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못한 단 하나의 오프닝 / 이은혜 / 꿈꾸는인생
오늘도 TV 화면에는 아름다운 얼굴들이 나와 사랑과 정의와 다정을 노래한다. 그 아름다운 얼굴들은 회당 수억 원의 개런티를 받고 빌딩으로 재테크를 한다지만, 화면 뒤에는 쓰러지고 사라지고 감춰지는 이들이 있다. 나는 찬란하게 반짝이는 방송계의 이 같은 이면을 말하고 싶었다. 정의를 말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부당함을, 다정을 말하는 곳에서 이뤄지는 비정을 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은 방송이 '원래 그렇다'는 말의 '원래'를 부정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p.8)
방송에 몸담았던 당시 나는 자주 노동 대비 수입의 부조화로 한탄했고, 그런 내 앞에는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눈 밑 그늘이 짙어진 동갑내기 친구 PD가 있었다. 나는 후려치는 임금에 치를 떨고, 그는 끝도 없는 노동에 치를 떨었다. 그래도 우리는 방송이라는 세계를 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일이니까. 잘 해내고 싶으니까. 이런 사람들의 꿈을 동력 삼아 방송은 굴러간다.
글을 쓰며 알게 된 사실은 이것이 비단 방송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출판, 노동, 목소리』라는 책을 통해 출판 노동자들이 "수당 없는 야근과 주말, 휴일 근무로 이어지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론 기사를 보다가도 비슷한 사례를 마주쳤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재능기부를 강요당하는 음악인들,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등대 같은 회사에서 기계처럼 일하는 게임회사 직원들…. 도처에 꿈을 볼모로 잡힌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이런 일들은 이야기와 음악, 볼거리와 읽을거리, 콘텐츠를 만드는 곳에서 더 자주 일어났다.
나는 방송이 부서지기를 바라는 게 아니다. 출판사가 문을 닫고 게임회사가 어려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일을 하다 병들거나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비상식이 업계의 불문율로 통용되지 않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일하는 모두가 노동자로 존중받기를 바란다. 시청률도, 한류도, 해외 판권도, 베스트셀러도 이 뒤에 왔으면 좋겠다. (p.10-11)
생방송 5초 전, "지금 시각은 오후 6시 5분입니다." 아나운서의 또렷한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스탠바이… 5, 4, 3, 2, 1. 라디오 부스 위 잠자던 온에어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오프닝 시그널이 잠시 흐르고 마이크가 올라갔다. 진행자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글이 말이 되어 생동했다. 내가 쓴 오프닝 멘트가 주파수를 타고 세상 어딘가에 닿다니 손에 땀이 솟았다. 경이롭고 두려웠다. 오늘을 기점으로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이 바뀌게 되리라는 아득한 예감이 들었다.
업무는 점차 익숙해졌지만 모든 준비를 끝내고 온에어 버튼이 켜지는 순간이면 늘 숨을 죽였다. 택시 안에서, 시장에서, 퇴근 준비를 하며, 혹은 아이를 돌보며 듣고 있을 누군가를 떠올렸다. 매일 방송이 끝나고 난 뒤에는 맥이 풀리고 허기가 몰려왔다. 좋아서 하는 일에는 몸과 마음을 쓰는 게 아깝지 않다는 걸 배웠다.
아직도 가끔 방송 첫날, 온에어 버튼을 바라보며 가슴 떨려하던 시간을 떠올린다. 내 '코어 메모리'가 하나 생기던 바로 그 순간이. 밥벌이의 괴로움과는 별개로 오래 간직할 기억이다. (p.39-40)
라디오는 날씨의 매체다. 특히 음악 프로그램은 그날의 날씨가 방송의 거의 모든 지점에 영향을 미쳤다. 오프닝부터 DJ 멘트, 선곡, 사연, 클로징까지.
