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이란 무엇인가 / 스티븐 스미스 / 리시올
조세는 뜻밖에도 대중음악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다.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1966년 곡 '택스맨'에서 비틀스는 틈만 나면 세금을 떼어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세상을 노래했다. 같은 해 비틀스의 동년배 밴드 킹크스도 '서니 애프터눈'이라는 싱글로 히트를 쳤는데, 이 노래에서 이들은 세무서 직원이 자기네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남은 거라곤 여름날 햇살이 드는 무료한 오후뿐이라고 한탄했다.
이렇게 세금이 대중 음악에 강력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까닭은 무엇일까? 답은 명확하지 않다. 성공적인 대중 음악가들이 자기 삶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것들을 소재로 곡을 쓰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젊고 가난했을 때 그것은 사랑이나 불안, 그리고 어쩌면 마약이었으리라. 하지만 일단 명성과 부와 끝없는 순회공연의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게 되면 이들에게 가장 직접적이고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삶의 고단함, 이혼, 썩어 빠진 매니저…… 그리고 세금 명세서 아니었을까. (p.13-14)
그렇다면 세금이란 무엇인가? 그렇다, 우리는 알고 있다. 세금이란 정부가 우리에게서 떼어 가는 돈이다. 세금은 우리가 다른 데 소비하는 돈과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
형식적으로 정의를 내려 보면 세금이란 국가가 집행하는 강제적 지불로서, 그 반대급부로 특정한 재화나 서비스에 대한 어떤 직접적인 청구권도 부여하지 않는다.
이 정의의 뒷부분이 중요하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세금이 국가나 국영 기업이 판매하는 재화와 서비스에 부과되는 가격, 수수료, 요금 등과 구별되기 때문이다. 가격, 수수료, 요금 등도 공적 수입을 낳기는 한다. 하지만 돈의 지불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인가가 주어진다는 사실은 그런 지불이 자발적일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해당 재화나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은 돈을 지불할 것이며 그가 자기 돈을 다른 목적에 쓰고자 한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 민간 부문과 다를 바가 없다. 이와 반대로 조세에는 강제성이 개입하며, 이 점이 조세를 오늘날 민주주의 하에서 이루어지는 다른 대부분의 행위와 본질적으로 구별 짓는다. 조세에 대한 대중의 반감은 상당 정도 이러한 강제성에서 유래하는 게 틀림없다. (p.15-16)
각국의 현행 조세 체계는 오랜 진화 과정의 결과물이다. 세금은 일단 도입되면 정치적 압력, 세수 수요, 현실에서의 작동 경험에 반응해, 그리고 매우 드물게는 근본적인 검토와 현대화 노력을 통해 수정된다. 낡은 세목들은 같은 규모의 세수를 보다 싸고 효율적으로 거두어들일 수 있는 현대적인 조세 장치가 있는데도 순전히 조세 개혁에 따른 정치적 위험 때문에 살아남는 경향이 있다. 새로운 세목들은 명확한 구상과 합리적으로 정의된 근거에 따라 도입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온갖 기괴함과 복잡함으로 덧칠되기 일쑤다. 그 결과 각국의 조세 체계는 톨스토이의 불행한 가정처럼 불행으로 나아가는 각자의 길로 들어서곤 한다. (p.25-26)
우리는 특정 집단의 개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그들이 세금 부담을 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농부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그 세금으로 인해 가난해지는 것은 농부고, 구멍가게 주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면 구멍가게 주인의 삶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말이다. 조세 정책에 대한 경제 분석이 제공하는 중요한 통찰 하나는 이러한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세금의 실질적 부담은 법적인 세금 납부 의무가 존재하는 곳과는 전혀 다른 곳에 돌아갈 수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조세의 '형식적' 귀착과 '실질적'(또는 '경제적') 귀착이 구별된다. 형식적 귀착이란 세금을 납부할 법적인 의무를 누가 지느냐 또는 세금이 누구에게서 걷히느냐의 문제다. 실질적 귀착은 세금 부담을 지는 것이 궁극적으로 누구냐는 질문과 관련된다. 실질적 귀착이라는 문제를 고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세금 때문에 누구의 삶의 수준이 떨어지겠는가?'라고 묻는 것이다. 그 사람이 해당 세금의 형식적 납부 의무자와 늘 일치하지는 않는다. 세금의 부과는 재화, 노동, 자본 시장의 수요 또는 공급에 영향을 미치고, 그럼으로써 가격, 임금, 이자율을 변경시킨다. 이와 같은 경제적 조정은 조세의 부담을 그 형식적 귀착자에게서 분리시키는 효과를 내고, 그리하여 세 부담의 전부 또는 일부가 법적으로 세금을 내야 하는 회사나 개인에게서 [다른 누군가에게로] 전가된다. (p.50-51)
조세의 왜곡 비용이 명확한 경우도 있다. 1696년에 잉글랜드에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창문 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가 도입되었을 때 이는 측정하기 쉽고 납세자의 부에 거의 비례해 세 부담을 분배할 수 있는 세금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세금은 도입된 뒤 부작용을 낳았다. 주택 소유자들이 세금을 줄이고자 집의 창문 일부를 틀어막았던 것이다. 이렇게 막힌 창문 몇몇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데, 이는 세금이 어떻게 개인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 주는 뚜렷한 증거다. 이렇게 세금 때문에 창문을 막아 버리는 행위의 비용은 명확하다. 사람들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일정량의 빛과 안락함을 희생하며, 세금이 부과되지 않았더라면 누렸을 것보다 더 어둡고 덜 매력적인 집에서 사는 것이다. 이러한 편의성 희생의 비용을 측정하려면 막힌 창문이 있는 집에 살면서 사람들이 겪는 불편함과 불쾌함의 양을 알아야 하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그 불편함이 가질 수 있는 최댓값을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자기 집 창문을 막은 사람은 그로 인해 잃게 된 빛과 편안함보다 절세에 더 값어치를 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즉 이런 사람들에게 불편함의 가치는 절세액과 같거나 그보다 작을 것이므로 그 절세액이 희생된 편리함의 최댓값이라 할 수 있다]. (p.76-77)
