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전혜원 / 서해문집
가맹점주들이 노조를 만들게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지금도 단체를 만들 수는 있다. 2013년 가맹사업법이 개정되면서 점주들은 점주협의회라는 단체를 구성해 본사에 협의를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노동법은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기업에 강제한다. 이 차이는 크다.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로 구성된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상당수 가맹 본사들은 점주 단체와의 대화를 거부한다. 그뿐 아니라 문제제기하는 점주와 프랜차이즈 계약을 해지하거나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현행법상으로는 10년이 지나면 계약 갱신을 거절당해도 점주에게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다.
일부 여론은 “본사와는 싸우지 않고 만만한 알바비만 문제 삼느냐”라고 점주들을 비난한다. 하지만 점주들에게는 본사와 ‘싸울 무기’가 없다. 노동법적 접근은 점주들에게 ‘싸울 무기’를 줄 수 있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가맹비 인하를 본사에 요구하며 공동 휴업을 한다고 해보자. 본사는 계약 위반으로 대응할 수 있다. 현 제도에서는, 이 장면에서 편의점주들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다. 이럴 때 노동3권이 편의점주들에게 적용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정부에 의한 ‘팔 비틀기식 상생협약’이 아니라, 노사관계의 틀에서 문제를 풀어갈 길이 열린다. 노동시장을 앞서 사분면과 같이 새로이 인식했을 때 발생하는 효과다. (p.36-38)
박제성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직업 세계는 임금노동자 중심으로 구축되어왔다. 21세기에는 좋든 싫든, 이게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최소한 몇십 년 동안 쭉 일했기에 법을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다양한 고용상의 지위를 이동하는 경우가 갈수록 늘고 있다. 청년기엔 ‘알바’를 전전하고, 이후에도 정규직과 계약직, 특수고용 노동자, 반실업과 반취업 상태를 왔다 갔다 한다. 퇴직하고 다시 자영업으로 전환하기도 한다. 만약 이런 변화가 우발적이고 예외적인 상황에 불과하다면, 직업훈련을 통해 임금노동으로 복귀시키면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이게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라면 20세기 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임금노동자일 때는 노동법을 적용했다가 자영업자에겐 적용하지 않는 식으로 칸막이를 지어가지고는 제대로 된 보호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박제성 선임연구위원의 제안은 “쿨하게 통으로 다 적용하자”는 것이다.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의 보호를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로 넓히자는 주장이다. “탱크가 진입할 수 있는 다리라면 승용차도 당연히 진입할 수 있다. 노동법이, 그야말로 ‘사장님’인 독립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사람에게도 적용된다면, 자율적 임금노동자나 종속적 자영업자에겐 당연히 적용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 적용 범위를 예외적으로 확대하는 방식이라면 범위 끝에 있는 사람들이 늘 문제가 된다. 원칙은 고용상 지위를 불문하고 모든 ‘일하는 사람’에게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21세기 직업 세계의 정의다.” (p.49-50)
오건호 위원장은 “건강보험엔 건강한 사람이 안 들어오고, 고용보험에는 실업이 안 되는 사람이 안 들어온다면, 위험 공유가 안 된다. 사회보험의 원리상 공무원을 뺐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너는 공무원이지만 너의 자식은 저기서 지금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느냐’고 설득해서라도 다 들어와야 한다. 취업자 연대성이 가장 강한 제도가 고용보험이다”라고 말했다. 왜 그런가.