수도권의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작가로 일하던 시절, 생방송 한 시간 전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금방 그칠 비가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이 서면 PD에게 허락을 구한 뒤 오프닝 원고를 수정했다. 방송을 여는 오프닝은 늘 청취자에게 말을 거는 기분으로 썼다. 그렇다 보니 비가 내리면 하고 싶은 말이 바뀌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아까부터 토독토독 빗소리가 들리는데 당신이 있는 그곳은 어떠냐고. 당신은 집 안에서 빗소리를 듣고 있냐고. 아니면 바쁘게 일하느라 비가 오는 줄도 몰랐냐고. 잠시 라디오 곁에 앉아 한숨 돌리는 건 어떻겠냐고.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해 이렇게 오프닝 원고를 다시 쓰는 일이 종종 생겼다. 그럴 때면 나는 창문을 열고 땅이 젖어 있는지, 바람이 차가운지 미지근한지를 살폈다. 손이 좀 가는 일이었지만 의외로 꽤 신나는 일이기도 했다. 새 오프닝을 토대로 담당 PD는 방송 첫 곡을 다시 골랐다. 바뀐 원고를 받아 쥔 DJ는 그에 맞는 새로운 멘트를 고심했다. 그렇게 3박자가 맞아떨어질 때 신바람이 났다. 모두와 '장단'이 맞아서 그랬다. (p.75-76)
비 오는 날만 특별했던 건 아니었다. 벚꽃이 개화한 날에도, 첫눈이 오는 날에도 나는 방송 내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주시했다. 도처에서 보낸 사연과 사진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면서 라디오 문자 참여는 사진의 영역으로도 확대됐다. 평소에도 사진 문자가 가끔 들어왔지만, 날씨가 유별한 날이면 듣는 이들이 유독 사진을 자주 보내 주었다. 청취자들의 사진으로 나는 계절이 오고 가는 것과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느꼈다. 슈거 파우더처럼 고운 첫눈도, 그 첫눈으로 만든 눈사람도 모두 스튜디오 안에서 청취자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어느 눈 오던 날, 한 남성 청취자가 아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눈사람 사진을 보내 왔었다. 사진 속 눈사람은 성인 여자 키 반 정도 되는 작달막한 크기였다. 그 곁에는 양 볼이 빨개진 아이가 씩 웃으며 눈사람과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었다. 사진을 찍는 아빠도 아들과 똑 닮은 얼굴로, 아들을 보며 씩 웃고 있었을 것이다. 그 아빠는 아들과 한 최초의 '협업'을 자신이 즐겨 듣는 라디오 식구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보내 왔다. 이런 사진을 볼 때면 마음에 충전기가 꽂혔다. 삶에 치여 바닥났던 인류애가 급속 충전됐다. (p.77-78)
대부분의 방송작가들은 '노동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 말은 즉, 회사 대 노동자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는 뜻이다. 계약서를 쓰더라도 프리랜서 계약을 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연말정산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어 5월에 종합소득세 정산을 한다. 사업자번호도 없는데 개인사업자가 되는 아이러니다. 그러니까 노동자가 아니라서 월급이라는 단어가 맞지 않는 거였다. 맙소사, 자욱하던 머리가 번뜩하더니 정리가 된다. 그래서 페이였구나!
문제는 많은 방송작가들이 방송국에 상주하면서 근무를 하고,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있으며, 야근도 하고 간혹 출장까지 다닌다는 거다. 지난 2019년 4월에 전국 언론 노동조합이 전국 방송작가 580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본인이 프리랜서 형태로 고용되어 있지만 상근한다는 대답이 72%였다.
현행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다른 직군 역시 마찬가지다. 학습지 교사와 요구르트 판매원, 간병인, 퀵서비스 기사 등 많은 직군이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노동할 의무는 있지만 권리는 온전히 갖지 못한다.
'페이'가 교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페이라는 단어 안에는 야근수당이 없다. 교통비도 식비도 없다.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들이 이 단어로 인해 지워진다. 작가들은 밤샘 야근을 하고도 수당을 청구할 곳이 없다. 회당 얼마의 페이를 받는, 야근수당을 약속받지 못한 프리랜서들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페이란 참 얼마나 편리한 단어인지. (p.95-97)
방송을 하기 전과 후,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질문'이었다. 질문하지 않으면 신입 방송작가가 착취당할 확률이 너무 높았다. 프로그램마다 급여도, 근무 시간도, 심지어 방송국에 상주해야 하는지 아닌지도 전부 달랐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와 관련해서 정해진 내규나 기준이 없는 곳이 태반이었다.