그러니까 조세 정책은 형평성과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목표 사이에서 일정한 타협을 포함하게 마련이다. 둘 사이 어디에 균형을 맞출지는 우리가 조세 정책에서 분배적 형평성에 얼마나 비중을 두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형평성에 비중을 더 많이 둘수록 노동 시장의 비효율과 왜곡이라는 비용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득 면세점을 높게 잡으면 누진성이 높아지지만 노동 시장의 왜곡은 더욱 커진다. 반면 면세점을 낮추면 누진성이 덜하지만 한계 세율을 낮출 수 있어 왜곡은 줄어든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은 이와 같은 형평성과 효율성 간의 상충 관계를 새는 물통에 비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득은 부유한 사람들에게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전될 수 있지만, 여기 사용되는 물통에 구멍이 나 있어 이전 과정에서 일정액의 소득이 유실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큰 구멍을 용인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높은 경제적 공정성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고 쉽게 단정하기에 앞서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오쿤 자신은 가난한 이들에게 이전되는 1달러당 60센트까지는 구멍을 용인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왜곡 효과가 최소화된 소득세는 소득세라고 할 수도 없다. 사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소득세가 인두세다. 이는 한계 세율이 0이고 소득 면세점이 음의 큰 값을 가져 모든 납세자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액수의 세액을 지불하는 극단적인 형태의 소득세다. 모든 세금이 이러한 무왜곡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는—가장 극단적인 자유시장주의자 중에서도—거의 없다. 소득 관련 세금이 경제적 비용을 야기하기는 하지만 세 부담 분배의 공정성은 사회적 유대와 공공의 동의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조세 정책을 입안할 때 모든 결정은 형평성과 효율성이라는 상충하는 주장을 현실적으로 적절히 배합해 이루어진다. 정치적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도 주로 양자 간의 균형을 어디에서 잡을 것이냐에 대해서다. (p.98-99)
사람들이 내야 할 세액을 명확히 결정해 주는 것은 조세 정책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조세 정책의 진정한 실효성은 사람들이 내야 할 세금을 실제로 내게 만드는 데 있다.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세수를 걷는 데 있어 조세 제도의 실무적인 작동과 집행은 조세의 구조와 세율만큼이나 중요하다. 성실한 조세 순응은 적절히 작동하는 국가를 혼란스럽고 비효율적인 국가로부터 상당 정도로 구별해 주는 요인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와 독일은 많은 세목을 공통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두 나라에서 조세 제도의 작동과 관련해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탈세의 정도다. (p.108)
"정부가 당신의 세금을 쓰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득 신고를 누락해 세금의 일부를 내지 않아도 무방하다." 1998년 오스트레일리아 국세청에 제출된 한 연구는 사람들에게 이 진술에 동의하는지를 물었는데, 놀랍게도 95%가 동의하지 않았다. 이렇게 통일된 반응을 이끌어 내는 설문은 거의 없다. 탈세에 관한 다양한 설문을 내놓는 다른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연구를 봐도 많은 나라에서 조세 순응에는 중요한 도덕적 요소가 있음이 확인된다. 납세를 일정한 도덕적 의무로 받아들이는 인구의 비율은 설문 문항의 구체적 형태에 따라 가변적이다. 위의 질문이 특별히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이 탈세에 대한 우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질문에는 개인들이 선출된 정부의 지출 결정을 취사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가정이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덜 유도적인 질문이 던져져도 인구의 상당 비율이 탈세는 옳지 않다며 거부하는 것으로 나온다. 여러 나라를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수행되는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s Survey)'는 탈세에 관한 설문을 실시해 왔다. 이를테면 '기회가 생겼을 때 속임수로 세금을 덜 내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이것이 얼마나 정당화될 수 있을지 등급을 매겨 달라고 하는 것이다. 벤노 토글러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럽 나라에서 응답자의 절반 정도가 그러한 부정행위가 '결코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답했다. 아시아 나라들은 조세 도덕률이 더 강력해 일본, 중국, 인도에서 응답자의 80% 정도가 그와 같은 견해를 보였다. (p.125-126)
그러나 모두가 조세 정책을 교활하고 냉소적인 행위로 본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에 출간한 주저 『국부론』에서 조세 정책이 따라야 할 네 가지 원칙 또는 '규범'을 내놓은 바 있다.
