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더가 출발했습니다 / 강혜인, 허환주 / 후마니타스
한겨울엔 찬바람도 라이더를 괴롭게 한다. 하루 종일 야외를 달려야 하는 일의 특성상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기 때문에 방한복과 방한화는 필수다. 또 손으로 잡는 엔진 브레이크에는 열선이 있는 커버를 씌워 다닌다. 그러나 밖에 계속 있다 보면 얼마 못 가 외부 온도와 체온의 차이 때문에 핸들 커버도, 방한화도 다 젖어 버리기 때문에 여분의 커버와 방한화도 챙겨야 한다.
배달앱이 나오기 전에는 이렇게 방한복, 마스크, 핸들 커버만으로도 어느 정도 겨울 장비를 갖춘 셈이었다. 그런데 배달앱의 등장으로 필수 장비 하나가 더 늘었다. 바로 열선 필름이다. 지금은 라이더들에게 그 무엇보다 필수적인 아이템이다. 보통 라이더들은 스마트폰을 핸들 거치대에 부착해 놓고 내비게이션처럼 사용하는데, 주문 콜을 받고 배달 장소를 알려 주는 역할 모두 스마트폰이 하기 때문에 추위에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
한 라이더는 유튜브 영상에서 자신이 배달일을 처음 시작했던 한겨울의 고충을 전해 주었다. 영하 10도를 오기는 날씨에 시속 6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다 보니 방한복과 마스크로도 버틸 수가 없었던 그는 궁여지책으로 시내버스 바로 뒤에 붙어 가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버스 바로 뒤에 있으면 엔진에서 나오는 열기가 얼은 몸을 조금이나마 녹여 주었기 때문이다.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가 얼마나 몸에 해로운지를 따지기엔 추위가 너무도 강렬했던 것이다. (p.25)
매일 아침 9시마다 뉴스 속보 알림과 쿠팡이츠의 푸쉬 알림이 동시에 울렸다. 온라인으로 전환해서 빨리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약 두 시간에 한 번씩 로그인을 유도하는 알림이 울리는 것 같았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꼈던 것은 2020년 8월 초 기록적인 폭우로 한강 수위가 위험 수위까지 올라가고 일부 지역에서는 댐과 제방이 붕괴돼 강이 범람하던 때였다.
"서울 전 지역 15시까지 우천 할증 연장!"
"해당 지역 15시까지 우천 단가표 +3000원 적용!"
내 스마트폰에서는 "[1보]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 100미터 붕괴… 대응 2단계 발령" 같은 속보 알림과 "우천 할증 연장!"이라는 광고 알림이 번갈아 가며 울려 댔다. 오프 상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지역별 주문 현황"을 보니 서울 어디나 할 것 없이 전 지역이 주문 "매우 많음" 상태였다. 배달 수요가 많을수록 건당 배달료가 올라가는데, 이때 서울 용산구 등 일부 지역은 건당 배달료가 8000원까지 올라갔다.
폭우로 인해 전국적으로 산사태가 일어나고, 사망자와 실종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쿠팡이츠가 라이더에게 실시간으로 보내는 알림은 지금 배달하면 한 번에 8000원까지 벌 수 있으니 당장 뛰어들라는 것이었다. "폭우가 내리니 운행에 조심해 주십시오" 같은 경고성 알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얼굴을 하지 않은 인공지능(AI)에게 라이더는 그저 밀려드는 주문을 처리해 줄, 지도 속에나 존재하는 캐릭터 같았다. (p.29-30)
알고리즘이 배달 소요 시간을 제멋대로 단축해 알려 줄 때마다 나는 부당한 지시라며 따지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음식은 우리 손에 들려 있었고, 어쨌든 배달은 완수해야 했다. 게다가 배민커넥트에서 라이더는 오직 앱상의 메신저를 통해서만 문의 사항을 전달할 수 있어 항의 전화 같은 건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답변이 즉각적으로 오는 것도 아니다. '인공지능 인력소장' 알고리즘에게 라이더의 이야기를 들을 귀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예정 시간보다 늦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배달앱에서 계산하는 이동 거리는 도로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었다. 음식을 들고 고객의 집까지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도 있다. 가파른 오르막은 물론이고,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신호등도 있다. 반면 배달앱상 이동 소요 시간에는 그런 물리적 현실이 반영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뛰면서 배달을 해도 번번이 시간은 초과됐고, 난 가끔 소비자를 마주하기 무서워 허 기자의 등을 떠밀었다. (p.45-46)
우리가 가장 장시간 쉬지 않고 일했던 날을 꼽아 수익을 계산해 봤다. 하루 여섯 시간 자동차 배달로 번 돈은 4만 8930원, 운전한 총거리는 54.9킬로미터, (자동차 연비를 리터당 10킬로미터로 잡고 기름값을 1300원으로 계산해) 기름값 7150원과 그날 먹은 점심값 8000원을 제외한 후 이를 여섯 시간으로 나누니 시간당 5630원을 번 셈이 됐다. 2020년 최저시급 8590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까지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2019년 한국고용정보원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플랫폼 경제 종사자는 최대 54만 명에 달한다. 2020년 12월 기준, 배민커넥트의 신규 가입자는 월평균 2600명으로 조사됐다. 하루에 86명씩 배달 노동자가 유입됐다는 뜻이다. (p.53)