내가 받은 충격이 '시급 2천 원' 정도라면, 방송가 곳곳에서 만난 선배 작가들의 이야기는 공포물에 가까웠다. 라디오 쪽 한 선배는 출산휴가가 없는 프리랜서라 출산 4주만에 퉁퉁 부은 얼굴로 복귀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시사 TV 프로그램 일을 하던 다른 선배는 철야를 계속하다 '이러다가는 죽겠다'는 신호를 느껴 생명보험에 가입했던 과거를 알려 줬다. 한 방송사 촬영 팀이 배를 탔는데 프리랜서인 작가에게만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유명한 일화다. 구명조끼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나를 지켜야 했다. 시급 2천 원으로부터, 출산 후 4주 이내 복귀로부터, 내게만 지급되지 않는 구명조끼로부터. 그러기 위해 나는 '질문하는 사람'이 됐다. 제작자에게 행사 의뢰를 받으면 대화가 끝나기 전에 작가 페이를 물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가게 되면 반드시 출근 전에 급여와 근무 시간, 상주 여부를 확인했다. 휴가가 있는지, 있다면 며칠간 쓸 수 있는지를 물었다. (p.111-112)
방송작가노조는 '막내 작가 최저임금 주기 운동'을 진행한다. 상당히 이상한 운동 아닌가. 소위 '막내 작가'로 불리는 신입 작가는 섭외부터 취재, 원고, 큐카드 작성, 심지어 주차 관리까지 온갖 잡일을 다 맡는다. 그런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받는 임금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결국 노조에서 최저임금 좀 주자며 운동에 나섰다.
그런가 하면 스태프 노조는 "하루 8시간 수면권을 보장하라"고 외친다. 얼마나 심각하기에? 방송 스태프 지부 자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드라마 현장의 스태프는 하루 평균 20.4시간을 일했다. 한 해 뒤인 2019년에는 18시간으로 나타났다.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살인적인 노동 강도다. 수면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스태프뿐만 아니라 연기자, PD를 위해서도 빠른 개선이 절실하다.
프로그램 한 회를 만드는 데 상상 이상의 비정규직이 투입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비정규직과 프리랜서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프리랜서라서 계약서 없이 일하고, 스태프라서 급여 대신 상품권을 받는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연예인 뒤에는 최저임금도 못 받는 신입 작가가 있다. 사회 정의를 외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영상 촬영자 이름은 2년마다 바뀐다.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p.126-127)
방송판 안에서 노동자들은 수시로 서로를 등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방송사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프리랜서 인력 채용과 해고를 전담시킨다. 시사도, 예능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제작 현장은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방송사에서 제작사로, 제작사에서 조명팀, 녹음팀 등 팀별로, 각 팀에서 스태프로 다단계식 하도급 고용이 이뤄진다. 그러니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사고가 생겨도 하청업체인 제작사 팀장급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일이 생긴다. '원청'인 방송사는 쏙 빠진 채로.
요즘 '대세'라는 뉴미디어는 어떤가. 방송과 언론은 유튜브를 비롯한 뉴미디어 시장 진출에 앞다투고 있지만 정작 그 안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인력들은 대다수가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다. 한 팀 안에서 한두 명의 정규직이 나머지 비정규직, 프리랜서, 인턴을 채용하고 관리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제 방송사는 노동자를 직접 관리할 필요가 없다. 노동자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완벽한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노동자와 노동자가 적대하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진정한 갑은 장막 뒤로 사라지고 노동자가 허울뿐인 갑이 되는 시스템 속에서 모두가 평화롭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p.144-145)
내 주변의 방송작가들은 방송국의 한 귀퉁이 책상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노동을 했지만 노동자가 아닌 프리랜서였다. 대부분은 계약서도 없이 일했다. (2021년 시점으로 서울지역 방송국은 계약서를 쓰는 추세다! 이 한 장의 계약서를 위해 얼마나 많은 작가들이 싸워 왔는지 모른다. 선배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한 지역사에는 '작가 페이 기준'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한 달에 100만 원 초반대 수준으로 아주 오래 멈춰 있었다. 계약서를 쓰자고 하면 "여기는 원래 쓰지 않는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말은 기득권의 언어다. 논리와 혁명에 대응하는 가진 자의 마스터키다. '원래'에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아직까지 여성들은 투표소에 들어갈 수 없고, 흑인과 백인이 따로 앉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p.171-172)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방송계의 불공정 관행은 공고했고, 그 단단한 벽을 허물지 못한 나는 호의와 다정을 넙죽넙죽 받아 가며 이 세계에서 버틸 수 있었다. 방송작가로 사는 동안 악인보다 선인을 압도적으로 많이 만나서 이만큼이나마 해 왔다. 나 개인에게는 다행이나 전체에겐 불행이다.
호의로 연명하는 직군을 과연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인복이 없어 선의를 받지 못한 신입 상근 작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상근하는 프리랜서로 노동의 단물은 빨리되, 노동자는 아닌 상태로 살아야 할까. '원래 그런 것'이라는 이유로.