한국사회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으로 도입되어 있던 건강보험을 자영업자와 농어민에게 넓히기로 노태우 정부 때 결정했다. 직장과 지역별 조합으로 쪼개져 있던 건강보험을 단일 조직으로 통합한 것은 김대중 정부 때다. 조직노동, 특히 민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들이 동의했기에 가능했다. 공무원과 교원도 단일한 건강보험을 적용받는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도 가장 통합적인 건강보험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p.67-68)
‘전 국민 고용보험’ 논의 과정을 잘 아는 한 연구자는 “국세청이 실시간 소득 파악을 할 수 있는 인프라는 거의 갖춰졌는데 (정부가) 결심을 안 하고 있을 뿐이다. 개정 고용보험법에서 ‘노무제공자’라는 용어를 쓴 취지는 대부분의 1인 자영업자를 포괄하려는 것이었는데, ‘인적용역 사업소득자’가 아니라 기존에 산재보험을 적용받던 특수고용 노동자 ‘직종’ 중심으로 고용보험을 확대한 것은 매우 아쉽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전 국민 고용보험의 첫발을 뗀 것은 의미심장한 변화다. “고용보험이 ‘소득’ 기반으로 가기로 한 것은 사회보험 전반에도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그동안 소득 파악이 어렵단 이유로 보험료 납부에서 제외된) 건강보험 피부양자나 국민연금의 납부예외자 문제도 다시 논의될 수밖에 없다. 향후 모든 소득을 개인별로 합산해 보험료를 부과하고 또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근로복지공단(고용·산재보험)과 건강보험·국민연금공단의 역할을 국세청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보험료 부담을 둘러싼 갈등도 본격화되리라고 본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다음 정부 몫으로 남겨졌다.” (p.70-71)
한국사회 노동을 둘러싼 논쟁의 최전선에 불법파견과 정규직화, 자동화가 있다. 톨게이트 갈등은 이 세 전선이 크로스된 무척이나 상징적인 전장이었다. 에어컨도 난방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톨게이트 부스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던 수납원들은 최신식 도로공사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어디에 어떻게 입사했느냐가 신분이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성희롱을 견디며 감정노동을 해온 수납원들은 이제 ‘인간 대접’을 받길 원한다.
수납원의 약 80%는 여성이다. 네 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이다. 기계가 일자리를 대체할 때 공동체의 태도는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무자비해질 수 있는지 이 사건은 보여주었다. 어쩌면 수납원이 취약노동에 속한 일자리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사건은 단순한 정규직화 갈등으로도, ‘없어질 직업’을 둘러싼 해프닝으로도 읽을 수 없다.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이 0.5평짜리 톨게이트 부스에 담겨 있었다. (p.108-109)
2020년 5월, 쿠팡 인천물류센터에서 40대 계약직 남성 고영준 씨가 새벽 2시 40분쯤 물류센터 4층 화장실에서 쓰러진 뒤 숨졌다. 사인은 동맥경화였다. 10월에는 쿠팡 칠곡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일용직 남성 장덕준 씨가 철야근무를 마친 오전 6시경 자택 욕조에서 웅크려 숨진 채 발견되었다. 급성심근경색이었다. 그리고 이듬해 1월 10일 새벽, 최영애 씨가 쿠팡 동탄물류센터 화장실에서 쓰러진 뒤 돌아오지 못했다. 2021년 3월 6일에는 서울 송파 1캠프에서 심야배송을 해온 쿠팡맨 이형철 씨가 자신이 지내던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같은 날 쿠팡 서울 구로 1캠프에서 ‘캠프 리더’라 불리는 관리자로 일해온 정성근 씨도 숨졌다. 그는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료는 관리자인 고인이 장시간 노동과 추가근무에 시달렸다고 《경향신문》에 전했다. 3월 24일에는 심야·새벽배송에 투입된 지 2일차였던 박용진 씨가 인천 계양구의 한 주택가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뒤 숨졌다.