- 기여의 형평성: "한 국가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가능한 한 각자의 능력에 비례해, 다시 말해 국가의 보호 아래 각자가 획득하는 수입의 크기에 비례해 정부의 유지에 기여해야 한다."
- 조세 부담의 확정성: "각 개인이 납부해야 하는 조세는 반드시 확정적이어야 하고 자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즉 납세의 시기, 방법, 금액은 납세자와 기타 사람들에게 간단명료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납세 의무자는 어느 정도 징세인의 권력에 복종하게 되고, 징세인은 세금을 무겁게 부과할 수도, 모종의 선물이나 부수입을 갈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 지불의 편의성: "조세는 납세자가 지불할 수 있는 가장 편리한 시간에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징수되어야 한다."
- 비용의 최소화: "모든 조세는 국민의 주머니에서 끄집어내거나 아예 주머니에 들어가지 못하는 금액으로, 그것이 [실제로] 국고에 들어가는 금액을 최소한도로만 초과하게끔 만들어져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이 있다. 첫째, 조세를 징수하는 데는 많은 수의 관리가 필요하고, 그들의 봉급이 조세 수입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둘째, 조세는 국민의 근면을 방해하고…… 국민들이 훨씬 더 쉽게 납세할 수 있게 해 줄지 모를 자원의 일부를 감소시키거나 파괴해 버릴 수도 있다. 셋째, 탈세를 시도하다 실패하는 불행한 사람에게 몰수나 기타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조세는 그들을 종종 몰락시키고 그리하여 사회가 그들의 자본 운용으로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을 상실하게 만들 수도 있다. 넷째, 국민이 조세 징수인의 빈번한 방문과 짜증 나는 조사를 받게 함으로써 조세는 국민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번거로움, 억압을 가할 수 있다. ……이상의 네 가지 방식으로 조세는 국가를 이롭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부담을 국민에게 지운다." (p.141-143)
보통 경쟁은 효율성을 높이고 소비자 가격을 낮추는 경향이 있다. 이와 같은 기업들 간의 경제적 경쟁과 달리 나라 간의 재정적 경쟁은 결코 이로운 과정이 아니다. 특히 조세 도피처는 다른 나라들의 세율보다 낮은 조세 환경을 제공하는 자신의 능력을 한껏 활용하는데, 이곳들은 더 높은 효율성이나 어떤 적극적인 이점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나라들에서 부과하는 세금을 비껴갈 기회를 납세자들에게 제공할 뿐이다. 이와 같이 다른 나라의 조세 기반을 가로채기 위해 경쟁하는 나라들은 타국의 조세 수입 확보 비용을 증가시키고 사용 가능한 조세 정책의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그 나라들에 값비싼 부담을 얹어 놓는다. (p.170-171)
역설적이게도 조세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국제적 조정과 협력이다. 세율을 끊임없이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조세 경쟁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반 원칙에 여러 나라가 집단적으로 합의할 수만 있다면, 국제적 이동성 증대에 따른 과세 기반의 잠식 없이도 모든 나라가 세수를 늘리는 이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동성이 높은—그리고 아마도 거의 틀림없이 부유한—경제 주체들이 과세를 피할 수 있는 조세 제도, 그리하여 빠져나갈 수 없는 이들의 어깨 위에 세 부담이 얹히는 조세 제도에 형평성이란 있을 수 없다. 또한 무제한적인 국제적 조세 경쟁이 과세 기반의 일부를 침식하도록 허용하는 조세 제도에는 그 어떤 효율성도 없다. 조세 경쟁의 여지와 국제적 조세 도피처의 작동을 제한하는 것—여기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만들어 갈지에 대한 어렵고 지난한 국제적 논의는 다가오는 미래에도 여전히 조세 정책의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일 것이다. (p.172-173)
연과 실 / 앨리스 매티슨 / xbooks
나는 단어에 대해서, 그 밖의 몇 가지에 대해서 알았다. 좋은 글을 쓰려면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야심찬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 객관적이고 상세한 내용을 날카롭게 관찰한 다음 절제하며 표현하거나 아이러니를 섞으면 최소한 요란하고 추상적인 글만큼 효과적으로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내러티브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적어도 행위가 아닌 인물 중심의 이야기들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것—글로 표현된 내적 삶—이 중요했고, 따라서 나는 그런 이야기를 더 좋아했다. 그러나 내러티브가 내면의 삶에 대한 것만은 아니고, 단편이나 장편소설, 회고록에 등장하는 행위가 경찰이나 군사 전략가의 흥미는 끌지 못할지라도 여전히 행위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러티브의 본질은 단순히 내면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실제 세상에서 내적 상태와 동등한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한 여자가 친구의 행운을 보면서 속으로만 질투할지 모르지만 소설에서는 탐나는 귀중품을 배수관에 빠뜨린다. 그녀가 잠시 멈추고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을 휙 넘기며 친구에게 빌린 골동품 은팔찌를 슬쩍 떨어뜨리는 순간, 우리는 그녀의 분노를 느끼고 이해한다. 소설가라면 팔찌를 떨어뜨리는 부분을 창작할 것이고, 회고록 작가라면 실제 있었던 일, 감정을 드러낼 만한 일을 회상할 것이다. 나는 내러티브의 내면적인 면을 사랑했지만, 내러티브는 무엇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유형의 세계에 관한 것이다. (p.34-35)