이제 방송가 노동자들에게 호의가 아닌 당연한 권리를 찾아줄 때다. 과정은 어려울 수 있겠지만 시작은 어렵지 않다. '원래'를 뒤집으면 된다. 프리랜서는 원래 다 그렇다는 문장의 '원래'를, 방송가는 원래 이런 것 몰랐냐는 문장의 '원래'를 지우고 다른 해법으로 대체해 나가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일은 절대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방송이라는 토양에 뿌리내린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수많은 '원래'를 하나하나 지워 나가자고. 프리랜서는 프리랜서답게, 상근 노동자는 노동자답게 일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보자고. 호의보다는 동의를 해 달라고. 신입 작가와 스태프들, 약자들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그래서 결국에는 함께 웃자고. (p.174-175)
나는 이직을 준비하는 작가들이 되도록 구인 공고에 나타난 힌트를 무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구인 연차와 투입 시기는 물론이고 상근 여부와 급여 액수, 정확한 급여 지급일을 회사에 확인받기를 바란다. 최악을 피해 차악을 택하는 마음이랄까. 기왕 들어갈 회사가 처우도 좋고, 근무 시간도 합리적이고, 고용 안정이 보장되는 소위 '최선'이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희박하다. 방송가에서 방송작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회사를 찾는 일은, 성실한데 잘생기고 부유한데 검소한 애인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우니까. (p.182-183)
고강도, 장시간의 디졸브 노동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그가 느껴야 했던 자괴감이었다. 이한빛은 공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월급의 일부를 매달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416연대, KTX승무원 대책위원회, 빈곤사회연대에 기부했다. 이한빛은 또한 연대하는 사람이었다. 용산참사 추모미사에서, 또 재벌 기업의 노동 탄압에 항의하는 퍼포먼스 현장에서 이 PD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그에게 드라마 제작 당시 비정규직 계약 해지 관련 업무가 주어졌다. 특히 해고된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선입금됐던 돈을 돌려받는 일은 이 PD를 가장 괴롭게 했다. 노동자와 약자를 위해 투쟁하던 그가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그들을 궁지로 내모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당시 이 PD는 가족과 친구에게 "존엄성 지키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가 겪은 괴로움은 유서에도 절절하게 드러난다."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하는 삶이기에 더 이어 가긴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니, 세상에 등 떠밀렸다. 그가 죽음에 닿은 과정을 알게 된 유족과 대책위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릴레이 시위, 추모 문화제, 기자회견, 토론회 개최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 나갔다. 사건 발생 8개월 만에 결국 CJ E&M은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게시하고 제작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위로금 지급 의사를 밝혔지만 이 PD의 가족은 방송 종사자들을 지원하는 재단을 만들자고 '역제안'을 했다. 이 PD가 세상을 떠나며 던진 화두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018년 1월, '한빛'이라는 이름이 장소 명사가 됐다. 방송가의 중심인 서울 상암동에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가 설립된 것이다. (p.194-196)
이제 '한빛'이라는 이름은 많은 것을 가리키는 명사가 됐다. 방송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재단의 이름이자 장소명이며, 한빛센터에서 주관하는 미디어노동인권상의 명칭이기도 하다. 때로는 한빛의 이름으로 커피차가 출동하기도 한다. 한빛센터는 수시로 드라마 제작 현장을 찾아가 스태프들에 대한 근로기준법 준수를 촉구하는 커피차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 가지 더, 한빛의 곁에는 방송작가가 있다. 한빛센터와 방송작가유니온은 같은 공간에 둥지를 틀었다. 약자와 연대하던 한빛은 지금도 신입 작가나 신입 스태프처럼 가장 작은 목소리 곁에 자리하고 있다. 두 단체가 나란히 위치한 상암동의 사무실 문은 늘 열려 있다. 미디어 노동자 모두가 언제든 발걸음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장시간 고강도 방송 업무에 지쳐 쉴 곳이 필요하다면, 방송 노동을 하다 부당한 일을 겪어 상담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한빛을 찾아가기를. 한빛은 이제 그런 이름이니까. (p.198-199)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프리랜서로 근무해 온 이재학 PD는 지난 2018년 동료 프리랜서들의 처우 개선을 사측에 요구했다. 그러자 사측은 이 PD를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소송으로 맞섰다. 힘겨운 싸움이 이어졌고, 이 PD는 1심에서 패소했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이 PD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1주일에 5일에서 7일을 출근하고, 사무는 청주방송 안에서 봤고, 정규방송에 특집 방송까지 연출했는데도 재판에 따르면 그는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는 지난 2020년 2월 4일 "억울해서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여전히 방송가는 고요하다.
