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 피터 싱어 / 시대의창
인간 본성이 선하든 악하든 현대 서구 사회는 합리적이거나 윤리적인 논증이 통하는 시기를 훌쩍 지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 미친 세상, 바로잡으려 해봐야 헛수고'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원고를 읽은 한 출판사 관계자는 창문 너머로 뉴욕 시내를 가리키며 운전자들이 재미 삼아 빨간 신호등을 무시한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이 저런 자들로 가득한데 이런 책으로 무슨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겠느냐고 하더군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조차 하찮게 여긴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인류가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진화는 그 정도로 무모한 사람들을 솎아냅니다. 어느 시대에나 그런 사람이 조금씩은 있게 마련입니다(미국 대도시에는 좀 더 많아 보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의 행동이 언론과 대중에게 과도하게 주목받는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은 뉴스거리가 아니니까요.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매일같이 남에게 도움을 베푸는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옥상의 저격범 한 명입니다. 저는 사악하고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이 나면서부터 늘 사악하고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여기며 살아서는 안 된다고 굳게 믿습니다. (p.9)
예전에 미국에서는 인도에 여행 갔다 온 사람들만이 거지 얘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뉴욕 시내만 걷더라도 구걸하는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공손하게 손을 벌리는 사람도 있지만 사납게 옷을 부여잡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숙자와 거지가 급증한 데는 주택 임대료 상승, 실업, 약물 및 알코올 남용, 가족 울타리 붕괴, 레이건 정부의 복지법 개악과 주택 자금 삭감 등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 체제의 본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노숙자가 증가한 원인보다 사회가 노숙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수가 레이건 정부 들어 부쩍 늘기 시작했을 때 처음 나타난 반응은 충격이었습니다.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요구가 뒤따랐고요. 하지만 그 충격은 곧 사그라들었습니다. 《타임》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노숙자를 피해 장애물 달리기를 하고 길거리에서 걸인에게 시달리기를 여러 해, 도시민들은 이제 동정 대신 경멸의 눈길을 보내며 더는 이들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다."
노숙자는 미국의 평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나마 지방 정부에서는 여러 번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연방 차원에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 말에 연방 정부는 주택 건설에 해마다 80억 달러를 지출했습니다(이에 반해 노숙자가 훨씬 드물던 카터 행정부는 320억 달러를 지출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소득세는 꾸준히 감소하여, 과세 소득이 1년에 20만 달러를 넘는 최고 부유층조차도 연방 소득세율이 24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1979년 세율로 과세했다면 820억 달러를 더 걷을 수 있었을 테고 주택 예산을 삭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집 없는 사람을 돕기보다 부유층의 세금을 깎아주려 드는 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 할 수 없습니다. (p.55-56)
벌거벗은 이기심이 불러들인 램프의 요정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다들 '일등이 되어야 한다'라는 사고방식에 물들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여기고 타인도 나를 그렇게 여길 거라 넘겨짚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기회만 있으면 이용하려 들 것이라 예상하여 내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자고 생각합니다. 이런 예상은 현실이 됩니다. 서로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단기적 이익을 희생하려 들지 않는 사람들과 협력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소속감도 가족의 유대감도 고용주에 대한 충성도 아닌 오로지 이기심이라는 약한 끈으로 묶인 고립된 개인의 연합이 좋은 사회일 리 만무합니다. 이런 사회는 시민 개인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라는 목표조차 달성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뿐 아니라 부자의 '생명, 자유, 행복 추구'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로버트 벨라가 《미국인의 사고와 관습》에서 말합니다. "무력 공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사적인 삶도 풍요로울 수 없다. 낯선 사람을 믿지 못하고 자기 집을 요새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p.65)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을 밝힌 책 중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았고 지금도 높이 평가받는 것은 1904년에 출간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입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베버는 종교적, 윤리적, 경제적 삶을 논하는 동서고금의 수많은 문헌을 읽은 뒤에 자본주의 정신의 독특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이 유달리 탐욕스러운 것은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국의 관료, 고대 로마의 귀족, 근대 농민은 소유욕에 관한 한 아무런 차이도 없다." 자본주의의 독특한 점은 소유 자체를 윤리적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돈과 소유의 가치를 논할 때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졌습니다. 최소한의 돈과 소유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뜻했으며 넉넉한 돈과 소유는 드넓은 영지, 하인, 향락, 여행, 거기다 애인을 만들고 정치권력을 쥐는 능력을 뜻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대가 되자 돈은 무엇을 살 수 있느냐가 아니라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받았습니다. 소득이 높아지면 사물의 자연적 질서가 뒤집힙니다. 무엇을 살 수 있느냐로 돈의 가치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얼마짜리인가로 물건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부호 앨런 본드는 반 고흐의 〈붓꽃(Iris)〉이 50만 달러짜리였다면 그토록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본드는 100배 가까운 금액을 지불하여 〈붓꽃〉을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으로 만들었습니다. 성공의 절정기를 달리는, 하지만 미술에 문외한인 그가 바란 것은 그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소유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파산한 뒤에는 눈높이가 낮아졌겠지만요.) 베버는 자본주의적 인간이 "막대한 양의 돈과 재화를 짊어지고 무덤 속으로 들어갈 생각만 하는 것을 자신이 평생 하는 노동의 목적으로 삼는"다고 말했습니다. 살기 위해 버는 것이 아니라 벌기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p.95-96)