이 죽음들은 업무 환경과 관계가 없을까. 권동희 노무사는 “야간노동, 중량물 취급, 시간에 쫓기는 업무 등은 모두 과로사의 원인이나 위험인자다. 한랭 작업 역시 산재법에서 보는 위험인자다”라고 말했다. 조성식 동아대병원 작업환경의학과 교수도 “심야노동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p.148-149)
이천 화재 직전인 2021년 6월 6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설립되었다. 김한민 전국물류센터지부장은 불이 난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2020년 8월부터 12월까지 일용직으로 일했다. 김 지부장은 “노조 출범 이전에 네이버 밴드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모아보니 1위가 휴게시간이었다. 임금도 아니고 10분이라도 (식사시간 1시간 외에) 휴게시간을 달라는 거였다”라고 말했다. “집이 이천이라 다른 물류센터도 많이 가봤는데, 예를 들면 나이키 물류센터는 에어컨이 있을 뿐 아니라 쉬는 시간과 공간을 충분히 준다. 거기는 새벽 2시에 컨베이어벨트 전기를 아예 내려버린다. 30분 동안 쉬라면서 빵과 우유, 에너지바도 준다. 반면 쿠팡은 어느 센터든 크긴 하지만, 에어컨 있는 휴게공간이 작업공간 내에 없다. 있더라도 식사시간 말고는 쉬는 시간이 없어 중간에 갈 수가 없다. 최근에 동탄물류센터에서 식사시간 1시간에서 10분을 빼고 이에 10분을 따로 추가해서 휴게시간을 20분으로 만든 것 정도다(그나마도 심야조는 식사시간 30분에 휴게시간 10분이다). 쉴 시간과 공간을 제대로 마련하라고 요구하려 한다. 회사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p.154-155)
보안검색 업무는 인천공항에 필요한 ‘상시·지속 업무’다. 정부 가이드라인상 정규직 전환 대상이다. 이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필요한 ‘자격’은 정말 ‘시험’과 같은 공개채용으로 측정해야 하는 것일까. 보안검색 요원들은 평균 5년간(3년 이상 근무자 72%) 하루 12~14시간씩 12조 8교대로 그 일을 해온 사람들이다. 208시간의 항공보안 관련 교육을 이수하고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인증평가를 통과했다. 1년에 한 번씩 별도 평가도 받는다. 만일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자격’이 기준이라면, 같은 사업장에서 계속 그 일을 수행해왔다는 사실이야말로 자격의 증거일 수 있다. 소속이 바뀐다고 해서 이들이 하는 일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시험이라는 것은 정규직 전환 가운데서도 직접고용 전환에만 강하게 요구된다. 인천공항이 밝힌 채용 절차를 보면, 자회사로 고용될 때는 탈락의 위험이 거의 없는 반면, 직접고용인 경우에는 ‘필기전형’으로 치러지는 ‘시험’이 요구된다. 직접고용 과정에서 적격심사 대상 중 소방대원 17명이, 공개채용 대상 중 소방대원 28명과 야생동물통제 인력 2명이 탈락했다(총 47명). 이들은 2020년 8월 해고되었다. 향후 2017년 5월 12일 이후 입사한 보안검색 요원 일부도 공채를 거치며 탈락할 것으로 보인다.
왜 자회사로 가면 시험이 필요 없고 직접고용할 때에는 시험이 필요한가. 이 시험은 무엇을 위한 시험인가. (p.169-170)
그러나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 폭로한 것은, 노력에 따른 보상을 넘어 공공부문 정규직이 일자리라기보다 신분이나 특권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2017년 정규직 전환 방안 공청회에서 눈물을 보였다가 야유를 받은 오순옥 당시 인천공항지역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그동안 열심히 공항 서비스 평가 1등을 만들어왔는데…. 조선 시대 양반과 노비가 이런 건가 싶었다”라고 말했는데,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다. 대졸 하향 취업자 10명 중 6명은 직장을 두 번 옮겨도 상향 이동을 하지 못한다. 첫 직장이 중소기업인 대졸자가 2년 뒤 대기업 정규직으로 ‘점프’에 성공한 비율은 7.5%다. 한국의 구직자들이 취업 재수, 삼수를 해서라도 울타리 안쪽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이유다.