내가 갖게 된 이중적인 인식—"억제 불가능하고 비이성적이고 강렬한 감정 같은 것은 없다/오로지 그런 감정밖에 없다"—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나는 너 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 되었을 때에는 결국 쓰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강렬한 감정과 상식이라는 인식의 두 가지 모순적인 상태를 모두 놓지 않음으로써 어느 정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감정은 진짜였고 나는 그것을 더 괜찮게 만드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방종과 통제, 즉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연과 조금씩 풀어 주다가 필요할 때는 잡아당기는 실이었다. 실은 연이 날아가게 놔두지만 놓쳐 버리지 않게 잡아 준다. (p.45)
나는 당신이 실제 삶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도 상관없다. 그것 때문에 다음 작품으로 지어낸 이야기를 쓰는 것이 꺼려지지 않는다면, 또 당신의 소설이 실제로 일어난 일과 얼마나 비슷한지 내가 듣지 않아도 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실제 삶을 바탕으로 소설을 쓴다면 당신 어머니의 이름만 바꾼 다음 있는 그대로 묘사하지는 말자. 허구의 인물에게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을 덧붙여서 실제 모델처럼 보이지 않게 만들고, 실제 모델이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을 그려 보는 습관을 들이자. 루이즈라는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면서 이름을 바벳으로 바꾸었다면 진짜 "루이즈"를 생각하거나 루이즈의 실제 집과 실제 들창코를 묘사하지 말자. 바벳에게 다른 집과 다른 코를 주자. 바벳은 루이즈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을 할지도 모르고, 그러면 소설이 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러면 루이즈를 위해서, 또는 루이즈에게 복수하거나 루이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쓸 때는 당신에게 아이디어를 준 사실이 아니라 소설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 (p.60-61)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본인조차 놀라게 만드는 것, 스스로도 신경 쓰고 있는지 몰랐던 것이 불쑥 나타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좋은 글은 썩 좋지 않은 상태를 몇 번 거친 다음에 나온다. 새로운 소설을 쓸 때 몇 번 고쳐 쓰기 전까지는 분명한 주제가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 문제에 대해서 쓰는 이유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어떤 소설이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 아주 서서히 깨닫는다. 소설을 쓸 때 창작 수업을 단순히 미술 수업으로 바꾼 다음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쓰면 배울 기회가 생긴다. 사실에 대해서 쓸 때에는 이미 잘 아는 주제가 아니라 모르는 주제를 찾자. 사건과 결과가 당신을 이끌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 줄지도 모른다. 좋은 글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위험을 감수할 때, 고군분투하고, 스스로를 놀래고,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때 나온다. (p.63)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이야기를 어떻게 지어낼 수 있을까? 몇몇 사람들의 생각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핵심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면서 누군가의 감정을 바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결과를 불러오는 일을 찾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바벳이 손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한 다음 손님이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세 페이지에 걸쳐서 설명할 생각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손님의 상처 받은 감정을 설명하는 대신 그녀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이야기하면 어떨까? 손님은 마음이 상해서 바벳의 집을 나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호텔에 묵게 되었는데, 요금을 낼 돈이 없어서 바벳에게 부탁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무엇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들까?—별로 신통치 않은 아이디어라도 쭉 적어 보면 그중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학생은 절연한 가족이 결혼식에서 마주치면서 두 사람 사이가 바뀌는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우리가 결혼식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방법을 깨달았다. 뭔가 사고가 일어나서 절연한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거나, 단순히 대화를 나누게 만들면 된다. 우리는 도움이 될 만한 사고 목록을 만들었다. 신부가 결혼을 그만두기로 한다, 신랑이 신부의 아버지와 싸운다, 요리 배달이 늦어진다, 샴페인 펀치가 쏟아진다, 사진사가…. 이렇게 하면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을 생각하다 보면 그중 하나가 감정적으로 딱 맞고 다른 행위나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복잡한 사건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써 보자. 다른 것도 언제든지 시도할 수 있다.
무작위적인 것으로 정신을 자극하자. 다음 장면에는 "엠(m)"으로 시작하는 물건이 등장한다고 정하면 그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게임을 하듯이 소설의 소재를 무작위로 정하자. 신문 기사, 사전에서 우연히 본 단어, 엿들은 구절, 무엇이든 좋다.