미국을 오랫동안 관찰한 사람들은 돈벌이를 중시하는 것이 미국 문화의 두드러진 특징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알렉시 드 토크빌은 1835년에 출간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이 나라 사람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다며 "부에 대한 집착은 주된 동기로서건 아니면 부차적인 동기로서건 아메리카인의 모든 행동의 근저에 깔려 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미국 문화를 주제로 1855년에 출간된 책에서 독일의 저술가 페르디난트 퀴른베르거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교훈들이 "소에게서는 지방분을 짜내고 사람에게서는 돈을 짜내"는 철학이라고 조롱했습니다. 1864년에 토머스 니컬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토록 돈을 탐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이토록 돈을 떠받드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 미국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돈벌이 자체를 위해 돈을 버는 것이다. 이곳에서 돈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20세기 초에 미국을 두루 여행한 프랑스인 앙드레 시그프리드는 미국을 "사람보다는 물건을 생산하도록 구성되었으며 산출을 신처럼 떠받드는 물질만능 사회"로 규정하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미국에 비하면 유럽의 영혼은 아직 물질의 추구에 완전히 물들지 않았다." 훗날 영국의 정치사회학자 해럴드 래스키는 이렇게 잘라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기업인이 누리는 권력과 명성은 유례를 찾을 수 없다. …… 미국의 거물 기업인은 자본주의 시대 이전 유럽의 영주나 군인이나 사제에 버금가는 귀족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p.118-119)
키티 켈리는 로널드 레이건의 취임식 축하 행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로널드 레이건의 부유층 지지자들이 무리를 이룬 모습은 …… 레이건 시대가 어떻게 흘러갈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기다란 리무진, 바스락거리는 모피 코트, 화려한 드레스, 쇠똥만 한 보석 등에서 밝고 찬란하고 새롭고 소란스러운 부를 목격한다. 축하 행사는 나흘간 계속되었으며 취임 축하연이 103건 열렸다.
파티가 끝난 뒤에 식기가 도착했습니다. 레이건 부부가 백악관에 입성할 때 이미 백악관에는 식기가 1만 점이나 있었지만 낸시 레이건은 200세트를 새로 주문했습니다. 일곱 가지 스타일의 접시에 핑거볼, 램킨을 갖추었으며 접시마다 한가운데에 24K 황금 문양을 박았습니다. 백악관에서 20만 9,508달러어치 식기를 사들였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 것은 공교롭게도 같은 날 레이건이 연방 지원금을 받는 학교의 점심 급식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케첩을 채소에 포함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p.129)
복지 예산을 삭감하는 와중에 벌어진 이런 소비 행태에 윤리적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은 조지 길더의 《부와 빈곤》은 로널드 레이건의 부유층 지지자들에게 대응 논리를 제공했습니다. 길더는 부를 찬미하며 복지가 빈곤층에게 해롭다고 주장합니다. "빈곤층이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빈곤으로 박차를 가해야 한다." 길더는 머리말에서 데이비드 록펠러와 페기 록펠러의 배려와 신뢰에 감사를 표하더니 본문에서는 부자들을 이 사회의 '최대 은인'으로 칭송하며 은혜에 보답합니다. 길더를 비롯한 '레이거노믹스' 지지자들은 보잘것없는 농부의 삶이 아프리카 왕보다 낫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변주하여 80년대 갑부들이 벌어들인 부가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며 빈곤층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레이건이 물러나고 80년대가 저문 뒤에야 이 주장은 치밀한 경제 통계로 조목조목 논파됩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경제학 교수 폴 크루그먼이 미 의회 예산처 발표 자료를 토대로 계산했더니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 모든 가정의 세후 평균 소득 증가분의 60퍼센트는 상위 1퍼센트 부유층(4인 가족 기준으로 연평균 소득이 31만 달러 이상) 몫이었습니다. 게다가 상위 20퍼센트가 34퍼센트를 차지했으니 나머지 80퍼센트는 고작 6퍼센트를 나눠 가진 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크루그먼의 계산에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레이건 시절에 세율이 낮아졌다며 부자들이 세금을 예전보다 정직하게 신고한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해 보입니다. 통계 수치를 보면 기업 총수 연봉이—이것은 과세 당국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죠—그 기간에 엄청나게 치솟았으니까요. 심지어 비판자들조차 1980년대에 미국의 상위 1퍼센트의 소득 증가율이 다른 나라들보다 높았으며 80년대 말에는 상위 250만 명의 소득이 하위 1억 명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80년대 초와는 분위기가 한결 달라진 것이죠. (p.132-133)
이기심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생물학적 핵심 논리는 아래와 같습니다.현대인은 오래고 부단한 진화적 투쟁의 산물이다. 이 투쟁에서 어떤 사람들은 배를 채우고 살아남아 자손을 남겼고 어떤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하지만, 실패한 사람의 유전자는 인구 집단에서 사라진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승리 가능성을 극대화하지 않고 남이 승리하도록 돕는 이타주의자보다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기심 같은 형질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에 따라 이기주의자는 증가하고 이타주의자는 감소할 것이다. 결국 이타주의자는 한 명도 남지 않을 것이다(인류는 이미 장구한 진화 과정을 거쳤다).