방송계만큼 '좋아서 하는 사람'이 많은 업계도 드물다. 한 방송사 안에는 다 세기 힘들 정도로 많은 비정규직과 프리랜서가 존재한다. 이들이 적은 급여와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송계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일이 좋아서다. 이들은 밤샘 근무를 하고 생방송을 무사히 내보낸 뒤 엔딩 스크롤에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그 짧은 순간으로 또 다음 회차를 만들 기력을 얻는다.
이재학 PD 역시 그랬을 것이다. 그의 별명은 '라꾸라꾸'였다. 장시간 근무로 간이침대를 이용해서 붙은 별칭이었다. 묵묵히 일해 온 그가 지난 2018년, 근무 14년 만에 처음으로 사측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본인뿐만 아니라 함께 일하는 조연출과 작가의 임금을 올리고 최소 제작 인원을 확보해 달라는 요구였다. 당시 14년 차 PD이던 그의 한 달 급여는 160만 원 수준이었다. 그는 요구 당일 하차 통보를 받았다. (p.223-224)
이런 일을 보고 듣고 겪으니 점점 방송을 보는 일이 힘들어진다.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보면 저 드라마 스태프는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받았을까, 밤새고 수당은 받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작가들을 '갈아 넣기'로 유명한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보면 저 프로그램 신입 작가는 누구를 고발하고 싶을까 궁금해진다. 공정을 외치는 방송사 안에서 이뤄지는 불공정은 대체 어디에 고해야 하나. (p.225)
해직 이후 타자에 대해 더 자주, 더 오래 생각한다. 나만 아는 사람으로 늙고 싶지 않아졌다. 어쩌면 이건 해직이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일 것이다. (p.247)
내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국제사회에서 일본이 위안부 강제징집 문제를 감추려 할 때에도, 스물여덟 번째 6·10 민주항쟁 기념일에도, 박근혜 정부가 4·3 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방한을 막아 노작가가 눈물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도. 늘 쓰고 싶었고, 그래서 썼다. 박봉에, 자주 입술이 터 있을 정도로 긴장하고 살았지만 그래도 일이 좋았다. 마음에 드는 오프닝을 하나 손에 쥐고 나면 다음 원고를 쓰고 다음 사람을 섭외할 힘이 생겼다. (p.250-251)
전직에 대해 쓸 때는 품이 많이 들었다. 며칠 전 일에 대해 적는 게 아니라 몇 달 전, 심지어는 몇 년 전 일이니 자주 기억 속으로 침잠해야 했다. 사실 확인을 여러 명에게 해야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렇게 한 편을 완성해도 당장 세상이 변하는 건 없어 보였다. 또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해 (극히 낮은 확률로) 업무 환경이 개선된다고 해 봐야 전직은 바뀐 여건을 누릴 수가 없다. 그러니 누군가 "지나온 업계를 기록하는 건 비효율적인 데다 심지어 남 좋은 일"이라고 해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전직이기에 할 수 있는 말, 쓸 수 있는 글도 분명 존재한다. 현직이 업계의 현실을 얼마나 자세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요즘처럼 글쓴이가 노출되기 쉬운 시대엔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업계일수록, 비판에 폐쇄적인 업계일수록,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는 업계일수록 현직이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다. 도제식이란 스승이 제자를 훈육하는 일대일 방식으로 업무를 가르치는 시스템을 말한다. 출판, 언론, 방송, 패션, 미용, 요리 등 다 셀 수도 없는 업계가 이 방식으로 신입 종사자를 대한다. 누가 '스승 격'인 업계 선배를 거스를 수 있을까. 입을 열면 업계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게 되는데, 꿈꾸던 일을 포기해야 하는데.
전직이 이미 떠난 업계에 대해 주절거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잃을 게 없다(얻을 것도 없지만). 우리에게는 이미 떠난 자의 차분함과 냉철함이 있다. 업계를 떠난 시점부터 과거의 고용주는 우리에게 그저 상품을 제공하는 공급원이다. 방송사는 콘텐츠를, 출판사는 책을, 식품그룹은 빵을 파는 회사일뿐 과거의 위력은 빛을 잃는다. 그럼 전직에겐 뭐가 있냐고? 계약서는 왜 안 쓰는 거냐며 사측에 묻던 담대함, 밥 먹듯 야근하며 기른 지구력, 당시엔 환장할 노릇이었지만 지금 보면 훌륭한 글감이 되는 무수한 에피소드들. 우리에겐 서사가 있다. (p.258-260)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 / 박정훈 / 빨간소금
언제든지 노동력을 빼서 쓸 수 있다는 것은 노동력이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이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울산의 대공장에 몇만 명이 들어갈 수는 있지만, 10만 명, 100만 명이 들어갈 수는 없다. 작업복과 안전화, 작업 도구 지급 문제를 생각하면, 자동차나 조선과 같은 대규모 산업이 아니고서는 1만 명도 고용하기 어렵다.