민준이와 같은 미성년자를 고용할 경우, 업체에서는 근로조건과 업무 내용을 부모에게 알리고 허락을 맡아야 한다. 하지만 족발집 사장은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다. 만약 사장이 민준이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면 어땠을까.
이 사건을 맡은 경찰은 강한 의지를 가지고 수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찰에선 사장에게 "도로교통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도로교통법 위반은 민준이에게 무면허 운전을 시켰기 때문이었고, 업무상 과실치사는 그런 업무상 과실로 인해 민준이를 사망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가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제주지방 검찰청 불기소 사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이 교통사고는 2018년 4월 8일 피해자가 위 원동기 장치 자전거를 운전해 굽어 있는 도로를 운전하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과실로 마주 오던 위 승용차와 충돌한 결과 피해자가 치명적인 상해를 입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어서, 원동기 장치 자전거 운전면허가 없는 직원인 피해자로 하여금 원동기 장치 자전거를 운전해 음식 배달 업무를 하게 했다는 피의자의 업무상 과실과 이 사건 교통사고 및 피해자의 사망의 결과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결국 사장에게 벌금 30만 원 처분만 내려진 채 사건은 종결됐다. 근거 규정은 도로교통법 154조. 여기엔 "원동기 장치 자전거 면허가 없는 자에게 운전을 시켰을 경우 3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한다"라고 명시돼 있었다. (p.109-110)
그간 사회가 발전해 오면서 만들어진, 노동법이나 공정거래법, 독점 규제 등의 기존 제도나 시스템을 플랫폼 산업은 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과 같은 신진 엘리트들은 기성 제도와 맞서 싸우면서 대중의 권익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중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타다 논란 당시 이와 같은 플랫폼 기업들의 주장에 대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디지털 전환의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거나 소외되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들의 사회적 충격을 관리하고 연착륙을 돕는 것, 혁신의 빛 반대편에 생긴 그늘을 함께 살피는 것이 혁신에 대한 지원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한 사회의 발전은 혁신에서 시작되지만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안전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사회 전체의 번영으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혁신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 전체의 후생을 높이는 것임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p.170)
일례로 타다의 경우, 타다와 계약을 맺은 기사들은 타다에 사실상 고용되어 일한다. 운전 중 손님과 대화 금지, 콜 거부 금지 등 회사에서 지시한 고객 응대 매뉴얼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노동자지만 신분은 개인 사업자다. 그래서 근로기준법, 산안법 등이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대부분 평일과 주말을 나눠 새벽 6시~오후 4시(주간), 오후 5시~다음날 새벽 3시(야간)까지 열 시간씩 일하고 일당 10만 원에 교통비 1만 원을 받지만, 이들에겐 주휴 수당, 야근 수당, 휴일 수당도 없다. 휴게 시간이 90분 있었지만, 일당을 약간 올려 주고 이를 무급으로 변경하면서 운전하다 쉬는 것도 여의치 않게 됐다. 운전 중 사고가 나서 차가 파손될 경우 수리비도 50만 원까지 기사 부담이다(50만 원 이상이면 회사와 반반 부담한다). 이런 노동조건은 타다 기사들이 선택한 걸까. 성신여대 법대 권오성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자유로운 시장보다는 하나의 위계적 조직에 가깝다. 이들은 기업이 자기 직원에게 일 시키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감을 할당하고 일하는 방식을 통제한다. 그렇다면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이들에게도 노동법을 적용하는 게 공정하지 않나.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이런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위장하고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을 혁신이라고 말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고 규정한 국제노동기구헌장[필라델피아선언]과는 반대로, 노동을 그저 온라인상에서 일감 단위로 거래되는 상품으로 취급하고 노동법을 회피하는 기법에 우리는 "혁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