그래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경우 책상 앞에서 일어나서 익명성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가면 도움이 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써 보자. 마음속에 스쳐 지나는 생각을 메모하자. 유용해 보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다. 그림이나 조각을 보거나 음악을 들어도 생각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공연이나 전시회를 보러 가자. 아니면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p.67-69)
때로 당신이 원하는 사건은 인물의 삶 바깥에서 일어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망쳐 버리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라 적절한 순간에 갑자기 일어나서 모든 것을 바꾸는 평범한 사건(청혼하는 도중에 울리는 전화, 오해의 순간 아이가 친 사소한 사고) 말이다. 때로는 거미줄처럼 당신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에서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써 놓은 것을 열심히 읽으면서 무엇이 아직 나오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어떤 인물이 이미 어떤 행동을 했다면 그녀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아직 언급되지 않은 필연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그 목적 때문에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녀의 독특한 성격이 어떤 결정적인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혼란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실수로 이어질 수 있을까? (p.71-72)
소설 속 인물들은 잘못을 저지르고 문제를 겪어야만 흥미롭고 진짜 같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지루하게 들릴지 생각해 보자. "내 조카는 일류 법대에 들어가서 멋진 여자를 만나…." 애석한 일이지만 주인공이 나쁜 짓을 하고 불행을 겪어야만 들을 만한 이야기가 된다. 주인공이 나쁜 행동, 대담한 행동, 우스운 행동을 하면 독자들은 그 인물을 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할 것이다. 사랑하는 자녀가 고통을 겪으면 훨씬 더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서 경험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등장인물을 지나치게 보호하면서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등장인물에게 문제를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 학생이 예상했듯이 소설을 현실적으로 쓰면 주인공 소녀의 나쁜 행동이 불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현실에서는 보통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것이 좋다. 친구 사이에 오해가 있으면 빨리 해명할수록 좋다. 그러나 수많은 단편소설, 장편소설, 영화에서는 주제를 보여 주기 위해 오해를 지속시킬 뿐만 아니라 악화시킨다. 현실에서는 사고를 피해야 하고, 사고가 일어나면 얼른 행동을 취해서 더 이상의 재난을 막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소설에서 문제는 좋은 것이고 복잡해지면 더욱 좋다. 상황을 뒤죽박죽으로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이 실수를 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주고, 숨어 있는 욕망과 두려움과 욕구를 끄집어내고, 다음 사건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p.111-112)
울프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책도 요구한다. 이제 남녀 작가 모두가 일하는 여성에 대해서 쓸 때가 되었지만, 여성의 일에 대해 언급하는 수많은 책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즉 일이 사생활의 배경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나는 직업적 열정을 가진 여성들에 대한 소설과 회고록을 원한다. (일하는 여성에 대한 단편소설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조롭고 지루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성 인물이 도덕적으로 복잡하고 흥미롭기를, 선행도 악행도 모두 하기를, 자신이나 타인의 삶을 개선하거나 망치기를 바란다. 이제 실제로 여성 정치가, 의사, 군 장교, 판사, 기자, 경찰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이저벨 아처보다 선행과 악행을 행할 기회가 훨씬 더 많다. 그러나 연인과 가족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끼치며 어렵지만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보여 주는 진지한 글은 찾기도, 쓰기도 힘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책을 쓰라고 충고하기도 힘들다. (p.148-149)
내가 어렸을 때 글을 몰랐던 외할머니는 가끔 나에게 편지를 대신 써 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강아지나 토끼가 그려진 유선 공책을 가지고 왔고 할머니는 자기 자매들 중 한 명에게 보낼 메시지를 불러 주었다. 할머니는 이러한 방식에 익숙해 보였고, 나는 할머니가 왜 글을 모르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알기로 할머니들은 보통 읽거나 쓰지 못했다. 할머니가 동유럽에 살던 어린 시절에 여자라서 배우지 못했음을, 그리고 자식들이 가르치려고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음을 이제는 안다.