그런데 플랫폼은 이 한계를 극복한다. 플랫폼에는 노동자가 출근해야 할 공장이나 사무실이 필요 없다. 플랫폼 노동자는 사용자이므로 작업에 필요한 모든 도구를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기업이 아니다. 토지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이를 노동자에게 제공해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할 필요가 없다. 상품과 서비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생산수단과 노동력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가졌던 전통적 기업이 플랫폼 앞에서는 비용 덩어리에 비효율적인 천덕꾸러기가 됐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는 플랫폼이므로 언뜻 마르크스의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 철폐가 떠오른다. 공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플랫폼 자본가가 이루어냈다. 공산주의라고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공유경제'라는 말을 붙인다. (p.24)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너스를 줘서 주변 사람들을 우버이츠 노동자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서로의 노동을 독려하게 만들면, 우버이츠는 인력을 선발하고 노동을 독려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인력 관리하는 직원을 뽑지 않아도 될 뿐더러, 초보 라이더에게 필요한 정보를 추천인 코드를 입력한 사람들이 알려주는 효과도 있다. 어떻게든 일을 시켜야 하므로, 배달에 필요한 정보를 라이더들끼리 서로 묻고 대답하는 일이 자발적으로 벌어진다. 무엇보다 우버이츠가 강제로 일을 시키지 않아도 서로가 서로에게 일을 독려하다 보면 플랫폼은 라이더들을 지휘·감독할 필요가 없다. 인력 모집, 관리 및 독려, 교육 훈련하는 비용을 아껴서 보너스 형태로 라이더에게 지급한다. 지휘·감독 논란에서 벗어나는 이득은 덤이다. (p.93)
실제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 한 명이 이 시간 압박 때문에 빗길에 넘어져 사고가 났다. 쿠팡이츠 고객센터에서는 음식의 안위부터 물었다. 우리는 고용노동부에 사고를 일으킬 만한 시간제한이 위법하다고 진정을 넣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사고를 일으킬 만한 시간인지 알 수 없다며 처벌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2020년 4월 29일 라이더유니온이 개최한 2차 오토바이 행진 시위 때 이 사건과 관련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평점을 계산하는 항목에서 시간 내 도착률이 빠졌다. 핸드폰 화면에 띄우던 배달 제한 시간 표시도 사라졌다. 전형적인 플랫폼식 문제 해결 방식이다. 문제가 생기면 하루아침에 바꾸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라이더들은 눈에 보이는 규제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회사가 배달 데이터를 가지고 라이더를 평가하고 알고리즘 시스템에 반영할 것이라 믿고 있다. 플랫폼은 라이더가 일하는 과정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p.105-106)
2019년 9월 18일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서명해 2020년 1월 1일부터 적용된 AB5 법안에도 이런 내용이 있다. AB5 법안은 우버이츠와 같은 플랫폼 노동자가 위와 같은 사장, 즉 독립계약자로 잘못 분류되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노동자 자신이 근로자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기와 계약한 사람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abc 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는데, 일하는 사람이 a) 회사의 지휘·통제로부터 자유롭고, b) 그 회사의 통상적인 비즈니스 이외의 업무를 해야 하며 c) 스스로 독립적인 고객층을 갖는 등 해당 사업에서 독립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있어야 한다. 즉 자유로워 보이는 우버이츠나 쿠팡이츠 같은 온전한 의미의 플랫폼 노동자 역시 자율권을 가진 사장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p.108-109)
인맥과 학벌은 물론 서로 의지할 만한 친척 하나 없던 그에게는 두 가지 목표가 있었다. 변호사 살 돈과 큰 병이 났을 때 필요한 돈 1,000만 원을 언제나 모아놓고 사는 것이었다. 그가 걸어온 인생의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은 돈이 없어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갑자기 경찰에 잡혀가 두들겨 맞고 자백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자신이 임금 체불과 부당 해고 등 이해하기 힘든 일들을 수없이 겪었다.
그에게 법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하지만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았고, 힘 없는 자들이 인생을 걸고 법을 지키라고 해야 겨우 지키는 시늉만 했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서 결국 노동조합을 선택했다. 쉽지 않은 역할이었고 동료들과 다툼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시작한 싸움은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이 배달원들과 근로기준법의 눈치를 보게 했다.