(p.172-173)
혁신이란 문자 그대로 가죽을 새롭게 한다는 건데, 플랫폼 기업이 혁신이라고 말하는 사업 모델의 본질은 규제를 회피함으로써 기업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것들을 사회나 노동자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말하는 혁신은 자기 가죽이 아니라 남의 가죽을 벗기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플랫폼 기업들의 영업 적자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부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플랫폼 기업이 말하는 '공유 경제'는 대체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 걸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에서 '부의 창조'와 '부의 추출'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자본주의는 누군가가 독점력과 지대 추구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부의 추출'을 근간으로 한다. 이런 '부의 추출'이 당연시되면서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이로 인한 빈부 격차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미국 최초의 산별노조 설립자 빅 빌 헤이우드도 약 100년 전인 1929년, "야만적인 금광업계 거물들은 금을 탐사하지도 않았고 금을 가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희한한 연금술인지 금은 전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며 이런 부의 추출을 이야기했다. 플랫폼은 금융 자본주의 하에서 이런 구조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는 셈이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회사는 일자리가 없는 서민들에게 운전기사를 하게 하거나 남는 방을 빌려주도록 함으로써 자신들이 그들의 힘을 길러 주고 있다고 말한다(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킨다"거나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는 표현을 자주 쓴다). 하지만 그 수사 뒤에는 이들이 계속해서 발전의 과실 대부분을 가져가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숨어 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도 공유 경제를 이야기하지만 이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 자영업자·라이더들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소위 '창조 경제'에서 플랫폼은 부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추출한다. (p.183-184)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인간의 노동은 이 체계를 굴러가게 하는 기본 요소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사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른 누군가의 노동 덕분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거나 외면한다. 우리가 마트에서 구입해 쓰는 제품이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든 것인지 알기는 이제 불가능해졌다. 지하철이나 전기도 마찬가지다. 1300원에 우리는 지하철을 탈 수 있지만 그 가격이 어떻게 책정되는지는 모른다. 한국의 전기료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전기 요금이 왜 그렇게 싼지 아무도 의문을 품지 않는다.
이렇게 저렴한 지하철 요금과 전기 요금 안에는 구의역 김 군과 발전소 김용균 씨가 있었다. 우리가 누리는 낮은 가격과 편리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노동을 부당한 값으로 거래하는 '불의'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외면하면 인간의 노동이 어떠해야 하는지, 어떤 가치를 지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와 고통의 크기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우리 자신도 포함될 수 있다.