인천공항 정규직은 좋은 일자리다. 왜 좋은 일자리인가? 왜 다른 일자리는 그럴 수 없는가? 공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자리라는 게 어떤 의미인가? 펜으로 진입하는 안온한 세계와 나머지 허허벌판으로 구성된 이 체제는 지속 가능한가? 너무 많은 울타리 밖 동료 시민을 배제하지는 않는가? 정규직의 사전적 의미는 사측과 직접,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한 풀타임 노동자다. 한국사회에서는 가파른 호봉상승과 후한 복리후생, 그리고 ‘간판’이자 ‘신분’이다. 이론상 모두에게 돌아가기 어렵다. 그러니까 문제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이 던진 질문이다. (p.175-177)
그동안 검찰과 법원은 산안법이 규정한 안전조치를 직접적으로 어긴 사람에게 형사책임을 물어왔다. ‘명확성의 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이 구현된 깔끔한 세계다. 그러나 이 세계가 실제 현실을 담아내왔는지는 의문이다. 예컨대 “공사 기간을 단축하라는 경영진의 요구나 안전예산을 삭감해버리는 기업의 결정은 현장에서의 안전의무 준수 의지를 무색하게 만들어버린다. 안전의무를 지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책임이 과연 현장의 노동자나 안전관리자에게 있는 것인가”. 경영진이 공사 기간 단축이나 안전예산 삭감을 지시했다고 해도, 대규모 기업일수록 해당 지시와 사고 발생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어렵다. 이러면 산재 범죄의 ‘구조적인 책임’은 사라져버린다.
산재 사망에 대해 현장 행위자의 책임(‘행위 책임’)과는 별개로 ‘구조적인 책임’을 물으려는 시도가 중재법이다. 이때 구조적인 책임은 산안법상의 세세한 안전조치보다 포괄적일 수밖에 없다. 현장 행위자의 ‘행위 책임’을 넘어서 경영책임자 등의 ‘구조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경영책임자 등을 비로소 ‘과실범’이 아닌 ‘고의범’으로 규율할 수 있다. 최정학 교수의 설명이다. “기존에는 대표이사 등 경영자의 산안법 위반을 입증하기 어려워 검찰이 형법의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했다. 반면 중재법은 경영자에게도 안전의무가 있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는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형량이 무겁다는데 과실범과 비교해서 그렇다.” (p.236-237)
국민연금은 의무 가입이다. 국민연금을 다룬 기사에는 늘 ‘싫다는데 왜 의무로 가입해야 하나? 자유 가입으로 돌려라. 당장 먹고살기도 힘들다’는 댓글이 달린다. 그러나 국민연금 같은 제도를 시행하면서 의무가입을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상대적으로 교육받고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은 노후에 문제가 없지만, 그날그날의 생활이 빠듯한 사람은 노후준비가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자율로 운영하면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결국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들이 노후빈곤에 빠지면 국가에도 부담이 된다. 매월 소득의 일정 부분을 보험료로 납부해 은퇴 뒤 돌려받도록 하는 연금제도가 각 나라에서 발전한 배경이다. (p.264-265)
주휴수당이 노동자에게 유리한지도 생각할 지점이 있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면 주휴수당을 안 줘도 된다. 이렇다 보니 (최저임금이 크게 오른) 2018년 이후로는 주 15시간 미만으로 ‘쪼개기 계약’을 하는 경우가 체감상으로도 많아졌다. 주 14시간 근무하기로 했다가 노사가 서로 불편해서 노동시간을 늘리고 주휴수당은 안 받기로 합의한 뒤, 나중에 노동자가 퇴사하면서 신고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또한 기존 주휴수당 논의는 ‘수당’ 지급을 둘러싼 것이었다면, ‘시간’의 측면도 중요하게 봐야 한다. 주휴수당으로 처리되는 ‘시간’의 존재는 노동자에게 유리하지 않고, 임금계산만 복잡하게 만든다. 주휴수당 폐지로 유급주휴 시간이 없어지면 노동자에게 유리하다. (p.293-294)
주휴수당을 안 줘도 되는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의 규모는 2017년 85만3964명에서 2018년 96만4043명, 2019년 122만1762명까지 치솟았다가 2020년 116만9786명으로 다소 줄었다(코로나19발 고용위기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2010년 54만2098명이던 것을 고려하면 10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김유선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주휴수당은 초단시간 노동자를 쓰는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초단시간 노동자에게도 주휴수당을 주면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자영업자가 어렵다고 난리인 판에 만만치 않다. 또한 주휴수당은 실제로는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정작 최저임금 인상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최근 한국 최저임금이 국제적으로 높다며 논란이 되었는데 이 역시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그렇다. 주휴수당을 없애고 그만큼 최저임금을 올리는 ‘주휴수당 기본급화’가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p.297)