위 구절은 여러 책과 언론 보도, 일상 대화, 신문의 독자 투고 등을 요약한 것입니다. 리처드 알렉산더 같은 학계의 지지자들도 맞장구칩니다. 사회생물학(인간과 동물의 사회적 행동에서 생물학적 근거를 찾는 학문)의 창시자 에드워드 O. 윌슨도 순수한 이타주의의 가능성을 부정했습니다.
(…)
사회적 포유류에게는 이기적이지 않은 행동이 쉽게 관찰됩니다. 가장 유명한 예는 돌고래가 부상당한 동료를 구해주는 장면입니다(이런 식으로 사람을 구해주어서 유명해졌죠). 돌고래는 숨 쉬려면 물 위로 올라와야 합니다. 돌고래가 심하게 다쳐 혼자 힘으로 수면까지 헤엄쳐 올라오지 못할 경우 동료들이 상처 입은 녀석을 에워싸 밀어 올립니다. 몇 시간 내내 그럴 때도 있습니다. 사회적 동물은 좋은 것을 함께 나눕니다. 늑대와 들개는 사냥에 참여하지 않은 무리와 고기를 함께 먹습니다. 침팬지는 어떤 나무의 열매가 익었는지 동료에게 알려줍니다. 집단 전체가 좋은 나무에 올라가 있을 때는 다른 침팬지들을 불러 모으려고 1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리도록 고함을 지릅니다. 사회적 동물은 위험이 닥쳤을 때 서로에게 경고합니다. 검은꾀꼬리와 지빠귀는 매가 나타나면 무리가 도망칠 수 있도록 자신이 매의 표적이 될 위험을 무릅쓰고 경고 신호를 보냅니다. 더 놀라운 사례는 아프리카 들개의 먹잇감인 소형 영양 톰슨가젤입니다. 톰슨가젤은 들개 무리를 보면 뻗정다리를 하고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뛰어다닙니다. 나머지 톰슨가젤은 이 경고 신호를 보는 즉시 달아납니다. 뻗정다리로 뛰면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이 톰슨가젤은 목숨을 걸고 위험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p.139-141)
시드니 멜런은 《사랑의 진화》에서 우리가 특정한 방식으로 뭉칠 때 경험하는 연대와 집단애의 특별한 감정을 언급하며 크리스마스 캐럴을 예로 듭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저도 잘 압니다. 저는 철저한 비종교인이고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지도 않았지만, 애들 학교에서 '성탄 축하의 밤'이 열러 다른 학부모들과 한목소리로 노래하다 보면 강렬한 정서적 반응을 느낍니다. 그럴 때면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합니다. 교가를 부르거나 심지어 국가를 부를 때도 같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멜런은 감정을 집단과 공유하면 감정이 강화되고 증폭되는 것으로 볼 때, 이 경험이 인간 본성의 유전적 요소를 촉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요소는 사회적 영장류로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전했을 테죠.
부모의 사랑도 극단으로 치달으면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위험할 수 있는데, 집단에 대한 충성심은 훨씬 치명적이고 광범위한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고삐 풀린 애국심과 민족주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범죄들을 낳았습니다. 히틀러 같은 독재자들은 이러한 심리적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외부인에 대한 증오를 부추김으로써 개인을 집단에 단단히 붙들어 맸습니다. '이런 수법이 정말 효과가 있겠어?'라고 생각하신다면 1934년에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당 전당대회를 찍은 레니 리펜슈탈의 기록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전당대회가 제2차 세계대전의 유혈참극을 일으켰고 유럽 대부분을 파괴했으며 아우슈비츠의 비극을 낳은 시초임을 알면서도 강력한 상징물, 화려한 광경, 자극적인 음악, 열정적으로 행진하는 나치당원들에게서 나타나는 일체감과 목적의식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히틀러가 주무르는 감정이 어찌나 강력한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의 실체를 잠시나마 잊어버릴 지경입니다. 우리와 달리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채 직접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이 '독일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리고 수많은 타인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p.158-159)
발렌베리와 쉰들러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감수한 사례는 이것 말고도 수천 건에 이릅니다. 야드바셈에는 온갖 사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자녀 세 명과 함께 살던 부부는 유대인 가족이 들어와 살도록 방 두 칸 중에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한 부유한 독일인은 유대인을 돕느라 재산을 다 썼습니다. 자녀를 여덟 명 둔 네덜란드인 어머니는 식량이 부족했던 1944년 겨울에 배를 곯아가며, 게다가 자녀의 식사까지 줄여가며 유대인 손님을 먹였습니다. 사무엘 올리네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나치는 그가 살던 폴란드 보보바의 게토를 '청소'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올리네르에게 달아나라고 말했습니다. 올리네르는 게토를 탈출했으며, 아버지와 함께 일한 적 있는 폴란드 농촌 여인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여인은 올리네르가 폴란드인 신분으로 위장하여 농장 일꾼으로 일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45년 뒤에, 이제는 캘리포니아 훔볼트 주립대학 교수가 된 올리네르는 유대인을 구해준 사람들의 상황과 성격을 연구하여 《이타적 성격》이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p.235)