2019년 가을, 한창 조국 사태로 대한민국이 시끄러울 때였다. 1980년대에 명문 대학을 나온 사람들과 1980년대에 군사정권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싸웠다. 1980년대에 오토바이에 반해 배달 일을 시작했던 덕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저랑은 다른 세상에 사는 놈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거죠."
정치 혐오일까? 아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문제를 노동청 신고뿐 아니라 사회적인 의제로 만들었고, 기업과 싸움을 시작했다. 그에게는 좋은 학벌도, 좋은 직장도, 힘 있는 교수나 변호사 친구도 없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임금 체불과 부당 해고, 불안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노동법을 뒤지고 노동청을 쫓아다닐 또 다른 덕재 씨를 만나러 간다. 이게 정치가 아니면 무엇일까? (p.157-158)
〈KBS〉 기자가 패기 있게 질문한 것은 2019년 3월 28일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이 라이더 4명의 애플리케이션 접속을 일방적으로 막은 사건에 관해서다. 2000년대에는 문자 한 통으로 해고했다면, 오늘날에는 앱 접속을 차단한다. 내가 접속 차단당한 부릉 라이더의 전화를 받은 건 마침 청소년 노동 인권 교육을 하는 강사들과 봄 소풍을 하러 가던 길에서였다. 따뜻한 햇볕과 찬바람이 기묘하게 공존하는 숲길에서 세련된 플랫폼과 진부한 노동의 이야기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라이더들은 너무 화가 나서 부릉 본사로 찾아가 항의했다. 그들은 부릉이라고 적힌 오토바이를 타고 부릉의 유니폼과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부릉의 배달원이었지만, 플랫폼 회사의 대답은 냉정했다.
"계약이 되어 있는 것도 없는데 그러면 저희가 계속 이거를 책임져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본사가 거짓말한 건 아니다. 플랫폼 사는 동네 배달 대행사와 위탁 계약을 맺고, 동네 배달 대행사는 다시 라이더와 계약을 맺는다. 따라서 라이더와 플랫폼 회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2016년 대구·경북의 편의점 알바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 해결을 위해 CU 본사를 찾아갔을 때 본사 직원이 이와 똑같은 말을 했다. "우리 직원은 아니지만,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CU 편의점에서 일하는 알바노동자는 CU 유니폼을 입고 "안녕하세요. CU입니다"라고 인사하지만, CU의 직원이 아니다. 그래서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야간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 휴일근로수당, 연차 등을 보장받지 못한다. 프랜차이즈와 똑같은 현상이 배달 대행 플랫폼 회사에도 나타난다. 본사의 유니폼을 입는 건 똑같다. 하지만 배달 대행 라이더는 동네 배달업체의 근로자도 되지 못한다는 점이 다르다. (p.163-164)
이리 보고 저리 봐도 개인사업자라고 하기 힘든 대화다. 적어도 '프리랜서'라는 말은 틀렸다. 라이더는 왜 화장실 가는 것까지 보고할까? 관리자는 라이더의 위치를 관제 사무실의 컴퓨터 또는 관리자의 스마트폰 앱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라이더가 콜을 잡았는지 안 잡았는지도 알 수 있다. 배달 주문은 떠 있는데 콜을 잡지 않고 같은 위치에 계속 있다면, 일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식사 시간은 물론이고 화장실 출입까지 보고하는 게 마음 편하다. 관리자는 일일이 라이더를 따라다니면서 감시하지 않아도 라이더가 딴짓을 하는지, 일하는지 알 수 있다.
"어플 끄지 마세요"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퇴근도 자유롭지 않다. 실제로 이 업체에서는 주간반, 야간반으로 라이더를 운영했고,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칠판에 떡하니 적어놓았다. 이것이 이 업체에서만 벌어진 특수한 상황일까? 그랬다면 자신 있게 산재가 된다고 안내하지도 않았다. 내가 확인한 다른 배달 대행업체 단체 채팅방에는 비 오는 날 라이더들이 출근하지 않자 관리자가 욕으로 도배한 일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출근해서 사고 나면 당연히 업체가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기 위해 탄생한 업태가 배달 대행이다. 너무나 전형적이고 익숙한 장면이다.
문제는 고용노동부다. 유족이 제시한 자료를 보고도 시급제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자로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1970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분신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라'고 외쳐야 하는 처지가 됐다. 50년 전 사장의 욕설을 들으며 하루 14시간씩 한 달에 단 이틀을 쉬면서 미싱을 돌렸던 노동자들은 이제 플랫폼의 지시를 받으며 하루 12시간씩 한 달에 4번을 쉬면서 오토바이를 돌린다. 수익은 늘고 노동시간은 약간 줄어들었으므로 진보라면 진보라고 해야 할까? (p.180-181)
이렇게 생계비 때문에 사고가 나도 산재 보상으로 치료비만 받고 일하는 라이더가 허다하다. 보상받을 수 있는 일일 휴업급여도 최저임금 8시간분인 68,720원(2020년 기준)에 불과해서 편히 누워 있을 수 없다.
