 공간 밖으로 배제되거나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통해 자기 관리를 시작하고 자아 통치를 엄격하게 행한다.
(…)
서울은 자신의 교환가치를 높여줄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다. 여성청년들은 자신의 시간과 경제력을 투자한 도시 공간에서 철저히 자기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자아 통치의 주체로서 의무감을 갖고 생활한다. 그들은 외부의 엄격한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내면화된 자기 관리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p.194-196)
TV 프로그램의 중심 소재로 급부상하고 있는 ‘1인가구’에 대한 조명은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요인을 통해 형성되는 1인가구의 다양성을 지우고 그들의 단편적인 삶을 비춘다. MBC의 〈나 혼자 산다〉, tvN의 〈식샤를 합시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는 1인가구의 현실을 실상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싱글족들의 삶을 표피적으로 들여다보고, 수용자들에게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마치 보편적 1인가구의 삶인 것처럼 제시한다. 특히 블로그나 SNS에서 포스팅되는―보편인으로 상정되는―혼자 사는 사람들의 인테리어, 식사, 건강 관리에 관련된 게시물은 그들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게 만들면서 스스로를 문제시하고, 자신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좀 더 나은 나로 발전하게 만드는 ‘자기계발’의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사회적 담론과 다양한 형태의 위협―잉여인간으로서의 삶, 특히 도태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건강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 등―은 그들에게 자신을 대상화하여 살펴보고, 진단하고, 통제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자기 통치(self-government)’의 기제가 된다. 이러한 자기 통치의 작동 방식은 개인이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주체적으로 행위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개인의 의지와 열정을 강조하며 구조적 불안정성을 감추는 역할을 한다(김수정, 2010, 19).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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