대형 마트가 문을 닫은 늦은 밤, 당장 내일 아침 아이들에게 차려 줄 반찬이 없을 때 핸드폰 속 앱을 열고 클릭 몇 번이면 새벽같이 내 식탁 위에 맞춤형 음식이 올라오는 세상이 되었다. 이런 편리 뒤에 숨은 건 또 무엇일까? (p.200)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 롤러코스터
이 20~30대 노동자들의 사연은 21세기 긱 경제(gig economy) 노동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긱 경제를 칭송하는 이들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일만 골라 하면서 무제한으로 돈을 버는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작 이 젊은 노동자들은 장시간 일하면서도 쥐꼬리만 한 돈을 받고 직업 안정성은 떨어지는 상황에 놓여 있다. 언제 어떤 일을 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런 자율성은 알고리듬이 용인하는 수준의 수락률과 응답시간을 유지하자면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사라와 숀은 탐탁지 않은 일을 수락해가면서 끊임없이 품을 팔아야 하고, 바란은 렌트비를 내고도 남는 게 있으려면 매주 400달러 이상을 벌어야 한다. 이들은 경제적 자유를 찾기는커녕 플랫폼에 '서비스 이용료'를 내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고용주가 부담하는 비용까지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아웃소싱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쪽에 서 있게 된 셈이다. 많은 사람을 사업가로 만들어줄 것이라던 현대의 앱 기반 경제는 반대로 초기 산업사회처럼 암울한 노동과 생활환경을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앱이 만드는 현대적 요소로 포장한다고 해도 긱 경제는 초기 산업사회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당시에는 노동자가 장시간을 일하고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 안전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길도 거의 없었다. 앱, 스마트폰, 비접촉 결제 시스템, 평점 및 후기 시스템 등 최신 기술을 강조해봤자 공유경제의 실체는 과거 회귀다. 노동자들은 차별과 성희롱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없으며, 업무상 재해에 대한 보상조차 요구할 수 없다. 공유경제는 혁신이란 미명 하에 지난 수 세대 동안 쌓아 올린 노동자 보호장치를 파괴하며 노동자 착취가 만연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
긱 경제의 현실은 더 큰 사회경제적 문제와도 연결된다. 2005년 2월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혼 후 세 아이를 키우기 위해 쓰리잡을 뛰는 여성을 만난 자리에서 그녀의 노동량이 '환상적'이고 '지극히 미국적'이라고 말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당시에는, 생계를 위해 여러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 사회안전망이 부족한 미국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지극히 미국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박수 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여론이 우세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한 사람이 여러 직업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이는 걸까? 왜 노동자들이 여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걸까? 왜 박사 학위자가 시급 20달러를 받고 심부름을 하고, 한때 금융 전문가였던 사람이 집집마다 다니며 청소를 하는 걸까? 왜 우버 기사로 운전을 하거나 남는 방을 에어비앤비에 올리는 게 불황의 여파로 임금이 정체되고 직업 안정성이 약화된 현실에서 살 길로 여겨질까? 왜 타인이 관리하는 플랫폼에 '자유' 시간을 바치고 디지털 기술에 의존해 부업을 뛰는 노동자를 사업가라고 치켜세우는 걸까?
노동자가 종업원이 아닌 독립계약자로 분류될 때 어떤 위험이 따르는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졌음에도 여전히 위험이라는 개념은 사업가의 관점에서 더 많이 다뤄지고 있다. 1700년대 후반에 경제학자 리샤르 캉티용(Richard Cantillon)이 "사업가는 확실한 가격에 구매해서 불확실한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에 거래에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이래로 사업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로 인식되어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하워드 스티븐슨(Howard Stevenson) 교수는 사업을 "통제 가능한 자원 너머에 있는 기회를 추구하는 행위"로 정의했다. 흔히 사업가라고 하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옥스퍼드사전에서는 "사업이나 기업을 맡아서 관리하며 손실의 위험을 감수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며 관리와 위험을 강조한다. 미국은 특히 사업에 위험이 따른다는 인식이 강하다. 노동통계국 자료를 보면 신생 기업 중 약 3분의 1이 2년 내에 도산하고 절반 이상이 5년을 못 버틴다.
그러나 제이콥 해커(Jacob Hacker)는 오늘날 사업가나 자본가가 모든 위험을 끌어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미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제공하는 건강보험의 본인 부담률이 높아지고, 퇴직연금이 확정급여형에서 확정기여형(401k)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다시 말해 몸이 아프거나 퇴직연금의 투자 수익이 좋지 않을 때 생기는 경제적 위험을 노동자가 떠안게 된 것이다. 더욱이 아웃소싱이 증가하고 단기 이익이 중시되면서 노동자는 증권거래소와 유사한 '현물 시장'에서 일거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임금 정체로 인해 많은 가정이 두 개의 소득원에 의존하고 그중 하나라도 끊기면 치명상을 입는다.