2019년 4월 중순에도 유명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던 30대 김 씨가 배달 도중 범퍼 보호 바가 떨어지면서 바퀴에 걸려 오토바이가 쓰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오토바이 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한 사고다. 이 업체의 계약서에는 오토바이 정비의 모든 책임은 '을'인 '라이더'에게 있고, 정비 불량으로 발생한 사고의 민·형사상 책임을 '갑'인 '회사'에 물을 수 없다고 적혀 있다. 김 씨는 사고 직후에 오토바이를 가진 지인에게 연락해 오토바이를 빌린 다음 자기가 맡은 배달을 끝까지 수행했다. 라이더들이 직업정신이 없다고들 하는데, 사고 나면 본능적으로 음식 상태부터 챙겨보는 게 이들이다. 다음날 병원을 방문, 3주 진단을 받고 회사와 상담을 진행했다. 회사에서 다행히 산재 처리를 해주기로 했다. 그러나 휴업급여가 66,800원(2019년 기준)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김 씨는 피식 웃고 일주일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11월에는 40대 신 씨가 비 오는 날에 일하다 미끄러져 손가락 인대가 찢어졌다. 역시 휴업급여가 66,800원이라는 소리를 듣고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일해야겠네요"라고 말했다.
"하루 6만 얼마를 받아서는 오토바이 렌털비 및 기타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큰 사고가 아니고서는 산재를 받고 일을 안 하고 쉰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민은 100퍼센트 피해 사고가 아니면 사고 난 자체를 갖고도 페널티 규정이 있고 사고 2회 이상이면 계약 해지도 가능합니다. 위험한 배달 일을 하면서 사고가 난 당사자는 어쨌든 보호받아야 하는데 거꾸로 많은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그가 찍어 보낸 사진에는 손가락이 붕대로 두껍게 칭칭 감겨 있었다. 세상을 향해 그 두꺼운 손가락을 날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p.185-186)
20조 원 규모의 배달 산업은 숱한 사고와 함께 성장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배달 산재는 2016년 277건에서 2018년 618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중에 바로고, 배민라이더스, 요기요플러스, 생각대로 등 유명 플랫폼 업체가 산재 발생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 숫자에도 문제가 있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바로고 관할 사업장 수는 62곳, 생각대로 39곳, 부릉 17곳이다. 배달 대행업계의 빅3이자 각각 2만 명의 등록 기사를 보유한 업체의 관할 사업장 치고는 너무 적다. 실제로는 바로고가 430곳의 허브, 생각대로는 640곳의 지점, 부릉은 100곳의 스테이션이 있다(2019년 기준).
허브, 지점, 지사라 불리는 위탁 계약 사업장의 산재는 플랫폼의 사고로 잡히지 않는다. 위탁 계약 사업장의 산재가 바로 동네 배달 대행업체의 사고다. 소비자들은 듣도 보도 못한 법인 이름이다. 플랫폼 회사는 배달 건당 수수료로 이윤을 취하면서, 위탁 계약이라는 이유로 사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 보험사는 이 위험을 수천만 원의 보험료로 라이더에게 부과하고, 사정을 모르는 시민들은 욕설을 담은 악플을 라이더에게 던진다. 물리적 위험뿐만 아니라 배달업에 대한 정서적 비난도 라이더 홀로 감당한다. (p.237)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신이 아니라, 신의 이름을 빌려 사람을 착취하고 탄압하는 인간이다. 자본주의가 탄생하면서 땅에 묶여 있던 농민을 해방해 도시로 보냈다. 그리고 신의 이름으로 근면 성실하게 일하라고 설교했다. 지금의 플랫폼은 근로기준법에 묶여 있던 노동자들을 해방해 데이터의 세계로 들어오라고 한다. 그리고 '혁신'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일하라고 광고한다. 플랫폼이 해방한 노동법 조항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동자의 목숨이 사라졌을까. 아동 노동이 금지되기까지, 진폐증이 산재법으로 보상이 이루어지는 질병이 되기까지, 김용균법이 통과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나. 이 소중한 사회적 합의를 혁신의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삭제할 것이 아니라, AI 옆에 붙은 무오류와 혁신이라는 단어를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이 신성 모독이 아니라 해방신학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p.246-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