윤리적 헌신은 사람을 감동시키지만 그 목표에는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은 여러분 중에서 일부는 실험동물이 아무리 고통을 받더라도 실험실에서 동물을 풀어주는 행위가 잘못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댐을 새로 짓든 안 짓든 국가가 사업을 계획하면 모든 국민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자신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결코 윤리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이타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할 것입니다. 이를테면 낙태 논쟁에서 저는 인간의 생명을 어느 시점부터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낙태 반대론자들의 견해에 반대하고, 낙태 시술을 하는 병원을 찾느라 애먹는 젊은 임신부의 감정이 무시당하는 현실을 개탄하지만, 낙태 반대론자들의 행동이 윤리적 동기에서 비롯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p.244)
사람들이 남을 도우려 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미국의 저술가 앨피 콘은 《인간 본성의 밝은 면》이라는 유쾌한 책에 이런 사연들을 담았습니다."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려 연못에 뛰어들다" 같은 제목으로 신문에 실리지는 않아도 우리는 사회에 이로운 행동을 일주일에도 수십 번씩 보고 행한다. 내 경험상 빙판길에서 자동차 바퀴가 헛돌면 금세 누군가 다가와 차를 밀어준다. 우리는 아픈 친구를 문병하려고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헤매는 관광객에게 길을 가르쳐주고, 울고 있는 사람에게 뭐 도와줄 게 없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경쟁 위주의 개인주의 윤리를 주입받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모든 행동은 매우 경이로운 일이다. 도심 보도블록 사이로 푸른 싹이 고개를 내밀듯 남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인간 본성의 증거들은 이런 행동에 대한 문화적 편견—또는 노골적 반대—에 도전한다.
(p.246)
영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리처드 티트머스는 4,000명 가까운 영국의 헌혈자들을 조사하여 《선물 관계》라는 훌륭한 책으로 펴냈습니다. 티트머스는 헌혈자들에게 왜 헌혈을 결심했는지, 왜 헌혈을 계속하는지 물었습니다.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대부분은 남을 돕기 위해서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래는 기계공으로 일하는 젊은 기혼 여성의 사례입니다.슈퍼마켓이나 체인점에서 피를 살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야 해요. 아픈 사람들이 침대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피를 달라고 부탁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피가 필요한 사람을 도우려고 시작했어요.
한 정비사가 존 던을 인용하여 짤막하게 대답합니다.사람은 섬이 아닙니다.
은행원이 말합니다.인류의 행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작은 기여라고 생각했습니다.
연금으로 살아가는 한 미망인이 대답합니다.다행히 제 몸이 건강하고 제 피로 다른 사람에게 건강을 되찾아주고 싶으니까요. 이 훌륭한 봉사에 동참하고 싶었어요.
(p.250-251)
윤리가 빛 좋은 개살구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도움이 안 되는 윤리는 의미가 없습니다. 윤리적으로 사는 것이 모두에게 재앙이 된다면, 그 윤리는—누가 설파했든—결코 고귀한 윤리가 아닙니다.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어리석은 윤리입니다. 윤리는 실용적입니다. 실용적이지 않으면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현실에서 쓸모가 없으면 이론에서도 쓸모가 없습니다. 짧고 단순한 도덕 규칙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윤리적 삶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리면 '쓸모없는 윤리'의 함정을 피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감안하여 윤리를 이해했다면, 실제로 삶의 나침반으로 삼을 수 있는 윤리를 찾기 위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따라서 윤리적 인생관은 우리가 쾌락을 추구할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에서 '~하지 말라'라는 계명을 새긴 돌판이 불쑥 튀어나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와 무관한 이상에 불과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윤리란 대체 무엇일까요? 윤리적 삶은 적극적인 목표 선택에서, 또한 이 목표를 이루는 수단에서 비롯하는 삶입니다. 그래도 아직 감이 잡히지 않을 것입니다. 안락한 삶을 목표로 삼는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윤리적 목표일까요? 윤리적 목표가 아니라면, 왜 아닐까요? 윤리적 목표라면,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되는 수단은 모두 윤리적일까요?