법철학자 조지프 피시킨은 《병목사회》에서, 경쟁 방식의 공정성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애초에 왜 자원이 희소하고 경쟁이 치열한지 기회구조 자체에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 ‘기회구조의 다원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입시나 대기업 공채 같은 좁은 ‘병목’ 주변에 다른 경로를 만들어서, “개인들이 병목을 통과하지 않고도 높이 평가되는 재화와 역할에 도달하게 하라”라고 피시킨은 쓴다. 여기서 ‘높이 평가되는 재화와 역할’을 나는 노동조합이 사측과 협상해서 만들어낼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그 방법은 ‘어떤 숙련이 요구되는 일을 하느냐’에 따라 임금을 주는 것, 곧 직무급이다. (p.299)
노조만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시민들이 지금 정말로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각종 보험료 인상을 포함한) 증세다. ‘퇴직금 50억 원’ 보도에 신세를 한탄하고, 재난지원금을 왜 모두에게 주지 않느냐며 날 선 댓글이 달리는 지금 증세를 말하는 것이 뜬금없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매일 무릎이 꺾이게 하는 주거 문제만 해도 각자도생으로는 길이 안 보인다. 한국의 소득세나 고용보험료, 국민연금 보험료 등은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부자증세’만으로도 부족하다. 나는 가능하다면 세금과 사회보험료를 더 내고 싶다. 그걸 말하는 용기 있는 정치인을 바란다.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세금을 내고 위험이 실현된 사람이 혜택을 받는 것. 그 사람이 낸 보험료로 언젠가 나도 보호받는 것. 그렇게 고양된 사회적 연대감만이 서로를 지켜줄 수 있다. (p.308)
도시를 보호하라 / 권오영 외 / 역사비평사
19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에서도 위생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위생 자체가 일본에서 자신들의 고민을 담아 만든 용어였다. 일본 초대 내무성 위생국장 나가요 센사이가 영어의 ‘새너테리(sanitary)’나 ‘헬스(health)’와 다른 독일의 ‘건강 보호(Gesundheitspflege)’, ‘공중 위생(Öffentliche Hygiene)’이라는 개념을 접하고 창안한 단어였다. ‘국민의 건강 보호를 위한 국가의 행정적 개입’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위생’은 한국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부강의 수단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위생은 근대의 다른 이름이었다. 근대는 위생을 통해 구현되었다. 근대화가 시대의 과제가 되면서 서양에서 일본으로 수입된 위생은 다시 중국과 한국으로 전달되었다.
위생이 구현되어야 할 공간에 구분은 없었지만, 도시에 대한 관심은 우선적이었다. 인구가 급증하는 도시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시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위생 문제가 발생했다. 쓰레기가 늘어났다. 쌓여 있는 쓰레기로 집들이 더럽고 지저분해졌다. 19세기 서울의 거리는 눈을 뜨고 걷기 힘들 정도로 재가 날렸다. 분뇨의 자연 처리도 불가능해졌다. 종래 분뇨는 비료로 활용되거나 그대로 버려지고 있었다. 인구의 증가는 그 상황을 변화시켰다. 분뇨 수거인이 생겼고, 그들은 분뇨의 판매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해 나갔다. 도시위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p.10-11)
독기설은 일종의 ‘후각 훈련’으로, 나쁜 냄새가 풍기는 환경을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에 대한 위협으로 보는 대중적 감각을 양성했다. 독기설은 냄새와 질병 사이에 수사적 상관성을 만들어냈고, 곧 빈곤은 병리적 상태이며 빈민은 질병의 온상이라는 감각으로 이어졌다. 이런 감각은 ‘거대한 악취’를 풍기는 더럽혀진 강물이 공중보건에 비상사태를 초래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1858년 덥고 건조한 여름에 템즈강은 유독 엄청난 악취를 뿜었는데, 너무 냄새가 지독한 탓에 창문 가까이 앉은 의원들은 손수건을 코에서 뗄 수 없었다. 국회의사당까지 날아든 악취로 인해 의원들은 공중보건법 논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p.16)
실록에 보면 세종은 여러 신하에게 하천의 기능을 묻는다. 이에 대해 두 명의 답변이 대조적이다. 집현전 수찬 이선로는 “개천의 물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도록 금지하여 물이 늘 깨끗하도록 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교리 어효첨은 “도읍의 땅에 있어서는 사람들이 번성하게 사는지라 번성하게 살면 냄새나는 것이 쌓이게 되므로 반드시 소통할 개천과 넓은 시내가 그 사이에 종횡으로 트이어 더러운 것을 흘러내려야 도읍이 깨끗하게 될 것이니 그 물은 맑을 수가 없”다고 답한다. 이에 세종이 “어효첨의 논설이 정직하다”고 평함으로써 논쟁을 종결했다. 도성 내 하천의 기능을 하수도로 규정한 것이다. (p.139)