글을 몰랐던 할머니를 떠올리면 가슴이 무척 아프다. 글쓰기, 특히 여성의 글쓰기가 행운이자 축복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할머니 때문일 것이다. 글쓰기는 그것을 막으려는 온갖 장애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존재한다. 문화적·법적으로 강제된 문맹, 정부의 검열, 또는 지인과 친인척의 비공식적 검열처럼 명백한 것들 외에 글쓰기를 가로막는 또 한 가지는 자기검열이다. 나는 여러 해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고, 친구들을 관찰하고, 나 자신을 관찰하면서 특히 여성은 아예 글을 쓰지 않거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독자가 알아내지 못하도록 글을 씀으로써 자기 글을 검열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남성의 글(특히 전통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해 온 집단에 속한 남성의 글) 역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지만 자기검열, 즉 말하거나 글을 쓸 수 없다는 느낌은 여성이 더 자주 느껴 온 문제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써 왔던 문제이기도 하다. 여성이 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이 말하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설명하지 못한다). (p.253-254)
작가 초년생들은 자기 소설에 정신적인 과정을 흩뿌릴 때가 많다. 웅가르티노는 이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저것을 "궁금하게 여기고", 또 다른 무언가에 대해서 "공상에 잠겼다". 정신적 과정을 언급하면 이야기가 느리고 약해진다. 웅가르티노가 기억하고 궁금하게 여기고 공상에 잠기는 대상, 즉 만질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 기억하고 궁금하게 여기고 공상에 잠기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내러티브 자체는 기억하고 궁금하게 여기고 공상에 잠기는 것을 포함하는 정신적 과정의 결과이다. 우리 작가들은 내면에 무척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고, 우리가 무척 좋아하는 일, 즉 기억하고 궁금하게 여기고 공상에 잠기는 사람들에 대해서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앞서 이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작가들이 "웅가르티노는 여동생과 함께 산 정상에 올랐던 일을 아직도 기억했다"라고 쓰는 것은 작가로서의 자신감, 화자로서의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등장인물들이 산 정상에 오른 적이 있음을 독자에게 알려 주고 싶을 때 "몇 년 전 어느 아침, 웅가르티노와 여동생은 산 정상에 올랐다"라고 쓰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웅가르티노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 어차피 그가 등산을 기억하지 못하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등산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는 것은 곧 그가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야기 속의 모든 사건이 등장인물의 의식을 통과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생각과 관련된 표현을 쓰면 웅가르티노가 정신적 과정을 거치고 있음이 강조되지만, 다들 알다시피 주인공의 정신이 움직이는 방식이나 그가 공상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더 재미있다. (p.272-273)
당신의 글이 출판할 만하다고 결론을 내렸을 경우, 그다음으로 물어야 할 것은 당신이 독서를 충분히 하고 있는지, 충분히 했는지, 당신이 쓰는 종류의 글에 대한 원리를 뼈에 새겼는지이다. 당신이 단편소설을 쓰고 있다면 체호프, 투르게네프, 헨리 제임스, 제임스 조이스, 캐서린 맨스필드 같은 작가들—또는 적어도 그들 중 몇몇—부터 지금 이 순간에도 출판되는 흥미로운 단편소설집까지 전부 읽었는가? 장편소설, 시, 개인적인 에세이와 회고록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전부 다 읽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호기심을 가지고, 몇몇 작가들이 당신은 할 수 없는 (혹은 아직은 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지적 에너지를 가지고 책을 읽고 있는가? (p.332-333)
마지막으로 하나 더. 가장 좋은 의미에서 야망을 갖자. 글을 쓰자. 졸리고 멍할 때, 감수성이 풍부하고 마음이 약할 때 초고를 쓰자. 규칙과 일정을 정하든지, 집에서 나가든지, 바깥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든지, 무슨 방법을 쓰든 일정 시간 동안 방해를 차단하자. 그런 다음 아무리 말도 안 되고, 부끄럽고, 두서없고, 강렬하고, 불안정한 글이라도 떠오르는 그대로 쓰자. 독창적이고 의미 있는 글을 쓸 가능성은 당신이 내면에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선택할 수 있다면 계속해서 모르고 싶었을 부분을 얼마나 끄집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어마어마한 위험을 무릅쓴 다음 끈질기고 겸손하게 고쳐 쓰자. 당신의 연에 길고 튼튼한 실을 묶고, 1년 중 바람이 가장 심한 날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향해 연을 날린 다음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 (p.360)
여성, 정치를 하다 / 장영은 / 민음사
열아홉 살에 결혼하고 스무 살에 엄마가 된 시몬 베유는 가정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탐색했다. 마침 "1946년부터 여성들에게 법관 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주어졌다." 시몬 베유는 "판사가 되기로 했다." 1954년 5월에 검찰청 보좌관에 수습으로 지원한 시몬 베유는 검찰청 비서실장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기혼녀잖아요! 아이가 셋에다 그중 하나는 젖먹이라고요! 게다가 남편은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할 거고! 어째서 일을 하려는 거요?" 시몬 베유는 직업을 가지는 일은 "오로지 내 문제"임을 차분하게 설득했다. "자신의 삶"을 직접 말하는 시몬 베유에게 면접관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p.20-21)