(…)
윤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내가 이 행동을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고 정당화할 수 있도록 행동하는 것입니다(윤리적 행동의 참뜻에는 이런 의미가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오로지 나 자신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목표만을 추구하는 행동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정당화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내 행복을 자신의 행복보다 중요하게 여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설령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는 동의하더라도, 이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그들은 내 행복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의 이익을 지키듯 그들도 자기 자신의 이익을 한사코 지키려 들면 결국 나의 이익 추구에 방해가 될 테니까요. (p.256-258)
윤리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필요와 욕구가 있으면서도) 저마다의 필요와 욕구가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여럿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윤리적으로 행동한다고 말하려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정당화는 (이론적으로) 모든 이성적 존재를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고대 이래로 여러 문화권에서 이것이 윤리의 근본 조건임을 깨달았지만 이것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사람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도덕철학 교수를 지낸 R. M. 헤어입니다. 헤어는 우리의 판단이 도덕적이려면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모든 가능한 상황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 상관없이 그 판단을 적용할 마음가짐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판단을 적용했을 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 손해가 되는지도 상관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내가 어떤 일을 할지 고려할 때 나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이때 각자의 성향을 고려해야 합니다—모든 사람의 처지에 서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윤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윤리적 사고의 가장 근본적 차원에서는 적의 이익을 친구의 이익처럼, 낯선 사람의 이익을 가족의 이익처럼 고려해야 합니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성향을 온전히 고려한 뒤에도 어떤 행동이 다른 모든 행동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 때만, 이것을 행하는 것은 나의 '의무'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가족애를 다지고 호혜 관계를 확립하고 증진하며 인과응보를 이룰 수 있는지도 길게 따져봐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모든 도덕적 선택 상황에서 이토록 복잡한 사고 과정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도덕 규칙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p.258-259)
깨끗하게 정돈된 주택에 사는 현대의 가정주부이든 가게 바깥의 흙바닥에 주저앉아 시간을 때우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든 삶의 목표 상실이라는 병을 앓는 것은 같습니다.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 본성입니다. 다른 동물에게서, 특히 인간과 비슷한 사회적 포유류에게서도 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좁은 콘크리트 우리의 쇠창살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동물원에서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험실의 삭막한 철제 우리에 갇힌 원숭이나 몸 돌리지도 못할 만큼 좁은 공장식 축사 우리에서 몇 달을 지내는 돼지도 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암퇘지에게 필요한 것은 먹이와 누울 수 있는 따뜻하고 마른 장소만이 아닙니다. 이런 동물들이 끊임없이 우리 창살을 갉아대거나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을 동물행동학 용어로 '정형행동'이라 합니다. 삶에서 목표가 사라진 자리를 어떻게든 메우려는 것입니다. (p.294-295)
서구 사회의 경쟁 중시 풍토를 비판적으로 연구한 앨피 콘은 많은 운동선수들이 최고의 성공을 거둔 뒤에 허탈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코치 톰 랜드리가 말합니다.심지어는 슈퍼볼에서 우승한 바로 그 순간에―특히 승리한 그 직후부터―항상 그다음 해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만약 "승리는 모든 것이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그 "유일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인생에 있어 별 의미가 없는 악몽이며 공허함이다.
(p.303)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신과 문을 두드립니다. 1976년까지 20년 동안 정신과를 찾은 미국인 수가 세 배로 늘었습니다. 이런 추세는 젊고 교육 수준이 높은 도시 전문직을 중심으로 점차 사회 전반에 퍼졌습니다. 저는 뉴욕 대학 철학과 초빙 교수 시절인 1973년에 이런 현상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뉴욕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정신과를 찾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뉴욕 대학 교수들과 또한 그들의 배우자와 친분을 쌓으면서 그중 상당수가 '매일같이' 정신과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
문제의 해결책을 내면에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테일러가 시시포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 두 번째 방법, 즉 시시포스가 언덕 위로 바윗돌을 굴려 올리고 싶어 하도록 신이 그에게 불어넣은 신비한 힘을 얻으려 합니다. 이에 반해 세상에 나아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으라는 저의 제안은 내면을 바꾸기보다는 신전을 지어 바깥세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이러한 객관주의적 입장에 대해 철학적 정당화를 제시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 입장이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p.306-308)