그러나 이미 문화재가 된 상수도 시설들 역시 서울과 같은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다수이다. 상수도 시설뿐 아니라 노후화된 도시 기반시설의 재활용 문제는 21세기 도시들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인데, 여전히 그 역사적·도시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철거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재생을 통해 문화 공간이나 상업 공간 등으로 재탄생시키는 시도들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도시 기반시설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성격에 주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특히 도시 기반시설은 내구연한이 지나고 나면 사용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원래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으며, 원래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소성을 간직하기 쉽지 않다. 또한 상수도 시설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시설을 존치하여 재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즉 문화유산으로서의 진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서울의 첫 번째 상수도정수장이었던 뚝섬정수장은 일제강점기가 아닌 대한제국기에 설치된 시설로서 그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유산화 과정을 거쳐 수도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p.156)
콜레라는 콜레라균에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감염되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률이 50~60%에 이르는 무서운 병이다. 전근대 상하이에서는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유행했는데, 특히 중일전쟁기에는 비위생적인 난민수용소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다. 상하이의 방역을 담당하게 된 일본에게 콜레라와 같은 무서운 전염병의 유행은 일본 의학의 우수성을 알릴 좋은 기회이자, 일본 식민권력의 통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위기이기도 했다.
콜레라는 대표적인 수인성 전염병으로, 콜레라 유행의 근본적인 대책은 상하수도 시설의 정비나 식품 위생의 감독이다. 그러나 도시위생 인프라의 정비에는 많은 인력과 물자,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다. 전쟁 중임을 고려하면 일본에게는 천천히 도시위생 인프라를 정비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일본은 국가가 직접적으로 환자를 격리하고 감염이 퍼지지 않도록 통제하며, 치료보다 예방에 치중하는 독일식 의학의 영향을 받았다. 따라서 상하이에서 일본의 콜레라 방역책도 통제를 기반으로 하여 강제적 백신접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동인회와 일본군은 주요 통행로에서 접종 증명서를 검사하여 증명서가 없으면 강제로 접종을 했다. 또한 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버스를 이용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출입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은 중국인과 외국인들이 이동을 위해 콜레라 백신접종을 받았다. 콜레라가 사람과 사람의 접촉으로도 전염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도, 이동 통제의 강화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상수도 시설 정비와 무료 수도전 설치 등도 병행했으나, 가장 많은 공을 들인 사업은 백신접종이었다. 백신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믿음, 백신접종 수를 강조함으로써 일본의 방역 조치의 정당성을 선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일본의 콜레라 방역책이 백신접종에 집중된 원인이 되었다. 한편으로 동인회 제2진료반이 2차 접종을 포기했다는 사실은, 백신접종도 완벽하게 시행되지는 못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계속되는 콜레라 유행으로 인해 점차 2차 접종의 중요성이 대두되었고, 2차 접종을 위한 이동의 제한도 더 심해졌다. (p.296-297)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박지우 / 추수밭
한 친구가 스웨덴 병원에서 CT 촬영을 했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던 적이 있었다. 나는 CT 촬영을 한 것이 왜 자랑거리인지 의아했지만, 옆에 있던 다른 스웨덴 친구는 어떻게 비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인지 놀라워했다. 친구의 설명을 들어보니, 스웨덴에도 한국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같은 기관이 있어 의사들을 대상으로 의료비가 제대로 쓰였는지, 환자에게 적절한 진료를 했는지 평가한다고 했다. 이때 과잉진료를 한 것으로 오인받지 않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친구는 내게 스웨덴 병원에서 원하는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증상을 크게 부풀려 이야기해야 한다는 충고를 건넸다.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으레 제대로 된 검사도 받지 못한 채 병원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스웨덴 의사들이 내리는 가장 흔한 처방은 “우선 집으로 돌아가서 푹 쉬고, 그다음에도 증상이 계속되면 병원에 다시 들르라”는 것이다. (p.19-20)