부유한 호스트가 여러 채의 아파트를 임대하고 일 단위로 요금을 받을 때, 저소득 세입자는 거주 지역에서 주거 시설의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월세가 인상되는 현실에 부딪힌다. 맥길대학에서 2018년에 발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뉴욕의 장기임대시장에서 7,000~1만3,500개의 주거 시설이 사라졌는데, 그중에는 120일 이상 임차 가능하고 수시로 임차되던 주택 1만2,200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2015년에 변화를 모색하는 뉴욕 공동체 연합(New York Communities for Change)과 임차료 안정화를 위한 모임(Real Affordability for All)의 공동 조사에서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빈집 중 무려 20%가 에어비앤비에 등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맨해튼 내에서도 이스트빌리지의 비율이 높았는데, 이스트빌리지의 빈집 중 28%가 에어비앤비에서 불법 호텔로 이용되고 있었다. 2015년 부동산 사이트 스트리트이지(Streeteasy) 보고서에는 "인구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2000~2013년 뉴욕의 임차료 증가율은 소득 증가율의 약 2배 수준이었고, 이는 뉴욕 주민의 소득에서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폭으로 증가했음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이스트빌리지 동향을 다루는 블로그 'EV그리브(EV Grieve)'에서는 이스트빌리지 임차료 시세가 주민 평균 소득의 56%라고 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서 디지털 혁명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여기서도 소수의 행운아와 나머지의 격차가 날로 더 벌어지는 현상이 여실히 드러났다. "과거에는 신기술이 생산성을 향상시켜 임금 인상으로 이어졌고, 그 인상분이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에게,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 소비자에게 고루 분배됐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은 유능한 사람들에게 전에 없이 강한 힘을 실어주고 있고, 그에 따라 숙련 노동자와 비숙련 노동자, 자본가와 노동자의 소득 격차가 무섭게 벌어지고 있다. (…) 그로 인해 불완전고용이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신설된 일자리가 "기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거의 요하지 않는" 저기술 비정형적 육체노동에 치중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장보기 대행 서비스인 인스타카트(Instacart)가 시급 30달러를 지급하는 것처럼 심부름 서비스 중 일부는 고임금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사실상 장보기가 8시간이나 걸리는 건 아니다. 8시간치 일감을 구할 수 있다면 시급 30달러가 괜찮은 임금이지만, 하루에 벌 수 있는 돈이 30달러뿐이라면 그 반대다.
초기 노조와 파업 노동자들의 힘겨운 투쟁으로 현재 많은 노동자가 최저시급과 주 40시간 노동 같은 정책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법적으로 노조가 노동자 대표로 인정받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그 역시 투쟁의 산물이다. 하지만 공유경제 노동자는 그런 싸움에서 승리하기는커녕 아예 그런 싸움이 벌어진 적도 없는 현실에 처해 있다. 긱 경제 노동자는 주류 경제 노동자에게 당연시되는 권리를 대거 박탈당한 노동계의 2등 시민이다. 일례로 1935년 전국노동관계법(와그너법)으로 노동자가 단결하고 노조를 결성할 권리가 확립됐지만, 공유경제 노동자는 대부분 독립계약자로 간주되어 와그너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유일하게 시애틀에서만 시의회 조례에 의해 기사들에게 단결권이 인정되었다.
기업 도시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으면 거처도 잃고 그들을 보호하던 사회안전망도 사라지는 것처럼, 현대의 공유경제 노동자도 여러 측면에서 독자적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처지다.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교통비를 자비로 부담하고, 건강보험료도 자비로(저소득층에게 제공되는 메디케이드 수급자인 경우에는 세금으로) 해결하고, 사회보장연금세와 메디케어세를 포함한 급여세를 직접 계산해서 납부하고, 휴업(질병, 휴가, 일감 부족으로 인한)시에는 생계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업무상 재해를 당해도 모든 것을 자비로 해결해야 한다(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자세히 논하기로 하자). 아무리 온라인 게시판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해도 이들은 외국인 베이비시터 같은 다른 저임금 노동자보다 훨씬 심각한 고립 상태에 있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미국에서 노동은 꽤 위험한 행위다. 1904년 제조업, 운수업, 농업 종사자 등 총 2만7,000명이 업무 중 사망했다. 1년간 뉴욕에서만 5만 건의 공장 사고가 발생했다. 역사학자 하워드 진(Howard Zinn)은 "모자 제조공은 호흡기 질환이 생기고, 채석공은 치명적 화학물질을 흡입해야 했으며, 석판인쇄공은 비소에 중독됐다"고 썼다. 산업관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1914년에 산업 현장에서 3만5,000명의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고 70만 명이 다쳤다.