자신이 받아들이는 가치와 기준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좋습니다만, 내려놓고 짐을 버리고 '자아'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찾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행동의 기회이자 한계가 되는 현실―이 아니라 내면에 시선을 돌리는 정신 분석학자들의 오류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상상의 판타지를 넘어선 의미를 찾으려면 이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고 현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잠시 살다 갑니다. 삶은 즐거울 수도 있고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을 넘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면, 주관적 경험만으로는 이 의미를 만들어낼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해야 할(가치 있는) 일이 없다면 삶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정하는 것은 윤리적 판단의 영역입니다. (p.312)
빈에 살던 유대인 프랑클은 제2차 세계대전 내내 나치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프랑클은 "미래―그 자신의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어버린 이 수감자들은 자신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패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살을 한 사람도 있었고, 노역을 거부하다 총살당하거나 매 맞아 죽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질병에 시달렸습니다. 생존을 위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얻으려면 삶의 목표가 필요했습니다. 이를테면 전쟁 전에 피신한 자녀나 연인과 다시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한 과학자는 중단된 연구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심지어 홀로코스트의 믿기지 않는 현실을 증언하기 위해 꼭 살아남고야 말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었습니다. 프랑클의 목표는 아우슈비츠에 끌려온 첫날 빼앗긴 자신의 첫 책 원고를 새로 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랑클은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합니다. (p.313-314)
다양한 이상을 위해 평생 운동한 이유를 물으면 헨리 스피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세상의 고통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줄이고 줄여도 사라지지 않는 고통을 항상 생각하다 보면 우울해질 법도 하지만 스피라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습니다. (퍼듀를 겨냥한 광고 하나는 '안전한 닭고기 따위는 없다'라는 제목 아래 콘돔에 싸인 닭 사체 사진을 실었습니다.) 사실,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우울증에 빠질 여유도 없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묘비에 어떤 문구를 새기고 싶으냐고 묻자 스피라는 '그는 티끌을 모았다'라고 새기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뉴욕을 방문할 때면 스피라가 고양이와 함께 사는 어퍼웨스트사이드의 임대 아파트에서 머뭅니다. 그때마다 스피라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을 짜고 다음 캠페인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힘을 얻습니다. (p.328-329)
이 사람들처럼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은 윤리적 삶의 특징입니다. 헨리 시지윅의 인상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우주적 관점"을 채택한 것이죠. 물론 이 표현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범신론자가 아닌 다음에야 우주 자체가 관점을 가진다고 생각할 리 없으니까요. 제가 말하는 우주적 관점은 최대한 모든 것을 포괄하되, 우주가―또는 감각 있는 존재가 아닌 개체가―의식을 가졌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태도를 취하지는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고통과 쾌락은 우리에게나 남에게나 똑같으며 남의 고통을―단지 '남'이라는 이유로―외면할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을 어떻게 정의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과 쾌락을 느낄 능력이 있는 한 말입니다.
우주적 관점을 채택한 사람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엄두가 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권태를 느끼지 않으며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심리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이 세상에 (당하지 않아도 될) 고통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비극적 아이러니이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곳입니다. 영양실조로 발육이 부진하거나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감염으로 죽어가는 아이, 종이 상자로 몸을 녹이는 노숙자, 재판 없이 구금된 양심수, 인류를 위협하는 핵무기, 누추한 수용소에서 몇 년째 살아가는 난민, 비좁은 우리에 갇혀 몸을 돌리지도 다리를 뻗지도 못하는 가축, 철제 올무에 다리가 낀 모피 동물, 인종이나 성별이나 종교나 성적 취향이나 기타 부당한 이유로 죽임 당하고 매 맞고 차별받는 사람, 부자들의 하찮은 요구를 만족시키려고 잘려나가는 고목, 갈 곳이 없어서 가정 폭력을 견뎌야 하는 여인, 이러한 무수한 고통이 사라지기 전에는 우리의 임무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하지 않아도 될 고통이 모두 사라진 뒤에는 어떻게 삶에서 의미를 찾을까' 하는 문제는, 철학적으로는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는 무의미한 물음입니다. (p.330-331)
역사에서 단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면, 그것은 윤리적 동기에서 행동하는 사람들이 탐욕과 개인적 야망에 이끌리는 자들 못지않게 우리의 민주주의적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나마 후자에 대해서는 대비를 하고 있으니 오히려 전자가 더 위험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거대 담론을 내세우며 자신이 모든 고통의 원인과 유일한 해결책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p.334)
영겁의 시간과 비교할 때 인간의 존재는 찰나에 불과하지만, 우주적 관점을 취할 수만 있다면 삶에서 의미를 찾을 때의 난점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개발도상국의 작은 마을이 빚더미에서 벗어나고 식량을 자급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에 참여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사업이 눈부신 성공을 거둔 덕에 주민들은 예전보다 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자녀도 덜 낳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한 일에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천 년이 지나면 이 사람들은 모두 죽었을 테고 이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당신이 한 일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일으킨 변화가 눈덩이처럼 커져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훨씬 거대한 변화를 낳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영원히, 또는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헛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제4의 차원으로 간주한다면 우주를 (감각 능력 있는 생명체가 존재한 모든 시간에 대해) 4차원의 존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서 무의미한 고통을 줄임으로써 4차원 세계를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나은 곳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다른 장소나 시간에서 고통을 증가시키거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한 우리는 우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p.342-343)