현금 없는 사회는 편리하다, 젊은이들에게. 그러나 고령층과 저소득층 등 이른바 금융취약계층은 이 편리함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스웨덴 청년의 97%가 디지털 금융을 활용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스웨덴의 80대 노인들은 0.7%만 이를 활용한다. 디지털이 익숙지 않은 노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기 위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거나 극단적으로는 소비활동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은행계좌가 없는 저소득층 역시 현금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신용·직불카드를 만들 수 없고 간편 결제를 이용하기 위한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도 없는 저소득층들은 현금 없는 사회의 또 다른 피해자다. 현금이 사라지면 이러한 금융취약계층의 소비활동이 제약된다. 또한 디지털 금융시스템은 개인의 금융정보 노출이나 대규모 정전 시 대체 지급수단이 없다는 리스크도 가지고 있다.
결국 스웨덴 정부는 현금 없는 사회로의 급속한 진전에 제동을 걸었다. 국민에게 현금접근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스웨덴에서는 2020년 1월부터 시중은행의 현금서비스 시행 및 현금자동인출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p.100-101)
집단면역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구의 60% 가량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를 형성시켜야 한다. 테그넬은 2020년 5월 말에 이르면 스톡홀름 인구의 40%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면역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부가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 생성 여부를 조사한 결과,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스톡홀름에서조차 항체보유율은 7%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의 방역정책은 정밀한 계획 하에 감염 확산의 억제나 면역력 형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집단감염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것에 가까웠다. 문제는 그 결과가 매우 가혹했다는 것이다. 기저질환자 중 많은 수가 위험한 상태에 빠지거나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자의 90% 가량이 70세 이상 고령자였을 정도로 노인들의 피해가 컸다. 특히 요양원에서의 집단감염 상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중 절반가량이 요양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p.149-150)
보건당국은 코로나19 발발 초기부터 국민들에게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을 적극 권고했다. 마스크 착용이 공포감을 조성할 수 있고, 마스크를 잘못 사용할 경우 오히려 감염의 위험이 더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감염병 환자 치료를 위해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의료진에도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권고했고 건강한 아이들은 굳이 집에 있을 필요 없이 밖에서 놀아도 괜찮다는 지침을 내렸다. 정부는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는 것보다 전염에 대한 사람들의 지나친 우려를 수습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언론을 통해서도 건강한 사람은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가 없다거나, 마스크를 써도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 반복됐다.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주장하던 의사들은 질책을 당하거나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첫 확진자가 나온 지 며칠 되지 않은 2월 초에 이미 마스크와 손 세정제가 동이 났지만 정부는 사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취하지 않았다. (p.151)
2146, 529 / 노동건강연대, 이현 / 온다프레스
2022년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는 첫해다. 일터에서 죽어간 노동자의 가족들과 동료 시민들이 지난겨울 곡기를 끊어가며 간절한 마음을 모아 만든 법이다. 이 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데 핵심이 있다. 중대재해 발생 시 안전·보건 조치 시행의무를 다하지 않은 하청업체뿐만 아니라 원청업체의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재계의 반발에 눈치를 본 국회는 이 법의 힘을 슬쩍 빼 통과시켰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3년이나 유예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3년간은 전체 사업장 열 곳 중 아홉 곳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에게 부과되는 벌금의 하한선도 없애 ‘누더기’가 되었다는 비아냥을 들으며 통과된 법을 두고도 한국경영자총협회는 비명을 질러댄다. “우리나라의 산업 수준과 구조로는 감당해낼 수 없는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안전·환경 규제”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아무리 준비해도 불행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데, 어디까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라며 억울해한다. (p.199-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