1900년대 초 조직적 노동운동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는데, 그 중심에는 개혁적 언론인들의 '추문 폭로' 운동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바로 《정글(The Jungle)》에서 시카고 소재 도축장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병들고 부패한 고기가 유통되고 싸구려 첨가물로 인해 식품이 변질되는 현실을 폭로한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다. 싱클레어의 책이 반향을 일으키면서 1906년, 식품의약법과 육류검사법이 제정되고, 식품의약국(FDA)이 설립됐다. 하지만 당사자인 싱클레어는 이 같은 전개에 실망했다. 그가 책을 쓴 이유는 고기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게 아니라 도축 및 포장 노동자를 돕는 것이었다. 훗날 싱클레어는 "나는 대중의 심장을 겨냥했으나 정작 맞힌 곳은 위장이었다"라고 썼다. 의회에서 1906년, 1908년 고용주책임법이 통과되어 기여 과실의 위력이 약화되긴 했지만 노동자의 현실이 도외시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승객과 언쟁을 피할 수 있다고 해도 기사에게는 여전히 위험이 남아 있다. 기사들은 운전석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적당한 가격에 식사와 주차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워 몸에 안 좋은 음식으로 대충 끼니를 때우기 일쑤다. 많은 기사가 장시간 앉아만 있어서 체중 증가나 관절 이상 같은 건강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54세 래리는 육상 선수 출신 우버 기사다. "기본적으로 일주일에 6~7일을 훈련했는데, 운전을 하면서 몸이 안 좋아졌어요. 운동하고 나서 다리가 짱짱한 상태에서 운전을 하면 금방 다리가 아파요. 더군다나 차 안에 8시간씩 앉아 있으니까 어디 몸이 풀리나요."
여기에 더해 의사들이 '택시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현상도 따른다. 운수업 종사자는 배뇨장애, 불임, 요로결석, 방광암, 요로감염증이 일반 운전자보다 많이 나타난다. 화장실을 쉽게 이용할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대부분의 기사가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앱 기반 기사에게는 더욱 심각하게 작용할 수 있다.
대학생인 코디는 포스트메이츠 보험뿐 아니라 어머니의 보험도 있었다, 두 보험에서 치료비를 분담했다. "포스트메이츠는 보험을 들어줘요. 일하다 사고가 나면 메일을 보내면 돼요. [누가] 나를 고소한다고 하면 재판도 다 지원해줘요. 우리가 자기들을 위해서 일하니까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거죠."
노동자를 종업원으로 고용하지 않는 기업은 대개 노동자가 종업원이 되면 억지로 주 40시간을 일하거나 자기가 원치 않는 시간에도 일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를 침해당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코디가 공유경제 업체 포스트메이츠의 자전거 배달원으로 겪은 일은 노동자가 흔히 공유경제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탄력성은 그대로 누리게 해주면서도 업무상 재해를 당했을 때는 보상받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코디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플랫폼에서 일하다가 사고가 났으면 당연히 플랫폼이 우리를 도와주는 게 도리"인 것이다.
우버는 허락보다는 용서를 구하고, 법을 지키기보다는 과태료와 벌금을 내는 게 쉽다는 식의 경영 행태로 악명이 높다. 졸지에 마약 운반책이 됐던 엑토르가 말했다시피 우버는 새로운 시장에 진입할 때 기사들에게 불법 택시 운행으로 벌금이 부과되고 법원에 소환되더라도 회사가 모든 비용을 대겠다고 안내한다. 그러다가 우버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당국은 사실상 우버의 영업을 허용하기 싫어도 허용해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에어비앤비도 불법 호텔 운영을 금지하는 법을 위반하면서 성장했다. 에어비앤비는 기존 업체들과 달리 엄격한 규제나 과중한 세금 부담을 피하면서 사람들이 숙박업에 한층 더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원칙을 어기는 기업이 수십억, 수백억 달러의 가치를 자랑할 만큼 성장하는 와중에 노동자와 고객이 과연 정직을 귀중한 덕목으로 여길 수 있을까.