그럼에도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이고 사회적·생태적 파국을 막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먼 유토피아적 미래를 상상하며 허송세월할 여유가 없습니다. 수많은 인간과 동물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숲이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구는 여전히 손쓸 수 없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3장에서 보았듯, 온실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나일 강 삼각주와 벵골 삼각주에서만 4,600만 명의 보금자리와 목숨이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정부가 변화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릴 수도 없습니다. 자기를 당선시켜준 유권자의 대전제를 뒤흔드는 것은 정치인에게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만일 인구의 10퍼센트가 의식적으로 윤리적 입장에 서서 행동한다면 이로 인한 변화는 정부의 어떠한 변화보다 의의가 클 것입니다. 삶에 대한 윤리적 태도와 이기적 태도의 차이는 우파 정책과 좌파 정책의 차이보다 훨씬 근본적입니다. (p.347-348)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 민음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덮고 있었다. (p.7)
거울 속에는 저녁 풍경이 흘렀다. 비쳐지는 것과 비추는 거울이 마치 영화의 이중노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등장인물과 배경은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게다가 인물은 투명한 허무로, 풍경은 땅거미의 어슴푸레한 흐름으로, 이 두 가지가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세상이 아닌 상징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었다. 특히 처녀의 얼굴 한가운데 야산의 등불이 켜졌을 때, 시마무라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아득히 먼 산 위의 하늘엔 아직 지다 만 노을빛이 아스라하게 남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먼 곳까지 형체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색채는 이미 다 바래고 말아 어디건 평범한 야산의 모습이 한결 평범하게 보이고 그 무엇도 드러나게 주의를 끌 만한 것이 없는 까닭에, 오히려 뭔가 아련한 커다란 감정의 흐름이 남았다. 이는 물론 처녀의 얼굴이 그 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차창에 비치는 처녀의 윤곽 주위를 끊임없이 저녁 풍경이 움직이고 있어, 처녀의 얼굴도 투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정말로 투명한지 어떤지는, 얼굴 뒤로 줄곧 흐르는 저녁 풍경이 얼굴 앞을 스쳐 지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 제대로 확인할 기회가 잡히지 않았다. (p.12-13)
눈이 쌓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리라, 일부러 도랑을 내어 목욕통에서 넘치는 뜨거운 물이 여관의 벽을 따라 흐르게 해놓았는데 현관 앞에서는 얕은 샘물처럼 퍼졌다. 검고 늠름한 아키타 개가 그곳의 댓돌 위에 올라앉아 오래도록 그 물을 핥고 있었다. 창고에서 꺼내온 손님용 스키를 내다 말리느라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더운 김으로 달착지근하고, 삼나무 가지에서 공동탕 지붕으로 떨어져 내리는 눈덩이도 따스하게 모양이 일그러졌다.
마침내 섣달이 지나 정월이 되면 저 길이 눈보라로 보이지 않게 된다, 눈바지에다 고무장화, 망토를 걸치고 베일을 쓴 채 객실에 다녀야 한다, 그 무렵의 눈은 한 자나 높이 쌓였다고 말하며 언덕 위 여관 창으로 여자가 새벽녘에 내려다보던 비탈길을 시마무라는 지금 내려가고 있었다.
길가에 높게 널어놓은 기저귀 밑으로 국경의 산들이 보이고 반짝거리는 눈이 한가로웠다. 새파란 파는 아직 눈에 파묻히진 않았다.
논에서 마을 아이들이 스키를 타고 있었다.
도롯가의 마을로 들어가니,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나직이 들려왔다.
처마 끝 작은 고드름이 앙증맞게 빛나고 있었다. (p.44-45)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 하고 눈 온 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고마코가 말한 적이 있었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다소 소질은 있다 하더라도 복잡한 곡을 악보로 독학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서도 자유자재로 켤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강한 의지로 노력을 거듭했음에 틀림없다.
시마무라에겐 덧없는 헛수고로 여겨지고 먼 동경이라고 애처로워도 지는 고마코의 삶의 자세가 그녀 자신에게는 가치로서 꿋꿋하게 발목 소리에 넘쳐나는 것이리라. (p.64)
개울을 따라 이윽고 너른 벌판으로 나오자, 신기하게 깎아지른 정상으로부터 완만하고 아름다운 사선(斜線)이 멀리 산기슭까지 뻗어내린 능선 위에 달이 떠올랐다. 들판 끝, 단 하나의 볼거리인 그 산의 온전한 모습을 엷게 노을진 하늘이 짙은 남빛으로 선명하게 그려냈다. 달은 아직 흐릿하여 겨울밤의 차고 깨끗한 느낌은 없었다. 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하늘이었다. 산자락에 펼쳐진 들판이 거침없이 좌우로 드넓게 뻗어나가 강가에 거의 닿을 만한 지점에 새하얀 수력발전소 같은 건물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황량한 겨울 차창 밖에서 어슴푸레 저물어갔다.
창은 스팀 온기로 흐려지기 시작하고 밖을 흐르는 들판도 어둑해짐에 따라 다시 승객 모습이 유리창에 반쯤 투명하게 비쳐졌다. 그때의 저녁 풍경 거울의 장난이었다. 도카이도 선과는 달리 너무 오래 사용하여 낡고 색이 바랜 구식 객차가 서너 차량 정도만 연결되어 있는 모양이다. 전등도 어둡다. (p.76)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준 교토 산(産)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 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p.134)
아아, 은하수, 하고 시마무라도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순간, 은하수 속으로 몸이 둥실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은하수의 환한 빛이 시마무라를 끌어올릴 듯 가까웠다. 방랑중이던 바쇼가 거친 바다 위에서 본 것도 이처럼 선명하고 거대한 은하수였을까.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光雲)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p.142-143)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 앤드루 포터 / 문학동네
"그런데 뭐에 홀려서 우리한테 그런 문제를 내신 거예요?"