법이 현실에서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조목조목 점검하는 시몬 베유의 능력을 눈여겨보는 정치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법무부 장관 장 푸아예는 1964년에 교정 행정국 근무를 마친 시몬 베유에게 "여성과 남성 간의 사법적 평등, 아동과 재산에 대한 권한"을 비롯해 "아이들이 이 가족 저 가족으로 떠도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법안의 초안을 작성하도록 했다. 당시 상법, 부동산법, 가족법을 비롯한 민법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개혁적인 법무부에서 변화를 위한 적임자를 찾은 것이다. (p.22)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다시 문학으로 돌아갔다. 1978년에 그녀는 독일 도서협회 평화상의 첫 번째 어린이책 작가로 선정되었다.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트 슈바이처, 마르틴 부버 등과 함께 수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주최 측에서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수상소감을 "짧게, 감사함"으로 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그녀는 분명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독일 도서협회 측에서는 정중하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수상 소감 연설을 다시 부탁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는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그녀는 체벌 교육 반대와 부모 폭력 금지 법안 발의를 호소하는 연설을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폭력을 포기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을까요? ……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폭력 속에서,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휘두르는 폭력 속에서 첫 가르침을 받았을까요?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렇게 배운 것들을 다음 세대에 전해 주었을까요?" 1979년에 스웨덴에서는 체벌 금지와 부모 폭력 금지 법안이 전 세계에서 최초로 공포되었다. (p.33)
"내가 런던 체류할 동안, 영어를 배우기 위하여 여선생 하나를 정했다. …… 팽크허스트 여자 참정권 운동자 연맹회 회원이요, 당시 시위 운동 때 간부였다. ……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여자는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절조(節調)하여 은행에 저금을 하라. 이는 여자의 권리를 찾는 제1조목이 된다." 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아니하고 영국 여자들의 선각(先覺)에 존경 않을 수 없다." (나혜석, 「베를린에서 런던까지」(「伯林에서 倫敦까지」), 《삼천리》, 1933년 9월) (p.37)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세상이 여성과 아이들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때마다 새삼 충격을 받았다." "열세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자신이 낳은 사생아의 출생 신고를 하러 등기소에 오곤" 했지만, 법은 그녀들의 편이 아니었다. 사생아를 낳은 "아주 어린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방치해서 죽게 만든 일이 발생"하자, "그 소녀는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다시 여성 참정권 시위 현장으로 향한다. 그 사이 딸들도 엄마와 함께 집회에 참여하는 동지로 훌쩍 자랐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투표권을 얻을 작정이에요." (p.40-41)
"고문 후유증은 개인이 혼자서 감당하거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추진중입니다. 이 중대한 원칙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켜질 것입니다."
2006년,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세계 최초의 남녀 동수 장관 내각을 출범시켰던 미첼 바첼레트는 국가 폭력 트라우마 치유와 관련해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사실 그녀 자신도 국가 폭력 생존자였다. "저는 분노와 원한이 제 삶을 통째로 잡아먹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썼습니다."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는 미첼 바첼레트 가족사와도 밀착되어 있다. (p.73)
미첼 바첼레트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그녀의 사생활을 캐내 공격하는 무리들이 등장한다. 미첼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저는 이혼녀입니다. 종교에 회의적입니다. 불가지론자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이 모든 조건들이 칠레의 대통령 후보자인 저에게 불리하다 못해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숨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미첼 바첼레트는 여성 정치인으로서 하고 싶은 말도 당당하게 밝혔다. "칠레는 여성을 오랜 시간 내팽개쳐 왔습니다. 이제 달라져야 합니다. 칠레 여성들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칠레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p.80)
사실 1961년에 미국 남부에서 첫 콘서트를 가졌을 때만 해도, 존 바에즈는 "시민권 운동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관객들이 모두 백인들이라는 점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존 바에즈는 공연장에 흑인들이 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부끄러웠고, 또 화가 났다. "그다음 여름 나는 만약 흑인들이 공연장에 들어오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면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기했다." 그러나 계약 내용이 달라진 이후에도 남부에서 열린 콘서트에 흑인들은 오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존 바에즈는 1962년에 남부 지역 흑인 대학들과 교회를 중심으로 투어 계획을 세웠다. 앨라배마의 버밍햄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처음 만났다. 비폭력 시민 불복종 운동을 호소하는 그의 연설을 들으며 그녀는 전율을 느꼈다. 마치 새로운 창법의 노래를 듣는 것만 같았다. "북쪽에서 온 백인" 가수 존 바에즈는 흑인 청중 앞에서 고민했다. "나는 내 음반에 실린 깨끗한 백인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해 시위 현장에서 운동가들과 동고동락했다. 음악을 정치에 예속시키지 말라고 훈수를 두는 사람들에게 존 바에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저는 정치적인 활동을 할 때 가장 행복해요. 음악은 두 번째입니다." 순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그에게 노래와 정치는 단 한순간도 분리된 적 없었다. (p.106-107)