긱 경제의 주장이 현실과 동떨어졌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는 태스크래빗과 앱 기반 기사들의 노동에 찍힌 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낙인'을 "타인의 반응으로 인해 정상적인 정체성이 훼손되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낙인은 흔히 나병 같은 질환이나 흉터, 장애처럼 눈에 띄는 기형이 있을 때 찍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밖에 실업, 기초생활 지원금 수급, 미성년자 출산 등 평균에서 벗어난 개개인적 특성에 의해서도 생긴다. 낙인이 찍힌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이질적이고 부족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느낌을 많이 받고 심리 장애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중년 백인 남성 태스커 리처드는 면담이 시작되자 2년을 사귄 여자친구가 태스크래빗 일을 부끄러워해서 헤어졌다는 말을 꺼냈다. 대학원을 나와 시간강사를 하며 태스크래빗에서 일하는 34세 레베카는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차마 남의 집에서 일한다고 말할 수 없어서 임시직으로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부끄러움은 태스크래빗 노동자들만 느끼는 게 아니다.
참가자들에게 신분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음에도 한 우버 기사는 면담 후 메일을 보내 절대로 자기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나에게 우버는 뭐랄까, '간밤에 술기운에 부린 추태' 같은 거예요. 네, 딱 그런 거예요. 우버 기사로 일하는 거 앞으로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어요. 내 이름으로 검색했을 때 그런 게 안 나왔으면 좋겠어요." 프로 도박사 출신인 또 다른 기사는 아내로부터 부끄러우니까 어디 가서 우버 일 한다고 말하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했다.
대침체는 미국인들의 저축액 격차도 표면화했다. 경제안정지수(Economic Security Index)에 따르면, 미국 인구 중 20%가 가처분소득이 25% 이상 감소했으나 감소분을 보충할 만한 경제적 안전망이 없었다. 대침체 이전에 저축액이 있던 미국인 중에서 57%가 대침체 당시와 이후에 그중 일부 혹은 전부를 소진했고, 34%가 5년 전보다 경제적 형편이 다소 혹은 훨씬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대침체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미국인 중 절반가량이 당장 400달러의 돈이 필요하게 되면 소유물을 팔거나 빚을 내야 한다고 답했다. 여러 방면에서 여전히 대침체가 진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월스트리트의 위기가 절정에 이르던 2008년 10월에 성인 57%가 소득보다 생활비 지출이 많다고 답했고, 2014년에도 똑같은 걱정을 토로하는 사람이 56%였다.
개똥을 치우는 모욕적인 일에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 데서 확인할 수 있는 긱 경제의 특징이 하나 더 있다. 노동자들이 돈만 준다고 하면 사실상 무슨 일이든 할 만큼 추가적인 소득이 절실히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소득 급변성이다. 미국의 '숨은 불평등'이라는 설명이 붙는 이 소득 급변성은 노동자의 소득이 심하게 변동하는 정도를 가리킨다. 변동폭이 커지는 데는 정원사가 겨울이면 비수기가 되는 것처럼 계절적인 요인도 있지만, 적시 일정 관리(just-in-time scheduling)로 인해 당장 다음 주에는 몇 시간을 일하게 될지 알 수 없고, 일이 몰리는 날은 몰리고 없는 날은 없는 노동환경이 만들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소득 급변성은 주로 시급 노동자와 연관된 것으로 여겨왔지만, 갈수록 그 영향을 받는 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1970년대 초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가구 소득 급변성이 30% 증가했고, 최근에는 미국 가정 중 10% 이상이 전년도의 절반밖에 안 되는 소득을 올렸다. 대침체는 2009년 6월에 공식적으로 끝났지만, 2016년 연준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32%가 매달 소득이 달라지고, 13%가 소득 급변성 때문에 생활비를 대기가 어려운 달이 있다고 밝혔다. 전년도에 소득이 지출보다 많았다고 한 사람은 47%로, 절반에도 못 미쳤다.