그가 빙그레 웃었다. "자만심은 물리학자에게 있어 가장 큰 방해 요인이지요." 그는 스토브에서 주전자를 들어 도자기 포트에 뜨거운 물을 옮겨 부으며 말했다. "뭔가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발견의 기회를 없애버리게 되니까요."
"제가 잘못 풀었으면, 그러니까, 제가 맞지 않았으면 말이에요. 저를 왜 이곳에 초대하셨어요?"
그는 거실로 걸어와 내게 찻잔을 내밀었다. "시험을 끝낸 유일한 학생이었으니까."
나는 그를 쳐다봤다.
"헤더는 풀이를 제출한 유일한 학생이었어요." 그가 말했다. "그것이 시험이었어요. 헤더는 통과했고."
"그럼 이제 저는 A를 받게 되나요?"
"아뇨. 차를 좀 얻어 마시게 되지요."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p.92-93)
나는 여자친구에게, 나중에, 칼러 씨가 가고 난 후에, 내가 밖으로 나가, 그의 폰티악의 비닐 카시트에서 유리 파편을 털어내고, 거리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을 쓸어담기 시작했노라고 말한다. 석회석 벽돌은 여전히 차 바닥에 있었다고.
잠시 후, 칼러 씨가 집에서 나오더니 내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그것은 이후 좀체 내 마음을 떠날 줄 모르는 말이다―그는 말했다. "얘야, 이 일은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란다." [강가의 개] (p.154)
태너와 내게는 좋은 여름이었다.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금요일 밤이 오기 전까진 거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낮에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호러영화를 보고 아이스티를 들이부었으며, 밤이면 태너가 모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할 일을 계획했다. 우리가 시간을,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부모님들은 말했는데,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터였기 때문에, 벌써 우리는, 우리가 별 볼일 없음의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여름은, 우리가 아직 용돈을 받고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릴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었다. [외출] (p.170)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진행성 양쪽 귀 난청으로, 그 말은 태어날 때는 아무 이상이 없거나 한쪽 귀에만 문제가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양쪽 귀가 다 안 들리게 된다는 의미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귀가 안 들리던 아이들, 자기들의 청력이 언젠가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덧없는 희망을 품어본 적 없는 아이들보다 가르치기가 더 힘겹다. 그러나 이런 모습, 자기들이 읽는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하지 않은 발음으로나마 입 밖으로 내어보려고 무던히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는 이 아이들을 견디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어진다. [머킨] (p.183)
호세는 마이크를 잡고 마이크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한 다음, 연단 뒤에 서서 자신이 낭송할 시를 꺼낸다. 나는 후원자들의 표정으로 그들이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순간 내게 중요한 것은, 그녀가 내게 허락하는 동안 그녀를 곁에 안고, 그곳에 린과 함께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우리 둘은 다만 멀리서 지켜본다. 호세의 입술을, 갑작스레 치몰리는 그의 이맛살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언어를 말하여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소통할 수 없는 한 소년을. [머킨] (p.215)
남은 오후 시간, 나는 내 방에서 우리 가족의 느리고 꾸준한 종말의 과정을 반추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구름이, 정확히 우리집만한 크기와 모양의 구름이 우리에게 드리운 것 같았고, 우리 미래를 엮어낼 복잡한 요소들은 그 이전과는 전혀 달라질 것 같았다. 심리학자들이 어린 시절 누나와 내게 건넨 책들에는, 부모 중 하나가 죽게 되면 그 자식들은 절대 다시 행복해질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이것이 누나의 경우라고 이해했고 가끔은 어머니의 경우라고 이해했다. 삶은 계속되지만 달라졌다. 더 물러졌고, 더 지루해졌다. 즐거움은 덜해졌고 고통은 그 구렁텅이의 깊이가 한없어진 듯하다. 그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을까 늘 경계를 해야 한다. 그날 오후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나는 누나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그 구렁텅이의 가장자리에서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러 빠질 마음을 먹지는 않으나, 그것의 존재로 인해 늘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구렁. 이제 누나는 마침내 그 안에 빠지기로 마음먹어버린 것 같았다. [폭풍] (p.240)
두 여자의 우정은, 중년 부인들 사이에 생기는 대부분의 우정이 그렇듯이, 공통 관심사, 이런저런 소문,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나 남편의 무심함에 대한 걱정거리들을 토대로 삼고 있었다. 그 둘은 친했지만 내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 관계에 육체적인 요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그 둘이 포옹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에게 병이 생긴 후에도, 몇 주가 지나도록 그 둘은 한 번도 서로를 안아본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집 뒤쪽 테라스에서 어머니와 벤틀리 부인이 나눈 포옹―여러 차례에 걸친 열정적인 포옹―이 위로의 마음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상실을 경험한 사람을 위로하는 따뜻한 포옹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다음 해에 내가 국어 선생님이 과제로 내준 『채털리 부인의 연인』에서 읽게 될 포옹이었다.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포옹이었다. 사랑의 포옹이었다. [코네티컷]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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