존 바에즈는 평화와 인권 운동에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1993년, 그녀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서 방탄 조끼를 입고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2011년에 월가 점령 시위대 앞에서도 70세의 존 바에즈는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다. 자신에게 가장 큰 재능은 "목소리 덕분에 얻은 수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는 욕망"이며, 그 재능 덕분에 "다양한 모험, 수많은 친구들 그리고 순수한 기쁨"으로 자신의 인생이 충만했다고 존 바에즈는 회고한다. (p.111-112)
1854년 11월 4일, 나이팅게일은 38명의 간호사와 함께 보스포루스 해협 인근에 도착했다. 나이팅게일은 "스쿠타리 막사 병원"에서 절규한다. "누구도 씻을 곳, 씻을 도구 하나 없어요. 깨끗한 물만 없는 것이 아니라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을 용감하게 뚫고 가는 5만 명의 병사를 위해 가져온 군용 린넨 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러시아군이 아니라 무능하고 무책임한 영국 군부였다. 약품은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침대와 이불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나이팅게일은 영국 육군성 장관 시드니 허버트에게 편지를 보냈다. "매트 한 장을 공급하는 데에도 반드시 문서가 필요합니다. 침대 구입부터 병동을 새로 개설하는 데까지 상부에 보내는 서신과 제출 서류를 몇백 통이나 작성해야 합니다." (p.117)
"나는 열일곱 살에 법정 관련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범죄를 다루는 하급 재판소, 그러다 특별 재판소, 이후 중죄 법원을 담당했다." 사건을 취재하고 글을 쓰면서 기자는 숙명적으로 "미움받고 공격당하고 모욕을 받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 "어떤 다른 직업이 당신에게 사건이 발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역사를 기록하도록 허용하며 직접적 증인이 되도록 허용하겠는가? 저널리즘은 가공할 만한 특권이다." 팔라치는 직업 윤리를 철저하게 지켰다. 정치 집회와 관련된 거짓 기사를 강요하는 편집인에게 "가짜 기사를 쓰느니 차라리 굶어 죽겠다"고 저항하다가 1952년에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p.138-139)
올브라이트는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첫 번째'라는 꼬리표를 다는 모든 여자와 소수층이 맞닥뜨리는 문제"임을 인지했다. 주류들은 비주류를 향해 "자질을 갖춘 후보자가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지만, 올브라이트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은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맞섰다. "사실 누군가 어떤 일을 맡아서 할 때까지 누구도 그의 자질을 판단할 수는 없다." 올브라이트는 미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인 샌드라 데이 오코너가 NBC와의 인터뷰에서 "레이건 대통령의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그 제안을 수락할 만큼 자질이 있는지 걱정됐어요."라고 고백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친구들의 충고가 옳았다. "남자라면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올브라이트는 청문회 준비를 꼼꼼하게 마쳤다. 1997년 1월 22일, 상원에서 올브라이트의 임명안은 99대 0으로 통과되었다. 다음 날 올브라이트는 국무 장관 취임 서약을 한다. 그는 국무 장관으로서 자신의 점수는 "가장 가혹하지만 가장 공정한 심판관인 역사가 매겨줄 것임을" 떠올리며 공무를 시작했다. (p.149-150)
냉철하고도 낙관적인 세계관을 유지했던 올브라이트가 80세부터 달라졌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올브라이트는 부쩍 의심이 많아졌다. 2020년, 83세의 올브라이트는 세상을 향해 "경고"한다. "기술 혁명의 어두운 밑바닥, 세상을 좀먹는 권력의 영향력, 진실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경시, 비인간적인 모욕에 대한 불감증, 이슬람 혐오증, 반유대주의로 추진력을 얻은 그 기류들은 이제 정상적인 공공 토론의 범위 안으로 밀려들고 있다." 그는 저술과 강의에 매진하면서 "최악의 상황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싶은 유혹"과 싸우고 있다. 역사는 매들린 올브라이트를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여성 정치인으로 평가할 것이다. 그녀는 원로의 품격을 갖추었다. (p.154)
미술학교 입학 시험을 치는 등 화가 지망생이었던 히틀러는 정치인이 되어 권력을 잡고 나자, 예술가와 지식인들을 폭압적으로 대했다. 1937년 독일에서는 퇴폐 미술전이 개최되었다. 케테 콜비츠, 칸딘스키, 파울 클레, 샤갈, 뭉크, 피카소가 독일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퇴폐적인 예술가로 분류되고 만, 촌극에 가까운 비극이 펼쳐졌다. 70세 생일을 맞은 케테 콜비츠는 독일에서 갑자기 퇴폐 예술가로 취급받고 있었지만,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점차 큰 영향력을 확보해 갔다. 특히 중국의 루쉰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케테 콜비츠를 극찬했다. "이 위대한 예술가는 오늘날 침묵을 선고받았지만, 그녀의 작품은 현재 아시아에까지 전파되고 있다. 케테 콜비츠의 예술 정신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다." (p.162-163)
헬렌 켈러는 자신의 부모가 식견이 탁월한 전화기 발명가와 친분을 유지할 만큼의 사회적 지위와 인맥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무엇보다 앤 설리번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모실 정도의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래드클리프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도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도 없었음을 시인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은 개개인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헬렌 켈러는 자신의 성취를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냉철하게 분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크게 귀 기울이지 않았다. 헬렌 켈러의 미래에도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1903년에 발간한 첫 번째 자서전은 큰 명성을 안겨주었으나, 헬렌 켈러를 그만큼 "부자유스럽게" 했다. 강연 기획자들은 헬렌 켈러가 행사장에 "수수한 흰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기를 요구했다. 점자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야 할 때가 많았다. 헬렌 켈러의 말과 글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녀가 장애인으로서의 삶을 기록한 책이나 시집을 출간하겠다고 하면 반색을 하다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을 강도 높게 비판하거나 하루빨리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비난이 쇄도했다. (p.193)