소득을 보충하려고 하는 사람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공유경제에는 잠재적 노동자가 넘쳐나는 실정이다. 흔히 경제학 개론에서는 공급이 늘고 수요가 그대로면 가격이 떨어진다고 가르친다. 노동시장에서도 용어는 다르지만 동일한 현상이 일어난다. 가용 노동자가 넘치면 노동력 고갈을 걱정하지 않고 노동자를 '갈아 넣고 쥐어짤' 여지가 생긴다. 이는 부상당한 노동자들이 문밖에 줄을 서서 자기를 고용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노동자들로 신속히 대체되는 《정글》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더 큰 사회적 흐름 속에 놓고 보면 공유경제가 고용주와 종업원의 사회계약이 무너지는 과정 중 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법은 존재한다. 그것은 노동환경에서 요구되는 탄력성을 보장하면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프로그램과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채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기업이 아무 의무도 지지 않고 고용한 임시 인력을 앱과 연결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을 생성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시 일정 관리, 인력회사를 이용한 아웃소싱, 단돈 1센트까지 챙기는 회계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한 CEO는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은 증발하죠"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증발'할지도 모른다. 2013년 세계 공유경제 시장은 260억 달러 규모였으며, 일각에서는 조만간 1,1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시장으로 발전해 미국의 레스토랑 체인 산업보다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새로운' 경제적 움직임은 노사 간의 사회계약이 변화하고 기업이 노동자에게 마땅히 제공해야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더 큰 흐름 속에 있다. 공유경제는 우리에게 혁신을 약속하지만 실상은 노동자에게 안전망이 거의 없었던 초기 산업사회로 퇴보하고 있을 뿐이다.
대체 어쩌다 원칙을 지키는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하는 기업이 넘쳐나게 된 걸까? 어째서 플랫폼 기업과 그 지지자들이 공론의 장을 지배하게 된 걸까? 그 원인 중 하나는 이들 공유경제 기업이 언어를 장악했기 때문이다. '공유'라는 말은 많은 죄악을 은폐한다. 마찬가지로 이 기업들을 '기술기업'이라 부르는 것도 사회계약을 무시하기 위한 수법이다. 어떤 기업이 기술 분야에 속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예전에 비디오플레이어에서 12:00이 깜빡여도 그냥 놔뒀던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대부분이 이런 심정일 것이다. '너무 복잡해. 이해가 안 돼. 버튼은 많은데 직관적이지가 않아. 그리고 어차피 또 바꿔야 할 텐데 뭐 하러 굳이 이해하려고 고생해?'
마이클린의 CEO 마이클 샤프는 이렇게 말한다. "기술업계에서 착각하는 게 있어요. 아무 데나 신기술을 갖다 붙이면 유니콘이 될 거라는 [생각이요]. 집 청소 서비스처럼 실생활에 밀착된 사업에 기술적인 요소를 넣으면 당연히 10억 달러짜리 사업이 되는 줄 알아요. 그런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도 아니고 소프트웨어도 아니에요. 서비스 플랫폼이죠. 기술 사업이 아니라고요. 엄밀히 말해서 기술은 부차적인 요소죠. 그건 생활 밀착형 사업이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생활 밀착형 사업은 진정한 의미의 기술 사업과 같은 속도로 확장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람이 성장의 기초가 되거든요."
공유경제 기업은 노동자에게 자율성과 사업의 발판을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사실은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노동자가 검색 결과에 나오고 작업을 배정받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만든다. 신뢰라는 미명 하에 노동자는 평가로 점철된 온라인 원형 감옥에 갇혀 신원조회를 받고, 평점과 후기를 받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당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제공받지 못하고,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크리스텐슨이 주창한 '파괴적 혁신'은 "더 저렴하고 더 조악한 상품을 판매해… 업계 전체를 장악하고 집어삼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공유경제 기업이 성장하고 급증하면서 수세대에 걸쳐 구축된 경제적 이득과 노동자 보호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초기 산업사회로, 다시 말해 노동자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가 기업과 엘리트층의 지배를 받으며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시대로 돌아갔다. 하버드대학 역사학과 질 르포어(Jill Lepore)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혁신은 "발전이라는 개념에서 계몽주의의 포부를 뜯어내고, 20세기의 공포를 긁어내고, 비판자를 비워낸 결과물"이다. "파괴적 혁신은 더 나아가 그것이 설명하는 파멸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파괴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공유경제는 노동자가 추가적인 노동을 통해 '자신을 구원할' 길을 제공한다지만, 공유경제의 성장은 노동자의 권리와 보호장치가 더욱더 무너지는 쪽으로 끌고 가고 있다. 노동자가 힘들게 얻은 권리와 보호장치가 '더 저렴하고 더 조악한' 발전의 허울 안에서 '핵'되고 파괴되면서 지난 100년간 공들여 쌓은 탑이 무너지고 있다. 오늘날 공유경제가 일으키는 파괴의 결과물은 위태로운 품팔이로 또 하루를 버티는 삶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